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세종 정치 소통(커뮤니케이션)의 가장 큰 관심은 동양 정치사상의 기본인 민본(民本)에 중점을 둔 것은 사실이나 그다음으로 강조한 것은 실용(實用)이라고 할 신제(新制,製)와 창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종이 정치를 통해 실용과 신제를 강조한 기사들을 중심으로 세종의 실질적인 정치의 모습을 보자. 세종이 이루고자 하였으나 아직 그 시기는 시대정신과 환경이 조성되지 않아 이루지 못한 일도 있다. 시장경제의 기초인 화폐 유통과 기타 인권강화라 할 노비제도의 완화 같은 것들이다. 여기 실질적인 토지개량과 말의 관리에 대해서도 실용(實用)임을 강조했다. ⋅ 실용(實用) (나주 교수관 진준이 제주의 토지개량과 말의 관리에 대해 올린 글) 말[馬]은 군국(軍國)에서 소중히 여기는 것으로 생각지 않을 수 없으니, 산림에 놓아 제 천성대로 자라서 사람에게 길들여 익히지 않았다가, 일조에 갑자기 붙들어 매어 후풍(候風, 배가 떠날 때 순풍을 기다리는 일) 하는 곳에 모아, 여러 날 주리고 목마르게 하다가, 배에 실려서 바다를 건너게 하면, 풍토와 물이 각각 다른지라, 목말라 물을 마시다가 병이 나면, 못 쓰는 말이 되어, 나라에 무익한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단가로 부르는 소동파의 전 적벽부(前赤壁賦)를 소개하였는 바, 유배된 그가 적벽강에서 배를 띄워 놀이 할 때의 흥취, 주변의 경치와 적벽대전(赤壁大戰)에서 패한 조조(曹操)를 떠올리며 인생의 덧없음을 노래하는 내용이 인상적이며 특히, 우주와 자연의 무궁함 앞에서 인간의 존재는 극히 미미하다는 점을 깨닫게 해 준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끝나는 구는 서망하구(西望夏口) 동망무창(東望武昌) 산천이 상유하야 울울창창 허였으니 맹덕(孟德)이 패한 데로구나. “거드렁 거리고 놀아보세.”로 마무리하고 있으나, 핵심적 내용은 그 뒤로 이어지는 천지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물건은 각기 주인이 있으니, 내 소유가 아니면 취하지 말아야 하지만, 강 위에 불어오는 청풍(淸風), 산 사이의 명월(明月)은 이를 취하여도 금하는 이가 없으며, 조물주의 무궁무진한 보고(寶庫)라는 이야기도 소개하였다. 이번 주에는 <장부한(丈夫恨)>이라는 단가를 소개한다. 이 노래는 제목 그대로 대장부의 한(恨)을 소리로 나타내고 있는 단가다. 주된 내용은 남자로 태어나 뛰어난 명승고적(名勝古蹟)들을 두루 돌아보고, 고금(古今)의 영웅들이나 열사,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아서라 세상사, 가소롭다”로 시작되는 유명한 단가, <편시춘(片時春)>을 소개했다. 젊은 시절은 잠깐 사이에 지나가고, 곧 백발이 찾아온다는 동원도리편시춘(東園桃李片時春) 곧 ”유영(劉怜)이 기주(嗜酒)한들, 분상토(墳上土)에 술이 오랴. 아마도 우리 인생 춘몽과 같으오니, 한잔 먹고 즐겨보세“라고 맺는다고 이야기했다. <유영>이라는 인물은 중국 진나라 말기, 죽림칠현(竹林七賢) 가운데 한 사람으로 술을 너무나 좋아해 하인에게 늘 삽을 메고 따라다니게 했다는 이야기, 그로 인해 하삽수지(荷鍤隨之)라는 말, 곧 “삽을 들고 따라다니게 했던 번거로움”이라는 말이 전해진다는 이야기, 짧은 인생, 즐겁게 지내자는 권유의 사설과 장단도 평이하고, 가락도 흥겨워 소리꾼들이 자주 부르고 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명창 정정렬이 잘 불렀다는 단가, ‘적벽부(赤壁賦)’를 소개해 본다. 소동파의 적벽부는 전편과 후편이 있으나, 이 단가는 전편(前篇)을 중모리장단 위에 정정렬 자신이 곡조를 붙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적벽부>는 남도의 단가 말고도 송서(誦書)로도 전해오는데, 역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그제(27일) 나는 방한 중인 마츠자키 에미코(松崎 恵美子) 씨와 함께 지난해 돌아가신 오희옥 지사의 참배를 위해 국립현충원 충혼당(납골당)엘 다녀왔다. 