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느낌과 생각과 뜻이라는 마음의 속살들은 몸에서 말미암지만, 마음 안에는 몸에서 말미암지 않는 속살이 있다. ‘얼’이 바로 그것이다. 얼은 몸에서 말미암지 않으므로, 사람은 스스로 그것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 그런데도 ‘얼’이라는 낱말이 있다는 것은, 우리 겨레가 그것의 있음을 알고 살아왔다는 말이다. 몸으로는 느낄 수도, 생각할 수도 없다는 말과 마음으로는 그것이 있는 줄을 알았다는 말은 서로 어긋난다. 그러나 이런 어긋남이야말로 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신비가 아닌가 싶다. ‘얼’이라는 낱말의 쓰임새를 살피면 그것이 마음의 참된 속살이라는 것을 알 만하다. ‘얼간이’, ‘얼뜨기’, ‘얼빙이’, ‘얼빠졌다’ 이런 낱말의 쓰임새가 바로 ‘얼’의 뜻을 드러내고 있다. ‘얼간이’는 [얼+간+이]로 쪼갤 수 있는 낱말로, ‘얼이 가 버린 사람’이라는 뜻이다. ‘얼’이 어딘가 나들이를 가 버리거나 아예 제자리를 비워 두고 나가 버린 사람이라는 뜻이다. ‘얼뜨기’는 [얼+뜨+기]로 쪼갤 수 있는 낱말로, ‘얼이 하늘 높이 뜬 사람’이라는 뜻이다. 얼이 몸 바깥 허공으로 떠 버려서 제자리를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경북 의성군 단촌면에는 등운산(騰雲山)이 있다. 구름으로 오른다는 뜻인데 해발고도가 그리 높지는 않지만, 산허리에 늘 구름을 이고 있어서 그런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등운산에는 고운사(孤雲寺)라는 절이 있다. 절 주변은 일품으로 평가받는 멋진 송림이 있고 거기서는 송이버섯 또한 많이 난다고 알려져 있다. 산 중턱에 자리 잡은 고운사는 넘북국시대(통일신라) 신문왕 때인 681년에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되었고 원래 이름은 고운사(高雲寺)였는데 나중에 신라말 고운 최치원(857~ 미상)이 스님들과 함께 가운루(駕雲樓)와 우화루(羽化樓)란 두 건물을 지은 후 절 이름도 최치원의 호인 고운(孤雲)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 절을 대표하는 건물인 가운루는 절 입구 계곡의 양쪽 기슭을 가로질러 세운 누각이다. 계곡 가장 낮은 곳 암반에 돌기둥을 새우고 그 위에 다시 나무기둥을 올린 다음에 마루를 놓아 하층을 이루고 상층은 공포를 두른 팔작지붕을 올렸다. 이 누각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큰 규모임에도 계곡과 조화를 이루어 앞뒤가 웅장할 뿐만 아니라 건물 자체도 결구가 지극히 아름다워 멋진 운치를 자랑하였다. 우리나라 절에는 계곡을 가로질러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죄와 벌. 하늘이 열리고 인간이 무리를 지어 살기 시작한 이래 ‘죄와 벌’은 늘 있었다. 오랜 옛날부터 형벌은 죄를 짓는 자를 벌주거나 권력자가 약자를 탄압하는 수단이었다. 형벌을 잘 들여다보면 당시 사회가 어떤 것을 금기시했는지, 어느 정도로 성숙했는지 잘 알 수 있다. 우리 역사 속 형벌을 알기 쉽게 풀어낸 이 책, 장경원의 《네 죄를 네가 알렷다!》는 ‘우리 역사 속 죄와 벌’이라는 부제처럼, 우리 역사 속에 나타난 형벌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때로는 그 잔혹함에 놀라고, 때로는 먼 옛날인데도 죄인의 인권을 배려하는 모습에 놀라게 된다. 처음에 신라의 형벌 제도를 이어받은 고려는 중국 당나라 형벌 제도를 받아들여 보완했고, 11세기 문종 때는 우리 형편에 맞게 크게 손질했다. 형벌에 관련된 일은 ‘형부’라는 관청에서 다루었고, 감옥을 관리하는 일은 ‘전옥서’에서, 죄지은 벼슬아치들은 따로 ‘어사대’라는 기구에서 맡았다. 고려의 다섯 가지 형벌 제도는 태형, 장형, 도형, 유형, 사형이었다. 태형과 장형은 매를 치는 것이고, 도형은 매질에 힘든 일까지 더한 것, 유형은 유배를 보내는 것, 사형은 죽이는 것이었다. 이 기본적인 다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아름답다’는 그림씨 낱말이다. 그것을 국어사전들이 어떻게 풀이하고 있는지 먼저 살펴보자. 1) ① 사물이 보거나 듣기에 좋은 느낌을 가지게 할 만하다. ② 마음에 들게 갸륵하고 훌륭하다. 2) ① 사물, 현상의 상태나 모양이 조화를 이루어 마음에 만족한 느낌을 자아낼 만큼 이쁘고 곱다. ② 들리는 소리가 감정ㆍ정서에 맞게 조화를 이루어 마음에 만족한 느낌을 자아낼 만하다. ③ (사람들 사이의 관계 곧 언행, 소행, 덕행, 도덕, 동지애, 협조 정신 등이) 사람들의 지향과 요구에 맞게 바르고 훌륭하다. 3) ① 보이는 대상이나 음향, 목소리 따위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눈과 귀에 즐거움과 만족을 줄 만하다. ② 하는 일이나 마음씨 따위가 훌륭하고 갸륵한 데가 있다. 