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균 사당 정면 솟을대문과 뒤로 사당이 보인다. 사당 측면 단풍에 물들어가는 사당 모습 사당 주차장에서 본 사당 협문 사당은 문이 잠겨있고, 현판조차 없이 쓸쓸하다. 묘소의 주변을 지키는 석인과 석수 김옥균 비석과 동자석 묘소에는 문인석이 관복을 입고 서있다. [우리문화신문= 최우성 기자] 충남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에는 구한말 바람결에 촛불같았던 나라의 운명 앞에서나라를 구하겠다고 뜻을 같이할 사람을 규합하고 목숨을 걸고 갑신정변을 일으켰던 선각자김옥균의 사당과 묘가 있다. 김옥균은 1851년 태어나 1894년 43년의 짧은 삶을 살고 세상을 떴다. 그는 1894년 이국 땅 상하이에서 같은 조선인으로 그를 죽이는 것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라고 믿었던 동포의 총알에비명횡사 한뒤, 그의 유해는 1924년 이곳에 묻혔다. 김옥균은 안동김씨의 후손으로 태어나 명석한 두뇌와 판단력은 있었다. 그의 집안은구시대의 기득권에 안주하던 안동김씨와 노론의 세력이었으나 자기 집안의 번영에안주하지 않고 세계의 조류속에 쓰러져가는 나라를 구하고자 뜻을 세우고, 이에 뜻을 같이하던 동지들을 규합하여 구시대를바꾸고자 하였다. 그는 당시 개화사상에 깊은 공감
▲ 경복궁 고궁박물관 옆 잔디밭에 자리하고 있는 지광국사현묘탑 ▲ 전경-1 ▲ 상륜과 탑의 옥개석 ▲ 탑신석의 옥개석을 아래서 본 모습. 건축물의 부재를 그대로 새긴든 섬세하고 호화롭다. ▲ 탑 몸채 받침석의 장식 ▲ 탑 몸채의 하부. 구석에는 난간이 있었던 자리 ▲ 탑신석의 모습. 4면에 가득하게 하늘세계의 모습을 새긴 조각이 가득하다. ▲ 2층 기단석의 대각선 모습. 각면을 2로 나누어 그림을 그렸다. ▲ 2층 기단석 면에 그려진 그림. 지상세계의 모습으로, 각종 나무와 풀들이 새겨진 산수화 같은 모습들 ▲ 1층 기단석 면에 조각된 무늬 ▲ 1층 기단석의 하부에 조각된 꽃무늬 ▲ 지면과 닿는 지대석의 귀부분을 장식한 돌에는 구름무늭가 선명하다. ▲ 전경-2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원주 법천사터 지광국사 현묘탑(국보 101호)은 스님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하여 조성한 승탑이다. 본래는 원주 법천사터에 탑비와 함께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국권이 침탈되는 수모를 겪으면서 그 아름다움 에 반한 일본의 권력자들 때문에 일본까지 반출되었다가 돌려받은 명품으로, 현존하는 한국 스님의 사리탑 가운데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통일신라 이후 불교의 선종이 들어와 번창하자
▲ 신복사지 석탑과 공양물을 바치는 희견보살 ▲ 석탑의 측면모습 ▲ 석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곳으로 곧 부처님을 상징한다. 그 부처님을 향하여 향로를 들어 공양을 올리고 있는 희견보살상. 그러나 향로는 없어지고 다만 손에는철로된 자루가 박혀있다. ▲ 약왕보살 모습. 머리에는 8각형의 천개를 쓰고 있어 비바람을 막아준다. ▲ 석탑의 모습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강릉시 내곡동에 있는 신복사지에 남은 3층석탑과 석탑을 향해 정성으로 공양물을 올리고 있는 희견보살상이다. 비록 건물들은 다 사라졌지만 석탑과 보살상은 거의 훼손이 안된 상태로 잘 남아있어 천만 다행이다. 석탑은 곧 부처님을 상징하고 있기에 그 부처님을 향해서 약왕보살(희견보살)이자신의 손을 태워 일월정명덕 부처님께 공양하고 있는 모습을 새겼다.그런 희견보살의 모습을 보고 제자들이 걱정하자 희견보살은 자신의 두 팔이 다시 원래대로 될 것이라고 말한다. 신복사지 약왕보살의 모습은 무척이나 자연스럽고, 복스러운 모습으로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다. 