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산길을 오르는데 백합과에 속하는 얼레지가 지천으로 피어있다. 얼레지 군락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색다른 이름 때문에 언뜻 외국 꽃이려니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얼레지는 심심산골에 자라는 우리의 토종 꽃이다. 이유미가 지은 《한국의 야생화》 책에서는 얼레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고개를 숙인 채 다소곳이 맺혀 있던 꽃봉오리가 피기 시작하면 6장의 꽃잎이 한껏 펼쳐져 꽃잎의 뒷면이 서로 맞닿을 정도로 완전히 뒤로 젖혀진다. 그래서 꽃잎 속에 감춰져 있던 긴 보랏빛 암술대며 이를 둘러싼 수술대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수줍은 듯 고개 숙이는 산골 처녀로서는 파격적인 개방인 셈이다.” <그림8> 그 밖에도 보라색 현호색과 노루귀, 별꽃, 양지꽃 등등 이른 봄에 피어나는 들꽃이 많이 보였다. 뜻밖에 내가 아는 제비꽃은 매우 드물었다. 계절은 이른 봄. 사방에서 신선한 기운을 발산하는 연두색 새잎에 반한 해당(오종실의 호)이 춘흥(春興)을 억누르지 못하고 큰 나무 아래에서 단가 사철가를 멋있게 불렀다. 계절과 사람과 소리가 아주 잘 어울렸다. 내가 중간중간에 추임새를 넣었다. 이산 저산 꽃이 피니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답사 날자> 2022년 5월 3일 화요일 <답사 참가자> 이상훈 김종화 박인기 부명숙 안승열 오종실 우명길 이규석 원영환 최돈형 모두 10명 <답사기 작성일> 2022년 5월 16일 2021년에 평창강 220km를 14구간으로 나누어서 벗들과 함께 걸었다. 내가 평창에 살기 때문에 답사 준비를 맡았는데, 은근히 할 일이 많았다. 좋은 식당을 알아보고 예약하는 일, 지도에 표시된 작은 도로가 끊어지지는 않았는지 사전 답사로 알아보는 일, 인원이 많아지면 차량을 어떻게 운용해야 하는지 등등 어렵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사소하게 확인해야 하는 일들이 많았다. 그래서 올해는 코로나 핑계를 대고 봉평 집에서 칩거하려고 했는데, 친구들이 자꾸 다른 답사 계획이 없느냐고 묻는다. 답사도 다리에 힘이 있을 때 가야지 무릎 아프고 허리 아프면 다 소용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대천 따라 걷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한강의 발원지는 조선 시대에는 오대산 상원사의 남서쪽 서대 수정암 옆에 있는 우통수라고 알려져 있었다. 우통수에서 발원하는 하천의 이름이 오대천이다. 오대천은 월정사 앞을 지나 남쪽으로 흘러서 진부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지나가는 개미를 밟아 죽이는 일을 어떻게 볼 것인가? 법적인 측면에서, 도덕적인 측면에서, 또는 윤리적인 측면에서 우리는 개미를 죽이는 일을 비난할 수 있겠는가? 비난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에게 사람과 같은 생존권을 인정하자는 것이 동물보호론자들의 주장이다. 프랑스 파리의 유네스코 본부에서 세계동물권리선언이 발표된 것은 1978년 10월 15일이다. 동물권리선언의 제1조는 다음과 같다. 제1조 모든 동물은 태어나면서부터 평등한 생명권과 존재할 권리를 가진다. 여기에서 동물의 정의와 범위가 문제가 될 것이다. 동물의 정의에 이의 없이 포유류(고양이, 개, 소, 말, 염소 등등)는 당연히 포함될 것이다. 돌고래도 포유류이니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바닷가재는 어떨까? 개미는? 꿀벌은? 질문이 확대되면 복잡해지지만, 이러한 질문에 답하려는 시도가 환경윤리다. 환경윤리는 생태계의 모든 생명체를 인간 생명과 대등한 존재로 인정하고, 생명체의 생존권을 인정하자는 윤리다. 모든 생명체에 환경윤리를 적용하면 개미를 밟아 죽이는 일은 나쁜 일, 비윤리적인 행동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논에 농약을 뿌려 간접적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제14구간 답사 후기> 제14 구간 답사를 마치고 시간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김삿갓 문학관을 방문하였다. 김삿갓문학관은 답사 종점에서 24km 남쪽에 있었다. 김삿갓(1807~1863)은 57살의 나이로 전라도 동복(지금의 화순군)에서 객사하였다. 죽고 나서 3년 동안 가묘 상태로 있다가 둘째 아들 익균이 뒤늦게 유해를 영월로 운구하여 하동면 노루목 골짜기에 묻었다. 그의 무덤은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는데, 1982년에 영월의 향토사학자 박영국 선생의 노력으로 처음 발견되었다. 2003년에 개관한 김삿갓문학관이 있는 지점의 명칭은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였다. 