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개의무덤과 사당 무덤 앞에 있는 사당 논개의 무덤 ▲ 최근에 함양군에서 관민이 세운논개의 위령비 ▲ 최근 함양군에서세운 위령비 상세 [우리문화신문= 최우성 기자]임진왜란 당시 진주 남강에서 승리에 도취했던 왜장을 끌어안고 투신하여 한민족 여인의기개를 떨쳤던 논개의 무덤이다. 논개는 본래 전북 장수 태생인데 그녀의 고향인 장수군 장계면 주촌마을에는 논개의 생가와 그녀를 기리는 사당이 있다. 그런데 논개의무덤은 그녀가 투신해서 죽은진주도 아니고 그녀의 고향인 장수도아닌 이곳함양에 논개의 무덤이 있으니 무척 특이한 사연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를 들어보자. 논개는 진주에서 죽은 뒤에 건져졌고, 뜻있는 진주민들이그녀의 유해를 걸머지고그녀의 고향인 장수 장계를 향하여산을 넘고 넘어 이곳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이곳에서 장수 장계까지는 이제 50여리가 남은 거리였다. 이제 고향으로 가려면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가는 육십령만 넘으
▲ 보호각 안에 있는 쌍사자석등 뒤에 보이는 모습은 법주사 주전각인 대웅보전 ▲ 대웅보전 측에서 본 쌍사자석등. 뒷쪽에는 팔상전이 있다. ▲ 석등을 받치고 있는 사자가 서로 배를 맞대고 있는 모습. 석등의 화사석 아래는 연꽃받침이 장식되었다. 연꽃 또한 극락세계를 뜻한다. ▲ 석등을 받치고 있는 사자의 머리과 앞발모습 [우리문화신문= 최우성 기자] 속리산 법주사는 속세를 떠난 곳, 곧 극락세상에 있는 진리가 머무르는 사찰이라는 뜻이다. 법주사는 553년 의신 스님이 지은 절로 1500년 동안 불교사 살아있는 절이나, 역사속에서는 수많은 전란을 피하지 못하고 부침의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그런 세월 속에서 살아남은 석조물들은 국보와 보물이 되어서 옛날 영화를 전하고 있다. 오늘 보는 대웅보전과 팔상전 사이에 있는 쌍사자 석등(국보 제 5호)은 법주사의 중심 축상에 가운데 버티고 있는 석등이다. 석등은 실제로 불을 밝혀 경내를 밝게 하기도 하였지만 진리를 밝힌다는 뜻이 더 크다. 곧 깜깜한 세상이란 중생계 사바세계를 뜻하는데,
▲ 미륵대불의 측면 ▲ 미륵불과 팔상전 ▲ 청동미륵대불입상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충북 보은의 법주사는 서기 553년 의신스님이 창건하였다. 이후 백제지역에서는 미륵신앙이 깊어졌는데. 김제 금산사를 중창했던 진표율사가 법주사도 증창하여 미륵불을 모시고 절의 규모와 격을 높였다. 미륵신앙은 미래에 이세상에 올 부처님을 뜻하는데, 늘 하루 하루가 살기 어려운 중생들이 이런 고통스러운 세상이 끝이나고 극락세계가 펼쳐질 것을 기원하는 신앙이다. 부처님이 있는 곳이 극락인데, 이 세상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한 이후 또 다시 끝없은 전쟁과 질병으로 고통속에 살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런데 석가모니 부처님은 자신이 살아생전에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제자인 미륵이 세상을 떠난 뒤에 도솔천에 환생할 것이라 예언(수기)하였다. 그리하여 도솔천에 미륵보살로 오랜 세월 있다가 도솔천에서의 삶이 다 하고나면, 다시 이세상에 부처로 온다고 했는데, 그 미륵보살이 세상에 빨리 내려와 이세상을 살기 어려운 중생계가 아닌 극락세계로 변화시켜줄 것을 기원하고 믿고 의지하며
▲ 눈내린 오대산이 극락세계를 이른듯 보인다. ▲ 적멸보궁을 향하여 오르는 스님 ▲ 적멸보궁으로 오르는 계단을 쓸고있는 신도들 ▲ 적멸보궁에 이르는 마지막 계단 ▲ 오대산 상원사에서 올라가면 중대 적멸보궁이 있다. ▲ 적멸보궁에 스님이 예불을 드리려 준비하는 모습 ▲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이라 하여 적멸보궁이라 부른다. ▲ 적멸보궁 내부에는 부처님이 없고 좌대에 방석만이 있다. ▲ 사리가 모셔진 곳 ▲ 자장율사께서 진신사리를 받아오는 장면, 사자암 벽화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신라시대 자장율사께서 당나라에 유학하였다가 관세음보살님으로부터 받아온 불사리를 모신 곳으로 5대 적멸보궁이 있다. 5대 적멸보궁이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이라는 뜻으로 자장스님이 모셔온 사리를 모
▲ 움푹 들어간 포구와 조천진성 ▲ 해안에서 본 조천진성과 포구 ▲ 포구 안 마을에서 본 조천진성 ▲ 성벽 위에서 본 마을과 해변 ▲ 해안 마을에서 본 조천진성과 연북정 하늘에는 갈매기들이 평화롭게 노닐고 있다. ▲ 해안에서 본 조천진성 망대 연북정. 구름이 피어나는 하늘이 변화무쌍하였다. ▲ 성안 연병장에서 본 연북정 ▲ 성벽 위에서 본 바닷가 ▲ 연북정이 있는 조천진성 망대 ▲ 조천진성의 망대 연북정 ▲ 연북정 현판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제주시 동북쪽 해안가에는 조천진성이 있다. 조천이란 말은 옛날 기원전 3세기 진시황제가 불로불사약을 구하러 보낸 서불(서복)이 이곳에 당도하여 천기를 보고 그가 바위에 새긴 글자가 조천(朝天)이었다는데
▲ 헌릉의 들머리 에는 신성한 구역임을 표시하는 붉은 기둥의 홍살문이 있다. ▲ 비각 ▲ 헌릉은 전형적인 쌍릉으로 왼쪽이 태종, 오른쪽이 원경왕후 민씨의 릉이다. ▲ 원경왕후 민씨의 릉 ▲ 헌릉은 난간석이 잘 갖춰져 있는데 두 릉 사이 난간석이 연결되어 있다. ▲ 봉문의 흙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봉분 아래에 둘러놓은 병풍석의 면석에는 수솬인면인신상 무늬가새겨져 있다. ▲ 병풍석의 면석 사이에 있는 우석에는 여저영탁(불교) 무늬가 새겨져 있다. ▲ 릉 뒤편으로는 석양, 석호 같은 석물들이 릉을 지키고 있다. ▲ 릉 앞의 혼유석(魂遊石, 영혼이 나와서 놀도록 한 상) ▲ 태종릉 혼유석 뒤쪽 받침돌에는 태종우(太宗雨)를 기리는 작은 구멍이 있다.
