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봄이 드는 날(立春) - 박목철 봄이 든다는데 버들강아지 움이나 틔웠는지 아지랑이 일 듯 나비도 날고, 꽃도 피고 그리움도 나른한 하품 하네 겨울이 눈 흘기니 봄은 살며시 가슴에 숨었다. 오늘은 갑진년 '봄이 드는 날 곧' 입춘(入春)입니다. 개울에 지천으로 널려있던 버들강아지도 겨울 눈 고깔을 벗고 고운 모습으로 기지개를 켜는 계절이려나요? 예전에는 변변한 장난감이 없어 산과 들에서 구한 재료로 장난감이나 놀이도구를 만들어 썼었습니다. 그래서 탱탱하게 물오른 버들가지를 꺾어 상처가 나지 않도록 비틀어 쏙 빼면 나무와 껍질이 나누어집니다. 이것의 양 끝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한쪽에 칼로 살짝 깎아내고 불면 봄을 부르는 멋진 버들피리가 되었지요. 버들피리뿐이 아니었습니다. 풀피리, 파피리, 보리피리처럼 소리 낼 수 있는 것은 모두 악기가 되었습니다. 요즘은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 속에 파묻혀 삽니다. 심지어 전철에서 어른들도 책을 손에 든 사람은 없고, 손말틀(모바일) 게임 삼매경입니다. 버들피리 불기도 순박한 놀이 곧 추억의 말뚝박기 등도 이젠 지나간 추억거리에 지나지 않지요. 어쩌면 이제 세상은 순박한 버들피리를 잃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지금 교토 도시샤대학 캠퍼스에는 붉은 홍매화가 피어날 시기다. 홍매화 가 활짝 필무렵인 2월 중순, 이 대학에서는 아주 특별한 추도식이 열린다. 대학 캠퍼스 안에 있는 윤동주 시인의 시비(詩碑) 앞에서 2월 10일(토) 오후 1시 30분부터 시비헌화식(詩碑献花式)에 이어 강연회 등 오후 5시까지 이어진다. 오는 2월 10일 추도식은 <윤동주를 그리는 모임(尹東柱を偲ぶ会), 회장 박희균> 및 <도시샤코리아동창회 (同志社コリア同窓会), 회장 김용주>의 주관으로 열리며, 도시샤코리아센타가 후원한다. 도시샤대학의 윤동주 시인 추도회 일정을 알려온 이는 교토에 사는 우에노 미야코 (上野 都)시인으로 그는 일본의 중견시인으로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일본어로 완역하여 큰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지금 세계는 격동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 등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할 정도로 긴장 상태에 놓여있습니다. 게다가 코로나 팬데믹, 기후 이상 문제 등 한시도 방심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양심을 바탕으로 한 윤동주의 시는 세계 수십 개 언어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국립국악원》의 기획공연에서 황해도 지역, 민천식의 춤 방에서 전래해 오던 춤들이 현대에 와서 되살아나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이야기하였다. 민천식(閔千植, 1898∼1967)은 어린 시절부터 탈춤, 특히 봉산탈춤을 배웠으며, 월남 이후에는 <아악부(雅樂部)>에 다니며 궁중무용의 강습 과정을 수료하였다는 점, ‘화관무(花冠舞)’, ‘기본 춤’, ‘수건춤’ 등이 그의 대표적인 춤이란 점, 그는 봉산(鳳山)탈춤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 당시, 김진옥(金辰玉) 등과 함께 고증자로 활동하였다는 점을 말했다. 또 이 탈춤은 20세기 초, 이춘강ㆍ임재현ㆍ정순조ㆍ김봉학 등으로부터 1930년대에는 이동벽ㆍ김경석 등에게, 월남한 뒤에는 김진옥ㆍ민천식ㆍ이근성ㆍ이용익ㆍ양소운 등에 의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점, 등을 이야기하였다. ‘수건춤’은 ‘손목 사위’, ‘수건 뿌림’, ‘발놀림’이 독특하다는 점이며, ‘기본 춤’은 타령 춤의 양식을 굿거리 음악에 입혀 재구성하였다는 점을 이야기하였다. 이번 주에는 화관무(花冠舞)와 관련된 이야기를 한다. 화관무란 글자의 뜻, 그대로 꽃으로 만든 화려한 관을 쓰고, 추는 춤이라고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세종 때에는 계층이라 할 수도 없는 계급적 사회였다. 