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천지(天地) 사이에 있는 존재하는 것 치고 변화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누구나 아는 것 같은 이 말은, 그러나 보통 일상에서는 보이지 않고, 어느 순간 가는 길을 멈추고 시간이 지나가는 것, 변화하는 것을 볼 때 눈에 들어오고 가슴에 느껴진다. 그때가 바로 해가 바뀌는 연초, 또는 설이다. 한겨울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나뭇가지에 아무것도 없을 때 여기에 잎이 나오는 것을 생각해내게 되고, 이 나무에서 잎이 처음 나와 싹을 틔웠다가 줄기와 가지로 바뀌고 다시 꽃과 열매로 바뀌며 또 누렇게 낙엽이 지고 마는, 이러한 변화의 이치를 보게 된다. 어찌 만물만 그러하겠는가. 천지(天地) 또한 그러하다. 낮에 밝았다가 밤에 어두워지는 것은 1일(日)의 변화요, 봄에 내놓고 여름에 키우며 가을에 죽이고 겨울에 마감하는 것은 1년(年)의 변화다. 사람의 형체도 마찬가지이다. 처음 태어나 갓난아기가 되었다가 조금 자라서는 방긋 웃을 줄도 알고 말할 줄도 알고 걸어 다닐 줄도 알며 소년기를 지나 청년이 되었다가 장년기를 거치면서 쇠해지고 쇠해진 뒤에 노년을 맞아 마침내는 죽고 마는데, 이 과정의 어느 것 하나 변화 아닌 것이 없다. 그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아침마다 집 주위 둘레길을 돌면서 언제부터인가 나의 시선은 자꾸 땅 쪽으로 내려가 있다. 둘레길에서 스치는 분들 가운데 마스크를 하지 않은 경우가 제법 있어 그들이 내뿜는 공기 속에 혹시나 바이러스가 있지나 않은가 하는 걱정 때문에 아예 공기를 들이마시는 방향을 다르게 해서 모면하자는 나의 얄팍한 계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어쩌면 우리는 산행을 하거나 길거리를 걸을 때도 나도 모르게 타인을 멀리하고 자기 몸을 사리기 위해서라도 점점 땅 밑으로, 발끝으로 시선이 내려가는 경향이 어느새 생긴 것이 아닌가? 아니면 우리들 삶에 자신이 없어져 그런 것인가? 퇴직하고 매일매일의 뉴스에 신경을 안 쓴다고 하면서 살다가도 쏟아지는 뉴스를 보면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끝없이 길어지는 코로나19 사태로 고객을 놓치는 자영업자들의 한숨이 하늘을 찌르는데 방역의 고삐를 늦추니 곧바로 다시 확진자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고, 이런 와중에 누구는 아파트 분양으로 수 천억이란 돈을 챙겼다는 소식, 그 동네에서 잇달아 벌어지는 자살 소식,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 푼돈이라도 벌어야 하는 사람들이 많고 취직을 위해 수없이 자기소개서를 썼다가 찢어버리는 젊은이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매일 아침 산책을 하는 북한산 둘레길 8구간은 구름정원길이란 별칭이 있을 정도로 산자락을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구름 속을 걸어가는 착각을 하게 하는 멋진 구간인데 이 가운데 뉴타운 폭포동 아파트 쪽에는 물길이 모이는 작은 계곡이 있다. 향로봉 서쪽 암반에 난 길을 타고 폭포를 이루며 쏟아져 내려와 평지를 흐르는데 큰비가 오면 물은 콸콸콸 멋지게 흐르지만 동시에 모래도 깎여 내려가며 계곡을 메우는 것이 골칫거리였다. 그래서 지난봄에 구청에서 대대적인 사방공사를 하는 바람에 전에 보던 자연적인 계곡은 판석이 깔린 물길로 바뀌었다. 당연히 예전 자연스러운 골짜기를 즐기던 우리들에게 아쉬움이 없을 수 없었다. 그 전에 사람들은 물길 옆에 하나둘씩 작은 돌탑들을 많이 쌓아 새로운 볼거리를 만들어 즐기곤 했는데 공사 이후에는 다 없어지고 만 것이다. 그러다가 두 달쯤 전에 작은 돌탑 하나가 생겼다. 돌탑이라고 해야 작은 돌들을 위로 쌓아 무릎에 찰까 말까 하는 정도인데, 무미건조한 판석의 물길로 바뀐 것을 약간이나마 보완해주는 효과가 있어 어느새 사람들은 쳐다보면서 좋아하곤 했다. 예전의 돌탑만큼은 아니지만 아슬아슬하게 쌓은 돌탑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1984년 3월 2일 김포를 떠나 프랑스 파리로 가는 대한항공. 1등석에는 이주일, 조용필 씨가 타고 있었다. 프랑스 정부 초청으로 문화훈장을 받으러 가는 중이었다. 3등석에는 필자가 있었다. 우리 텔레비전 역사상 최초로 나라 밖에서 활동하는 우리 예술가를 취재하기 위한 것이었다. 4일 후 파리 시내 에릭 파브레 화랑, 이우환 씨의 파리초대전이 개막되었다. 