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황병무 선생은 나무와 야생화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다. 하천가에 잎은 하나도 없고, 가지만 남은 나무를 보더니 이름이 ‘붉나무’라고 설명한다. 가을이 되면 가장 먼저 예쁜 빨간색으로 단풍이 드는 이 붉나무의 별명은 소금나무란다. 처음 듣는 이름이다. 열매에서 짠맛이 나기 때문에 과거에 소금이 귀한 시절에는 소금 대용으로 쓰기도 했다는 얘기다. 붉나무는 옻나무과에 속하는데, 독성이 약하기는 하지만 일부 예민한 사람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수가 있다고 한다. 나는 나무의 잎과 꽃을 보아야 나무 이름을 추측하는데, 줄기만 보고서는 무슨 나무인지 구별할 수가 없다. <겨울나무 쉽게 찾기>라는 책을 쓴 윤주복이라는 나무 전문가는 줄기만 보고서도 424종의 나무 이름을 알아낸다. 나도 그 책을 사두었는데 읽지는 않았다. 이제부터라도 겨울나무 공부를 시작해야겠다. 농수로를 따라 걷다가 약간 넓은 공간을 발견하고 우리는 12시 15분에 두 번째로 쉬었다. 김수용 선생은 젊은 시절 암벽을 탔던 산악인이었다. 우리나라의 주요 산에 대해서 잘 안다. 이날도 산악인답게 가장 큰 배낭을 짊어지고 왔다. 아주 커다란 커피통에 커피를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뽑다’는 박힌 것을 잡아당겨서 빼내는 노릇이다. ‘박힌 것’이란 온갖 풀이나 나무나 갖가지 남새(채소), 곡식의 뿌리라든지 짐승이나 사람의 이빨같이 자연히 박힌 것을 비롯해서, 못이나 말뚝같이 사람이 박은 것까지 싸잡아 뜻한다. 게다가 뜻 넓이가 더욱 번져 나가면서 몸에서 피를 뽑듯이 땅속에서 기름도 뽑고 물도 뽑는다. 게다가 거미 꽁무니에서 줄을 뽑고, 사람의 목에서 노래 한 가락을 뽑고,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버릇을 뽑듯이 속에 있는 것을 나오게 한다는 뜻으로도 쓴다. 그뿐 아니라 반장이나 대표를 뽑듯이 골라잡는다는 뜻, 장사에서 밑천을 뽑듯이 거두어들인다는 뜻으로까지 넓혀서 쓴다. ‘뽑다’를 본디 제 뜻, 곧 푸나무와 남새와 곡식같이 땅에서 싹이 나고 자라는 것을 빼낸다는 뜻으로 쓸 적에는 비슷한 낱말이 여럿 있다. ‘캐다’, ‘솎다’, ‘찌다’, ‘매다’가 그런 낱말들이다. ‘캐다’는 쓸모가 있으나 흔하게 널려 있지 않아 찾고 가려서 빼내는 것인데, 맨손이 아니라 칼이나 호미를 비롯한 갖가지 연모의 도움을 받아서 빼내는 노릇을 뜻한다. 봄철이면 뫼나 들에서 아가씨와 아낙들이 나물을 캐고, 사내들도 철 따라 깊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드디어 수능시험일이 왔다. 시험을 치고 온 아들에게 물어 보니 결과는 나와 봐야 알겠다고 명확하게 몇 점이라는 이야기를 안 한다. 수능점수가 채점되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이제는 아들의 점수가 늘어날 리도 줄어들 리도 없게 되었다. 나오는 점수에 맞춰 학교를 고르면 된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김 교수는 “이제 새벽기도도 끝났구나”라고 좋아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D데이는 수능시험일이 아니고 대학입시일이라는 아내의 선언에 김 교수는 할 말을 잊었다. 아들을 위해서라는데 들어내 놓고 항의할 수도 없고. 그저 고3 학부형이 된 것이 죄라면 죄라고 말할 수밖에! 김 교수는 수능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새벽기도회에 따라갔다. 날씨는 추워지고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면 차 유리창에 성에가 서려 있어서 김 교수는 4시 반보다 더 일찍 일어나야 했다. 더 일찍 일어나서 차 시동을 걸고 성에를 제거하여야 5시 기도회에 늦지 않기 때문이다. 새벽 공기는 차가웠다. 바람이 부는 날은 두꺼운 옷을 입어야 춥지 않았다. 