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차를 마시며 이야기하다 보니 벌써 7시가 되었다. 새로 나가는 술집은 강남에 있는 라마다 르네쌍스 호텔 근처에 있다고 한다. 김 교수는 거기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제안했고 미스 최는 “오빠, 고마워요.”라고 화답했다. 김 교수는 카운터에서 계산하고 커피숍을 나섰다. 아가씨는 옆으로 오더니 자연스럽게 팔장을 끼었다. 김 교수는 속으로 걱정이 되었지만, 팔장을 뿌리치지는 못했다. 그날은 호텔 옆의 지상 주차장이 좁아서 뒤쪽 골목 건너편에 있는 3층짜리 주차건물에 주차했었다. 호텔 정문을 나와 뒤쪽 주차장까지 걸어가야 했다. 어두워진 길에는 사람들이 바쁜 걸음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김 교수는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어떻게 하나라고 은근히 걱정되어 슬그머니 팔짱을 뺐다. 아가씨가 쑥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역삼동 르네상스 호텔로 가는 길은 벌써 퇴근시간이 되어서인지 길이 막혔다. 서울거리가 안 막힐 때가 있나? 계속 차가 가지 못하고 서게 되자 김 교수는 걱정이 되살아났다. 반대편 차선에서 오는 차도 서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자연히 운전자끼리 눈이 마주쳤다. 대개는 남자가 운전을 하지만 차가 늘어나서인지 여성 운전자도 더러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산에 있는 활엽수들은 이제 거의 다 새잎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싱싱한 연두색 기운이 새잎에서 힘차게 뿜어져 나온다. 사람으로 견주면 십 오륙 살의 소년 같다고 할까? 참으로 좋은 계절이다. 5월은 계절의 여왕이라는 표현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조그만 다리, 구룡교를 건너간 일행이 가지 않고 서 있다. 내가 오기를 기다린다. 다리를 지나서 길이 양쪽으로 갈라지는데 이정표가 없어서 나를 기다리는 것이다. 나는 며칠 전에 사전 답사 차 이 길을 갔기 때문에 알고 있다. 오른쪽으로 가면 마을을 지나는 길이고, 왼쪽 길은 하천 둑길이다. 두 길은 조금 지나 다시 만나므로 어느 길로 가든지 길을 잃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처음 걷는 답사객은 불안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평창군 담당자에게 이곳에 표지판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여기서 질문 하나. 이효석은 어느 쪽 길을 걸었을까? 이효석은 마을로 난 길을 걸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걷는 길은 마을과 마을을 잇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콘크리트 둑길은 최근에 하천정비공사를 하면서 만들었을 것이다. 옛날 길은 직선보다는 곡선이 많다. 곡선은 자연을 따라 만들어진다. 옛날의 마을길은 모두 구불구
[우리문화신문=안승열 명리학도] 몸이 더운 열증이나 찬 한증은 각기 실증(實熱)과 허증(虛證)이 있으며 이들은 음양의 관점에서 구별해야 그 참 모습을 볼 수 있다. 실증- 음양 어느 한 기운이 모자라거나 지나치지만 음양의 순환은 정상인 경우. 실열증- 과도한 열기(양기)로 얼굴색이 붉어지며 입속이 마르고 소변이 적어지며 대변이 굳고 맥이 빨라짐. 해열제로 양기를 감해주면 열증이 해소되며 음양의 순환이 순조로워진다. 실한증- 한기(음기)가 과하여 몸이 차고 얼굴은 창백하며 소변이 맑고 길다. 대변은 누렇고 무르며 맥은 느리다. 더운약으로 한기를 눌러 한증이 해소되며 음양이 순환도 좋아 진다. 허증- 음기 양기 어느 한쪽이 과도하거나 모자라는 점은 실증과 마찬가지이지만 기의 순환이 순조롭지 못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순환이 여의치 않으니 과도한 기운이건 약한 기운이건 끼리끼리 몰려서 기운 간에 분리가 일어난다. 기가 분리가 심화 되면 강한 기운이 부분 부분 소부위로 몰려서 더 강해 보이는 기운으로 나타난다. 분리가 일어난 경우 이런 기운을 제압하기위해 약을 써도 증상은 더 심해진다. 이렇듯 심해지는 증상을 한의학은 허증이라 하였다. 허열증- 음기가 부족