지난해 11월 17일, 98살로 숨을 거두기까지 유일한 생존 여성독립운동가였던 오희옥 지사는 그를 아는 많은 분으로부터 사랑을 한 몸에 받아오던 애국지사였다. 국립서울현충원 제2충혼당 <616-023>에 계시는 오희옥 지사의 유해는 무궁화꽃이 돋을새김된 작은 청자단지에 모셔져 있다. “열네살 소녀 독립군이었던 나의 자랑스런 어머니 오희옥 지사”라는 글과 함께 청아한 한복차림의 오희옥 지사 사진은 지난해 영결식 이후 자녀분들이 만들어 붙여둔 듯했다. 마츠자키 씨와 나는 미리 준비한 꽃을 들고 고개 숙여 오희옥 지사의 명복을 빌고 또 빌었다. 워낙 한분 한분의 유해를 모신 공간이 좁아서 마츠자키 씨가 마련해 온 생화꽃은 망자에게 바치지 못하고 내가 가지고 간 붉은 카네이션만 유리에 붙여두고 충혼당을 나왔다. 밖은 화창한 봄이었다. 충혼당 주변의 벤치에는 삼삼오오 유가족들이 환담하고 있었다. 나는 집에서 나올 때 커피와 딸기 등 간단한 요기거리를 가지고 왔기에 오희옥 지사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징분질욕(懲忿窒慾)' 강희맹, 강희안 아버지 강석덕 그의 평생 좌우명은 분을 삭이고 사욕을 억제한다는 '징분질욕(懲忿窒慾)'이었다지 사욕이 독버섯처럼 피어오르는 세상속에서 외롭게 홀로 흔들림없이 살다가 이승을 하직하는 길목에서 아들들에게 나지막히 건넨 말 큰명예는 없었지만 부끄럼없는 삶을 살았노라'던 강석덕의 굳은 신념 비바람 몰아치는 세찬 추위 속에서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고고하고 정갈하다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이 불화는 <감로도(甘露圖)>, 달콤한 이슬이 내리는 장면을 그린 그림입니다. 그림을 한번 바라보세요.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조금은 혼란스러우실 것 같습니다. 사람들, 신선, 관료, 아귀, 부처, 음식이 차려진 상까지 화면에는 수많은 요소가 펼쳐져 있으니 말입니다. 이들의 모습은 ‘달콤한 이슬’이라는 이름과는 썩 어울리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감로’란 굶주린 영혼을 달래는 법식(法食), 곧 부처의 자비와 가르침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감로도>는 ‘수륙재(水陸齋)’라는 불교 의례와 관련이 있으며, 영혼에게 음식을 보시하는 시식(施食) 의례에 두루 사용한 도상입니다. 수륙재는 제사를 지내줄 사람이 없는 무주고혼(無主孤魂)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아귀(餓鬼) 등 모든 존재에게 구원의 감로를 베푸는 의식입니다. 따라서 <감로도>는 고통받는 모든 영혼에게 의례를 통해 타는 목마름을 달래줄 달콤한 이슬을 베푸는 그림입니다. <감로도>에 담겨 있는 이야기를 따라가며 영혼을 위로하는 감로와 그 속에 담긴 옛사람의 따뜻한 마음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이제 그림을 살펴보겠습니다. 가장 아래에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백성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세종의 정치적 기본정신이기도 하다. 세종 18년 12월에는 한 예로 백성의 형편이 좋지 않다고 하여 환상(還上, 각 고을의 사창에서 봄에 백성에게 빌려주었던 곡식을 가을에 받아들이던 일) 징납(徵納, 고을의 원이 세금을 거두어 나라에 바치는 일) 기한을 추수기로 늦추게 한 일이 있다. 호조에 임금의 명을 전하기를, "전일에 정부의 청에 따라, 을묘년(세종 17년) 이전 각도의 환상 징납을 바치지 못한 사람은, 올해 흉년이 든 각도를 제외하고는 조금 풍년이 든 도에는, 수령관에게 수령을 단속하여 새해를 맞기 전에 다 바쳐서, 내년에 굶주림을 구휼할 비용으로 쓰게 하고, 만약 다 바치지 않으면 그 수령과 수령관을 처벌하게 하였다. 