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인간의 건강에 대해서 정의할 때 여러 가지 있을 수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활동력이 높은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곧 낮에 높은 세포 활동성과 밤의 낮은 세포 활동성의 격차가 건강이라 말할 수 있는데 어린이들이 가장 격차가 크고 나이다 들수록 낮아져 노년이 될 때 현격하게 좁아진다. 이러한 활동의 가장 기본적인 모습이 걷기라 할 수 있다. 곧 인간에게서 활동성이 낮은 순으로 본다면 잠자는 순간이 가장 낮으며, 다음은 누울 때, 앉았을 때, 걸을 때, 육체적인 일을 할 때, 마지막으로 운동을 할 때가 가장 활동성이 높을 때라 말할 수 있다. 이중에서 앉을 때가 휴식의 시작이며, 걷기가 활동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이 얼마나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는가하는 것을 “걷기” 상태를 기준으로 나눠볼 수 있다. 곧 걷기에 문제 있는가에서 부터 걷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가, 힘들어지는가, 즐겨하는가, 활기차게 걷는가, 등등의 갈래에 따라 달라진다. 곧 걷는데 힘들지 않고, 걷고 났을 때 건강한 느낌이라면 그 사람은 건강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걷는 양과 걷는 속도가 높아진 상태를 운동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충실한 걷기와 효과적
[우리문화신문=신부용 전 KAIST 교수] 전번 이야기에서 ‘외래어표기법’을 없애고 대신에 언어별로 외국어 표기법을 만들자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외래어라는 것은 외국에서 들어와 우리말이 된 어휘를 말합니다. 어디서 들어왔건 우리말이 된 이상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하여 사전에 올려 쓰면 그만입니다. 사투리도 많이 쓰게 되면 표준어가 되어 사전에 올라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번에 ‘대박(daebak)’ 등 26개의 한국 낱말이 ‘옥스퍼드 사전’에 올랐다는 것처럼 말입니다. 결국 ‘외래어표기법’이라는 것은 애초부터 불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외래어 표기법의 원조는 일본어 그런데 왜 ‘외래어표기법’이 생겼을까요? 그것은 일본의 통치를 받던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 처음 등장하였습니다. 당시 일본은 우리보다 개방이 40년 정도 빨라 서양 문물이 물밀듯이 들어오던 때였지요. 서양의 지명이나 사람의 이름은 물론 일반 낱말들도 많이 들어와 이를 일본 글자로 표기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한자로 번역하여 새로운 어휘를 만들어 내는 한편 그들의 고유 문자인 가나로 외국어 어휘의 발음을 따라 표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문자로는 서양 어휘의 발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우리가 무심히 마시는 물은 생명을 유지하는데 가장 근본이 된다. 그러다 보니 건강과 능력 성격 등을 물과 연관 지어서,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인재가 배출된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먹거리도 물이 좋아야 상등품이 생산된다고 믿고 있다. 물이 생명의 근원이 된다는 것은 흔히 333의 법칙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곧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는데 공기가 없으면 3분을 버티기 힘들고, 물이 없으면 3일을 버티기 어려우며, 음식이 없으면 3주 이상 생명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1. 한방에서는 물을 33종류로 세분해 한의학에서는 이러한 물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하늘은 물을 처음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물을 첫 자리에 놓는다. 곧 물이 모든 변화의 시작이다”라고 하여 생명과 사물의 근본으로 삼았으며 물의 성격과 쓰임에 따라 33종으로 구분했다. 일상에서 취할 수 있는 가장 귀한 물을 정화수(井華水)라고 했다. 본래의 의미는 새벽에 처음 기른 우물물을 뜻하지만, 일상에서는 정성이 담긴 물, 염원이 담긴 물을 뜻한다. 이 밖에도 정월에 처음 받은 물, 겨울에 온 서리, 멀리서 흘러오는 강물, 거슬러 돌아 흐르는 물, 더운 샘물, 뜨겁게 끓인 물 등