필자는 이 전시회를 이렇게 서울에 소개했다. “이우환 씨의 작품은 자연석과 거대한 철판을 배열하는 특이한 작품입니다. 에릭 파브레의 넓은 전시장에 놓은 작품들은 모두 5개로서, 각각 형태와 놓는 방법이 달라지면서 돌과 철판과의 직감적인 관계가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이우환 씨가 파리에서 알려지게 된 것은 1971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7회 파리청년비엔날레. 이 씨는 넓은 유리판 위에 큰 자연석을 올려놓았는데, 유리는 깨져 사방으로 금이 가 있는 상태였다. 이 작품이 당시 상당히 큰 반향을 일으켜 이를 계기로 이우환은 유럽과 미국 미술계에 주목을 받게 된다. 필자는 1984년의 초대전 취재와 함께 암스텔담, 베를린 등 여러 나라에서 소장 전시하고 있는 이우환 씨의 작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조선조 중기 명종 선조 대에 살았던 퇴계 이황(1501~1570)은 평생 올바른 인간의 도리를 추구하며 학문과 수양, 교육을 게을리하지 않아 마침내 최고의 유학자로 추앙받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가족, 자손들의 건강 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퇴계는 자신이 공부하는 과정에서 큰아들 준(寯)에게 제대로 아버지로서의 정을 주지 못한 때문인 듯 41살 때 얻은 맏손자 안도(安道)에게는 할아버지로서 관심과 사랑을 쏟으며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도록 편지로 수시로 훈육하였다. 손자 안도는 퇴계가 68살 때인 1568년 3월에 아들, 곧 퇴계의 증손자를 낳았는데, 퇴계는 그 소식을 듣고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쁘다며 직접 수창이란 이름을 지어 한 달 뒤에 편지를 보내주었다. 그런데 이때는 안도가 성균관에 유학하기 위해 한양의 처가에 있을 때인데, 안도의 아들이 태어나고 얼마있지 않아 둘째가 들어서게 되자 엄마의 젖이 끊어져 당장 젖을 못 받아먹게 된 아들의 건강이 급속히 나빠졌다고 한다. 증손자가 자주 설사를 하는 등 건강이 나쁘다는 소식을 들은 퇴계는 손자 앞으로 편지를 보내어 걱정을 많이 하면서 필요한 조치를 알려주곤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중국의 역사에서 가장 성군으로 일컬어지는 당 태종의 치세를 정관의 치(貞觀之治)라고 하거니와 이 당 태종이 정치에서 성공한 이면에는 황제의 잘못에 대해 목숨을 걸고 직언을 한 위징(魏徵, 580∼643) 같은 꼿꼿한 신하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태종이 위징의 행실에 약간의 의심을 하고서 위징에게 충신(忠臣)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투로 말을 걸었다. 이때 위징은 "폐하께서는 저를 충신이 되게 하지 마시고 양신(良臣)이 되게 하소서"라고 하였다. 뜻밖의 대답을 듣고 두 말의 차이를 묻는 태종에게 위징은 '양신은 군주에게 훌륭한 위세와 명망을 가져다주어 자손만대에 이어지게 하는데 견주어, 충신은 결국 미움을 받아 주살 당하기에 십상이고, 군주에게는 혼군이라는 악명을 남겨주며 나라를 망치고 말지요."라고 하였다. 요는 충신은 왕도 문제지만 본인도 목숨을 바쳐야 충신이 된다는 뜻이며 충신이 되지 않고 양신이 되도록 정치를 잘해야 한다고 말을 해준 것이다. 목숨을 바치지 않으면 충신이 될 수가 없다는 뜻이다.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리에 가면 의견비(義犬碑)라는 비석이 하나 세워져 있다. 전설로 전해오는 충견의 의로운 행동을 기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오늘로 12월로 접어들었다. 올해의 마지막 달인 것이다. 바로 하루 전에 우리는 11월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이제 마지막 달로 접어들었으니 바야흐로 모든 것이 마지막이다. 올해의 마지막 주말, 마지막 휴일, 마지막 금요일, 마지막 밤 등등 이런 달력의 흐름에 맞춰 자연도 마지막으로 치닫고 있다. 그나마 남아있던 나뭇잎들이 저마다 갈 곳이 있다는 듯 땅에 떨어져 어디론가 날아가고, 가기 싫은 나뭇잎들은 청소부의 빗자루에 쓸려가고, 이제 길거리에는 이우성도 없는 공허만이 남아있다. 정말로 이 해의 마지막이 다 이달에 몰려 있다. 이때 우리가 즐겨 부르거나 듣는 노래가 두 개가 있으니 그 하나가 배호의 노래 ‘마지막 잎새’다. 