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은 우리 인간들이 생활하는데 가장 적절한 온도와 습도를 가지고 먹을 것마저 풍성하므로 가장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계절이다. 여름의 더위를 씻어내며 활기찬 자연을 맞이하는 것이 가을인데 최근에는 가을다운 가을을 맞이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것은 보통 환절기엔 계절이 변하면서 온도차가 심하여서 외부와 소통하는 피부와 점막에 부담을 주며 특히 호흡기계에 많은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이중 초가을 환절기(8월말~9월초)는 몸은 낮의 더위를 이겨내기 위해 체열 생산을 최소화하고, 원활한 체온 유지하기 위해 체열 방출에 신체 활동을 맞추어 놓은 시점이다. 이러한 시점에 새벽녘 찬 공기가 다가오게 되면 몸의 준비된 체온 조절 능력으로는 차가운 공기를 대처하지 못하여 피부와 호흡기 점막은 온도를 유지하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피부와 점막이 기초체온을 유지하지 못하게 되면, 대사활동이 떨어지고, 면역력이 저하된다. 호흡기와 피부에 약점을 가진 분들에게는 감기와 비염, 피부질환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되는 험난한 계절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한방에서 말하는 수승화강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몸의 정상적인 기혈순환이 이루어지지 않게 되면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우리는 중간에 31번 도로를 건너지 않고 계속 남진하였다. 이 부근 평창강은 강폭이 매우 넓고 하중도(河中島, 강 한 가운데 있는 섬)가 보였다. 식생으로는 갈대와 버들이 많이 보였다. 조금 가다 보니 길이 좁아져서 차는 다닐 수가 없다. 조금 더 가니 이제는 사람도 가기 어려울 정도로 길이 좁아진다. 나는 며칠 전 사전답사 차 이곳에 다녀간 적이 있다. 지도상에는 길 표시가 없지만 갈 수는 있다. 한 사람이 겨우 다닐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은 계속 이어진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면 여만교 다리에 도달한다. 여만리는 이 구간 평창강의 동쪽 들을 말한다. 고려 때부터 양곡이 많이 나던 곡창지대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곡식이 만 명이 먹고도 남는다고 하여 ‘여만리(餘萬里)’라고 했다. 평창강가에 있어서 들이 넓고 길어서 ‘여마니’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 여만교를 지나 둑방길로 들어섰다. 우리는 강의 왼쪽 둑을 따라 걸어갔다. 강 건너편이 노산(魯山)이다. 노산의 높이는 해발 419m이지만 여만리 자체가 높은 지대라서 노산은 높아 보이지가 않았다. 그렇지만 노산은 평창의 진산(鎭山, 관아의 뒷산)으로서 전략적 요충지에 해당되
[우리문화신문=허홍구 시인] 도시의 모든 길거리에는 누구나가 쉽게 찾을 수 있는 식당이 있다. 그러나 맛있는 식당, 친절한 식당, 부담 없는 값으로 찾을 수 있는 내 맘에 딱 맞는 식당을 찾기란 쉽지 않다. 누구나가 쉬 기억할 수 있는 이름 놀부라는 상호를 앞에 붙이고 놀부보쌈과 놀부부대찌개란 메뉴를 개발하여 또 그들만의 맛과 친절로 전국을 휩쓸었던 창업주 오진권 사장의 지나간 이야기다. 누구보다도 배고픔의 설움을 잘 알고 있었던 그가 노약자, 장애인, 노숙자들에게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밥을 지어 여러 해 동안 자신의 손으로 그릇에 밥을 퍼 담아주는 기쁨은 경험해 보지 않고는 정말 아무도 모를 것이라며 행복해했던 사람이다. 이제 일흔이 넘어 일손을 놓고 쉬고 싶었지만 심심해서 못 쉬겠다며 신촌 현대백화점 옆에서 다시 맛깔 부대찌개 집을 열었다는 소문을 듣고 혼자 찾아가 봤더니 입구에 “1인 손님 환영”이라는 알림 글이 먼저 보였고 주 고객 젊은 청년 학생들이 배고프지 않게 밥은 무한 리필이라 적어두었다 아직도 틈틈이 후배들의 창업과 성공 길라잡이로 바쁘게 살아가고 있으며 나눔으로 행복을 만들어가고 있다. 오 진 권 놀부보쌈 부대찌개 이름으로 전국을 휩쓴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코는 따뜻하거나 온도변화가 없는 공기를 편안해한다. 그리고 산소를 넉넉하게 함유한 맑고 청정한 공기를 반긴다.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호흡의 기본적 역할은 가스교환을 통하여 산소를 공급하는 것이다. 효율적으로 가스 교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하여 외부의 온도가 얼마가 되건 폐포에 도달하는 공기를 36.5℃로 만드는 것이 코의 역할이고, 외부의 습도가 얼마가 되었건 폐포에서는 100% 습도 상태를 만들어야 한다. 