[우리문화신문=일취스님(철학박사)] 순천 선암사를 가보자. 그곳에 가면 옛 정취가 스멀스멀 피어나고 선인들의 숨결이 가슴에 파고든다. 우리나라 곳곳에 많은 고적지가 있지만, 옛 모습 그대로 선인들의 채취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곳은 선암사만 한 데가 없다. 선암사는 옛 모습 그대로 조계산 자락에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다. 유적이란 옛사람들이 남기고 간 자취나 건축물, 생활했던 터, 싸움터,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졌던 곳이나 패총, 고분 따위를 이른다. 그리고 유물이란 선인들이 생전에 사용하다 남긴 물건을 말하는데, 넓은 의미로는 옛 선인들이 생활했던 자취나 사용했던 유물들을 총괄해서 말한다. 이처럼 유적과 유물 그리고 옛 선인들이 생활했던 생활방식을 통틀어 고전문화라고 한다면, 현시대에 행해지는 모든 것들을 근대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문화를 두 가지 시대적 분류로 말할 수 있는데, 분명한 것은 근대문화가 아무리 월등하다고 해도 고전문화의 뒷받침 없이는 성립하기 어려울 것이고, 고전문화 없이는 그 나라 민족 가치성을 주장하기 또한 궁색할 것이다. 하여 현대 문물이 눈부시게 발달했는데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옛 문화와 문물을 소중히 다루고 있는 까닭은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기차표를 예매한 우리는 작은 손가방 하나씩을 들고 즐거운 기분으로 열차에 탔다. 사실 이렇게 두 남자가 금산정사 방문 여행을 실현하기까지 어려움이 많았다. 우리 두 남자야 의기가 투합했지만, 문제는 사모님의 내부 결재. 연담 거사는 불교 신자로서 법사 자격증까지 있으니 별문제가 없었다. 나는 당시에 교회에 열심히 다니면서 십일조까지 내는 기독교 신자였다. 나는 화성군 봉담면에 살지만, 일요일마다 빠지지 않고 서울 강남구 일원동에 있는 교회에 나간다. 그런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3일이나 집을 떠나 전라남도 섬에 있는 스님을 만나러 간다? 아무래도 명분이 없었다. 마침 대학교는 방학 중이었기 때문에 지방 학회에 출장 간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었다. 나는 여러 가지로 명분을 찾았으나 마땅한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한참 궁리 끝에 결국은 정공법을 택하기로 했다. 우선 며칠 동안 유별나게 아내를 기쁘게 해주었다. 독자 중에는 오해할지도 모르는데, 아내를 기쁘게 해주는 일이 꼭 밤에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안 하던 방청소도 깨끗이 하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둘째 놈 숙제하는 것도 보아주고, 나름대로는 열심히 집안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학교 명예교수] 세종을 도와 세종르네상스를 만든 인물들을 살피고 있다. 졸기를 중심으로 안경공, 안순, 안지를 살펴보자. ∙ 안경공(安景恭 충목 3, 1347 ~ 세종 3, 1421) 세종 이전에 조선의 기틀을 다지는데 이바지한 인물이다. 소개를 대신하여 졸기를 보자. “흥녕 부원군 안경공(安景恭)이 졸(卒)하였다. 경상도 순흥부 사람이었다. 판문하부사 안종원(安宗原)의 아들로 사람됨이 단정하고 근엄하며, 고려의 병진년(우왕 2년, 1376) 과거에 급제하고 여러 번 승진하여 밀직사(密直司) 좌부대언이 되었고, 태조께서 개국할 때 여러 장상(將相)과 같이 추대하여 좌대언으로 승진되고, 익대개국공신(翊戴開國功臣)에 책정되었다가 관제(官制)가 시행되면서 중추원 도승지로 임명되고, 사헌부 대사헌에 승진하여, 공안부(恭安府)와 한성부 판윤을 역임하고 부원군으로 승진하였다. 일찍이 경상ㆍ전라ㆍ황해도의 안찰사가 되었는데 너그럽고 간단명료하여 까다롭게 굴지 아니하였다. 죽던 해에 나이가 75살이다. 조정 일을 3일 동안 정지하여 조의를 표하고 시호를 양도(良度)라 하였다. 온순하고 착하고 좋아하고 즐겨하는 것이 뛰어나고, 의로운 일을 좇는 마음
[우리문화신문=신부용 전 KAIST 교수] 세계 으뜸 글자의 부끄러운 성적 우리는 한글이 과학적이고 배우기 쉬울 뿐 아니라 어떤 언어의 발음이라도 표기할 수 있는 세계 으뜸 글자라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정인지도 훈민정음으로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까지도 표기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한글은 정말 다른 문자들이 따라 올 수 없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세계 으뜸 글자라고 하기에는 부끄러운 점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일본사람들과 함께 세계에서 영어를 제일 못하는 민족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이것이 한글의 표기 기능 부족에서 오는 것이라 합니다. 