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흔히 ‘부자 3대 못 간다’라는 말이 있다. 대를 이어 부를 지키는 일이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재산도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지키는 것 자체가 일이다. 관리해야 할 것도, 신경을 써야 할 것도 많다. 그래서 300년 이상 ‘재벌가’로 부를 이어간 가문을 보면, 응당 그 비결이 궁금해진다.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 무려 300년 동안 만석꾼으로 이름을 떨친 ‘경주 최부잣집’은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임금이 바뀌면 멸문지화를 당하기도 하던 시절, 굳건한 처세와 대를 잇는 철학으로 무려 12대 300년 동안 부를 지켜냈을 뿐만 아니라,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는’ 나눔의 정신으로 조선 최고의 ‘적선지가(積善之家)’가 되었다.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라 했던가. 덕을 쌓은 집안에 복이 있듯, 최부잣집은 부를 베풀수록 나날이 번성했다. 부를 베풀고, 민심을 얻고, 그 민심이 더 큰 부를 불러들이는 부의 선순환. 그것이 바로 최부잣집 300년 부의 비밀이었다. 이 책, 《명가-나눔을 실천한 최부잣집》은 그 부의 비밀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다. 최부잣집을 소재로 2010년 방영한 사극 《명가》를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보통 비염은 완치가 어려운 만성질환이라고들 하는데 특히 알레르기성 비염은 더더욱 치료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알레르기 유발 물질에 대한 과민반응인 알레르기성 비염은 그 근본 원인을 면역력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정의하는 순간, 치료가 힘들고 오래 걸리겠다고 생각하고 장벽을 만들게 된다. 특히 봄이 되면 꽃가루가 날리고, 스스로 만들어낸 환경오염과 더불어 중국으로부터 밀려오는 미세먼지, 황사의 영향으로 다양하고 복합적인 외부 환경의 영향을 받게 된다. 따라서 봄에는 원래 비염 환자는 물론 많은 사람이 다양한 환경의 영향으로 호흡기 통로가 부담을 받기 때문에 비염이 아닌 사람들도 코막힘과 콧물, 코딱지를 어느 정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의 경우 특정 알레르기 물질이 과잉되지 않기 때문에 평균적인 적응력만 가지고 있다면 봄의 알레르기 환경을 극복할 수 있다. 가령 일본 같은 경우 봄이 되어 편백꽃가루가 엄습할 시점이 되면 대부분 극도의 알레르기 질환으로 고생을 하며, 인간이 살기에 쾌적하다는 아메리카 서부도 유채꽂이 필 무렵이 되면 근방의 대부분 사람이 크고 작은 알레르기 질환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어젯밤 자고 나니 코뼈에 눈썹 하나 오늘은 또 어디가 문드러져 사라질까 남산도 허리가 잘려 내 꼴인 듯 서러운데 양반아 군수님아 공방살 낀 연놈들아 대곡산 넘다 보니 문드러진 꼬라지 이 몸만은 아니더라. 찢고 이기고 조져놓은 산세가 가히 장관이다. 날라리야 꽹과리야 한도 눈물도 상관 말고 뛰놀아라. 코 하나 달아나니 빗물이 들고나고, 귀 하나 떨어지니 세상 잡소리 안 들린다. 소고에 북채 흔들며 굿거리 한 장단에 시름도 한숨도 쏟아내고, 앉거나 서거나 아프거나 마르거나 밟히거나 뒤지거나 나 몰라라 나는 몰라라. 엇장단에 덧뵈기로 춤판을 돌아간다. 어깨춤 한 번이면 고대광실이 내 것이요, 얼쑤 장단을 넘다 보면 나랏님도 발 아래니 돌아라 부러진 어처구니 이빨 빠진 맷돌들아 <해설> “어젯밤 자고 나니 코뼈에 눈썹 하나 / 오늘은 또 어디가 문드러져 사라질까 / 남산도 허리가 잘려 내 꼴인 듯 서러운데” 이제 시는 조금씩 세상 이야기를 담아 간다. 내 몸 어디가 문둥병으로 몽그라지고 사라지듯 우리네 강토 곳곳도 잘리어 사라져 간다. “양반아 군수님아 / 공방살 낀 연놈들아” 춤판에서 양반은 현실에선 정치 일선에 선 지도자들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답사 날자> 2021년 10월 21일 목요일 <답사 참가자> 이상훈 김형대 박인기 이규석 최경아 최돈형 홍종배, 모두 7명 <답사기 작성일> 2021년 10월 30일 토요일 평창강 제13구간은 영월읍 방절리 선돌이 바라보이는 곳에서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에 이르는 7.2km다. 