그 와중에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아내의 잠자리 거부가 해제된 것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해제 이유가 한 권의 책 때문이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길 왼편으로 보이는 넓은 밭이 메밀밭이다. 효석문화제 때에는 이 밭에 하얀 메밀꽃이 가득하다. 메밀밭 사이로 많은 사람이 걸어 다니며 사진을 찍는다. 메밀은 다른 작물에 견줘 생육기간이 짧다. 일반 작물은 90~100일 성장하면 수확할 수가 있는데, 메밀은 생육기간이 60~70일 정도로 짧다. 효석문화제는 해마다 9월 초에 2번의 금ㆍ토요일 주말을 포함하여 10일 동안 열린다. 축제를 준비하기 위하여 메밀은 7월 말에 씨를 뿌린다. 9월 중순 무렵 봉평에 오면 소금을 뿌린 듯이 하얀 메밀꽃을 어디서나 볼 수가 있다. 길 따라 조금 걷자, 흥정천이 나타난다. 작은 정자가 서 있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하천을 따라 걸었다. 출발점에서 제1구간의 종점인 여울목까지의 거리는 7.8 km이다. 답사자가 길을 잃지 않도록 중요한 지점에는 큰 기둥을 세우고 표지판을 만들어 놓았다. 고마운 일이다. 나중에 살펴보니 이날 단체 사진을 찍은 것이 하나도 없다. 누구도 단체 사진 찍자고 말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나이가 많아지면서 점점 사진을 멀리하는 경향이 있다. 나이 든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일종의 노화 현상이다. 흥정천을 따
[우리문화신문=안승열 명리학도] 인체는 자연계보다 복합적이고 정교하다. 그래서 자연계의 음기 양기를 인체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따른다. 이 글에서는 “인체에는 기(氣)의 실체가 있고 장기가 이 에너지를 쓰는 방식에 따라 음기 또는 양기로 작용한다”는 가정 아래 우리 몸 안에서 기의 실체가 될 만한 에너지를 찾아보았다. ATP와 ATP 합성효소 동식물 간의 에너지 순환을 정리해 보자. 동물은 식물이 광합성을 하여 만든 탄수화물을 포도당으로 분해한다. 모든 동물은 포도당을 산화시켜 에너지를 얻고 탄산가스(CO2)와 물을 배출한다. 식물은 동물이 배출한 탄산가스에 물과 태양 에너지를 더하여 다시 탄수화물을 합성한다. 동물이 배출한 탄산가스를 식물이 흡수하여 자원의 재활용을 이어지는 것이다. 동물이 탄수화물을 소화하여 만든 포도당은 에너지 단위가 너무 커서 세포가 바로 사용할 수 없다. 포도당 한 분자의 에너지가 30~40 조각으로 나누어지고 그중 한 조각이 ATP라는 화합물에 내재(內在)되는데 이렇게 나누어져야 세포가 쓰기 적당한 크기의 에너지가 된다. ATP를 만들기 위해서는 포도당 외에 모종의 장치가 있어야 한다. 유기물 복합체인 이 장치를 그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 중국의 이른바 ‘동북공정’ 덕분(?)으로 요즘 우리 겨레의 옛 삶이 뚜렷이 드러나면서 중국 사람뿐만 아니라, 온 천하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고조선의 중심이었던 요하 가장자리에서 일어난 문명이 세계 4대 문명의 하나로 손꼽혀 온 중국 황하 문명보다 오백 년에서 천 년이나 앞선 사실이 환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을 일으켜서 먹거리를 익히고, 그릇을 굽고, 청동기를 만들어 사냥과 농사를 바꾸는 일을 황하 언저리의 중원 사람들에게 가르쳤다는 사실 또한 드러났다. 이는 동이족인 염제 신농씨가 중국으로 불을 가져가 농사를 가르쳤다는 이야기가 한갓 신화가 아님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 겨레가 불을 쓰며 살아온 세월이 오래라 그런지, 우리말에는 불에 말미암은 낱말이 여럿이다. ‘부리나케’와 ‘불현듯이’도 그런 낱말들 가운데 하나다. ‘부리나케’는 [불+이+나+게]가 본디 모습이다. 