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이제 곧 거리마다 가로수 밑으로 노란 색종이들이 눈처럼 날릴 때가 온다. 이미 황금설이 내린 곳도 있으리다. 그럴 때 우리들은 이효석이 그의 수필 <낙엽을 태우며>에 남긴 이 명언을 생각한다. "낙엽이란 참으로 이 세상의 사람의 수효보다도 많은가 보다." 한여름 들이나 산에 가면 온통 칡넝쿨이 우거지고 그 줄기마다 칡의 잎들이 무성해서, 마치 이 세상이 칡잎으로 뒤덮이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 때가 있었는데 어느새 우리는 칡 잎은 다 떨어지는 것을 보고 나서 이제는 노란 은행잎이 세상을 뒤덮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은행잎에 대한 시인들의 찬사와 영탄, 한탄이 은행잎만큼이나 많은 것을 접하게 된다. 우리 한국의 가을은 이제 확실히 은행잎이 분위기를 잡아준다. 지금도 우리는 길에 쌓인 은행들을 밟으며 이 은행잎들이 상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버릴 수가 없는데, 이런 가로수가 없던 옛날에도 마찬가지였나? 생육신으로 유명한 김시습(金時習)도 이런 시를 남긴다; 落葉不可掃 떨어지는 잎은 쓰는 것이 아니라오 偏宜淸夜聞 맑은 밤 그 소리 듣기 좋나니 風來聲慽慽 바람이 불면 그 소리 우수수하고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대학생 때 우연히 시작한 클래식 기타, 마침 유난히 많은 데모로 학교가 자주 휴학에 들어갈 때 혼자서 악기를 사고 교재도 사서 연습하였지만 제대로 배우지 못해 진척은 나가지 않고 결국 찻잔 속의 태풍이 되었다. 그렇지만 클래식 기타 음악을 듣는 것은 나의 일생의 즐거움이었고 그 음악은 나의 진정한 반려자였다. 아니 현재도 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다. 클래식 기타 곡 중에 내가 즐겨듣는 게 남미 작곡가 아구스틴 바리오스 망고레의 곡이다. 흔히 바리오스로 부르는 이 작곡가의 <대성당>이란 곡은 <숲 속의 꿈>이란 곡과 함께 현대 기타 음악의 명곡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대성당>이란 음악을 듣자고 하면 첫 곡이 Preludio인데 괄호 속에 Saudade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바리오스의 곡에는 이런 Saudade라는 이름의 곡이 유난히 많다. 그 뜻이 궁금해져 뜻을 알아보느라 품을 좀 팔았다. 그랬더니 그 뜻이 맘에 들었다. 이 가을에 텅 빈 가슴을 대변하는 바로 그 말이었던 것이다. 사우다드란 말은 포르투갈말이다(일본에서는 이를 사우다지로 읽는다. 포르투갈 발음이 원래 그런가?). 혹은 갈리시아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유족이 박물관에 기증한 2만1600여 점의 귀중한 문화재 가운데 시대와 분야를 대표하는 명품 45건 77점(국보·보물 28건 포함)이 지난 7월21일부터 9월26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특별전 형식으로 일반에 공개되자 관람객들의 인기를 가장 끈 작품이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이 그린 <인왕제색도>였다고 한다. 비가 개인 뒤 인왕산의 풍경이다. 당시 인왕산에는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이 집을 짓고 살았다. 우리나라 역대 군주 중에 최고는 역시 세종대왕일 것이다. 대왕의 업적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정치를 잘 한 것은 그만큼 여러 면에서 능력이 출중해서였을 것인데, 그런 대왕의 아들들도 다 뛰어난 인재들이었다. 맏이인 문종과 동생인 수양대군, 안평대군이 모두 뛰어난 인재들이었다. 문종은 학문을 좋아하고 효성이 지극했지만 나라를 이끌 군주로서 가장 중요한 건강이 좋지 않아 결국엔 그 아들이 삼촌에게 화를 입는 역사로 이어졌지만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차지한 수양대군과 그 동생 안평대군은 모두 공부도 열심히 하고 무예도 익히고 사람들을 잘 사귀고 해서 당대에 두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 올해 10월 13일은 저의 생일입니다. 원래 음력인데 양력으로 환산하니 13일이지요. 몇 번째인가 하는 것은, 이제 6학년을 거의 졸업하는 셈이어서, 의미가 없는 것 같고요, 주중에 낀 생일을 미리 한다고 해 아들 손자들이 주말에 미리 축하를 해주어서 생일상을 잘 받았음을 기쁘게 알려드립니다. 