보리암 위에서 본 영응기적비 보호각 정면에서 본 남해영응기적비 보호각 기적비각 정면 현판 1903년 대한제국 고종황제 때 세운 비석. 지역민의 상소로 세웠다고 한다. 남해금산영응기적비, 조선 태조이성계가 산신께 기도하여 감응을 얻었다는 내용과 금산의 유래를 기록한 비석 ▲ 태조 고황제 기도처 [우리문화신문= 최우성 기자] 관세음보살의 영험기도처로 유명한 남해 보리암의 바로 앞에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기도했다는 기도처가 있다. 이성계는 이곳에서 산신께 기도하였고, 그에 감응하여 조선을 개국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성계는 산신께 기도하면서 만약에 자신이 임금이 된다면 험준한 남해금산(당시 보광산)을 모두 비단으로덮어주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그런데 기도를 할 때는 비단으로 덮어주겠다고 산신께 약속했지만 막상 임금이 되고나서는 험준한 산을 모두 비단으로 덮을 수가 없어 고민을 하였다
▲ 남해 관음포 이순신공원 종합계획 조감도 ▲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마지막 유언, 전장이 급하니 나의 죽음을 적에게 말하지 말라. ▲ 유허비각에 이르는 소나무길 ▲ 대문 앞에서 본 유허비각 ▲ 충무공 유허비각 현판. 大星殞海 (큰별이 떨어진 바다) ▲ 충무공 유허비각 내부 천장 ▲ 충무공 유허비 ▲ 첨망대로 가는 소나무 숲길 ▲ 관음포 해전이 벌어진 바다에 작은 섬이 있다. ▲ 광복후에 세운 첨망대. 관음포 앞바다가 잘 보이는 곳에 해전의 현장을 볼 수 있도록 세운 정자 ▲ 1698년(음) 11월 19일 마지막 전투가 벌어진 관음포 해전도 ▲ 공원 해변에서 본 관음포구 ▲
쌍계사의 승탑, 교구본사로 또 유서깊은 역사에 견주었을 때는 너무도 소박하고 그 수도 적었다. 쌍계사 극락교, 사찰의 대웅전은 부처님을 모신 곳으로 그곳은 극락세계에 비유된다. 그 극락세계를 가려면 많은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야 이를 수 있다고 가정하고 돌다리도 건너고 계곡도 건너고 굽이 굽이 산길도 돌아가야만 되는데, 극락교는 이제 부처님의 세계인 극락에 거의 다다았다는 뜻이다. 일주문에 이르면 이제부터 부처님의 영역이라는 뜻이다. 일주문을 자나면 금강문이 있다. 금각문에는 극락세계를 지키는 수호신인 금강역사가 지키고 있다. 쌍계사 천왕문, 천왕문은 하늘의 세계를 동서남북으로 크게 나누어서 각각의 방위를 지키는 수호신장들이 지키는 곳이다. 실제로는 한곳에 모아놓았지만, 4명의 천왕은 각각의 동서남북 방향에 따라 지키는 범위가 다르다. ▲ 천왕문을 지나면 이제대웅전에 이르기 전 마지막단계로 누문이 있다. 그런데 쌍계사에서는 8각9
오른쪽에 흥선대원군의 척화비와 왼쪽으로는 충무공의 충렬사가 보인다. 충렬사 오르는 계단과 삼문 최근에 세운 충렬사비 남해 관음포 충무공 이순신장군 사당 충렬사 충렬사 현판 충렬사 사당 옆에 세운 충무공비 충렬사내 이순신장군 영정과 신주 충렬사 사당 내 이순신장군이 쓰던 병장기와 깃발 그리고 관인의 확대모습 충렬사 내 세운 비석에는 충무공의 내력이 상세히 기록되어있다. 비석의 위에는 용트림하는 청룡과 황룡이 새겨져있다. 특이한 것은 이수의 용들에 단청을 한 모습이다. 관음포 안에 있는 재현된 거북선 거북선안에는 거북선에서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포와 병장기 들이 전시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