예를 들어 fan을 우리는 ‘팬’이라 하고 일본사람들은 ‘후앙’이라고 하니 외국인들이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발음이 몇 개 더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나라 밖에 나가면 입을 열지 못하고 맙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대학을 나오고도 미국이나 호주처럼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 살게 될 때 말이 안 통해 노동일이나 말이 별로 필요 없는 서비스업에 취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이를 누구에게 호소해야 합니까? 개인 당사자의 복지 문제를 넘어 국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한의학 치료의 기본은 흔히 일침(一針), 이구(二灸), 삼약(三藥)이라 하여 침을 놓고 쑥뜸을 뜨고, 한약을 복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치료 방법들은 기본 이론의 토대가 명확하고 실질적인 효과가 있어 의학 기술이 발달한 현대에서도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한의학의 정수는 섭생(攝生)과 양생(養生)으로 대표되는 건강법이라 할 수 있다. 정신을 기르고, 기를 단련하며, 몸을 보양하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고 이를 실천하는 것에 있다 할 수 있다. 이러한 바탕 속에 ‘도창법’과 ‘하천고’를 소개하고자 한다. 봄이 오면 피로(疲勞)를 호소하는 분들이 많다. 이는 어린이와 성인 모두에게 적용되며 하다못해 동물의 세계에서도 보이는 모습이다. 왜 봄에 피로를 많이 느낄까? 왜 보약은 봄과 가을에 먹으라 했을까? 이러한 의문과 더불어 실질적으로 어떻게 하면 피로를 풀어내고 활기찬 상태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필자의 경우 피로하면 노폐물이 먼저 떠오르고, 노폐물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백호탕(白虎湯)’을 기본으로 다양한 배합의 처방들이 떠오른다. 한편으로 노폐물을 제거하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동의보감에 기록된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젊은 시절에 나는 방황하는 구도자였다. 기독교의 ‘예수원 방문기’에 이어서 또 다른 구도 여행인 불교의 ‘금산정사 방문기’를 연재한다. 광복절 전날인 1997년 8월 14일 낮 1시 30분, 나는 불교계 친구인 연담 거사와 함께 수원역에서 광주행 무궁화호 열차에 몸을 실었다. 두 남자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2박 3일 동안 전남 고흥군 건너 남해에 있는 섬, 거금도로 현정(玄靜) 스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그것은 참으로 오랫동안 그려 오던 여행이었다. 내가 현정 스님을 최근에 만난 것이 1989년이었으니까 무려 8년이나 기다렸던 여행이었다. 8년 만의 외출. 무슨 소설 제목 같기도 하고, 나는 괜히 가슴이 설레었다. 내가 현정 스님을 처음 만난 것은 순전히 인연이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10년 전인 1987년 어느 날, 나는 이전 직장인 국토개발연구원에서 광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나는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시끄럽고 닭장 같은 아파트가 가득한 대도시가 싫었다. 모처럼 서울을 떠나 출장을 가는 김에 하룻밤을 광주 근처의 산사에서 보내고 싶었다. 나는 직장의 불교 모임인 국불회(國佛會)의 회장 연담 거사에게
[우리문화신문=신부용 전 KAIST 교수] 더욱 절실해진 한글보급 전번 이야기에서 지석영, 헐버트, 주시경이 지하에 묻혀있던 훈민정음을 살려내기 위해 어떻게 노력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당시는 매우 혼란한 시기였습니다. 1894년 1월 동학 난이 일어나고 이를 진압할 능력이 없던 조정은 청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여 6월에는 청군이, 7월에는 일본군이 우리나라로 진군하여 결국 우리 국토를 놓고 두 나라가 전쟁을 벌였습니다. 이때 명성황후는 러시아 세력을 끌어드리려 하다가 일본 무관에 의해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동학 농민의 세력은 일본군을 당해내지 못하고 진압되었습니다. 1895년 일본이 청일전쟁에서 이겨 조선은 500년 동안 섬겨오던 청나라로부터 해방됨으로써 일본의 한국 지배가 유력해졌습니다. 이에 고종은 1896년 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러시아 공관으로 피신하여 일본에 대항하려 하였습니다. 한마디로 나라 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1898년 당시 23살이었던 한힌샘 주시경은 망국의 위험을 실감하고 서둘러 국문법을 정리하여 닥치는 대로 보급을 서둘렀던 것입니다. 한글맞춤법의 출현 1905년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까지 물리친 일본은 을사늑약을 맺어 조선의 외교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