[우리문화신문=안승열 명리학도] 병증에도 음양이 있다. 음과 양이 같은 힘으로 맞물리지 못하고 어느 한편으로 치우칠 때 병이 난다. 음액(陰液 한의학에서 인체를 순환하는 정 혈 진액 등의 체액을 음기로 보고 한꺼번에 음액이라고 부른다. 양의학이 말하는 혈액, 림프액, 정액 등에 해당한다. 영양제나 한의가 쓰는 보약은 음액을 보강하는 약이다.)이 고갈되면 음액으로 활동하는 양이 허해지고 양의 허한 상태가 지속되면 음액을 생성하지 못하니 결국 음과 양이 모두 허해진다. 따라서 음병이 지나치면 양병이 되고, 양병이 더 세지면 음병이 된다. 그 시작이 음양 어느 것인지를 가려서 부족한 것부터 채우는 것이 음양병 치료의 대원칙이다. 일반 증세 겉으로 보이는 몸의 위쪽 (윗입술~등~ 항문전)에 나타나는 것은 양증이고 아래쪽 (아랫입술~ 배~항문)에 나타나는 것은 음증이다. 두통, 감기, 해소, 각혈 등은 양증이고, 각기, 설사, 탈핵 등은 음증이다. 열이 위로 올라와 가슴이 답답하고 눈이 붉어지고 귀가 울리는 것은 양증이고 열이 부족하여 복통 설사 요통 등 아래쪽에 증세가 나타나는 것은 음증이다. 급성 만성 급성병은 대부분 양병이라 밖으로 증세가 드러난다. 오한 발열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속’과 ‘안’은 본디 아주 다른 낱말이지만, 요즘은 모두가 헷갈려 뒤죽박죽 쓴다. · 속 : ① 거죽이나 껍질로 싸인 물체의 안쪽 부분. ② 일정하게 둘러싸인 것의 안쪽으로 들어간 부분. · 안 : 어떤 물체나 공간의 둘러싸인 가에서 가운데로 향한 쪽, 또는 그런 곳이나 부분. 《표준국어대사전》 국어사전의 풀이만으로는 누가 보아도 무엇이 다른지 가늠하기 어렵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이 밖에도 여러 풀이를 덧붙여 달아 놓았으나, 그것은 모두 위에서 풀이한 본디 뜻에서 번져 나간 것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다. 본디 뜻을 또렷하게 밝혀 놓으면 번지고 퍼져 나간 뜻은 절로 졸가리가 서서 쉽게 알아들을 수가 있다. 그러나 본디 뜻을 흐릿하게 해 놓으니까 그런 여러 풀이가 사람을 더욱 헷갈리게 만드는 것이다. 우선 ‘속’은 ‘겉’과 짝을 이루어 쓰이는 낱말이고, ‘안’은 ‘밖’과 짝을 이루어 쓰이는 낱말이다. “저 사람 겉 다르고 속 다른 데가 있으니 너무 깊이 사귀지 말게.” 하는 말은 ‘겉’과 ‘속’을 아주 잘 짝지어 쓴 보기다. 여기서 ‘겉’은 바깥으로 드러나서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행동과 말 따위를 뜻하고, ‘속’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미스 최는 그날 매우 화려한 털 코트를 입고 나왔다. 김 교수는 서양 풍습대로 아가씨가 코트를 벗는 것을 도와주었다. 코트 안에 미스 최는 초미니스커트와 가슴이 많이 파인 얇은 옷을 입고 있었다. 김 교수는 눈을 둘 데가 마땅치 않은 불안한 모습이었다. 상대방 눈을 바라보고 이야기를 하지만 눈길이 자꾸 가슴 쪽으로 내려감을 감출 수 없었다. 아가씨가 눈치를 채고서 장난스럽게 말했다. “오빠, 오늘 옷이 너무 야하지요?” “야하기는 예쁜 걸 뭐.” “대개는 옷을 보스에 두고 다니는데, 집에 가져왔어요.” “왜?” “오빠, 나 이제 보스에 안 나갈 것 같아요.” “왜,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니?” “제가 잘 아는 전무님이 계시는데, 명퇴하고서 술집을 개업했어요. 저보고 몇 달만 도와달라고 해서 오늘부터는 그쪽으로 나가려고 해요.” “그 전무하고는 어떤 사이인데?” “오빠, 질투하는가 봐. 자주 오시던 손님이에요.” “질투는 무슨 질투? 너에게 좋은 사람 생기면 그건 나에게도 좋은 일이지.” 두 사람은 전처럼 피자를 시켜 먹었다. 메뉴판을 보니 전통차로서 국화차가 다이어트에 좋다고 쓰여 있다. 차를 마신다고 무슨 다이어트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답사 날자: 2024년 5월 13일(월) 답사 참가자: 김수용, 나명흔, 박명수, 윤희태, 이상훈, 전선숙, 최동철, 황병무 (8명) 답사기 쓴 날자: 2024년 5월 21일 효석문학100리길 제2-2구간은 제2구간 대화 장터 가는 길의 후반부로서 평창군에서 만든 소책자에서는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지역 명소인 토마토유리온실재배단지, 금당산 등산로, 법장사, 대흥사, 땀띠공원과 농촌체험마을인 대화6리 광천마을 등을 둘러보며 옛 추억의 정취와 평창의 따뜻한 인심과 정을 느낄 수 있는 길이다. 이효석 이야기를 이어가자. 평창공립보통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이효석은 13살 때에 학교장 추천으로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등학교, 당시는 중고등학교를 통합하여 5년제이었음)에 입학한다. 나는 제일고보 다닐 때의 이효석 행적에 관해서 궁금했다. 