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나라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매화가 네 그루 있습니다. 강릉 오죽헌의 율곡매(수령 600년) 구례 화엄사 길상전 앞의 백매(수령 450년) 순천 선암사 선암매(수령 600년) 장성 백양사의 고불매(수령 350년)가 그러합니다. 매화마다 독특한 이름이 붙어 있는 것이 특징이고 세 그루는 유명한 절을 끼고 있으며, 한 그루는 신사임당과 율곡의 얼이 깃들어 있지요. (지금은 고사 중 1/10 정도만 살아있다고 하네요.) 아직 춘천은 매화가 이르지만, 광양은 절정기를 지났습니다. 매화를 다른 이름으로 ‘일지춘(一枝春)’이라고 하고 그 향기를 ‘군자향(君子香)’이라 불렀습니다. 예로부터 매란국죽(梅蘭菊竹)을 사군자로 불렀으며 지조와 절개의 상징으로 여겼고 추운 겨울을 이기고 눈 속에서 피어난 꽃이기에 고난을 이겨낸 어려움을 극복한 장한 꽃으로 여기기도 했습니다. 일지춘(一枝春)은 한 가지만 있어도 봄을 느낄 수 있다는 의미이니 가장 먼저 꽃을 피워 올리는 부지런한 꽃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 열매는 매실로 식용과 약용으로 두루 사용되니 꽃부터 열매까지 버릴 것이 없는 꽃이기도 합니다. 매실나무는 줄기 중간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저의 유년 시절에는 변변한 장난감이 없었습니다. 그저 산과 들에서 구한 재료로 장난감이나 놀이도구를 만들어 썼지요. 겨우내 얼음판에서 지내던 시절 봄은 색다른 추억으로 다가왔습니다. 봄은 소리로 다가오곤 했습니다. 비가 오지 않아도 겨우내 쌓였던 눈이 녹아 풋풋함으로 개울물이 불어나 돌돌돌 흐르는 시냇물 소리로 우리 곁에 다가오기도 하고 길어진 햇살만큼이나 뒷동산에 짝을 찾는 비둘기 울음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이제 막 부화한 노란 병아리의 삐악거림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개울에 지천으로 널려있던 버들강아지도 겨울 눈 고깔을 벗고 고운 모습으로 기지개를 켜는 계절이기도 하지요. 빨간색으로 탱탱하게 물오른 버들가지를 꺾어 상처가 나지 않도록 비틀어 대궁을 쏙 빼면 거짓말같이 나무와 껍질이 분리됩니다. 양 끝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한쪽에 칼로 살짝 깎아내고 불면 봄을 재촉하는 멋진 버들피리 소리가 나곤 했습니다. 길이에 따라 달라지는 소리는 봄에만 즐길 수 있는 향연이었는데 버들강아지의 꽃말이 '포근한 사랑'이라고 하니 어쩌면 풋풋한 봄에 사랑의 세레나데를 연주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풀피리, 파피리, 보리피리 등등 소리 낼 수 있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산과 들에는 풀과 나무가 스스로 자랍니다. 먹을 수 있는 나물도 봄이 되면 지천으로 돋아납니다. 이런 푸성귀를 ‘푸새’라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사람이 밭에 심어서 가꾼 채소들도 있지요. 무, 배추, 당근, 오이, 호박, 상추, 치커리, 천경채..... 이런 채소를 ‘남새’라고 부릅니다. 초정 김상옥님의 시조 중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어질고 고운 그들 멧남새도 캐어 오리 집집 끼니마다 봄을 씹고 사는 마을 감았던 그 눈을 뜨면 마음 도로 애젓하오.“ 멧남새는 다소 거친 나물을 의미합니다. 어쩌면 푸새와 남새의 중간 정도라고 말 할 수 있겠네요. 일전에 화천으로 냉이를 캐러 갔습니다. 막 얼음이 녹은 대지에 뾰족이 얼굴을 내밀고 있는 냉이를 캐어 정갈하게 다듬어 놓으니 봄 향기가 그리 좋을 수 없습니다. 냉이의 꽃말은 “당신께 나의 모든 것을 드립니다.”입니다. 맨몸으로 추운 겨울을 인내하고 맞이한 봄인데 송두리째 뽑혀서 식탁에 오른 냉이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봄에는 산과 들, 밭이나 화단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 조심스럽습니다. 여린 싹이 자라는 것이 쉽게 보이지 않을뿐더러 어릴 때 밟히면 그 자람을 장담할 수 없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대나무가 벼과라는 사실을 아시나요? 춘천 기후는 대나무가 살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출근하는 길에 만나는 작은 면적의 대나무 숲은 그런 의미에서 독특함으로 다가옵니다. 우리나라는 전남 담양의 죽녹원 대나무가 가장 유명하고 강릉의 오죽헌(烏竹軒)도 검은 대나무가 심긴 집을 의미하니 나름 대나무가 유명한 곳입니다. 대나무는 사철 푸르고 곧게 자라는 특성 때문에 지조와 절개의 상징으로 사군자로 일컬어져 왔습니다. 성어에 진용일흥(眞龍逸興)이란 말이 있습니다. "진짜 용은 숨어서 일어난다."라는 의미로 크게 성공한 사람은 아무도 모르게 실력을 갈고닦아 자기의 목표를 이룬다는 속뜻이 있습니다. 동물의 왕이라고 하면 사자를 꼽습니다. 