이날 답사에는 시인마뇽과 석주, 해당이 불참하였다. 대신 용평면에 사는 최경아 사장과 강릉에 사는 김형대 다큐멘터리 감독이 참여했다. 김 감독은 KBS에서 근무할 당시, 유명한 다큐멘터리 차마고도 6부작 제작에 참여했다니 다큐멘터리 분야의 최고 전문가라고 볼 수 있다. 나는 2015년에 평창으로 귀촌하여 봉평성당에 다니면서 한경주라는 분을 만났다. 이분은 보이차 전문가로서 이효석 문학의 숲 앞에서 평화다원을 운영하고 있다. 김 감독이 한 원장을 주인공으로 하여 “보이차 인생”이라는 제목의 30분짜리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중간에 나는 김 감독을 만나게 되었다. 내가 평창강 따라 걷기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김 감독은 관심을 보이며 이날 답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우리는 청령포 주차장에서 11시 30분에 만나 영월읍내에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요즘 필자가 매일 아침 올라가는 북한산 둘레길 8구간은 꽃잔치다. 초봄처럼 잎이 없는 꽃들이 아니라 잎이 무성한 가운데 피는 꽃이고, 그 가운데 대표가 아카시다. 꽃다리마다 층층이 꽃줄이 있고 그 줄마다 꽃들이 활짝 피어났는데, 우유빛 뽀얀 색깔만이 아니라 거기서 나오는 진한 향기에 길 가는 사람들의 취각이 마비되는 듯, 감탄사를 연발한다. 사실 필자는 일 년 가운데 아카시 꽃향기가 바람에 날리는 이때가 가장 싫다. 왜냐하면 냄새를 잘 구분 못 하는 취약(臭弱)이란 정체가 탄로 나기 때문이다. 아주 유명한 조리사 가운데 냄새를 잘 못 맡는 분이 있다는 것은 제법 알려졌지만, 필자도 이미 예전 파주 쪽에 살던 2000년 초 요맘때 출근길에 아카시 냄새를 맡니 못 맡니 하면서 공개적으로 밝힌 적이 있기에 새삼 겁날 것은 없지만 그래도 남들이 다 맡는 냄새를 제대로 못 맡으면서 냄새가 어쩌니저쩌니 하는 것이 부끄럽고 민망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만발한 아카시 꽃을 보면서 예전처럼 벌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보지 못했다. 이 정도 만발하면 벌들이 날갯짓하면서 이 맛있는 꽃의 꿀을 따야 할 터인데 그게 없더라는 것이다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올리버 R. 에비슨의 제중원 운영 방침> 낼 수 없는 환자라도 진찰을 거부하지 않는다. 거치지 않고, 한국어를 배워서 직접 환자를 진찰한다. 모두 청결한 입원실로 만들어 되도록 많은 환자를 수용한다. 넉넉히 준비해 모든 종류의 수술이 가능하게 한다. 오늘날 전 세계가 찬탄해 마지않는 한국의 눈부신 의료기술. 의료관광을 오는 외국인이 많을 만큼 한국의 의학 수준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런 눈부신 성과도, 그 출발은 지극히 미미한 씨앗 한 톨이었다. 넓은 마당에 덩그러니 세워진 한옥 한 채, 그것이 전부였다. 그런 척박한 땅에 의술의 씨앗을 뿌리고 가꾼 이는 바로,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의사 올리버 R. 에비슨이다. 그는 캐나다에서의 안정된 의과대학 교수 생활을 뒤로하고, 캐나다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의료환경이 열악했던 조선 땅으로 왔다. 기본적인 의료 혜택조차 받지 못한 채 죽어가는 수많은 조선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용기 있는 결정이었다. 이 책 《한국 최초의 의사를 만든 의사 올리버 R. 에비슨》은 슈바이처는 알아도 에비슨은 모르는 많은 사람에게, 150여 년 전 한국에 와서 수많은 생명을 구하고 한
[우리문화신문=김동하 작가] 아버지에게 강원도는 애증이 새겨져 있는 지역이다. 한국전쟁이 한참이던 그 시절, 제주도에서 신병훈련을 받고 배속된 곳은 낙동강 전투가 한창이던 곳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인천상륙작전 이후 아버지는 강원도지역에 군부대에 보급품을 실어다 주는 일을 하셨다는데, 지금이야 강원도 가는 것이 뭐 그리 힘든 일은 아니겠지만, 1951년 당시 강원도 가는 길이 정비가 된 것도 아니고, 포장된 것도 아닐 테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곳을 보급품 가득 실은 고물 미제트럭을 몰고 다니셨다니,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기셨다고 하셨다. 