봉평면에 있는 이효석 문학관에 가서 문화해설사에게 물어보니 이렇게 대답한다. “1학년 때에는 하숙을 한 것 같고, 2학년부터는 기숙사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지만 명확한 근거 자료는 없다” 이효석은 제일고보에서 이후 평생을 절친한 벗으로 지내게 되는 1년 선배 현민 유진오 선생과 만났다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소리’와 ‘이야기’는 본디 서로 얽히지 않고 저마다 또렷한 뜻을 지닌 낱말들이다. “번개 치면 우렛소리 들리게 마련 아닌가?” “밤도 길고 심심한데 옛이야기나 한 자리씩 하면 어때?” 이렇게 쓸 때는 ‘소리’와 ‘이야기’가 서로 얽히거나 헷갈리지 않는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데서는 ‘소리’나 ‘이야기’가 모두 ‘말’과 비슷한 뜻으로 쓰이면서 서로 넘나든다. “누가 그런 소리를 합디까?”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합디까?” 그러나 서로 넘나드는 것이 바르고 마땅할까? ‘소리’와 ‘이야기’는 본디 뜻이 서로 다른 만큼, 넘나들 적에도 뜻의 속살은 서로 다르다. 그 다름이 뚜렷하지 않고 아슬아슬하지만, 아슬아슬한 얽힘을 제대로 가려서 쓸 수 있어야 참으로 우리말을 아는 것이다. 국어사전들은 ‘말’과 비슷한 뜻의 ‘소리’와 ‘이야기’를 어떻게 뜻 가린 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1) · 소리 : 말.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다. · 이야기 : ① 지난 일이나 마음속에 있는 것을 남에게 일러 주는 말. ¶내 이야기 들어 보소. ② 어떤 제목을 중심으로 한 이런 말 저런 말. ¶이야기가 오고 가다. 2) · 소리 : 말이나 이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아쉽게 헤어진 지 열흘도 안 되어서 전화가 왔다. 미스 최는 《아리랑》 제3권은 산지 일주일 만에 다 읽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래, 아리랑 책 참 재미있지?” “예,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어요. 갑자기 과거로 돌아간 기분이에요.” “과거로 돌아가다니?” “제가 여고 시절에는 연애 소설 같은 것을 밤새워 읽었거든요.” “요즘에는 밤에 일하니까 낮에 읽겠네.” “그래요, 오빠. 일주일 동안 다른 일은 모두 미루었어요. 조정래라는 사람 대단한 작가에요. 우리 고향 사람이라니 자랑스러워요.” 김 교수는 미스 최가 말을 꺼내기 전에 선수를 쳤다. “어쨋든, 또 아리랑을 읽었으니, 약속대로 한 번 만나야지?” “예, 오빠. 만나고 싶어요!” “아이고, 이러다가는 일주일에 한 번 만나게 되겠다.” “그럼 어때요? 저도 오빠가 보고 싶은데. 보스로 한번 오세요.” “내가 무슨 재벌 아들이냐? 보스에 한 번 가려면 한 달 동안 점심을 라면으로 때우면서 돈을 모아야지. 거기는 너무 고급이라서 나처럼 돈 없는 사람에게는 부담된다.” “그렇기는 해요. 그러면 오빠, 잠실에서 만나요.” 그날은 마침 교회에서 무슨 행사가 있어서 저녁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둘레길을 걸으면서 우리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사람들이 도시에서 나누는 이야기와 주제가 다르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만나면 주로 음식, 여행, 명품, 부동산, 재테크 등을 화제로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을 바라보며 걸으면서 두릅나물, 복숭아꽃, 돌배술, 진달래, 철쭉, 찔레, 당귀 등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눈다. 황병무 선생의 고향이 횡성군 새말이고, 박명수 신부님의 고향이 정선군 임계라고 한다. 두 분은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풀과 나무와 농사 등에 관해서 경험과 지식이 많아서 대화를 흥미롭게 이끌어갔다. 둘레길을 걷다가 갈림길이 나타나면 어김없이 효석문학100리길 표지판이 나타나 길을 안내한다. 그런데 평창역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표지판이 없는 곳이 한 군데 있었다. 아래 사진에서 오른쪽 언덕길로 올라가는 갈림길에 표지판이 필요하다. 나는 며칠 전에 제2구간 코스를 사전 답사차 왔다가 여기서 헤매었다. 평창군 담당자가 이 글을 읽고서 적절하게 처리해 주기를 기대한다. 평창역 앞으로 지나가는 둘레길에 표지판 두 개가 서 있었다. 하나는 금당산 등산로를 알리는 표지판이고, 다른 하나는 카페921을 알리는 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