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류시화님의 작은 이야기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옛날 그리스에 애꾸눈 장군이 죽기 전에 자기 초상화를 남기고 싶어 이름난 화가들을 불렀습니다. 화가들이 그린 초상화를 보고 장군은 못마땅하게 생각했지요. 어떤 화가는 애꾸눈을 그대로 그렸고, 또 어떤 화가는 양쪽 모두 성한 눈을 그렸습니다. 장군은 애꾸눈의 초상화도 못마땅했지만 성한 눈을 그린 것도 못마땅한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 이름 없는 화가가 나섰습니다. 이 무명 화가의 초상화는 장군을 흡족하게 했습니다. 그는 장군의 성한 옆모습을 그렸던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지혜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물을 칭송했습니다. "가장 훌륭한 것은 물처럼 되는 것이다. (상선약수/上善若水)“ 상선약수는 노자 사상의 큰 축을 이루는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세상엔 물처럼 싱거운 것이 없습니다. 맹물 같은 사람이란 표현 속에는 업신여김도 들어있지요. 물은 컵에 담으면 컵 모양으로 주전자에 담으면 주전자 모양으로 되기 때문에 지조 없음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세상에 물보다 더 부드럽고 여린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단단하고 힘센 것을 물리치는데 이보다 더 훌륭한 것도 없습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주말에 주왕산을 다녀왔습니다. 어마어마하게 큰 바위의 열병이 마음을 들뜨게 했지만, 길가에 다소곳이 피어난 얼레지와 노루귀, 생강나무꽃과 성급한 진달래가 봄을 이야기하고 있음이 좋았습니다. 잎이 얼룩덜룩한 얼레지는 나물로도 유명한 식물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명지산 연인산 정상부에 끝없이 펼쳐진 얼레지 군락이 유명한데 그 길을 걷다 보면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깊은 산속 산모퉁이의 양지바른 곳에 수줍게 피어난 연분홍 얼레지를 봅니다. 얼레지는 꽃이 땅을 향해있고 꽃잎이 치마를 훌렁 걷어 올린 것처럼 보여 바람난 여인이라는 꽃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부끄러움에 하늘을 쳐다보지 못하니 꽃말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하지요. 얼레지는 발아하여 성장하다 꽃을 피워 올릴 때까지 무려 7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 어려움을 딛고 피어난 꽃이기에 더욱 반가운지 모르지요. 얼레지는 엘레지와 다릅니다. 엘레지는 슬픔을 노래한 시를 의미하거든요 여하튼 얼레지라는 명칭이 서구적이어서 멋스럽게 다가올는지는 모르지만 이는 이파리가 얼룩덜룩하여 얼레지라고 이름 붙였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봄입니다. 이제 산야에 푸르름이 지천으로 피어나겠지요. 푸름 속에 연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춘천 강촌의 등선폭포를 거쳐 삼악산으로 오르는 길 산행을 시작하여 10여 분을 올라가 몸이 풀리기 시작할 지점에 양지바른 비탈에 앙증맞게 피어난 꽃이 있습니다. 노루귀가 그것인데요. 노루귀는 여러해살이로 해마다 같은 장소에서 꽃을 피워 올리는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양지 식물입니다. 연보랏빛 여섯 개의 꽃잎이 앙증맞게 모여있는 모습이 여간 이쁜 게 아닙니다. 노루귀라는 이름은 꽃대에 털이 송송 나 있어 노루귀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강원도에서 봄에 가장 빨리 피는 꽃으로 노루귀, 얼음새꽃, 생강나무를 꼽을 수 있는데 그중에도 으뜸이 노루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꽃말이 "인내"라고 하니 겨우내 서러운 추위를 참고 견뎌 아주 이른 봄에 꽃대를 피워올려 우주를 열고 있는 모습이 인내를 닮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봄은 아주 작은 꽃송이로부터 옵니다. 봄에 피는 들꽃은 작고 소박하여 원색보다는 눈에 잘 띄지 않는 흰색이나 보라색 계열이 많습니다. 크고 화려함보다는 작지만 은은한 향기를 가진 것도 특징이지요. 봄은 "보다"라는 동사의 명사형입니다. 봄이 오면 그만큼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늘어난다는 의미겠지요. 아지랑이 넘실대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봄이 조금씩 열리고 있습니다. 야트막한 산 아래 생강나무의 꽃눈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부풀고 겨우내 잠들었던 진달래도 두툼한 꽃망울을 살찌우고 있습니다. 어느 꽃이든 피어있는 꽃은 아름답습니다. 사실 꽃은 식물의 생식 기관이지요. 동물은 생식 기관을 감추고 있지만, 식물은 하늘을 향해 온몸으로 자랑하고 있습니다. 