[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갑자기 주위에서 들리는 신음소리다. 아침 영하로 내려가고 출근하는 볼따구니에 찬 바람이 몰아치자 사람들이 너도나도 무의식적으로 토해내는 비명인 것이다.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가지에 잔뜩 매달려 웃을 때는 아름답고 멋있는 이 가을에 감사하다가 며칠 뒤 금방 추워지니까 가을에 대해 그 아름다움을 칭찬하고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준 것에 감사하던 마음이 어느새 쑥 들어가 버린 것이다. 참으로 간사한 것이 우리네 마음이구나. 허둥지둥 우리 마음이 바빠진다. 각자 사연은 다르지만, 추위가 오면 걱정할 일이 많다. 늘 우리가 미리미리 대비하라는 말을 듣고 마치 준비를 다 해놓은 듯 느긋하게 생각하다가 갑자기 싸늘한 바람이 불어오면 마음이나 생각이 허둥지둥. 정신이 바람에 날려 무인지경으로 밀려간다. 아등바등 그러다가 이젠 몸이 아등바등해진다. 방한복이 좋아져 웬만하면 옛날처럼 추위를 심하게 타지 않아도 되겠지만 이제는 손가락도 발걸음도 빨리 따뜻한 피난처로 가기 위해 온통 내 머리와 상관없이 재빨리 움직이려고 하는데, 그것이 곧 아등바등이다. 누가 만들어낸 말인지는 모르지만, 확실히 적확한 표현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람이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조선 후기의 문인 동명(東溟) 정두경(鄭斗卿 1597~ 1673)은 금강산에 대해 다섯 수의 시를 지었는데 그 첫수에서 다음과 같이 금강산을 묘사한다. 金剛雄六合 금강산이 천하에서 으뜸이니 造化此偏鍾 조화를 여기에 쏟아 놓았구나 海有東南地 바다에는 동남의 땅이 있고 山開一萬峯 산은 일만이천봉을 열었다 門前琪樹出 문전엔 구슬 같은 나무 빼어나고 洞口羽人逢 동구에선 신선을 만난다 絶壁通河漢 절벽은 은하수를 통하였고 淵中帝賜龍 연못 속엔 옥황상제가 용을 하사하였다 과연 신선들이 사는, 하늘의 만들어준 경치란 뜻일 게다. 굳이 옛 문인들의 표현을 빌지 않더라도 금강산이 아름다운 것은 우리가 10여 년 전에는 익히 보아왔다. 그런데 금강산이 왜 우리에게 있는지를 알려주는 글은 별반 없다. 이럴 때 조선 후기 인문정신의 으뜸인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년~1836년)이 소환된다. 다산은 금강산을 유람하러 떠나는 친구들을 전송하면서 글을 한 편 썼는데 귀는 어찌하여 밝은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달려가고, 꾸짖는 소리를 듣고 중지하고, 포효(咆哮)하는 소리를 듣고 해를 피하려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금석사죽(金石絲竹, 예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다시 가을이 왔구나. 여름내 푸르름을 자랑하던 잎들이 하나둘씩 떨어지니 우리 마음도 함께 떨어지는 듯 감정이 예민해지고 처연한 느낌도 생긴다. 우리 주변에서 떠나간 사람들을 생각하기도 한다. 이럴 때 흔히 프랑스의 이브 몽땅. 혹은 줄리에타 그레코가 부른 '고엽(낙엽)'에 사람들은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는 와인이건, 맥주 건, 커피 건 한 잔씩 나누며 센치해지곤 한다. 이런 가을에 나는 최근 그런 노래와는 다른 새 '낙엽'을 즐겨 찾는다. 그리고는 떠나간 그 가수를 생각한다. 노래 제목은 ' Autumn Leaves', 가을의 잎이니 '추엽(秋葉)이라고 할까? 낙엽들이 창가에서 휘날리네요 빨갛고 노란 낙엽들이 말이지요 그 잎에 여름이 키스한 당신의 입술과 햇빛에 거슬린 당신의 손이 보입니다. 당신이 가고 나서 날이 참 오래되었네요 곧 오랜 겨울의 노랫소리가 들리겠지요 그런데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사랑하는 당신이 미치도록 그립답니다. 왜 이브 몽땅이나 그레코의 노래 대신에 이 노래를 듣는가? 이 노래가 더 쓸쓸하고 사무치고 외로워, 진짜 가을을 타게 하기 때문이다. 여성인 이 가수의 목소리가 더 투명하고 깨끗해서 노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이제 곧 거리마다 가로수 밑으로 노란 색종이들이 눈처럼 날릴 때가 온다. 이미 황금설이 내린 곳도 있으리다. 그럴 때 우리들은 이효석이 그의 수필 <낙엽을 태우며>에 남긴 이 명언을 생각한다. "낙엽이란 참으로 이 세상의 사람의 수효보다도 많은가 보다." 