그 시절 푸르던 잎 어느덧 낙엽 지고 달빛만 싸늘히 허전한 가지 바람도 살며시 비켜가건만 그 얼마나 참았던 사무친 상처길래 흐느끼며 떨어지는 마지막 잎새 우리가 영원히 기억해 줄 이 노래의 노랫말은 포항출신의 정문(본명은 정귀문) 씨가 만들었다는 사연도 이제는 새삼스럽지는 않다. 학창시절 교장선생님의 딸을 좋아했는데, 교정에서 떨어지는 플라타너스 낙엽을 보며 이런 시구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모든 것의 마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갑자기 주위에서 들리는 신음소리다. 아침 영하로 내려가고 출근하는 볼따구니에 찬 바람이 몰아치자 사람들이 너도나도 무의식적으로 토해내는 비명인 것이다.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가지에 잔뜩 매달려 웃을 때는 아름답고 멋있는 이 가을에 감사하다가 며칠 뒤 금방 추워지니까 가을에 대해 그 아름다움을 칭찬하고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준 것에 감사하던 마음이 어느새 쑥 들어가 버린 것이다. 참으로 간사한 것이 우리네 마음이구나. 허둥지둥 우리 마음이 바빠진다. 각자 사연은 다르지만, 추위가 오면 걱정할 일이 많다. 늘 우리가 미리미리 대비하라는 말을 듣고 마치 준비를 다 해놓은 듯 느긋하게 생각하다가 갑자기 싸늘한 바람이 불어오면 마음이나 생각이 허둥지둥. 정신이 바람에 날려 무인지경으로 밀려간다. 아등바등 그러다가 이젠 몸이 아등바등해진다. 방한복이 좋아져 웬만하면 옛날처럼 추위를 심하게 타지 않아도 되겠지만 이제는 손가락도 발걸음도 빨리 따뜻한 피난처로 가기 위해 온통 내 머리와 상관없이 재빨리 움직이려고 하는데, 그것이 곧 아등바등이다. 누가 만들어낸 말인지는 모르지만, 확실히 적확한 표현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람이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조선 후기의 문인 동명(東溟) 정두경(鄭斗卿 1597~ 1673)은 금강산에 대해 다섯 수의 시를 지었는데 그 첫수에서 다음과 같이 금강산을 묘사한다. 金剛雄六合 금강산이 천하에서 으뜸이니 造化此偏鍾 조화를 여기에 쏟아 놓았구나 海有東南地 바다에는 동남의 땅이 있고 山開一萬峯 산은 일만이천봉을 열었다 門前琪樹出 문전엔 구슬 같은 나무 빼어나고 洞口羽人逢 동구에선 신선을 만난다 絶壁通河漢 절벽은 은하수를 통하였고 淵中帝賜龍 연못 속엔 옥황상제가 용을 하사하였다 과연 신선들이 사는, 하늘의 만들어준 경치란 뜻일 게다. 굳이 옛 문인들의 표현을 빌지 않더라도 금강산이 아름다운 것은 우리가 10여 년 전에는 익히 보아왔다. 그런데 금강산이 왜 우리에게 있는지를 알려주는 글은 별반 없다. 이럴 때 조선 후기 인문정신의 으뜸인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년~1836년)이 소환된다. 다산은 금강산을 유람하러 떠나는 친구들을 전송하면서 글을 한 편 썼는데 귀는 어찌하여 밝은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달려가고, 꾸짖는 소리를 듣고 중지하고, 포효(咆哮)하는 소리를 듣고 해를 피하려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금석사죽(金石絲竹, 예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다시 가을이 왔구나. 여름내 푸르름을 자랑하던 잎들이 하나둘씩 떨어지니 우리 마음도 함께 떨어지는 듯 감정이 예민해지고 처연한 느낌도 생긴다. 우리 주변에서 떠나간 사람들을 생각하기도 한다. 이럴 때 흔히 프랑스의 이브 몽땅. 혹은 줄리에타 그레코가 부른 '고엽(낙엽)'에 사람들은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는 와인이건, 맥주 건, 커피 건 한 잔씩 나누며 센치해지곤 한다. 이런 가을에 나는 최근 그런 노래와는 다른 새 '낙엽'을 즐겨 찾는다. 그리고는 떠나간 그 가수를 생각한다. 노래 제목은 ' Autumn Leaves', 가을의 잎이니 '추엽(秋葉)이라고 할까? 낙엽들이 창가에서 휘날리네요 빨갛고 노란 낙엽들이 말이지요 그 잎에 여름이 키스한 당신의 입술과 햇빛에 거슬린 당신의 손이 보입니다. 당신이 가고 나서 날이 참 오래되었네요 곧 오랜 겨울의 노랫소리가 들리겠지요 그런데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사랑하는 당신이 미치도록 그립답니다. 왜 이브 몽땅이나 그레코의 노래 대신에 이 노래를 듣는가? 이 노래가 더 쓸쓸하고 사무치고 외로워, 진짜 가을을 타게 하기 때문이다. 여성인 이 가수의 목소리가 더 투명하고 깨끗해서 노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