동물은 유전인자를 후세에 물려줄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움직임으로 인한 상처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감추어둔 것이라면 식물은 벌과 나비를 불러들여야 후손을 남길 수 있기에 겉으로, 겉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지요. 식물은 왜 꽃을 피울까요? 그것은 사랑을 이루기 위함이고 후세에 형질을 남기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벌 나비를 불러들일 수 있도록 향기나 색, 꿀이나 꽃가루를 쓰는 생존전략을 갖고 있지요. 그러나 꽃을 보며 예쁘다고 찬사를 보내는 것은 벌도 나비도 아닌 사람입니다. 꽃은 사람을 위하여 봉오리를 피워 올린 것이 아닌데도 말이지요. ‘꽃이 아름다운 까닭은 당신 안에 꽃이 있기 때문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꽃은 그냥 꽃이고 하나의 사물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에 아름다움이 있으므로 아름답게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광양 매화마을을 다녀왔습니다. 봄은 훈풍으로 다가와 꽃으로 환생하여 우리 곁에 다가옵니다. 봄이 가장 먼저 상륙하는 곳은 아마도 섬진강일 겁니다. 그곳엔 매화가 지천으로 있거든요. 섬진강의 섬(蟾)은 두꺼비 섬자 입니다. 1385년(우왕 11)경 왜구가 섬진강 하구를 침입하였을 때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 떼가 울부짖어 왜구가 광양 쪽으로 피해 갔다는 전설이 있는데 이때부터 ‘두꺼비 섬(蟾)’ 자를 붙여 섬진강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섬진강에는 매화마을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른 방문에 꽃봉오리만 맺혀있어 화려한 꽃은 볼 수 없었지만 매화로를 중심으로 잘 가꾸어진 10만 그루가 넘는 매실나무의 군락을 볼 수 있었습니다. 굳이 매화마을이 아니어도 섬진강가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길을 따라 흐드러진 매화의 향연이 일주일의 환상적인 한정판 전시회여서 가슴 벅참을 느낄 수 있습니다. 꽃도 좋지만, 6월 초 청매실로 농가의 수입원이 되는 매화나무는 볼거리와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참 좋은 나무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조금 더 가면 화개장터가 나옵니다. 작은 장터지만 조영남의 노래로 유명해진 곳인데 그 경쾌한 리듬도 좋지만, 골이 깊은 전라도와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중국 전한 시대에 유안(劉安)이 펴낸 《회남자(淮南子)》라는 책이 있습니다. 일종의 백과사전으로 지식이 총망라되어있는 책입니다. 거기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옵니다. <乞火 不若取燧 (걸화 불약취수)> "불을 구걸하는 것은 부싯돌을 취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라는 말씀입니다. 유대인 속담의 "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고기 잡은 방법을 가르쳐라."란 말씀과 상통하는 말이지요. 굶고 있는 사람에게 밥 한 끼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밥을 해결할 수 있도록 자립을 돕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금전적으로 부유한 집의 자녀 가운데 제대로 된 자녀가 드믑니다. 의존적 상속인으로 만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재벌들은 2세를 혹독하게 교육하기도 합니다. 한때 대우기업을 이끌었던 김우중 회장의 아들은 미국 유학 시절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합니다. 그때 김우중 회장이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지요. "좀 더 좋은 차를 사 줄걸…." 요즘 사회적 문제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아마도 일자리라 생각됩니다.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서 청년의 꿈을 실현해주는 것을 마다할 사람은 없습니다. 문제는 정말 일자리가 없어서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아그네스 곤자 보야지우는 향년 87살까지 가난한 자의 친구로 평생을 몸 바쳤던 테레사 수녀의 본명입니다. 테레사 수녀가 인도의 한 마을에서 다친 아이들의 상처를 지극정성으로 돌봐주고 있었습니다. 그때 이웃 마을 주민이 묻지요. "수녀님 당신은 당신보다 더 잘살거나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 편안하게 사는 것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안 드시나요? 당신은 평생 이렇게 사는 것에 만족하십니까?" 그러자 테레사 수녀가 말합니다. "허리를 굽히고 섬기는 사람은 위를 쳐다볼 시간이 없답니다." 사람의 눈은 앞을 보도록 설계되어 있지만 사람 대부분은 아래보다는 위를 쳐다보고 평생을 살아갑니다. 