만약 폐포에 도달하는 공기가 36.5℃보다 낮으면 호흡의 효율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대사기능이 저하되고 면역력이 급격하게 저하되어 전반적인 생명활동이 위협을 받게 되고 폐렴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1. 코는 공기를 따뜻하고 촉촉하게 만들어 코는 폐와 연결되어 숨 쉬는 기관으로 콧구멍 바로 안쪽에는 둥그런 돔 형태의 비전정이 있고, 그보다 깊숙하게 코인두까지 이어진 비어있는 부분이 비강이다. 그 비강에는 3단 선반 모양인 비갑개가 있어 아래부터 하비갑개, 중비갑개, 상비갑개라고 한다. 하비갑개는 비강 점막의 70%, 중비갑개는 20%, 상비갑개는 10% 정도를 차지하며 하비갑개는 콧물과 점액의 통로, 중비갑개는 부비동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학교 명예교수] 세종 시대 큰 전투 가운데 하나로 파저강 전투가 있었다. 당시 북방족은 통일이 되어 있지 않은 부족 형태여서 노략질 형태로 쳐들어오곤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평소에도 상대방 부족들의 동향을 파악해 두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는데 바로 첩보를 이용한 전투가 활용되게 되었다. 세종 때 북방을 총괄한 장군 중에 김종서(1383~1453)가 있다. 부친은 무과 출신이나 그는 몸이 왜소하고 책을 좋아하고 시문을 가까이해 16살 되던 태종 5년(1405)에 문과에 급제하며 관직에 발을 들여놓았다. 6진 개척을 주도한 인물로, 그리고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 세력에 의해서 살해된 인물로 알려진다. 이후 그는 300여 년이 지난 영조 대에 복권되면서 충의의 상징으로 우리에게 각인되고 있다. 현장에서의 김종서는 세종초 이전부터 이런저런 일을 맡으며 벌도 받다가 세종 즉위년 11월 강원도 주민의 토지 감사에 대한 불만을 현지에 가서 조사하고 기민(饑民) 729명의 조세를 면제하게 해달라는 요청을 하게 되었다. 당시 변계량이 조세를 감면해 주는 일은 “가난하여 조세를 면제하기 시작하면 너도나도 면제해 달라고 요청할 것이고 그리되면 국고가 비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명확한 지역은 절기가 변하는 시점인 환절기를 네 번 겪는다. 그 가운데 추운 계절에서 더운 계절로 진입하는 봄 환절기, 더운 계절에서 추운 계절로 진입하는 가을 환절기가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킨다. 이러한 변화의 와중에도 우리 몸은 춥다가 더워지는 변화에는 비교적 쉽게 적응하지만, 덥다가 추워지는 가을 환절기의 변화에는 적응하기 힘들어한다. 따라서 가을 환절기를 이겨낼 힘이 없으면 외부와 접하는 피부와 호흡기 점막이 버티기 힘들어서 쉽게 감기에 걸리거나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비염에 걸리게 된다. 특히 이렇게 힘든 계절에 수능이 100일이 채 남지 않은 수험생의 경우, 수험기간에 오는 긴장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서 과도한 공부로 신경이 바짝바짝 말라간다. 흔히 말하는 수험생 증후군을 겪고 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수험생의 시절이 인생에서 가장 건강한 시점이기에 그래도 견딜 수 있고 조금만 노력해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먹는 것과 충실한 수면에서 가능하며 이를 도와주는 다양한 방법들이 존재한다. 1. 머리를 맑게 해주는 식습관과 음식이 있다. 우리가 먹는 모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용항교를 건너면 주진리이다. 《조선지지》에 주진리(舟津里)라고 표시되어 있는 마을이다. 주나루라고도 부르는데, 나루 둘이 있으므로 두나루라 하던 것이 변하여 주나루가 되었다. 옛날에는 뱃터거리에서 나룻배로 사람과 우마차가 강을 건넜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 때(1934) 주진교가 놓였고, 80년대 초에 새 주진교가 건설되었다. 그렇다면 소년 이효석은 봉평에서 평창읍으로 갈 때 분명히 주나루에서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넜을 것이다. 배를 타고 평창강을 건너는 소년 이효석을 상상해 보았다. 그의 작품 중에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장면을 묘사한 글이 나오는지 궁금하다. 주진리에서 평창강 따라 동쪽으로 계속 걷다가 작은 하천을 만나 왼쪽 둑길로 돌아가니 주나루라고 쓰인 큰 비석이 나타난다. 공원 입구에 주진게이트볼장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비석의 아래에 주나루의 유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주나루란 나룻배로 강을 건너다니던 뱃터거리를 말하는 이곳의 옛 지명입니다. 