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히메지성은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입니다. 히메이지성은 많은 성 가운데 유일하게 훼손이 안 되고 보존상태가 양호한 성이지요. 이 성은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성으로 외국인들이 많이 보러옵니다. 특히 이곳 히메이지는 자연재해가 거의 없어 살기 좋은 곳이지요. 옆 도시인 고베에서 큰 지진이 났어도 이곳은 끄떡없었습니다.” 택시기사는 히메지성(姫路城)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히메이지역에서 택시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즈이간지(隨願寺)에 가기 위해 탄 택시 안에서 기사는 끊임없이 히메지가 속해 있는 효고현(兵庫県) 자랑에 여념이 없다. 흔히 택시 기사들은 자기 고장을 자랑하기 보다는 별로 좋지 않은 점을 말하기 일쑤인데 세계문화유산에 빛나는 성곽(城郭)도시라서 그런지 히메이지의 택시기사는 좀 달랐다.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으로 일컬어지는 히메이지성은 외곽이 흰빛으로 칠해져있어 백로 같다고하여 하쿠로성(白鷺城, 백로성)이라고도 부른다. 에도시대(1603~1868) 이전에 지어진 성 가운데 천수각이 있는 성인데 천수각(天守閣)이란 망루와 비슷한 건물로 외관은 2층 ~ 5층으로 되어 있다. 일본에서 천수각이 국보인 성은 히
[우리문화신문=교토 이윤옥 기자] “윤동주 노래를 통해서 한ㆍ일 간 문화교류의 가교(架橋)가 되고 싶습니다. 지난 1월 한국에 갔을 때 연세대학교의 윤동주 시비 앞에서 ‘서시(序詩)’ 노래를 불렀습니다.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2001년부터 한국어강좌에 등록했는데 이때 재일본문학회장인 김리박 시인을 알게 되었고 윤동주 시인의 노래를 부르게 되었습니다. 음악과 함께 한 세월은 올해로 41년이지만 재일동포로서 이영보(李榮寶)라는 이름 (전에는 기무라 시게보 ‘木村榮寶’)으로 활동한 것은 16년째입니다.” 윤동주를 노래하는 재일동포 가수 이영보 씨를 만난 것은 그제(13일, 월) 교토 도시샤대학 윤동주 시비 앞에서 였다. 마침 이 날은 <일본ㆍ한국ㆍ재일코리언 시인 공동 윤동주 탄생 100주년 기념 모임>이 오후 3시부터 있었는데 이 자리에서 이영보 씨는 윤동주의 서시(序詩)를 한국어와 일본어로 기타 반주를 넣어 불러 큰 호평을 받았다. 재일동포 2세인 이영보 씨는 부모님이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강제 연행된 뼈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있다. 당시 부모님은 일본 사회에서 왕따를 당하고 심지어는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풍토를 우려하여 일본말 우선으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에 왔다. 오사카와 교토를 거쳐 도쿄 등 각지를 돌아보았다. 맨 처음 시모노세키에서 내렸을 때 일본에 대한 첫 인상은 한마디로 놀라움 그 자체였다. 근사한 건물과 멋진 복장의 사람들이 지나다녔다. 그러나 인력거를 끄는 사람들을 보면서 일본이 빈부의 차가 심하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이런 모습을 보니 일본은 강하지 않고 약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자신감이 들었다. 특히 교토는 멋진 도시였지만 거지가 많다는 사실에도 놀랐다. 도일 전까지 ‘일본은 얼마나 부강한 나라일까?’라는 생각을 했으나 실제 거지가 많은 것을 보고 ‘이것이 일본인가? 이러한 일본이 조선에 와서 그렇게 허세를 부린단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동정을 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가난한 자들은 압박 속에 살고 있었다.” 이 글은 도쿄 고려박물관 관장인 히구치 유이치(樋口雄一) 씨가 쓴 《김천해 - 재일조선인 사회운동가의 생애(金天海-在日朝鮮人社會運動家の生涯), 2014》에 나오는 이야기로 특히 위 인용 부분은 김천해의 자전적인 기록 부분이다. 김천해(본명 김학의)는 1898년 울산 방어진에서 태어나 2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배우는데 나이의 많고 적음이란 없다.” 일본 고대사학계의 거목인 우에다 마사아키(上田正昭,1927-2016) 교수는 로마의 철학자이자 정치가인 세네카의 말을 빌려 생의 마지막 책 《고대사연구 70년의 배경(古代史硏究の70年の背景)》 머리말에 그렇게 썼다. 70년간 고대사 연구에 힘을 쏟은 우에다 마사아키 교수는 평생 82권의 고대사 관련 책을 집필했다. 1956년 《신화의 세계(神話の世界)》를 시작으로 《고대사연구 70년의 배경(古代史硏究の70年の背景)》 까지다. 