그런데 올해 생일상이 예년과 다른 점은 생일 축하의 노래를 기존의 미국 노래인 "해피 버쓰데이 투 유"를 우리말로 바꾸어 부른 노래가 아니라 새로 이 노래로 축하받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가사와 악보가 있습니다. 엇, 작사자가 이동식이군요. 바로 저의 이름입니다. 그렇다면 이 노래는 제가 작사한 것이지요. 긴 긴 시간을 이 땅에서 살아온 우리들은 집안 식구들의 생일, 혹은 생신을 축하하는 상을 차려 올릴 때에 많이 드시라며 말로 축하의 말을 곁들이지만 노래로 축하하는 경우는 민간에서는 별로 없었지요. 다만 왕실에서는 축하음악과 노래를 불러 올렸고, 또 몇몇 분들이 부모님의 생신에 축하노래를 불러올리도록 한 경우는 있었지만 따로 축하노래를 불러올리지는 않았는데, 해방 이후 미국식 생활습속이 급속히 들어와 생일날 케이크를 놓고 거기에 촛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무릇 생명이 죽었다가 살아나면 그것을 부활이라고 부를 것이다. 생명이 아닌 무생물의 경우는 어떤가? 돌이나 나무나 금속이나 생명이 없는 것이 마치 죽은 것처럼 묻혀있다가 다시 세상에 나오면 그것도 부활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돌이나 금속이 어떤 형태를 띄고 있다가 그것이 다시 세상에 나온다면 그것은 부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이것은 분명 부활일 터이다. 북한산 둘레길 은평구간에 부활의 좋은 소식이 있다. 필자가 아침마다 오르는 등산로겸 산책길로 북한산 둘레길 제8구간 구름정원길 중에는 은평뉴타운 4단지 뒷편쪽 길이 있다. 아파트 뒷쪽으로 난 길이어서 그리 높지 않은 길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곳인데 아파트단지에서 올라가는 가까운 곳 비탈에서 얼마 전부터 엎드려 있는 석상이 하나 있어서 그곳을 지나면서 늘 안타까운 마음이었었다. 그 전에는 땅 속에 묻혀있었지만 길 옆 살짝 비껴난 곳이어서 눈에 띄지 않다가 올 여름 비가 계속 온 다음에 노출되어, 머리가 밑으로 향해 엎어져 있었는데 지난 목요일 아침에 보니 어떤 남자 분이 삽을 들고 옆 흙을 파내고 있었다. 그냥 이렇게 두고만 볼
[우리문화신문= 이동식 인문탐험가] "산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 왜 산에 가느냐는 질문에 대해 1924년에 에베레스트를 도전한 등산가 조지 말로리(George Mallory)가 한 이 대답은 고금의 어록으로 기억되지만 사실 등산이라는 것이 모든 이들이 다 좋아하고 다 올라가고 싶은 그런 운동, 혹은 취미는 아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산이 매력을 주지 않는다. 또 산에 올라가는 것이 육체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모두 매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등산을 하다가 자신의 삶을 잃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등산이란 어리석은 장난이며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그런 식으로 위험에 빠뜨릴 권리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산이란 멀리서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산을 오른다는 것은 천하고 세상 동떨어진 짓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산에 올라가는 것을 좋아하고 등산을 한 후에 유산기(遊山記)를 많이 남겼지만 우리의 산이 못올라갈 만큼 험한 산이 없는 관계로 전문적인 등산가는 존재하지 않은 것 같고 다만 산을 오르는 것을 심신을 연마하는 차원에서 보고 즐긴 분들은 많다. 일찌기 청량산에 들어가 산을 유람하고 거기서 공부를 한 퇴계 이황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임술(壬戌) 가을 7월 기망(旣望, 열엿새 날)에 소자(蘇子, 소동파)가 손[客]과 배를 띄워 적벽(赤壁) 아래 노닐새, 맑은 바람은 천천히 불어오는데 물결은 크게 일지는 않는다. 술잔을 들어 손에게 권하며 명월(明月)의 시를 외고 요조(窈窕 ,깊고 고요함)을 노래하네. 이윽고 달이 동쪽 산 위에 솟아올라 북두성(北斗星)과 견우성(牽牛星) 사이를 서성이네. 흰 이슬은 강에 비끼고, 물빛은 하늘에 이었는데 한 잎의 갈대 같은 배가 가는 대로 맡겨, 일만 이랑의 아득한 물결을 헤치니, 넓고도 넓게 허공에 의지하여 바람을 타고 그칠 데를 알 수 없고, 가붓가붓 나부껴 인간 세상을 버리고 홀로 서서, 날개가 돋치어 마치 신선(神仙)으로 돼 오르는 것 같네..." 