신분적으로는 하민, 소민에서 정착못하는 란민(亂民, 무리를 지어 다니며 안녕과 질서를 어지럽히는 백성), 난민(難民, 전쟁이나 재난으로 곤경에 빠진 사람), 부민(浮民, 일정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곳저곳으로 떠돌아다니는 백성), 류민(流民, 고향을 떠나 이리저리 떠도는 백성), 유민(遊民, 직업이 없이 놀며 지내는 사람) 등이 있고, 경제적으로는 가난한 궁민(생활이 어렵고 궁한 백성), 빈민, 소민(小民, 상사람), 하민(下民, 서민) 등이 있고, 떠돌이 부랑민, 천민(賤民, 지체가 낮고 천한 사람)등의 부류가 있고, 정신적으로는 무지한 우민, 평민, 서민, 소민, 시기적으로는 휼민, 요민(饒民, 살림이 넉넉한 백성), 되살려야 할 화민(化民, 일반 백성) 등이 있다. 이런 모든 부류의 백성을 교육해 ‘자각하는 생민(生民)’으로 만들려 하는 것이 세종의 생각이었다. ㆍ 백성[民]에서 생민으로 병이(秉彝) : “내가 생각건대, 하늘이 준 바른 덕과 진심 그리고 의젓하게 타고난 천성은 생민이 똑같이 받은 것이라, 인륜을 도타이 하여 풍속을 이루게 하는 것은 나라를 가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국립국악원>의 기획공연에서 황해도 지역의 권번(券番)에서 추던 민천식의 춤방과 양소운 춤방이 재현되었다는 이야기, 이들은 오랜 전통을 지닌 이북, 황해도 지역의 춤들이 현대에 와서 되살아나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점, 민천식(閔千植, 1898∼1967) 명인은 황해도 사리원 출신으로 7살 때부터 탈춤을 배우기 시작, 성장하면서 이윤화ㆍ박천만 등에게 봉산탈춤을 배웠고, 월남해서는 인천에서 살면서 인천국악원을 운영한 것에 관해 얘기했다. 또 그의 작품들은 현재 이북5도청 황해도 지방의 ‘화관무(花冠舞)’, ‘기본춤’, ‘수건춤’ 등이라는 점, 봉산탈춤(鳳山─)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할 당시, 김진옥(金辰玉) 등과 함께 주요 고증자로 활동하였다는 점, 봉산탈춤은 20세기 초, 이춘강을 비롯한 임재현ㆍ정순조ㆍ김봉학 등이 활동하였고, 1930년대에는 이동벽ㆍ김경석 등에게 전하였으며, 그 이후에는 6·25 때 월남한 김진옥ㆍ민천식ㆍ이근성ㆍ이용익ㆍ양소운 등에 의해 오늘에 이른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날, 발표된 수건춤은 민천식의 계승자인 김나연과 차지언이 무대에 나와 ‘손목 사위’, ‘수건 뿌림’, 경쾌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758년 아름다운 비례를 지닌 쌍탑이 김천 갈항사(葛項寺)의 경내에 세워졌습니다. 발원자는 신라 제38대 원성왕(元聖王)의 어머니인 계오부인(繼烏夫人) 박씨(朴氏)와 그녀의 오라버니, 그리고 그녀의 여동생이었습니다. 그들이 어떤 간절한 염원을 담아 탑을 세웠는지 알 수 없으나, 탑을 세우 뒤 27여 년의 시간이 흐른 뒤 계오부인은 황태후가 되었고 그 이후 발원자였던 세 사람은 탑에 기록되었습니다. 석가탑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비례미 신라의 삼국통일은 석탑의 모습에도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기존 신라와 백제로 대표되던 각기 다른 양식의 석탑이 하나의 모습으로 재창조되었습니다. 7세기 말 무렵, 경주의 감은사(感恩寺)와 고선사(高仙寺)에 세워진 삼층석탑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탑들은 마치 통일 왕조의 권위와 위용을 상징하는 듯, 안정적이면서도 압도하는 웅장함이 돋보입니다. 초층 탑신석 상단 중앙까지는 밑변이 긴 삼각형 구도로 안정감을 더하였고 층간의 높이와 지붕의 비례를 일정하게 체감시켜서 그러한 시각적 효과를 보이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통일 초기 석탑의 안정감과 웅장함은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빠르게 발전과 변화를 거듭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봄비처럼 겨울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제주, 거기에 바람까지 불어대는 게 음산하기 짝이 없다. 출발하는 날부터 궂은 날씨는 이삼 일간 계속 흐린다는 비 예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제주에 올 때면 반드시 들르는 곳이 있는데 그곳은 바로 대정이다. 공항에서 차로 1시간가량 걸리는 대정에는 추사유배지가 있는 곳으로 지금은 추사기념관이 번듯하게 들어섰지만 기념관 뒤편 초가집으로 발길이 먼저 가는 것은 왜일까? 대문을 들어서면 ㄷ자로 배치된 초가집 가운데 문간 오른쪽, 채 한 평이 될까말까한 좁은 방안에 밀랍 인형 둘이 앉아있는데 이들은 추사와 초의선사다. 