한여름 들이나 산에 가면 온통 칡넝쿨이 우거지고 그 줄기마다 칡의 잎들이 무성해서, 마치 이 세상이 칡잎으로 뒤덮이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 때가 있었는데 어느새 우리는 칡 잎은 다 떨어지는 것을 보고 나서 이제는 노란 은행잎이 세상을 뒤덮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은행잎에 대한 시인들의 찬사와 영탄, 한탄이 은행잎만큼이나 많은 것을 접하게 된다. 우리 한국의 가을은 이제 확실히 은행잎이 분위기를 잡아준다. 지금도 우리는 길에 쌓인 은행들을 밟으며 이 은행잎들이 상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버릴 수가 없는데, 이런 가로수가 없던 옛날에도 마찬가지였나? 생육신으로 유명한 김시습(金時習)도 이런 시를 남긴다; 落葉不可掃 떨어지는 잎은 쓰는 것이 아니라오 偏宜淸夜聞 맑은 밤 그 소리 듣기 좋나니 風來聲慽慽 바람이 불면 그 소리 우수수하고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대학생 때 우연히 시작한 클래식 기타, 마침 유난히 많은 데모로 학교가 자주 휴학에 들어갈 때 혼자서 악기를 사고 교재도 사서 연습하였지만 제대로 배우지 못해 진척은 나가지 않고 결국 찻잔 속의 태풍이 되었다. 그렇지만 클래식 기타 음악을 듣는 것은 나의 일생의 즐거움이었고 그 음악은 나의 진정한 반려자였다. 아니 현재도 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다. 클래식 기타 곡 중에 내가 즐겨듣는 게 남미 작곡가 아구스틴 바리오스 망고레의 곡이다. 흔히 바리오스로 부르는 이 작곡가의 <대성당>이란 곡은 <숲 속의 꿈>이란 곡과 함께 현대 기타 음악의 명곡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대성당>이란 음악을 듣자고 하면 첫 곡이 Preludio인데 괄호 속에 Saudade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바리오스의 곡에는 이런 Saudade라는 이름의 곡이 유난히 많다. 그 뜻이 궁금해져 뜻을 알아보느라 품을 좀 팔았다. 그랬더니 그 뜻이 맘에 들었다. 이 가을에 텅 빈 가슴을 대변하는 바로 그 말이었던 것이다. 사우다드란 말은 포르투갈말이다(일본에서는 이를 사우다지로 읽는다. 포르투갈 발음이 원래 그런가?). 혹은 갈리시아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유족이 박물관에 기증한 2만1600여 점의 귀중한 문화재 가운데 시대와 분야를 대표하는 명품 45건 77점(국보·보물 28건 포함)이 지난 7월21일부터 9월26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특별전 형식으로 일반에 공개되자 관람객들의 인기를 가장 끈 작품이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이 그린 <인왕제색도>였다고 한다. 비가 개인 뒤 인왕산의 풍경이다. 당시 인왕산에는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이 집을 짓고 살았다. 우리나라 역대 군주 중에 최고는 역시 세종대왕일 것이다. 대왕의 업적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정치를 잘 한 것은 그만큼 여러 면에서 능력이 출중해서였을 것인데, 그런 대왕의 아들들도 다 뛰어난 인재들이었다. 맏이인 문종과 동생인 수양대군, 안평대군이 모두 뛰어난 인재들이었다. 문종은 학문을 좋아하고 효성이 지극했지만 나라를 이끌 군주로서 가장 중요한 건강이 좋지 않아 결국엔 그 아들이 삼촌에게 화를 입는 역사로 이어졌지만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차지한 수양대군과 그 동생 안평대군은 모두 공부도 열심히 하고 무예도 익히고 사람들을 잘 사귀고 해서 당대에 두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 올해 10월 13일은 저의 생일입니다. 원래 음력인데 양력으로 환산하니 13일이지요. 몇 번째인가 하는 것은, 이제 6학년을 거의 졸업하는 셈이어서, 의미가 없는 것 같고요, 주중에 낀 생일을 미리 한다고 해 아들 손자들이 주말에 미리 축하를 해주어서 생일상을 잘 받았음을 기쁘게 알려드립니다. 그런데 올해 생일상이 예년과 다른 점은 생일 축하의 노래를 기존의 미국 노래인 "해피 버쓰데이 투 유"를 우리말로 바꾸어 부른 노래가 아니라 새로 이 노래로 축하받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가사와 악보가 있습니다. 엇, 작사자가 이동식이군요. 바로 저의 이름입니다. 그렇다면 이 노래는 제가 작사한 것이지요. 긴 긴 시간을 이 땅에서 살아온 우리들은 집안 식구들의 생일, 혹은 생신을 축하하는 상을 차려 올릴 때에 많이 드시라며 말로 축하의 말을 곁들이지만 노래로 축하하는 경우는 민간에서는 별로 없었지요. 