그를 주목해야하는 것은 그의 연구가 전시대 학자들과 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백제와 일본 왕실의 혈연관계 등 한일 고대사 연구에 평생을 바쳤던 우에다 교수의 시각은 그러나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없는 사실을 연구한 게 아니라 기존의 연구자들이 “일본의 모든 고대사는 중국에서 유래”라는 기존의 틀을 깬 것이기에 의미 있고 어쩌면 용감한 연구였다고 할 수 있다. 지난 1월 초순 필자는 와세다대학 서점에서 이 한권의 책 《고대사연구 70년의 배경(古代史硏究の70年の背景)》을 만났다. 우에다 교수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쓴 책이다. 필자는 우에다 교수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절분제(節分祭)는 평소에 신의 가호로 무사히 지낼 수 있게 된 것을 가시마신사(鹿島神社)의 신에게 감사드리고 아울러 액운을 막는 행사로 개운(開運)과 행복을 비는 축제입니다. 절분제의 신청용지는 사무소에 있습니다. 많은 분들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신청 마감은 1월 28일, 제1부 오후 3시 기도요금 5천 엔, 제2부 오후 6시 기도요금은 2만 엔” 이 글은 이바라기현 가시마시(茨城県 鹿嶋市)에 있는 가시마신궁(鹿島神宮)의 알림판에 적혀 있는 글이다. 가시마신궁(鹿島神宮)은 전국에 소재한 약 600개 신사의 총본사로 필자가 찾은 1월 10일에는 하츠모우데(정초 참배)를 위해 찾아온 사람들로 신궁은 북적거렸다. 해마다 2월 3일은 일본의 절분(세츠분, 節分)날이다. 절분날은 신사나 절에서 액막이 기도회를 갖고 콩뿌리기(마메마키) 행사를 하는 오랜 풍습이 있다. “복은 들어오고 귀신은 물러가라(福は內、鬼は外)”라고 하면서 콩을 뿌리고 볶은 콩을 자기 나이 수만큼 먹으면 한 해 동안 아프지 않고 감기도 안 걸리며 모든 악귀로부터 보호 받는다는 믿음이 있다. 절분행사는 예전에 궁중에서 했는데 《연희식, 905년》에 보면 색색으로 물들인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이 전시관은 히다카시(日高市)가 기본 구상으로 하는 ‘역사와 자연의 고향’ 을 꿈꾸어 만든 자료관입니다. 히다카시는 고마가와(高麗川)의 맑은 물이 입지한 곳으로 우리 조상이 이곳에 살기 시작한 것은 구석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후 1만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고도성장기 개발의 물결에 휩싸였고 특히 1960년대에 들어서서는 대규모 택지 개발로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어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생활 도구 등이 하나둘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이에 그 보존의 필요성을 느껴 고려향민속자료관(高麗鄕民俗資料館)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히다카시 교육장- 고려천[고마가와, 高麗川]가 발아래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한 히다카시의 ‘고려향민속자료관(高麗鄕民俗資料館)’은 아담한 2층 전시실을 갖춘 향토 자료관이다. 자료관 입구에는 다양한 모양의 떡살이 전시되어 있으며 안쪽 1층 전시실에는 물레 등 의생활에 관련된 도구를 비롯하여 벼농사에 필요한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벼를 훑는 홀태나 탈곡기 등은 과거 우리 농촌에 있던 것들과 흡사하여 전시관을 찾는 한국인들의 시선을 끈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청춘'이란 말만 들어도 풋풋하다는 사람들이 있다. 일본에서 그제 1월 9일(월)은 그런 풋풋한 젊은이들을 축하하는 성인의 날이었다. 이날 전국 각지에서 성인식을 포함한 만20살 젊은이들을 위한 다채로운 행사를 가졌다고 매스컴은 보도했다. 올해 새로 성인(新成人)이 되는 사람들은 전국적으로 지난해 보다 2만 명이 늘어난 123만 명이다. 오사카의 경우는 지난해 보다 1,000명이 많은 약 25,000명이 성인을 맞이했다. 만 스무 살을 맞이한 젊은이들의 잔치인 성인의 날은 1999년까지 1월 15일이던 것이 2000년부터는 1월 둘째 주 월요일로 옮겨 각 지방단체별로 성인식을 한다. 여성들은 “하레기(晴れ着)”라고 해서 전통 기모노를 입고 털이 복슬복슬한 흰 숄을 목에 두르는 것이 성인식 차림이며 남성들은 대개 신사복 차림이지만 더러 “하카마(袴, 전통 옷)” 차림도 눈에 띈다. 