한번은 비가 많이 온 뒤라 길이 무너져 내려서 늘 가던 길을 포기하고 산길을 돌고 돌아 보급품을 전하러 갔더니 이미 부대가 퇴각하고 난 뒤에 도착한 때도 있었다. 시체만 널브러져 있는 전장을 눈으로 확인하고 돌아와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아버지는 당신의 사촌매형이 일하고 계시던 강원도 산판에 가서 몇 년 일도 하셨고, 칠순이 넘으셔서부터는 강원도 오대산 근처에 살만한 움막을 하나 찾았다 하시면서, 그곳에 가서 여생을 마치고 싶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근처에 병원도 없고 교통도 불편한 그곳에 왜 가려고 하시냐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온대지역은 사계절의 변화와 더불어 각각의 계절이 주는 혜택을 누리고 적응하면서 문명의 꽃을 피워냈다. 그러나 한편, 변화에 적응하기 어렵다면 다양한 환절기 질환으로부터 시작해서 불편한 생활에 적응하기 위한 비용이 소모된다. 올봄의 특징은 추위가 빨리 가고 온화한 날씨가 예년에 견줘 거의 1달 앞서 다가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초봄의 추위를 거의 느끼지 못하였고, 봄바람의 쌀쌀함도 느끼지 못한 상태에서 화창하고 따뜻한 날씨, 그리고 시원한 바람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러한 모습에서 현재만을 보자면 인간이 가장 편안하게 활동할 수 있는 기온으로 온도조절에 부담이 없는 날씨다. 그러다 보니 계절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서 드러나는 환절기 질환이 없거나 적을 거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계절의 흐름으로 보면 인간의 몸은, 화창한 날씨를 따라가지 못하고 아직 움츠린 상태이며 외부의 환경은 따뜻함과 봄바람으로 부유물이 많아진 상태이다. 따라서 따뜻하고 온화한 날씨임에도 환절기 질환이 오히려 더 많아진 모습을 보인다. 지난해와 지지난해는 일반적인 봄 날씨와 더불어 마스크라는 방어막을 가진 채 생활했기에 봄철의 감기나 알레르기 비염 환자가 현격히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패랭이 눌러쓰고 웃음인지 울음인지 자줏빛 흔데자국* 이리 씰룩 저리 씰룩 날라리 장고는 울고 춤사위 시작된다 노방초 모진 목숨 고향이라 찾아드니, 돌팔매에 몽둥이찜질, 나물 삶은 물 퍼붓는 인심도 서러워라. 조석지변(朝夕之變)하고 조변석개(朝變夕改)한 인간사야 매양 그렇지만, 옥수골 내천이며 무량산 구름은 어이 외면하고 떠나는가. 내 일찍이 강산 두루미로 떠돌고 돌았지만 희다 검다 모의하고 도모한 적 없었는데, 세상은 저들끼리 어르고 달래며 희희낙락이다. 청산엔 봄꽃들 지천인데 내겐 아직 잔설만 남아 있다. 몽그라진 손으로는 코 풀기도 어려워라. 손가락 떨어진 곳에 파리는 왜 앉느냐. 찔레야 무성한 들찔레야 똥파리 좀 쫓아다오 * 흔데자국: 검은색의 문둥병 흔적 <해설> “날라리 장고는 울고 / 춤사위 시작된다.” 자줏빛 흔데자국(문둥병 흔적)만 봐도 고통은 알만하다. 웃음 같기도 하고, 울음 같기도 한 이지러진 탈바가지 덮어쓰고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노방초처럼 살아온 떠꺼머리총각은 고향에 와서도 찬밥 신세다. 그도 그럴 것이, 하라는 농사는 안 하고 고작 배웠다는 것이, 문둥이 흉내나 내는 춤꾼이 되어 귀향했으니.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학교 명예교수] 세종 시대의 인물을 살펴보고 있는데 주요한 인물의 한 분이 바로 부인 소헌 왕후다. 태조 4년(1395)에 출생하여 본관은 청송(靑松)이고 문하시중 심덕부(沈德符)의 손녀이며, 영의정 심온(沈溫)의 딸으로 어머니는 영돈녕부사 안천보(安天保)의 딸이다. 태종 8년(1408)에 충녕군(忠寧君) 이도(李祹)와 가례를 올려 빈(嬪)이 되고, 경숙옹주(敬淑翁主)에 봉해졌다. 태종 18년(1418) 4월 충녕대군이 왕세자에 책봉되자 경빈(敬嬪)으로 봉해졌으며, 같은 해 9월에 세종이 즉위하니 12월에 왕후로 봉하여 공비(恭妃)라 일컬었다. 수난상황 소헌 왕후는 어릴 때부터 정숙하고 총명하여 14살에 세종과 혼인했다. 세종이 왕위에 오른 지 얼마 안 되어 친정아버지인 심온이 누명을 쓰고 사약을 받아 죽임을 당하면서 친정집은 풍비박산이 되었다. 대신들은 반역자의 딸도 궁궐에서 내쫓아야 한다고 야단이었지만 세종은 자신의 아내 곧 왕비가 궁궐에서 내쫓길까 노심초사하였다. 심온은 세종이 즉위한 뒤 영의정에 올라 사은사(謝恩使)로 명나라에서 귀환하던 중 아우 심청(沈泟)이 군국대사를 상왕(上王: 태종)이 처리한다고 불평한 일로 대역(大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