그러나 근래 각도의 관리들이 바치기를 독촉할 때 지나치게 각박하게 하니, 이 탓에 가난한 이들이 논밭과 집을 다 팔아서 갚는 사람도 있고, 혹은 문을 닫고 도피하는 사람도 있으며, 그 세금을 내지 않고 도망한 사람의 그 일가붙이와 이웃 사람에게 징수하고, 또 그 논밭을 경작하는 사람을 찾아서 이를 징수하고, 만약 사가에서 부리던 종이 도망하여 숨으면 그 주인의 저장한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신재효(申在孝)의 <광대가-廣大歌>속에 나오는 소리 광대들이 갖추어야 할, 네 가지 조건 곧 인물, 사설, 득음(得音), 너름새 관련 이야기를 하였다, 첫째 조건인 인물은 천생(天生)이어서 변통할 수 없음에도 이를 들고 있는 이유는 소리꾼의 인품이나 기품이 좋아야 한다는 점이라는 이야기, 이어서 사설ㆍ득음ㆍ너름새와 관련하여 목 쓰는 기법이라든가, 아니리의 구사 능력, 장단과의 호흡, 감정의 표출 등에 관해서도 구체적으로 이야기했다. 그뿐만 아니라, 당대 뛰어난 명창들을 중국 당(唐), 송(宋)대의 유명 문인들의 특성과 비교한 부분도 인상적이었다는 이야기, 특히 송흥록을 이태백, 모흥갑은 두보(杜甫), 권삼득은 한퇴지, 신만엽은 두목지(杜牧之), 황해청은 맹동야(孟洞野), 김제철은 구양수(歐陽脩), 주덕기는 소동파(蘇東坡) 등에 비유하고 있다는 점도 재미었다고 이야기하였다. 이번 주에는 “아서라 세상사, 가소롭다”로 시작되는 유명한 단가, <편시춘(片時春)>을 소개한다. 이 노래도 그 주된 내용은 세월의 덧없음을 비관하고 한탄하는 내용이 중심이다. 곧 왕발(王勃)의 동원도리편시춘(東園桃李片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만고강산-萬古江山>을 소개하였다. 단가의 대부분은 중국 관련 지명이나 인물, 또는 명승고적 등을 끌어다가 쓰기 때문에 낯설고 어려워 친숙미가 떨어지는 반면, <만고강산>은 금강산과 인접해 있는 강원도 소재의 강릉 경포대(鏡浦臺), 양양의 낙산사(落山寺), 간성의 청간정(淸澗亭), 통천의 총석정(叢石亭) 등을 구경하고, 봉래산에 올라 그 절경에 감탄한다는 내용이어서 친근감이 있다고 이야기하였다. 마지막 구절, “어화세상 벗님네야!. 상전벽해(桑田碧海) 웃들 마소. 엽진화락(葉盡花落)없을 손가. 서산에 걸린 해와 동령에 걸린 달은 머물게 하고, 한없이 놀고 가자.”로 맺는 점이 인상적이라는 이야기도 하였다. 이번 주에는 <광대가-廣大歌>를 소개한다. 이 단가는 조선 말기, 신재효(申在孝)의 단편가사로 판소리에 대한 미학적 측면을 강조한 내용이다. 처음 부분은 송옥(宋玉)의 <고당부(高唐賦)>를 비롯한 유명 시인들의 작품을 소개하면서 인간의 부귀영화라는 것이 한바탕 꿈이라는 일장춘몽(一場春夢)에 지나지 않는다는 소회를 밝히며 판소리를 전승시켜 온 광대들의 소리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1971년 우연한 계기로 발견된 백제 무령왕릉(武寧王陵)은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습니다. 구운 벽돌을 켜켜이 쌓아 만든 이 벽돌무덤[塼築墳]은 백제 제25대 임금이었던 무령왕(재위 501~523) 부부의 안식처였습니다. 무덤 주인을 알려준 것은 바로 무덤 내부에 있던 묘지석(墓誌石)이었습니다. 여기에 적힌 내용 덕분에 무령왕릉은 삼국시대 고분 가운데 유일하게 무덤 주인과 만든 시기를 알 수 있는 무덤이 되었습니다. 왕비의 관에 넣은 은잔 무령왕릉에서는 관꾸미개, 귀걸이, 목걸이, 팔찌, 허리띠, 신발, 청동거울, 다리미 등 다양한 금속공예품이 출토되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 발견되었기 때문에 매장 당시의 모습 그대로는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발견 위치와 용도 등을 통해 처음에 묻혔던 위치를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출토품은 크게 임금과 왕비의 목관 안에 있던 것과 관 밖에 있던 것으로 나뉩니다. 관 안에 있던 유물은 다시 임금과 왕비가 몸에 착장하고 있던 착장품과 부장품으로 구분됩니다. 그 가운데 왕비의 관에 넣었던 받침 있는 은잔이 특히 눈길을 끕니다. 526년 11월에 죽은 왕비는 529년 2월 무령왕 곁에 묻혔습니다. 왕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