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명호 시인] 폭 포 사자후 포효런가 가는 길 거침없어 폭염을 압도하니 청량함 장쾌하네 맹하에 부러울 것은 함께 못한 일이라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미 꾸 라 지 - 김 상 아 세상이 속도와 효율만으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라오 더디고 답답해 보여도 찬찬함과 세세함도 필요한 것이지 효율과 성과를 따지는 사람은 돈벌이 체질이고 보잘 것 없는 것도 아끼고 하찮은 것도 살피는, 모든 일에 정성을 다하는 사람은 장인(匠人)의 길을 걷는다오 걸작의 명장은 그런 사람의 몫이지 그렇다고 내가 명장이란 말은 아니고 나는 떨어져 홀로 난 순 하나도 귀히 여기기에 좀 더딜 뿐이라오 마행처 우역거( 馬行處 牛亦去) 말이 가는 곳엔 소도 가는 법이지 더디 가면 그만큼 많이 볼 수 있다오 고사리를 자기의 반도 못 꺾었다는 마눌님의 핀잔을 이번 한번은 잘도 빠져 나왔다만은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시인] 바람의 길 - 김상아 꽃씨를 틔우는 건 봄비가 아니라 바람이라 하였지 바람이 낸 길을 바람 따라 걸으면서도 그 속을 알지 못했지 음악이 날려 오고 문학이 날려 오고 이 모든 게 바람의 짓이란 걸 누군가 일러준 뒤에야 알게 되었지 내가 익는 건 햇살이 아니라 한 자락 바람이라 하였지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시인] 봄 비 - 김상아 빗소리는 고요하다 개울가 물억새 새싹에도 고요하고 돋아나는 참쑥 솜털 위에도 고요하다 빗소리는 고요하다 양철 지붕을 때려도 고요하고 자글거리는 달래 전 소리에도 고요하다 빗소리는 참으로 고요하여 낮잠 코골이에도 고요하고 낯선 발자국에도 고요하니 개들마저 고요하다
[우리문화신문=허홍구 시인] [편집자말]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 새날이 올때까지 흔들리지말자 /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이렇게 목쉰 소리로 노래하던 통일운동가 백기완 선생은 우리 곁을 떠났다. 이에 허홍구 시인은 뜨거운 눈물로 선생을 배웅한다. 우리 곁을 떠나신 백기완 선생님 황해도 은율 구월산 아래서 태어나셨고ㅡ 1946년 13살 때 서울로 오셨다ㅡ 평생에 소원은 조국의 남북통일ㅡ 혼불로 토해내는 사자후는ㅡ 듣는이의 가슴을 울리게 하셨다ㅡ 꺼지는 땅을 끌어 올리고ㅡ 무너지는 하늘을 갈라치고ㅡ 죽었던 역사 죽었던 희망을 일으키려 하셨다ㅡ 선생님은 우리말의 보물창고 였으며ㅡ 뒤따르는 우리들의 길라잡이였었다ㅡ 눈물로 선생님을 배웅합니다ㅡ 2021. 2. 15 시인 허홍구 큰절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시인] 송 곳 - 김상아 이 그리움을 글로 못 쓰면 바보 아무것도 하기 싫었습니다 바람이 빠져나가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아내에게는 그냥 지쳤다고만 말했습니다 TV로 공연실황이나 보며 쉬자고 했습니다 이삿짐 정리하다 송곳에 코끝을 찔렸기 때문입니다 이 슬픔을 티 내면 바보 아내에게는 비밀입니다 나보다 더 큰 그리움과 슬픔을 견디며 살아내기 때문입니다 딸아이와 나는 오래전에 헤어졌습니다 지금은 중학생쯤 되었을 겁니다 이태 전에 아내는 딸아이를 가슴에 넣었습니다 나를 무척 따르던 아이였습니다 초저녁이면 쫄병을 거느리고 나타나는 대장별이 그 아이입니다 남은 게 남는 거라는 걸 모르면 바보 두고 온 아이의 사진 몇 장, 낙서 몇 점의 애 마름도 이토록 후비는데 방안 가득한 떠난 아이의 손길은 오죽하겠습니까 아내는 몽당연필 한 자루도 버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재주가 낭추* 같던 딸들아! 심장을 찍는 이 호미질을 너희는 몰라도 된다 재능이 주머니 속에 그냥 있어도 괜찮다 노래 같은 너희 웃음소리로 아침을 열고 반짝이는 눈빛과 밤을 맞을 수만 있다면 바보라도 좋습니다 이 그리움을 글로 못 쓰더라도 * 낭추(囊錐)-낭중지추(囊中之錐)의 준말. 주머니 속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시인] 통 발* - 김상아 음악보다 술이 좋은지 슬프거나 힘들 때면 나는 술을 먼저 찾는다 글쓰기보다 글 자랑이 좋은지 책 내는데 정신이 팔려 몇 달째 글 한 줄 안 쓰고 있다 대나무는 잎은 흔들려도 바람에 쓰러지지 않는다 강해서가 아니라 지조 때문이다 나는 어쩌다 통발 풀이되어 물 위를 떠돌았을까 달그림자를 보고도 짖어대는 개가 되어 구린내 나는 곳을 쏘다녔을까 제발 본모습 좀 지키라는 마누라 바가지에 다시 붓을 세운다 * 통발 - 부유성 수생식물. 뿌리가 없다.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멸치 장수 그가 북평장에 온 건 꽤 오랜만이었다 장사가 시원찮아 쉬었는지 다른 장엘 다녔는지 알 수 없지만 걸걸한 호객 소리나 깎아 주는 체 받을 거 다 받는 너스레는 여전했다 그에게 달라진 게 하나 있기는 했다 본디부터 아내였는지 안 보이는 사이에 얻었는지 알 수 없지만 허리춤에 여인네를 하나 소문 없이 꿰차고 있었다 여인은 꼼짝도 안 하고 한 곳만 바라보거나 낚시 의자에 앉아 졸기만 했다 배냇병인지 살다가 탈이 났는지 알 수 없지만 그는 흥정 중에도 곁눈질로 여인네를 챙기곤 했다 무표정하기만 한 여인은 좋아서 따라왔는지 억지로 끌려왔는지 알 수 없지만 그의 손길이 싫지는 않아 보였다 좌판 자리를 말끔히 비질하는 그가 다음 장에 또 올지 말지는 알 수 없지만 늘 다정히 보듬고 살기를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길 잃은 고라니 - 김 상 아 길을 잃는 꿈을 꾸곤 했다 진창길을 허우적대거나 벼랑에 매달려 바둥거리거나 길이 없어져 갈팡질팡하다 깨곤 했다. 때론 길을 잃고 싶기도 했다 사막 뿔살무사처럼 낮에는 모래 속에 숨었다가 신기루를 찾아 하염없이 달빛 속을 걷고 싶었다 칸첸중가* 어느 골짜기도 좋고 안데스의 한 비탈길이라도 좋았다 정치가 없고 모순이 없고 부조리와 불평등이 없는 곳 이긴 자와 진 자, 먹는 자와 먹히는 자가 없는 곳이라면 외치*가 되더라도 찾아내고 싶었다 길 잃은 고라니야 너는 길을 잃어 도시에 들어왔다만 아무래도 나는 저 별꽃밭으로 나가 길을 잃어야겠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프록시마b행성이나 대마젤란은하 어느 행성쯤에서 그리운 이들과 새로운 터전을 일궈야겠다 *칸첸중가 ㅡ 히말라야산맥에 있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산*외치 ㅡ 알프스에서 냉동상태로 발견된 선사인에게 붙여진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