얼굴은 코부분만이 손상이 되었을 뿐 거의 온전한 모습으로, 이런 보살상으로는 월정사 8각9층 석탑을 향해 공양물을 바치고 있는 약왕보살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경회루의 가을 이고야 경회루의 가을은 푸른 하늘로 온다눈부시게 푸르른 하늘은다시 못 속에 숨어더 푸르게 떠오른다 경회루의 가을은못 가의 버드나무 가지 끝으로 온다쓰러질 듯 휘어진 잎새 사이로천년도 더 불어 왔을 바람 경회루의 가을은 사직의 흥망성쇠를 고스란히 먼 발치서 지켜보았을향원정 뜨락 꽃단풍에도곱게 내린다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자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북촌한옥마을 가옥 보수설계, 혜화동주민센타 개보수설계,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웅전, 봉선사 종각 등을 설계하였다. 현재 한국불교사진협회 회원, 문화유산사진작가
▲ 아침 구름속에 햇살이 공중사리탑에 비추는 모습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동해 양양 낙산사에는 특이한 사리탑이 있다.(보물1722호) 보통 사리탑이라 하면 고승들의 사리를 모셔놓은 탑을 사리탑이라고 하지만, 낙산사의 해수관세음보살 아래 언덕배기에는 관세음보살의 사리탑이라 이름붙인 사리탑이 있으니 세상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탑인 것이다. 낙산사는 의상대사가 중국에서 화엄종을 전수하여 온 이래 전국의 명소를 찾아나섰고 그관세음보살을 낙산사의 바닷가 홍련암에서 친견한 이래 관세음보살의 성지로 전해오고 있다. 이런 연유로 홍련암에도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있고, 원통보전에도 관세음보살이요, 그 아래 보타전에도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있으며 낙산사에는 일반 절에 모셔진부처님은 모시지 않고 있다. 그런데 조선 숙종9년(1683년)석겸스님이 홍련암에 모셔져 있던 관세음보살이 많이퇴색되어 좋은 날을 택하여다시 금칠을하는 도중에 갑자기 하늘에서 사리가 책상 위로 떨어졌다. 스님은 이를 관세음보살의 사리로 여기고, 정성으로 수습한 뒤 이를봉안하기 위하여숙종18년(1692년) 현재와 같은 사리탑을 세웠다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스님의 사리탑처럼 보이지만 하늘에서 떨어진 사리
당간지주는 논 귀퉁이에 서있다. 강릉에서는 보기드문들판 한 가운데 서있는 당간지주. 추수가 끝이나 논에는 벼그루터기가 드러나 있다. 높이 5.4m를 자랑하는 당간지주의 당당한 모습 당간을 고정하기 위해서 뚫은 구멍이 선명하다. 당간을 고정하는 방법은 저 구멍사이로 통나무를 끼워넣어서 고정했다. 거대한 규모의 저 당간지주를 세우는 것도 쉽지 않았겠지만, 저 사이에 당간을 끼워서 세우기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본래 굴산사에 모셔졌던 것으로 추정되는 부처님을 발굴하여 별도의 보호각에 모셨다. 그런데 그 부처님은 얼굴뿐 아니라 몸통도 여러조각으로 쪼개져 땅에 묻혀있었는데 이를 짜맞추어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했다. 보호각에 모셔진 손상된 부처님 얼굴을 안타까운 듯 보는 참배객 상호가 훼손된 불상 보호각 앞에서 현재의 불상의 모습을 담고 있는 참배객 굴산사터 당간지주를 앞에 두고 새롭게 세워진 굴산사는 옛 영화에 견줘 너무도작고 초라하다. 새로 지어진 굴산사의 대웅전에는 옛 굴산사터에서 발굴된 2구의 부처님과 새롭게 조성된 부처님이 함께 모셔져 있다. 옛불상은 검게 그을려있는 것으로 보아 전각이 불에 탓을 때 그 그으름이 그대로 묻어있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국토교통부(장관 유일호)는 「한옥 등 건축자산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법)」에 따라 한옥 정체성 제고를 위한 「한옥 건축 기준」을 10월 21일부터 20일간 행정예고 한다고 밝혔다. 