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자 작가] “달비”란 곧 녀성의 자랑이고 풍도였다. 지금은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바 황궁의 녀인들이 달비를 리용하여 멋스레 머리를 얹어 그 풍도를 보여주고 있다. 달비에 관한 전설은 많고도 많은데 전선에 나가는 남편이 겨울에 동상을 입게 하지 않으려고 녀인은 자기의 머리를 싹둑 잘라 길 떠나는 남편의 신발 안에 깔아 주었다는 감동적인 이야기는 오늘까지도 길이 전해져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그런데 이 세상을 소리 없이 울리신 나의 어머님의 이야기를 회억하면 나는 그만 눈앞이 흐려지고 목이 꺽 멘다. 나의 어머니는 보통 키에 걀쭉한 얼굴의 조선녀성이시다. 그리고 폭포수인 양 함치르르한(깨끗하고 윤이 반들반들 나는) 숱 많은 머릿결은 늘 자랑스럽기만 하였단다. 어머니는 특별히 머리를 잘 다듬는 아름다운 녀인이였다. 어머니는 녀성의 자랑 가운데 한가지가 머리라면서 늘 쌀 뜨물에 머리를 감고 잘 빗어 멋스레 얹거나 쪽지시었다. 숱 많은 머리는 기름을 바른 것처럼 함치르르 윤기가 돌아 마을 어머니들이 늘 흠상하는(우러러 감상하는) 아리따운 머릿결이었단다. 그런데 어느 날엔가 어머니는 달비가 그렇게 값이 간다는 소식을 접하였단다. 혼자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여느 날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얼른 잠이 오지 않아서 뒤척이다 잠이 들었습니다. 아침에도 다른 날보다 일찍 잠이 깼습니다. 늘 나가던 때에 나가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그러지 않아도 되었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늘 먹던 아침도 건너뛰었는데 배도 그리 고프지 않았습니다. 물도 먹으면 안 된다고 해서 입만 축이고 말았는데 말이지요. 겨를이 나서 아침에는 하기 어려운 설거지도 하고 느긋하게 있다가 티비엔 경남교통방송 ‘토박이말바라기’ 꼭지를 했습니다. 어제는 나날살이에서 알고 쓰면 좋을 토박이말 두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많고 많은 낱말 가운데 알려드릴 낱말을 고르는 게 싶지 않지만 알려 드리고 나면 보람을 느낍니다. 그렇게 알게 된 토박이말을 많이 써 주시고 둘레 분들에게 알려주신다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 어제는 두 해마다 하는 제 몸 살피는 날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로 붐빌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많지 않아서 오래 기다리지 않고 마칠 수 있었습니다. 마음에 걸리는 게 여럿 있었는데 얼마나 자주 몸에 땀이 날 만큼 움직이는지를 묻는 물음이 가장 걸렸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잘 하지 않는데 앞으로는 꼭 해야겠다고 속다짐
[우리문화신문=이영일 생태과학연구가] 구지뽕나무[학명: Cudrania tricuspidata (Carriere) Bureau]는 뽕나무과의 낙엽활엽 소교목이다. 꾸지뽕나무는 뽕나무와 쓰임새가 비슷하나 박달나무와 맞먹을 정도로 단단하다. 뽕나무보다 더 단단하다는 뜻으로 ‘굳이뽕나무’라고 하였고, 이것이 변하여 꾸지뽕나무가 되었다. 누에를 키우기 위해 대접받는 뽕나무가 부러워 굳이 뽕나무를 하겠다고 우겨서 꾸지뽕나무가 되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한약 이름은 자(柘), 자목(柘木), 수수엽(柘樹葉), 자목피(柘木皮), 자수과(柘樹果), 자자(柘刺), 상자(桑柘)이다. 나무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한자 이름에서 보듯이 가시에 있다. 꾸지뽕나무, 굿가시나무, 활뽕나무, ‘Tricuspid-Cudrania, Silkworm-Thorn’라고도 한다. 나뭇잎은 뽕나무 잎보다 누에에게는 인기가 없지만, 활의 재료로는 꾸지뽕나무가 더 우수하여 황해도에서는 활뽕나무라고 부르기도 했다. 《물명고(物名攷, 1820년경 유희가 만든 말광-어휘사전)》에는 “궁간(弓幹, 활의 몸체)으로 꾸지뽕나무를 쓰고 이것으로 만든 활을 오호(烏號)라고 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꾸지뽕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이슬람 세계의 보석으로 불리는 푸른 도시 사마르칸트에는 티무르와 관련된 유물이 상당수 존재한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곳이 중앙아시아 최대 사원이라는 비비하눔 모스크다. 