남들보다 더 가지지 못해서, 남들보다 더 높아지지 못해서 불행을 안고 사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지요. 머리를 숙이면 부딪칠 일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아래만 보고 살아가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명심보감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知足常足 終身不辱 知止常止 終身不恥 지족상족 종신불욕 지지상지 종신무치 "만족함을 알아 늘 만족하면 평생토록 욕됨이 없고 그침을 알아 늘 알맞게 그치면 평생 치욕이 없을 것이다." 적당한 선에서 만족할 줄 아는 삶이 행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농사는 사람이 준비하지만, 하늘이 짓습니다. 물론 스마트팜을 비롯한 인공적 환경을 제공하면서 식물의 특성에 맞게 농사를 짓는 방법도 있지만 아직 대부분의 농사는 하늘이 내려준 비와 은혜로운 햇살의 영향을 받습니다. 곧 농사는 혼자 짓는 것 같지만 모든 여러 가지 여건이 성숙하였을 때 풍작을 이룰 수 있습니다. 《논어》의 옹야편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옵니다.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기욕립이립인 기욕달이달인 해석하면 "자신이 서고 싶으면 남을 먼저 세워주고 자신이 이루고 싶으면 남을 먼저 이루게 하라"라는 의미입니다. 더불어 사는 삶을 이야기 하는 것이지요. 소통이란 기술과 기교가 아니라 진실과 진정성입니다. 살아가면서 자기중심적 사고에 빠져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 안에 낀 티끌을 지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의 잘못은 감추고 남의 잘못과 허물은 들추어내기를 좋아합니다. 남을 평가하는 데 앞장서지만 남에게 평가받는 것에 관해서는 관대하지 못합니다. 정론직필(正論直筆)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올바른 논조로 바르게 써야 한다는 의미이지요. 그 중심에는 가치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여하튼 홀로서기도 중요하지만, 함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공자의 제자는 3,000명을 헤아리지만, 그 가운데서 가장 사랑했던 제자는 안회였습니다. 그와 관련된 일화 하나를 소개하지요. 하루는 안회가 시장에 들렀는데 포목점 앞에서 주인과 손님이 시비가 붙었습니다. 손님은 3x8은 23인데 당신이 왜 24전(錢)을 요구하느냐고 따졌습니다. 안회는 이 말을 듣고 “3x8은 24입니다. 당신이 잘못 계산한 겁니다.”라고 말했지요. 손님은 주변에서 가장 똑똑한 공자님께 판단을 받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내기를 걸지요. 손님이 지면 목숨을 내놓을 것이고 안회가 지면 관(冠)을 내놓으라고 말이지요. 공자는 말을 다 듣고 나서 안회에게 웃으면서 말하기를 "네가 졌으니 이 사람에게 관을 벗어주거라" 안회는 스승인 공자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뒤에 공자는 이야기하지요. “한번 잘 생각해보아라. 내가 ‘3x8=23’이 맞는다고 하면 너는 그저 관하나 내어주면 그뿐이지만 만약에 ‘3x8=24’가 맞는다고 하면 그 사람은 목숨을 내놓아야 하지 않겠느냐?” 관이 중요하냐, 사람 목숨이 중요하냐?“ 공자의 인본주의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공자의 제자 가운데 학자ㆍ정치가ㆍ웅변가로서 뛰어난 사람이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재화만사성(財貨萬事成)’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의 비틀린 표현이긴 한데 “돈이 있으면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라는 말이지요. 배금주의나 황금만능주의, 물질만능주의도 비슷한 말입니다. 사람들은 돈을 최고의 값어치로 알고, 신(神)처럼 숭배하기도 하며 돈의 노예가 되어 삶의 값어치를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 중의 하나가 돈입니다. 꼭 자본주의가 아니라고 하더라고 돈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지요. 돈을 한자로 전(錢)이라고 씁니다. 글자를 파자하면 ‘金(쇠 금)’과 ‘戈(창 과)’가 두 개 나옵니다. 곧 쇠붙이로 만들어진 것(돈)인데 이것을 두고 서로 창을 맞대고 싸우는 형국의 글자지요. 돈에는 선악이나 미추의 개념이 들어있지 않지만, 그것을 차지하려는 인간의 욕심이 다툼과 전쟁으로 비화하는 예를 찾기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누군가 불이익을 받거나 사고를 당하면 사람들은 돈으로 보상받기를 원합니다. 인간의 권위와 존엄성이 돈으로 측정되는 세상이 되면서 배금주의(拜金主義, 돈을 숭배하는 사상)가 만연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돈이 좋은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돈 앞에 장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