「한옥 건축 기준」은 한옥 건축의 형태 및 재료 등에 대한 최소 필요 요건을 담았으며, 일선 지자체가 법에서 정한 관계법령 일부규제의 완화 적용 시, 해당 건축물의 한옥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예고안에 따르면 먼저 한옥의 주요구조에는 나무를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신기술 개발‧적용 추이 등을 고려하여 한옥의 일부에는 철골 따위 다른 부재를 15개* 까지는 사용할 수 있다. * 한 칸(間) 규모의 건축이 가능한 부재수(15개)를 허용범위로 정함 ▲ 한옥의 처마는 90cm 이상이 되어야 한다.(자료사진은 강릉 선교장) 또 한옥은 그 구조가 기둥과 보와 도리로 구성된 골조에 지붕은 기와를 이어 한옥의 처마곡선이 살아있도록 한다. 그뿐만 아니라 한옥의 특징인 깊은 처마의 멋을 살리고자 처마가 튀어나온 길이를 최소한 90cm 이상 되도록 하였다. 다만 도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만산에 붉은 단풍이 물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꾸며주고 제 갈길을 가겠지요. 그에 질세라 바위를 타고자란 담쟁이 덩쿨에도 가을이 물들고 있습니다. 넘어가지 못할 거라던 담을 넘은 담쟁이도 여지없이 아름다운 빛깔입니다.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자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북촌한옥마을 가옥 보수설계, 혜화동주민센타 개보수설계,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웅전, 봉선사 종각 등을 설계하였다. 현재 한국불교사진협회 회원, 문화유산사진작가
마니산 초입 계곡의 다리 참성단 앞 헬기장에서 본 마니산줄기 함허동천 정수사로 가는 능선에서 본 참성단 멀리 보는 참성단 참성단의 전경 개방시간 전(동절기 하절기 개방시간이 다름) 참성단 아침개방시간 이후 사람들이 밀려든다. 참성단 안에 있는 보호수 소사나무(수령 150년 이상) 참성단에 오르는 마지막 계단아래에서 참성단에 있는 향로, 향도 없고 향을 사를 분위기도 아니었다. 참성단 중수비 홍익인간과 제세이화를 바탕으로 우주의 원리를 표현한 원방각과 한민족의 최고경전인 천부경이 새겨진 펼침막을 걸어놓고 참배객이 아닌 등산객들에게 뭔가를 꼭 알려주고자 하였다.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한국의 중심부에 위치하면서 한강과 임진강이흘러드는바다에 자리하고 있는 강화도에는 많은 역사유적들이 있다. 그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문화유적이라하면신석기와 청동기에 이르는고인돌이 있고, 그 다음으로는 한민족 문화유적 마니산 참성단이다. 참성단은 하늘에 감사의 제사를 올리기 위하여 단군이세운 제단으로 강화도 마니산의 꼭대기에 정방형의 제단을 쌓고, 그 아래에는 둥근형태의 석축을 쌓았다. 강화도가 섬이기에 섬에 있는 산이 얼마나 높을까
천안 망경산 구룡사 전경-1 구룡사 전경-2 사경봉안을 위하여 불교기가 가득 걸린 경내풍경 산의 언덕 위에는 대리석으로 조성된 불상들이 빼곡하다. 깃발이 가득한 언덕에 백대리석으로 조성된 관세음보살 경내 오솔길을 걷은 신도. 언덕에는 소원과 원력을 담은 불상이 조성되고 있다. 주 법당으로 오르는 길에 걸린 펼침막에는 사경한 책들을 봉안하는 법회라는 글이 있다. 신도들의 원력을 다하여 조성된 3층 석탑들이 가득한 모습 광장에 있는 5층석탑 주변을 자신들이 사경한 법화경을 머리에 이고 탑돌이를 하는 모습 사경봉안 법회에 참석한 신도들이 빼곡한 법당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모습(6법공양중 향로를 든 보살이 불단앞으로 나가고 있다. 향을 선두로 6가지의 공양물이 올라가고 자신들이 정성으로 쓴 법화경 사경책을 부처님께 올리기 위하여 나가는 모습 대표로 불단에 공양물을 올린 공양자들의 모습 법회의 모습. 300평도 넘는 법당에 발디딜 틈이 없다. 법당에 들어오지 못한 신도들은 문밖에서 법회에 참석하고 있다. 늦게라도 법회에 참석하기 위해 오르는 신도들 자신들이 조성한 탑들을 돌아보며 소원을 빌어보는 신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