암컷 사자는 대우를 받지만, 수컷 사자는 무리로부터 따돌림을 당합니다. 힘이 없을 때는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몸집과 힘을 키워오다가 충분한 힘이 생기면 무리의 우두머리에게 도전하여 패권을 차지합니다. 대나무도 그러합니다. 씨앗을 심은 뒤 4년 동안 대나무는 싹이 자라지 않습니다. 5년이 되는 해 드디어 싹이 나서 매일 30센티가량 성장하여 6주면 주변이 온통 울창한 대나무 숲으로 변합니다. 기다리는 4년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이미 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습니다. 이미 지나간 일은 아무리 후회한들 되돌릴 수 없습니다. 말과 행동을 조심스럽게 해야 할 큰 이유이지요. 또한 이미 지나간 일을 고민할 까닭도 없습니다. 지나간 일을 고민한다고 해서 나아질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과거는 과거로 묻어놓고 사는 것이 좀 더 행복에 가까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강물은 유유히 흐릅니다. 그저 흐르는 대로 맡겨 놓으면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평온하고 평화롭게 흐릅니다. 중간에 인위적으로 막거나 훼방하지 않으면 요동칠 일도 없지요. 우리도 흐르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좋습니다. 안되는 것을 억지로 하려고 하면 탈이 나게 마련이고 매달리고 집착할수록 삶은 버거워지게 마련입니다. 누구에게나 삶의 종착역은 있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불치병이 원인이 되어 정신없이 달려온 삶의 시간이 하루아침에 멈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깨닫습니다. '마음이 흐르는 대로 후회 없이 살아가겠노라고….' 물처럼 살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돌이나 쇠처럼 튼튼하고 단단하게 인생을 살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 모남이 사람들에게 큰 상처로 남기도 합니다. 오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사막 한가운데 건설된 구조물입니다. 그 거친 사막에 사람이 살 수 있었던 것은 나일강의 혜택입니다. 나일강이 아니었으면 이집트의 웅혼한 역사가 존재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 사막의 한가운데 지어진 고급스러운 집은 정원에 연못을 설치하였습니다. 그리고 유실수를 연못 둘레에 빙 둘러 심어 놓은 것을 자랑으로 여겼지요. 사람은 갖기 힘든 것을 귀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우린 드문 것을 귀하게 여깁니다. 그것을 한자로 옮기면 희귀(稀貴)가 됩니다. 황금이나 다이아몬드 진주 등 갖가지 보석이 비싸고 귀한 대접을 받는 까닭은 쓰임새보다도 희귀성에 있습니다. 광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국 서부의 금광에서 일하던 노동자는 겨울이 되기 전에 철수해야 했습니다. 거칠고 황량한 겨울을 금광에서 날 수는 없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두 명의 광부는 금에 눈이 어두워 철수하는 동료를 외면하고 광산에 남습니다. 봄이 되어 다시 찾은 광산에는 그 두 명이 황금을 모아 놓은 채 추위와 굶주림에 죽어 있었습니다. 그들의 황금은 생존에는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았던 것이지요. 귀하다고 해서 꼭 삶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정말 생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연암 박지원은 <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을 지었습니다. 예(穢) 자는 ‘더러울 예’ 자지만 똥을 의미하며 예덕 선생은 똥을 져 나르는 일을 하는 엄행수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제자는 스승이 사대부와 교유하지 않고 비천한 엄행수를 벗하는 것에 대하여 불만을 표하지요. 그러자 스승은 이야기합니다. “엄행수는 생김새가 어리석어 보이고 하는 일이 비천하지만 남이 알아주기를 원하지 않는다. 남에게 욕먹는 일이 없으며, 타고난 분수대로 사는 사람이니 엄행수야 말로 더러움 속에서 덕을 실천하며 사는 사람이다. 시정잡배의 사귐은 이익으로 하고 안면으로 사귀는 것은 아첨으로 하니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세 번 요청하면 사이가 멀어지지 않는 사람이 없고 아무리 원수라도 세 번 이익을 주면 친해지지 않을 수 없지 무릇 이익으로 하는 사귐은 계속되기 어렵고 아첨으로 하는 사귐도 오래가지 않는 법이야. 