그런데 영월군에서는 2009년에 하동면을 김삿갓면으로 변경하였다. 관광객을 끌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김삿갓면은 날로 인구가 줄고 있어서 큰 고민이다. 김삿갓면의 인구수는 2021년 현재 1,700명에 불과하다. 내가 사는 봉평면의 인구수 5,700명에 견주어도 너무 적다. 영월에서 남쪽으로 88번 국도를 따라가다가 우회전하여 김삿갓계곡으로 들어갔다. 김삿갓계곡은 우리가 걸었던 금당계곡이나 뇌운계곡 못지않게 계곡이 깊고 길었다. 차창으로 보이는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세경대학교 앞은 인도와 차도가 구분되어 있었다. 가로수를 심었는데, 단풍이 들고 잎이 떨어져 있어서 그럴듯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홍 교수와 해당을 주인공으로 하여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시가지를 조금 걷다가 오른쪽 길로 빠지자 강이 보인다. 왼쪽으로는 엄청나게 넓은 체육시설이 나타나고 오른쪽으로는 제방 너머로 평창강이 보인다. 이곳에서 평창강을 가로지르는 고가도로의 이름이 서강대교다. 영월 사람들은 평창강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서강이라고 부른다. 영월읍의 동쪽에서 흐르는 강이 동강(東江)이니 서쪽에 있는 강을 자연스럽게 서강(西江)이라고 부른다. 평창군에서 발원했기 때문에 평창강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영월 사람들의 심리로 볼 때 이웃 군의 이름을 강 이름으로 부르기에는 조금 께름칙한 면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걷는 길의 왼쪽에 외씨버선길이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길 이름이 예뻐서 안내판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외씨버선길은 영월읍의 산책길이 아니다. 외씨버선길은 우리나라 대표 청정지역인 경북의 청송, 영양, 봉화와 강원도 영월의 4개 군이 협력하여 만든 둘레길이라고 한다. 외씨버선길은 모두 1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지난 2003년 경부고속전철 공사 과정에서 제기된 천성산 터널 중단 소송에서 도롱뇽은 원고 자격이 없으므로 소송의 당사자가 될 수 없다는 이유로 소송이 각하된 판례를 소개한 바 있다. 기존의 법에서는 자연(산, 강, 땅)과 동식물(나무, 개, 소)은 사람의 소유물로 본다. 그러므로 현행법에서는 도롱뇽의 주인이거나 도롱뇽의 서식지가 파괴되어 손해를 보는 사람만 소송을 낼 수 있다고 해석했다. 도롱뇽 자체는 법적 권리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 해석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2013년에 서울대공원의 ‘제돌이’를 제주 바다로 돌려보낸 이후 돌고래의 생존권에 관한 관심과 논란이 커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제주 연안에만 서식하는 남방큰돌고래는 과거 제주도 전역에서 1,000마리 이상이 발견됐지만, 현재는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 부근에 120여 마리가 사는 것으로 추정된다. 개체 수가 급격히 줄면서 2019년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남방큰돌고래를 준위협종(멸종위기직전의 상태)으로 분류했다. 무분별한 선박 관광과 해상풍력발전 등으로 생존의 위협을 받는 제주 남방큰돌고래를 생태법인으로 지정해 보호하려는 방안이 제주도 국회의원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답사 날짜> 2021년 11월 4일 목요일 <답사 참가자> 이상훈, 박인기, 오종실, 우명길, 이규석, 원영환, 최돈형, 홍종배, 모두 8명 <답사기 작성일> 2021년 11월 6일 토요일 평창강 제14구간은 영월읍 하송리 오솔길에서 출발하여 영월읍 덕포리 드론전용비행시험장에 이르는 4.3km 이다. 이번 구간은 거리가 짧아서 걷는 데 두 시간이 채 안 걸릴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답사 뒤 종점에서 약 24km 떨어진 김삿갓문학관을 방문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우리는 낮 1시에 하송리 오솔길 끝에 있는 ‘야생동물 피해 예방시설’ 앞에서 출발하였다. 철조망이 처져 있는 이 시설은 아마도 유기견들을 보관하는 시설처럼 보였다. 하송리(下松里)라는 지명의 유래는 영월전매서와 경찰서 부근의 송정개(큰 소나무 숲) 밑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동ㆍ서강이 합치는 지역이므로 대장개, 돌석개 같은 큰 갯벌이 있었으며 아기 장수가 태어났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 곳이다. 