보다시피 1)《우리말큰사전》과 3)《표준국어대사전》은 두 몫으로 나누어 풀이하고, 2)《조선말대사전》은 세 몫으로 나누어 풀이해서 크게 다른 듯하다. 그러나 1)《우리말큰사전》과 3)《표준국어대사전》이 ‘보는 것(눈)’과 ‘듣는 것(귀)’을 하나로 묶어 풀이하고, 2)《조선말대사전》에서는 그것을 따로 몫을 나누어 풀이했을 뿐이기에 속내로는 다를 것이 없다.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세종 때 사간원에서 성균관 학유 조득인의 직임을 거두기라는 상소를 두고 논의가 있었다. 사간원에서 상소하기를, 학정(學正)ㆍ학록(學錄)이란 벼슬은 유생(儒生)의 사표(師表)로서, 인재의 현능(賢能, 어질고도 재간이 있음) 여부와 풍속의 아름답고 고약한 것이 모두 이와 직접 관련되고 있으므로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신 등이 이조에서의 각 품에 제수한 문서를 접해 보았는데, 새로 급제한 조득인(趙得仁)으로 성균관 학유(學諭)를 삼은 적이 있습니다. 신 등의 생각으로는, 염치(廉恥)라는 것은 사풍(士風, 선비의 기풍)의 가장 큰 근간이옵고, 장리(贓吏, 뇌물받거나 횡령한 자)는 중인이 경멸시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탐관오리와 불법한 인간은 비록 그 후손까지라도 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전하께옵서 특별히 관대하옵신 도량과 어떤 추한 것도 다 포용하옵시는 덕으로 장리의 자손까지도 또한 다시 등용하시니, 이는 〈아름다운 덕은 길이 그 후손까지 뻗어가게 하시고, 악한 일은 그 자신에만 그치게 하옵시는〉 아름다운 뜻으로 아옵니다. 그러하오나, 조득인은 장리인 조진(趙瑨)의 손자입니다. 어찌 성균관 학정·학록의 직임에 합당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3월이 봄의 수줍은 미소라면 4월은 봄이 얼굴을 펴고 웃는 계절이라고 하겠는데 올해는 날씨건 세상이건 봄이 왔다고 할 수도 없고 안 왔다고 할 수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저러나 다음 주는 4월이지요. 4월 초, 정확하게는 4월 2일이 되면 제가 속한 모임에서는 서울 중랑구 망우리공원의 한 묘소에 오릅니다. 제가 속한 모임은 ‘아사카와 노리타카 다쿠미 현창회’입니다. 이름에서 보듯 아사카와라는 성을 가진 일본인 형제를 기리는 모임입니다. 망우리에는 아사카와 형제 가운데 동생인 아사카와 다쿠미(淺川 巧)의 무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름을 들어보신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1891년에 태어나 23살 때인 1914년에 우리나라로 와서 산림과 수목 관련 일을 하다가 1931년에 세상을 떠난 분인데 돌아가시고도 이 땅에 묻혀있습니다. 돌아가신 지 올해로써 94돌이 되는군요. 우리들 현창회 회원들은 해마다 4월 2일에 이분의 묘소에 간단한 술과 안주와 함께 그의 마음에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무덤 앞쪽에는 작은 비석에 “한국의 산과 민예를 사랑하고 한국인의 마음속에 살다 간 일본인 여기 한국의 흙이 되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여행은 사람을 깊어지게 한다. 남도여행을 떠난 40인의 디자인 이끄미(리더)들도 그랬다. 남도 구석구석을 다니며 다양한 문화유산을 접하고, 이를 인문학적 감성으로 해석하면서 영감을 얻었다. 디자인하우스에서 펴낸 이 책, 《남도가 정말 좋아요》는 우리나라 디자인 이끄미 40인이 각각 40군데의 남도 여행을 다녀온 기록을 엮은 책이다. 디자이너들이 모여서 ‘40인의 의자’라는 모임을 결성해 매주 한 번 인문학을 공부했고, ‘남도’를 정신적으로 가장 윤택한 땅이자 한반도에서 가장 미학적인 고장이라 여겨 40군데로 여행을 떠났다. 이들이 저마다의 감성으로 본 남도는 풍요롭다. 땅은 넓지 않아도, 켜켜이 쌓여있는 인문학의 두께는 넓이를 압도한다. 풍경마다 품고 있는 이야기가 끝이 없고 알아갈수록 매력적인 고장이 남도이다. 그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곳은 해남 윤씨 고택의 사랑채, 녹우당이다. 해남 윤씨 고택은 윤효정이 당시 해남 땅의 부호였던 해남 정씨와 혼인하면서 자리를 잡았고, 윤선도 대에 이르러 사랑채를 옮겨지어 완성했다. 