비비하눔은 9명의 왕비 가운데 티무르가 가장 사랑했던 왕비의 이름이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이 아름다운 모스크를 방문하지는 못하고 다만 인터넷을 검색하여 이 모스크에 관해서 알아보았다. 1398년 인도 원정에서 돌아온 티무르는 비비하눔을 위해 가장 웅장하고 화려한 모스크를 짓겠다고 결심했다.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그는 제국의 각지에서 200여 명의 장인과 500여 명의 노동자를 뽑고, 대리석 운반을 위해 인도에서 코끼리 95마리를 가져오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매일 현장에 나가 작업을 독려하고, 음식물을 제공하며, 주화로 포상하는 등 모스크 건립에 모든 것을 아낌없이 쏟았다. 그 결과 비비하눔 모스크는 높이 35m에 달하는 에메랄드빛 돔과 직경 18m의 아치형 정문, 50m 높이의 미나레트 그리고 400개의 대리석 기둥이 떠받치는 둥근 천장 갤러리를 가진 화려한 모습으로 조성됐다. 실내 또한 아름다운 대리석과 다양한 형태의 모자이크 테라코타 등으로 장식되어 보는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늦게 잠이 드니까 잠이 모자라고 잠이 모자라니까 아침에 일어나기가 어려운 거라는 것을 알면서 일찍 잠이 드는 게 잘 안 됩니다. 일이 없이 빈둥거리는 것은 아닌데 일을 끝내고 보면 날이 바뀌어 있습니다. 어제 아침도 그랬습니다. 들고 갈 짐이 있어서 나름대로 서둘렀지만 짐을 집 앞에 들고 가서 내려놓고 땅밑에 세워 두었던 수레를 가지고 올라와 싣고 나니 이마에 땀이 맺혔습니다. 날씨도 좀 포근했지만 안 들던 짐을 들어 옮기느라 힘이 들었던 것이지요. 여러 날 앞부터 마음을 먹었던 일인데 하고 나니 흘린 땀만큼 기분도 개운했습니다. 아침모두모임을 하는 날에 보람(상)까지 주는 날이었습니다. 옆에서 도와주는 분이 있으니까 하지 그렇지 않으면 못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해 달라는 것도 끊이지 않고 써 내 달라는 글도 날마다 기다리고 있습니다. 적바림 해 둔 것을 보고 하나씩 지우며 하다 보니 어느새 마칠 때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버지께 하나 뿐인 벗인 멀봄틀(텔레비전)이 오래 되어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새로운 것을 장만해 왔습니다. 여섯 언니아우들이 한 자리에 모일 날을 잡는데 참 쉽지 않았습니다. 날을 잡아 놓고 되는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지난 닷날(금요일)은 6배해 아이들 배움을 돕고 나서 배곳(학교) 일을 챙기느라 옆을 볼 겨를도 없었습니다. 마치고 갈 데가 있어서 다 해서 내고 가야 한다는 생각에 더 바빴던가 봅니다. 다른 사람들 것까지 받아 놓고 나오는데 들말마을배곳 아이들이 놀고 있었습니다. 요즘 바빠서 아이들을 못 봐서 마음이 쓰였는데 인사만 하고 나오려니 짠했습니다. 장일영 선생님과 조규태 교수님을 만나 뵙고 이제까지 있었던 이야기도 듣고 제가 일을 한 것을 가져가 보여드렸습니다. 그리고 일을 하는데 생각해 봐야 할 것들을 몇 가지 말씀드렸습니다. 저만 바쁘다고 생각했는데 두 분도 참 바쁘셔서 일이 얼른 끝이 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두 분과 헤어져 집으로 오는 길. 좀 걸을까 생각을 하고 집 쪽으로 걸었습니다. 날씨도 그리 차갑지 않고 바람도 불지 않아서 걸을 만했습니다. 땀이 살짝 날 만큼 기분 좋게 걸었지요. 다만 슬픈 일도 없는데 눈치도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는 일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밝날(일요일)에는 들말마을배곳 식구들과 꽃오름 갈배움녀름마당(교육농장)에 겪배움을 가기로 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깜빡하는 바람에 함께하지 못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곡성 가곡리오층석탑 이 달 균 나는 멀찍이서 마을을 내려다 본다. 어느 나무에서 까치가 우는지 오늘은 또 누가 죽어 곡성이 들리는지 백제계 혈통으로 고려를 짐 졌지만 그 무게 내려놓고 이제 좀 쉬고 싶다 잊고픈 이름 있다면 이곳에서 잊고 가라 이 석탑을 찾아가다보면 마을 입구 길 옆에 석장승 2기가 서 있다. 남녀 한 쌍으로 보이는데 검은 빛을 띤 장승은 눈썹과 눈 주위가 마모되어 형체가 불분명하지만 뭉툭한 코는 든든한 사내다움이 묻어나는 것이 특징이고, 흰빛을 띤 장승은 머리에 족두리인지 뭔지를 쓴 채 가렴한 눈매를 가진 색시상으로 보인다. 