이날 날씨는 전형적인 가을 날씨였다. 기온은 걷기에 적당하여 쌀쌀하지도 않고 덥지도 않았다. 가을 햇살이 약간 따사롭게 느껴졌다.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단종은 1457년 10월에 관풍헌에서 사약을 받고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단종의 죽음에 대해서 여러 가지 설이 있어서 나는 혼란스럽다. 단종의 죽음에 대해서 《세조실록》 세조3년 10월 21일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노산군(魯山君)이 이를 듣고 또한 스스로 목매어서 졸(卒)하니, 예(禮)로써 장사지냈다. (필자 주: 세조는 단종의 장인인 송현수가 금성대군과 함께 단종 복위를 꾀했다는 혐의로 교수형에 처하라는 명을 내렸다. 이 소식을 듣고 단종이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는 것이다.) 《세조실록》에는 단종이 자살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닌 듯하다. 단종을 호송했던 금부도사 왕방연이 단종에게 사약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작 《세조실록》에는 왕방연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왕방연이 언급된 것은 《숙종실록》 숙종 25년 1월 2일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임금이 말하기를, "군신(君臣)의 대의(大義)는 천지 사이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단종 대왕(端宗大王)이 영월(寧越)에 피하여 계실 적에 금부도사(禁府都事) 왕방연(王邦衍)이 고을에 도착하여 머뭇거리면서 감히 들어가지 못하였고,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의 구성원을 무생물, 식물, 동물, 그리고 인간으로 분류하였다. 그에 따르면 무생물이라는 질료(형식을 갖춤으로써 비로소 일정한 것으로 되는 재료)에 나서 자라고 번식의 능력을 갖춘 것이 식물이다. 식물의 속성에 추가로 운동과 감각의 능력을 갖춘 것이 동물이고, 동물의 속성에 이성을 추가로 갖춘 것이 인간이다. 인간을 식물이나 동물보다 높은 차원의 존재로 보는 이러한 자연관은 인간의 자존심을 만족시켰다. 이러한 자연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이며 서양 철학의 원조 격인 플라톤을 거치고, 신약성서의 서간문들을 쓴 바울을 통하여 기독교에 흡수되었다. 유태교에서 비롯된 기독교에서는 인간은 하느님의 형상을 닮은 영혼을 가졌기 때문에 강과 산은 물론, 다른 동물과 식물과는 질적으로 구별되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기독교 사상은 오랫동안 서양인의 자연관을 지배했다. 현대의 환경위기가 기독교의 잘못된 자연관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매우 도전적인 견해가 미국의 역사학자인 화이트(L. White) 교수에 의해 1967년 Science 지에 발표되었다. 이 주장에 따르면 본래 유럽 사람들은 물활론(세상 만물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다리를 하나 건너자 드디어 청령포가 보인다.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배가 멀리 보인다. 청령포에 가까이 가자 강변에 소나무 숲이 나타난다. 소나무 숲 사이에 비석이 서 있다. 가까이 가보니 왕방연 시조비다. 단종 유배길의 호송 책임을 맡은 금부도사 왕방연이 임무를 끝내고 한양으로 돌아가다가, 비통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없어 이곳에서 청령포를 바라보면서 시조를 읊었다고 전해진다. 이 시조가 <단장가>로서 영조 때에 펴낸 《청구영언》에 전한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은 님 여의옵고 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시조비가 서 있는 울창한 소나무숲을 솔모정이라고 한다. 소나무 숲이 마치 멋들어진 정자를 떠올리게 한다고 하여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왕방연 시조비는 1984년에 세워졌다. 솔모정을 지나자 왼쪽에 커다랗게 움푹 꺼진 분지가 나타난다. 이곳이 ‘영월 강변 저류지’다. 영월 저류지는 홍수가 나면 침수되어 물난리가 나는 방절리 일대를 홍수에서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영월 저류지 조성 공사는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살리기 사업의 일부로 추진되었다. 2010년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