다만 왕실에서는 축하음악과 노래를 불러 올렸고, 또 몇몇 분들이 부모님의 생신에 축하노래를 불러올리도록 한 경우는 있었지만 따로 축하노래를 불러올리지는 않았는데, 해방 이후 미국식 생활습속이 급속히 들어와 생일날 케이크를 놓고 거기에 촛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무릇 생명이 죽었다가 살아나면 그것을 부활이라고 부를 것이다. 생명이 아닌 무생물의 경우는 어떤가? 돌이나 나무나 금속이나 생명이 없는 것이 마치 죽은 것처럼 묻혀있다가 다시 세상에 나오면 그것도 부활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돌이나 금속이 어떤 형태를 띄고 있다가 그것이 다시 세상에 나온다면 그것은 부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이것은 분명 부활일 터이다. 북한산 둘레길 은평구간에 부활의 좋은 소식이 있다. 필자가 아침마다 오르는 등산로겸 산책길로 북한산 둘레길 제8구간 구름정원길 중에는 은평뉴타운 4단지 뒷편쪽 길이 있다. 아파트 뒷쪽으로 난 길이어서 그리 높지 않은 길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곳인데 아파트단지에서 올라가는 가까운 곳 비탈에서 얼마 전부터 엎드려 있는 석상이 하나 있어서 그곳을 지나면서 늘 안타까운 마음이었었다. 그 전에는 땅 속에 묻혀있었지만 길 옆 살짝 비껴난 곳이어서 눈에 띄지 않다가 올 여름 비가 계속 온 다음에 노출되어, 머리가 밑으로 향해 엎어져 있었는데 지난 목요일 아침에 보니 어떤 남자 분이 삽을 들고 옆 흙을 파내고 있었다. 그냥 이렇게 두고만 볼
[우리문화신문= 이동식 인문탐험가] "산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 왜 산에 가느냐는 질문에 대해 1924년에 에베레스트를 도전한 등산가 조지 말로리(George Mallory)가 한 이 대답은 고금의 어록으로 기억되지만 사실 등산이라는 것이 모든 이들이 다 좋아하고 다 올라가고 싶은 그런 운동, 혹은 취미는 아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산이 매력을 주지 않는다. 또 산에 올라가는 것이 육체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모두 매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등산을 하다가 자신의 삶을 잃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등산이란 어리석은 장난이며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그런 식으로 위험에 빠뜨릴 권리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산이란 멀리서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산을 오른다는 것은 천하고 세상 동떨어진 짓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산에 올라가는 것을 좋아하고 등산을 한 후에 유산기(遊山記)를 많이 남겼지만 우리의 산이 못올라갈 만큼 험한 산이 없는 관계로 전문적인 등산가는 존재하지 않은 것 같고 다만 산을 오르는 것을 심신을 연마하는 차원에서 보고 즐긴 분들은 많다. 일찌기 청량산에 들어가 산을 유람하고 거기서 공부를 한 퇴계 이황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임술(壬戌) 가을 7월 기망(旣望, 열엿새 날)에 소자(蘇子, 소동파)가 손[客]과 배를 띄워 적벽(赤壁) 아래 노닐새, 맑은 바람은 천천히 불어오는데 물결은 크게 일지는 않는다. 술잔을 들어 손에게 권하며 명월(明月)의 시를 외고 요조(窈窕 ,깊고 고요함)을 노래하네. 이윽고 달이 동쪽 산 위에 솟아올라 북두성(北斗星)과 견우성(牽牛星) 사이를 서성이네. 흰 이슬은 강에 비끼고, 물빛은 하늘에 이었는데 한 잎의 갈대 같은 배가 가는 대로 맡겨, 일만 이랑의 아득한 물결을 헤치니, 넓고도 넓게 허공에 의지하여 바람을 타고 그칠 데를 알 수 없고, 가붓가붓 나부껴 인간 세상을 버리고 홀로 서서, 날개가 돋치어 마치 신선(神仙)으로 돼 오르는 것 같네..." 이렇게 시작하는 적벽부는 47살의 소동파가 송나라 원풍 5년(1082) 한가위 한 달 전인 음력 7월 16일(旣望) 달 밝은 밤에 삼국지 가장 큰 전투인 적벽대전의 무대였던 적벽 아래에서 뱃놀이하며 읊은 부(賦) 형식의 명문장이다. 880여 년 전 이곳에서 벌어진 적벽대전으로 수많은 장정이 목숨을 잃었고 그때의 큰 싸움의 주인공인 조조와 주유, 공명 등의 위인들은 영예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