마을 수호신으로 세운 것인지 유서 깊은 옛 탑을 지킨다는 염원인지 알 수 없지만 어딘지 범상해 보이지 않는다. 마을 주민에게 탑 자리를 물으니 큰 관심 없다는 듯 대답은 심드렁하다. 석탑은 마을 끝자락 매봉 초입 언덕에 서 있는데 막상 다가가보니 그 자태는 늠름하다. 어디에서 본 듯한 느낌이 들어 생각해 보니 담양 남산리 오층석탑을 닮았다. 그도 그럴 것이 둘 다 고려탑이지만 백제계 석탑 양식을 계승하고 있어 더욱 그런가 보다. 전해 들으니 예전 유물보전에 소홀했던 시절에는 가까이 가도 대숲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칭기즈칸은 그의 손자 대에 이르러 중국과 중앙아시아 그리고 동유럽까지를 포함하여 문명 세계의 거의 전부를 지배하였다. 몽골 초원의 유목민족이 세계 역사상 가장 큰 나라를 건설한 것이다. 그들이 지배한 면적은 현재 중국의 3배 규모였다. 당시 몽골 본토의 인구는 100만 명에 불과했지만, 점령지의 인구는 약 1억 명이었다. 이러한 1당 100의 정복과 통치가 어떻게 가능했는가에 대해서 서양 학자들은 많은 연구를 하였다. 1927년에 영국의 전략사상가 리델 하트가 쓴 책 《위대한 지휘관들을 벗긴다》에서는 몽골 군대 승리의 비결을 한 마디로 간편성(Simplicity)이라고 표현하였다. 몽골 군대는 보급 부대가 따로 없는 전원 기병의 군대이었다. 기병 한 사람이 말을 4~5마리씩 몰고 다니면서 비상식량이나 물통으로 활용했다. 사막을 건너갈 때는 물 대신 말의 피를 빨아 마셨다. 《맛있는 세계사》 (2011년 주영하 저)에 따르면 미국의 대표적인 간편식인 햄버거는 몽골 군대의 전투 식량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중앙아시아 초원에 살았던 몽골인과 타타르족은 유목민이다. 평상시에는 이동식 천막을 치고 가축을 키우며 요리를 해먹을 수 있지만,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세상의 모든 동식물은 진화와 적응의 과정을 거쳐 생존과 건강을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터득하고 있다. 그 예로 겨울의 동면과 열대지방에서 건기에 취하는 하면이 있기도 하다. 흔히 양서류, 파충류, 그리고 사람들과 같은 종인 포유류 가운데 곰의 동면이, 환경에 적응하고 극복하기 위한 생존 수단의 예이다. 온대지방은 사계절이 있고 열대지방에는 우기와 건기가 있다. 온대지방에서 겨울에 동물이 살기 어렵듯이, 열대지방에서는 건기가 되면 반사막화되는 지역에서 동물들이 살아가기 힘들게 된다. 먹이와 물이 부족하고 극심한 온도차로 인해 하루하루가 살아가기 힘들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온대지방에서는 동면을 하고, 열대지방에서는 하면을 하는 것이다. 곧 동ㆍ하면은 험한 자연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생명체들의 슬기로움이다. 1. 인간의 기본 모습은 동물 인간의 유전자는 원시인의 생활이 바탕이라고 볼 때 우리 역시 동면과 같은 상태가 필요하다. 그러나 인간은 겨울에도 음식을 얻어가며 살아온 생활습관을 유지해 왔다. 그 덕에 길고 긴 휴면상태를 견디기 위해 곰처럼 효과적으로 피하지방축적을 할 능력도, 피하지방을 이용해서 오랫동안 먹지 않고 견디는 능력도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야, 요것들을 보지, 여보세요, 어서 나와보세요. 네?!” 점심식사 휴식 짬에 소파에 걸터 누웠던 나는 앞뜨락에서 떠들어대는 안해의 목소리에 끌려 뜨락에 나섰다. 안해는 손바닥만큼 하게 뚜져놓은* 화단에 쪼그리고 앉아 무엇인가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여길 좀 보시라는 데두요.” 안해는 응석을 부리듯 나의 손을 끌어당겼다. 정말 희한한 일이었다. 가뭇가뭇한 토양을 뚫고 파란 바늘 끝 같은 것들이 뾰족뾰족 올려 밀고 있었다. 어떤 것들은 벌써 햇빛을 받아안으려는 듯 여린 두 팔을 펼치고 미풍에 제법 하느작이기까지 하였다. 나는 그 어떤 새 생명의 탄생을 맞는 듯 가슴이 울렁거렸다. “요것들이 모두 꽃으로 활짝 필 때면 우리 집 뜨락이 얼마나 아름답겠어요.” 한해는 나의 어깨에 가볍게 기대며 속삭이듯 말했다. 순간 나의 눈앞에는 꽃 씨앗을 가져왔던 낯모를 로인의 모습이 불쑥 떠올랐다. 그날, 새살림을 갓 꾸린 우리는 날듯한 기분으로 ‘마당을 공근다’*, ‘창문 유리를 닦는다’ 하며 뻔질나게 돌아쳤다. “허 허, 새집들이에 기쁘겠군.” 일손을 멈추고 머리를 돌려보니 작달막한 키에 머리가 새하얗게 센 낯선 로인 한 분이 돛천멜가방*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