이렇게 시작하는 적벽부는 47살의 소동파가 송나라 원풍 5년(1082) 한가위 한 달 전인 음력 7월 16일(旣望) 달 밝은 밤에 삼국지 가장 큰 전투인 적벽대전의 무대였던 적벽 아래에서 뱃놀이하며 읊은 부(賦) 형식의 명문장이다. 880여 년 전 이곳에서 벌어진 적벽대전으로 수많은 장정이 목숨을 잃었고 그때의 큰 싸움의 주인공인 조조와 주유, 공명 등의 위인들은 영예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달포 전 아침 운동으로 둘레길을 돌다가 눈썰미 좋은 부인이 단풍나무 아래에 떨어져 있는 조그만 잎 하나를 집어 들어 보여준다. 아직 낙엽으로 떨어질 철이 아닌데 홀로 떨어진 그 잎은 팔방으로 뻗은 잎맥을 따라 빨간색이 안에서부터 번지는 모양이다. 보통은 잎이 다섯 개 정도 갈라져 있는데 이것은 8개나 되어 별종은 별종이네. 그래서 미운 오리새끼처럼 별종이라고 따돌림당해 먼저 가출한 것인가? 어찌 보면 미친 것이 아닌가? 미치지 않았으면 그렇게 혼자서 먼저 빨갛게 변할 이유가 없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어찌 보면 미친 단풍잎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다가 서울의 대학 구내에 있는 '미친 나무'라 불리는 벚나무가 생각이 났다. '미친 나무'는 연세대 신촌캠퍼스의 한글탑 옆에 서 있는 벚나무 한그루를 말한다 이 나무에는 한 나무에 흰꽃, 분홍꽃, 진분홍의 벚꽃이 마치 ‘미친 듯이’ 함께 피기 때문에 그런 별명을 받았고 꽃이 한꺼번에 피는 때가 되면 해마다 이 나무를 보러오는 학생과 시민들이 많다. 왜 이 나무가 이처럼 ‘미쳤을까?’ 한 언론(2008년4월18일 동아일보)은 “부분 돌연변이가 일어난 나뭇가지를 꺾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중학교 2학년 국어시간에 선생님이 칠판에 한문 시구를 하나 적어놓으셨다, 男兒立志出鄕關(남아입지출향관)하여 學若無成死不還 (학약부성사불환)이로다 그리고 풀이를 해주시길 “남자가 뜻을 세워 고향문을 나서는 마당에, 배움에 성취가 없으면 죽어도 아니 돌아오겠습니다”란 뜻이란다. 그러고는 이 구절을 여러분들이 잘 기억하고 있으면서 어디 가든 열심히 배우고 노력해서 성공해야 한다, 성공 못 하면 고향에 무슨 낯짝을 들고 돌아오겠느냐, 그러니 열심히 하라고 말해주셨다. 그때가 1967년이었고, 당시 우리는 교육당국의 망설임 덕에 어려운 한자를 배우지 않고도 학교를 잘 다닐 수 있었는데, 나이 지긋하신 국어선생님은 굳이 한자로 된 시구를 적어놓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셔서 이 구절은 억지로 문장을 외우고 뜻을 새겼다. 조금 더 커서 글귀를 조금 알아듣기 시작하면서부터 시 형태로 된 이 말을 누가 했는지가 궁금했다. 그런데 원작자가 영 나타나지를 않아 사실상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최근 우연히 근대 일본의 정치가가 한 말이라는 주장이 있기에 관심을 두고 검색을 해보았다. 그랬더니 이 시가 일본의 도쿠카와 막부 말기에 겟쇼(月性)란 일본 스님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며칠 전 광화문 교보문고 뒤편을 거닐다가 길가에 붉은 꽃들을 많이 달고 있는 나무 하나를 보았다. 아니 이 한여름에도 나무에 꽃이 피나? 자세히 보니 역시 그랬다. 배롱나무였다. 한동안 서울에서는 볼 엄두도 내지 못하던 배롱나무들이 길가 여기저기에서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화무십일홍! 우리가 가끔 입에 달고 사는 이 말은 열흘 붉을 꽃이 없다는 뜻의 옛 한문식 말이다. 주로 권력의 무상함을 의미할 때 쓰이지만 기본적으로는 꽃이란 것이 그렇게 오래 피는 것이 아니라는 뜻을 깔고 있다. 그런데 이 말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꽃이 바로 백일홍, 속칭 배롱나무꽃이다. 화무십일홍이요 열흘 붉을 꽃 없다지만 석 달 열흘 피워내어 그 이름 백일홍이라 뜨거운 뙤약볕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꽃봉오리 터지던 날 진분홍 주름치마 나풀거리며 살랑이는 바람결에 살포시 미끈한 속살 내비치는 한여름의 청순한 화신이여! ... 조선윤, <배롱나무꽃> 왜 나무 이름이 배롱나무인데 꽃은 백일홍이라고 하는가? 원래는 백일홍이 먼저 붙은 이름인데 이것을 읽다 보니 ‘배기롱’이 되고 다시 ‘배롱’으로 줄어들었단다. 이름이 한자에서 어느 틈에 순우리말 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