주변에는 선사시대부터 선조들의 주거지로 추정되는 유물인 토기, 돌 연모, 고인돌 등이 산재해 있고 앞산 용산(龍山)은 용산정(龍山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던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인간이 생존하려면 먹고 자는 것을 온전히 하는 것은 기본이다. 창조주는 이러한 생존을 위해 우리가 노력을 충실하게 하도록, 생존의 욕구를 만족시켰을 때 가장 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생각된다. 곧, 성인에게는 먹는 것이 큰 즐거움 중 하나라면 아이들에게는 먹는 즐거움은 이 세상에 가장 큰 즐거움이 된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가장 큰 즐거움인 먹는 것을 외면한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므로 억지로 먹이지 말고 먹는 것을 외면하는 이유를 해결해주려 노력해야 한다. 1. 식욕은 기분에 따라 달라진다 어린이를 진료하다 보면 그 특징 가운데 하나가 솔직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곧 몸과 마음이 솔직하여서 몸에 이상이 있으면 얼굴이나 행동에 고스란히 드러나고, 기분이 나쁘면 나쁜 표정이 드러나며, 식욕이 없으면 먹는 모습에 정직하게 표현된다. 따라서 먹는 모습을 보면 잘 먹는 아이들은 얼굴에 행복감, 즐거움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못 먹는 아이들을 보면 억지로 먹거나, 먹는 것에 대한 부담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곧 아이들에게는 기분과 식욕이 거의 비례하여 주고받는 모양새를 보인다. 특히 식욕이 부진해서 입맛이 없는 아이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학교 명예교수] 세종 시대 큰 전투가 몇 번 있었는데 대마도 정벌과 두 번의 파저강 전투다. 대마도의 왜인들은 평시에도 우리 바다에 드나들며 고기도 잡고 상행위도 하고 때로 약탈도 일삼았다. 한편 북방족은 통일이 되어 있지 않은 부족 형태여서 수시로 떼를 지어 쳐들어오고는 했다. 주로 노략질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마도와 달리 북방족에 대하여는 평소에도 상대방 부족들의 동향을 파악해 두어야 할 필요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 대비로 평소에도 첩보의 체제가 갖추어져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된다. 공험진과 주민 이주 국가란 영토, 주민 주권으로 이루어지는데 세종 시대의 북방정책의 영토 개념은 황무지의 개간이 된다. 국경을 지키려면 사람이 살아야 하고 사람이 살려면 양식이 있어야 하고 양식을 얻으려면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땅을 개간해야 했다. 따라서 북방의 장군은 국경을 지키는 것만큼 토지 개간에도 힘을 썼다. 오늘날에는 국토의 개념이 경제력, 언어, 종교, 문화, 사이버 영토 등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지만 세종 시대에는 영토의 확보와 이에 따른 주민의 이주 등이 초점이었고, 그래서 파저강 전투 1, 2차는 전쟁이 아닌 적극적 방어책이었다. 세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용항리 경로당이 오른쪽에 나타나자 용항교가 왼쪽으로 평창강을 가로지르고 있다. 다리 입구에는 효석문학100리길 제5구간 표시판과 안내도가 있다. 여기서 남쪽에 보이는 작은 고개를 넘어가면 후평리를 지나 노산을 거쳐서 평창읍으로 들어갈 수가 있다. 소년 이효석은 지금부터 100여 년 전에 지금 내가 걷는 걸을 걸었고, 내가 보는 산을 보았고, 내가 듣는 강물소리를 들었을 것으로 생각하니 감회가 인다. 나는 서울에서 친구들이 봉평으로 찾아오면 꼭 이효석 문학관으로 안내한다. 문학관에는 2명의 문화해설사가 근무하는데 단체 관광객에게는 해설해준다. 이효석(1907~1942)은 문학관 근처인 봉평면 창동리 남안동 681번지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부친은 진부면장을 했다. 그는 1914년에 평창읍에 있는 평창공립보통학교(지금의 평창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봉평에서 평창읍은 거의 100리 길이므로 이효석은 초등학교에 다닐 때 평창읍에서 하숙을 했다. 이효석은 1920년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유학하였다. 그는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지금의 경기고)를 1925년에 졸업하고 이어서 경성제국대학(지금의 서울대) 법문학부 영문학과를 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