무릇 큰 사귐은 얼굴에 있지 않고 훌륭한 벗은 지나친 친절이 필요 없다네 그가 하는 일은 불결하지만, 그 방법은 지극히 향기로우며 사는 곳은 더럽지만 의를 지킴은 꿋꿋하니 그를 예덕선생이라 불러 마땅한 것이 아니겠는가?” 우린 세상을 살아가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밤새 눈 내린 아침 한겨울 문풍지 사이로 청아한 참새 소리와 정감 어리게 다가오는 싸리비질 소리에 눈을 뜨면 밤새 내린 눈에 설국으로 변한 이국적인 풍경에 마음이 설레곤 했습니다. 무릎까지 쌓인 눈을 넉가래로 밀면서 최소한의 교통로를 만들어야 했는데 마당 끝 화장실, 뒤란의 장독대, 물 긷던 개울가까지 길을 내고 나면 이웃집까지 길을 내야만 합니다. 벙어리장갑에 하얀 벙거지를 쓰고 머리에 김이 나도록 눈을 치우며 빗자루와 넉가래를 들고 이웃과 마주한 아침시간이 참으로 행복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마을 청년들은 토끼몰이한다고 설피에 옹노(올가미)를 만들어 산으로 향하고 외출이 제한당한 겨울 한낮에 아궁이에서 익어가는 고구마의 누릇함이 사랑방의 구수한 이야기처럼 한 겨울을 녹여주었습니다. 널지 않은 마당에 눈을 굴려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눈사람이 식구를 늘리는 재미를 주었고 처마 밑에 길게 매달린 고드름으로 칼싸움을 했던 그 시절엔 그리 넉넉하지 않아도 행복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나무를 땔감으로 이용하던 시절이라 자가용은 꿈도 꾸지 못했고 오로지 대중교통이 아니면 걸어서 이동해야 했으니 함박눈이 내리는 날이면 걱정보다도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척제현람(滌除玄覽)”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에 나오는 멋진 말입니다. 하루는 노자가 왕에게 묻지요. "백성들이 밭일하고 돌아와 섬돌 위를 깨끗하게 닦아주고, 그 마루 아래의 어두운 곳까지 살펴볼 수 있습니까?" 곧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자신을 숙여서 백성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줄 수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흙과 먼지가 쌓인 바닥을 쓸고, 그 아래에 있는 팍팍한 살림살이를 들여다보려면 내 무릎도 더럽혀지고, 지저분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아랫사람을 돌볼 수 있느냐는 것이지요. 위로 올라가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더 어려운 것은 위에 있으면서 처신을 겸손하게 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올챙이 적 시절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일단 개구리가 되고 나서 올챙이 적 시절을 망각하지 않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요. 쉽지 않기에 그런 분들이 존경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도덕 재무장(MRA)’이라는 동아리 활동을 했습니다. 그때 Sing-Out 공연 때문에 서울본부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는데요. 사무실에 들어서자 공연 준비로 매우 정신이 없었는데 초입에 초로의 신사가 커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전설의 새 봉황의 무늬는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각종 명패와 장롱, 문갑 등 가까이 놓고 지내는 가구에 많습니다. 봉은 수컷을 황은 암컷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두 마리를 같이 그려야 봉황이 완성되는 것이지요. 봉황을 많이 그린 이유는 그 새가 상서로움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봉황을 거론하는 까닭은 먹이에 있습니다. 대나무에 꽃이 피면 열매가 열리는데 이것을 죽실(竹實)이라고 합니다. 봉황은 이 열매를 먹고 산다고 알려졌지요. 봉황(성인이나 스승)을 맞이하기 위해 마을 어귀에 심는 것이 대나무입니다. 대나무는 아열대 식물로 나무가 아니라 풀입니다. 곧게 30미터까지 자랄 수 있는데 그 원인은 단단한 매듭에 있습니다. 뿌리는 단단하고 깊숙이 엉켜 쉽게 뽑히지 않습니다. 대나무 속이 비어 있는 까닭은 성장과 관계가 깊습니다. 대나무는 빨리 자라 일 년이면 성장을 마무리하는데 하도 빨리 자라다 보니 속을 채울 여유가 없습니다. 줄기의 벽을 이루는 세포는 빠른 속도로 분열하는데 속은 세포분열 하는 속도가 더디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바람이 불면 다른 나무보다 유난히 흔들리며 큰 소리를 냅니다. 이 모습을 풍죽(風竹)이라고 표현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