이 사랑채는 어린 시절 윤선도에게 학문을 배운 효종이 왕위에 오른 뒤 하사한 집에 있던 것으로, 윤선도가 효종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소갈머리’는 국어사전에 어엿하게 올라있는 낱말이다. 국어사전들이 뜻을 뭐라고 풀이해 놓았는지 알아보자. 1) ①‘마음속’의 낮은말. ②‘마음보’의 낮은말. 2) ‘마음이나 속생각’을 얕잡아 이르는 말. 3) ①마음이나 속생각을 낮잡아 이르는 말. ②‘마음보’를 낮잡아 이르는 말. 세 국어사전이 한결같이‘ 소갈머리’를 ‘마음, 마음속, 마음보, 속생각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 풀이해 놓았다. 그런데 이들 풀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음, 마음속, 마음보, 속생각’과 ‘낮잡아 이르는 말’의 두 덩이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또 ‘소갈머리’가 ‘소갈’과 ‘머리’라는 두 낱말로 이루어졌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그래서 드디어는 ‘소갈’이 곧 ‘마음, 마음속, 마음보, 속생각’이며 ‘머리’가 곧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는 것도 드러난다. 그러면 ‘소갈’이 어떻게 ‘마음, 마음속, 마음보, 속생각’인가? 이 물음은 연재 글을 처음부터 읽어 왔으면 벌써 풀리고도 남았을 것이다. 앞에서 이미 ‘소갈’은 곧 ‘속알’이며, ‘속알’은 또 ‘마음의 알’이고, ‘마음의 알’은 곧 ‘생각과 뜻’이라고 밝혀 놓았기 때문이다. 그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아득한 고대 우리 조상으로 믿어지는 사람들이 처음 생활에서 사용한 문명의 도구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그릇이겠지요.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를 펴보면 맨 앞부분에 빗금 친 무늬가 있는 토기가 등장하고 이 토기에 대해 ‘빗살무늬토기’라고 가르쳐줍니다, 토기의 겉면에 빗금 친 무늬들이 있는데 이것을 머리 빗는 빗의 살을 뜻하는 무늬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서 나온 위 토기는 그러한 '빗살'이란 이름의 토기의 대명사입니다. 우리는 배우는 처지에서 빗살무늬라는 이름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름은 원래 북유럽의 판란드와 북부독일 일대에서 발견되는 신석기시대 토기를 핀란드 고고학자가 독일어로 ‘Kamm Keramik(Kamm’은 영어의 ‘comb’, ‘Keramik’은 ‘ceramic,’ 곧 ‘comb’ ceramic이다)으로 부른 것을 일본의 고고학자 후지다 료사쿠(藤田亮策)가 1930년에 빗이라는 뜻의 櫛(즐)이란 글자를 써서 즐문(櫛文)토기로 번역하였고 이것을 우리 고고학계가 빗살무늬 토기라고 뒤쳐서 현재까지 쓰는 것이고요. 이 이름에 대해서는 여러 학자가 다른 의견을 많이 내었으나 오로지 겉으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바보 의사. 한평생 우직하게 환자를 위해 살다 간 의사 장기려의 별명이다. 평생 재물이나 이익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환자를 돌보며 살았던 그를 사람들은 ‘바보 의사’라 불렀다. 장기려는 이를 오히려 자랑스러워하며 남들이 자신에게 바보라 한다면 성공한 삶이라 여겼다. 박그루가 쓴 이 책, 《바보 의사 장기려의 청진기》는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봤을 ‘장기려’라는 인물을 알기 쉽게 풀어 쓴 그림책이다. 1995년, 85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인술을 베풀며 큰 업적을 남긴 그의 일생을 톺아볼 수 있다. ‘한국의 슈바이처’로 알려진 장기려는 1911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몸이 유난히 약했고, 배탈을 치료하느라 배꼽에 뜸을 너무 떠 배꼽 모양이 독특해질 정도였다. 할머니는 장기려가 튼튼히 자라라고 ‘금강석’이라고 부르며 늘 손자의 건강을 위해 기도했다. 아픈 사람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아서인지, 그는 의술로 사람들을 살리는 의사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외과 의사가 되었다. 공대 시험에 떨어지고 어려운 집안 형편을 생각해 학비가 저렴한 경성의전에 들어간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