특히 여성들은 이날 행사를 위해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단장을 해야 하므로 시간과 돈이 어지간히 든다. 하지만, 일생 단 한 번인 스무 살 의식을 위해서라면 그깟 돈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화려한 전통 의상을 입고 성인식을 마친 여성들이 삼삼오오 짝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을 사랑한 푸른 눈의 독일인,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다. 그 이름은 브루노 타우트(Bruno Julius Florian Taut, 1880-1938)다. 내가 브루노 씨를 만난 것은 기후현에 있는 시라카와마을(白川鄕)에서였으니 십여 년도 더 된 이야기다. 1938년에 죽은 독일인 건축가를 십여 년 전에 만났다고 하면 의아한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시라카와마을은 기후현 산골짜기에 얼마 안남은 옛 전통방식의 일본집으로 지붕 모습이 사람 손의 합장(合掌) 모습이라 하여 합장가옥 곧 일본말로 갓쇼즈쿠리(合掌造り)라고 부른다. 눈이 많은 지방의 가옥형태다. 이 마을을 전 세계에 알린 사람이 독일인 건축가 브루노다. 브르노가 이곳을 찾은 것은 1933년 일이다. 당시 그는 독일의 촉망받는 건축가였다. 브르노는 1880년 독일 케니히스브루크에서 태어나 33살 때 '철의 기념탑', '유리의 집'을 발표하여 국제적인 평가를 얻은 바 있다. 그 뒤 그는 베를린 주택공사의 공동주택 설계를 맡게 되는 데 건물과 건물 간격을 띄우고 나무를 심는 등 요즘말로 친환경적인 공동주택 설계했다. 그러나 당시 독일은 히틀러가 총리가 되어 무너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에서 한해 가운데 청소 도구가 가장 많이 팔리는 때를 들라면 단연코 요즘과 같은 설밑(연말)일 것이다. 해마다 연말에 대청소(오오소지, 大掃除) 하는 풍습이 있는 일본이라 그런지 여러 언론에서는 대청소 요령이라든가 청소도구 등에 관한 기사가 넘쳐난다. 일본에서 연말 대청소는 아예 ‘연중행사’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을 만큼 전국적인 행사다. 대청소의 의미는 1년 동안 집안에 쌓인 먼지 등을 털어내고 집안팎을 깨끗이 청소함으로써 새해의 신(神)을 맞이하기 위한 의식으로 이러한 풍습은 멀리 헤이안시대(平安時代, 794~1192)때 부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궁중에서는 12월이 되면 오오소지(대청소)를 연례행사로 실시했는데 이는 스스하라이(煤払い)에서 유래한 것이다. 스스하라이란 먼지와 그을음 등 한 해 동안 곳곳에 쌓여있는 것들을 털어내는 것으로 ‘털어낸다’는 의미는 집안에 들어온 악귀나 나쁜 기운을 털어내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일로 여겨왔다. 그래서 지금도 신사(神社)나 절에서는 긴 장대 빗자루로 경내 곳곳을 털어내는 의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스스하라이는 에도시대(1603~1868)에만 해도 음력 12월 13일에 하였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다사다난했던 한해가 슬슬 저물어 가고 정유년 닭의 해가 밝아 올 무렵 일본 분위기는 어떨까? 아직 12월 중순이라 연말 분위기는 나지 않지만 그래도 길거리나 상가에 가보면 연말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데 “시메카자리(注連飾り)” 따위 장식품도 그 한몫을 한다. 시메카자리는 연말에 집 대문에 매다는 장식으로 짚을 꼬아 만든 줄에 흰 종이를 끼워 만드는데 요즈음은 편의점 따위에서 손쉽게 살 수 있다. 이러한 장식은 농사의 신(稻作信仰)을 받드는 의식에서 유래한 것인데 풍년을 기원하고 나쁜 액운을 멀리하려는 뜻으로 신도(神道)에서 나온 것이라는 설도 있고 한편으로는 일본의 나라신[國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과 관련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시메카자리는 12월 말에 대문에 내달고 지역에 따라서 다르지만 대개 1월 7일 이후에 치우는 게 보통이다. 관서지방에서는 1월 15일에 치우고, 미에현(三重縣 伊勢志摩) 같은 지방에서는 1년 내내 장식하는 곳도 있는 등 곳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다. 또한 연말연시 장식으로 “카도마츠(門松)”도 빼놓을 수 없는데 이것은 12월 13일에서 28일 사이에 집 앞이나 상가 앞에 세워두고 치우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