차를 마시는 이들의 모습을 바라다보고 있자니 이들이 살던 18세기의 한 끝자락을 보는 듯 가슴이 아련해온다. 고향의 가족과 공적인 업무에서 배제된 채 유배(流配)의 삶을 살아야했던 당시 선비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쇠처럼 단단하고 난초처럼 향기로운, 추사와 초의 친구사이의 매우 두터운 우정을 '금란지교' 라 한다.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와 초의 의순(草衣 意恂, 1786~1866)의 우정이 그러하지 않았을까! 1815년 처음 만난 추사와 초의 이후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서한범의 우리음악이야기’는 판소리 <심청가>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젊은 소리꾼, “어연경의 심청가 발표회”와 관련된 이야기를 시작으로 해서 고 성창순(成昌順) 명창의 판소리 사랑 이야기, 그리고 판소리로 듣고 부르는 <심청가>는 슬픈 애심감자(哀心感者)의 소리로 계면소리라는 이야기, 까마귀의 반포지은(反哺之恩)이야기와 새벽을 알리는 반야진관에 있던 맹상군 이야기, 돛을 단 배가 넓은 바다 위로 유유히 떠가는 범피중류(泛彼中流) 이야기를 해 왔다. 소리 자체도 힘들고 어려운 것이 판소리라고 하지만, 대목마다 어려운 사설의 내용이 또한 많은 공력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판소리의 유익한 감상을 위해서는 사설에 대한 이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심청가> 이야기는 잠시 뒤로 미루고, 이번 주에는 지난해 10월 26일, 서초동 국립국악원에서 기획공연으로 열린 ‘일이관지(一以貫之)’ 이야기를 한다, 일이관지의 딸림 제목은 ‘조선 춤방’인데, 여기서 하는 공연 곧 조선 8도에서 춤 방의 맥을 이어 온 작품들이 선을 보이는 기획된 공연이었다. 당일의 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보 <청자 참외모양 병>은 고려청자 가운데 대표적인 작품으로 손꼽히는 병입니다. 제17대 임금인 인종의 장릉(長陵)에서 출토되었다고 하는데, 특히 '황통육년(皇統六年)'(1146)이라는 정확한 연대가 있는 시책과 함께 전해져 고려왕실의 청자에 대한 심미안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고려의 비색을 대표하는 병 여덟 잎의 꽃 모양으로 만들어진 주둥이(구연)와 긴 목, 여성의 치마 주름처럼 생긴 높은 굽다리, 농익은 참외 형태로 만든 병의 몸통이 유려하면서도 우아합니다. 참외 모양의 몸통은 상하 수직선으로 눌러 오목하게 골을 표현하였고, 각각의 곡면에는 팽팽한 양감이 드러나 있습니다. 높직한 굽의 예리한 직선과 몸통의 곡선이 대치를 보이면서도 조화를 이루고 있어 긴장감과 함께 경쾌하면서도 단아한 느낌을 줍니다. 몸통을 중심으로 목과 굽다리의 연결부위에서 확인되는 돌대는 금속기에서 빌린 듯하며, 병목에 가로선이 세줄 오목새김(음각)되어 있을 뿐 다른 장식은 찾아볼 수 없지만 오직 형태와 유색으로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굽바닥에는 유약을 닦아내고 내화토 받침을 일곱 곳에 받쳐서 구운 흔적이 있습니다. 전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이위항식(以爲恒式)’ : 이렇게 함을 항식(恒式)으로 삼으라. (세종실록 즉위년 9/3) 세종에게서는 새 제도와 고쳐서 바꿈을 자신의 생생화의 특성으로 삼고 이를 법과 제도로 정착화하려는 의지를 볼 수 있다. 조선 건국 초기여서 토의를 거친 안건은 항구적인 법칙으로 체계화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조선왕조실록》에 ‘이위항식以爲恒式’(‘이로써 항상 따라야 하는 형식으로 삼다’) 곧 정례, 규례, 법식, 제도, 법 등으로 나타나는 ‘항식’이 있는데 이는 시행 규칙을 만들어 가는 일이다. 《조선왕조실록》 전체 394건 가운데 많이 출현하는 임금은 태종 77건, 세종 225건, 성종 72건 순이다. 세종은 항식을 제도화하려는 ‘이위항식’의 임금이었다. 참고로 그 밖의 연관어는 다음과 같다. ------------------------------------------------- ‘恒式’ 원문 모두 810건, 태종 112건, 세종 304건, 성종 59건 ‘以爲恒式’ 모두 394, 태종 77, 세종 225, 성종 4 ‘永爲恒式‘ 모두 201, 태종 31, 세종 65, 성종 16 ’永以爲式‘ 모두 26, 태종 3, 세종 9, 성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