그러니까 ‘불이 나게’가 하나의 낱말로 붙어 버린 것인데, 오늘날 맞춤법이 본디 모습을 밝혀서 적지 않고 소리 나는 대로 적기로 해서 ‘부리나케’가 되었다. ‘나게’가 ‘나케’로 바뀐 것은 느낌을 거세게 하려는 데서 비롯한 것으로 보이기도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그런데 백일기도가 끝나기 전에 그만 사고가 나고 말았다. 어느 날 아내는 매우 기분이 씁쓸하다며 남편에게 하소연하였다. 교회에서는 입시가 점점 가까워 오자 고3 학부형을 모아서 특별히 함께 기도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아내가 그 모임에 가보니 상대방의 자녀를 위해서도 기도하는 시간이 있단다. 그런데 기도는 구체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면서 댁의 자녀는 어느 학교를 목표로 하는가를 묻더라는 것이다. 아들의 현재 점수로는 ㅅ대는 꿈꿀 수가 없다. 김 교수가 보기에는 ㅇ대나 ㄱ대도 바라보기가 어렵겠다. 아내 말에 따르면 다른 엄마들의 목표대학을 들어보니 대부분이 ㅅ대라는 것이다. 그 순간 아내는 ‘창피하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 뒤 아내는 고3 학부형의 특별기도회에 나가지 않게 되었다. 김 교수가 들어보니 그 일은 목사님이 잘못한 것 같다. 고3 학부형들이 얼마나 신경이 예민한 상태에 있는가를 고3 자녀가 아직 없는 목사님이 잘 모르고서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엉뚱하게 파편이 김 교수에게 튀었다. 아내는 더욱 새벽 기도에 매달리고, 웬일인지 그 사건 이후에는 잠자리를 거부하는 것이었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대답인즉 우리가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들어가는 말> 필자는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에 2015년에 귀촌하여 살고 있다. 우리나라 단편소설 가운데서 가장 빼어난 작품으로 평가되는 《메밀꽃 필 무렵》을 쓴 가산 이효석은 1907년에 봉평에서 태어났다. 가산은 평창읍에서 하숙하면서 초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가산은 개학이 될 때, 그리고 방학이 될 때면, 봉평에서 평창읍까지 100리 길을 아버지를 따라 걸었다고 한다. 평창군에서는 가산이 걸었던 옛날 길을 둘레길로 조성하여 2012년부터 관광객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필자는 평창에 사는 지인들과 함께 두 주에 한 번씩 ‘효석문학100리길’을 걷고 있다. 필자가 투고하는 답사기는 한 주에 한 꼭지씩 5달에 걸쳐서 연재할 예정이다. 답사 날짜: 2024년 4월 8일(월) 답사 참가자: 김수용 윤상조 윤석윤 이상훈(필자) 전선숙 최동철 황병무 (7명) 답사기 쓴 날짜: 2024년 4월 29일 ‘효석문학100리길’이 있는 평창(平昌) 지명을 조사해 보았다. 《세종실록지리지》에 “강원도는 본래 예맥(濊貊)의 땅인데 후에 고구려의 소유가 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구려 시대 평창군의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겨울 초입에서는 이른 추위가 닥쳐서 부랴부랴 김장들을 재촉하고…….” - 한수산, 《부초》 “부랴사랴 외부대신 집으로 달려가는 교자가 있었다.” - 유주현, 《대한제국》 ‘부랴부랴’와 ‘부랴사랴’는 생김새가 아주 닮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거의 같은 뜻으로 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두 낱말의 뜻풀이를 아주 같은 것으로 해 놓았다. · 부랴부랴 : 매우 급하게 서두르는 모양. · 부랴사랴 : 매우 부산하고 급하게 서두르는 모양. 《표준국어대사전》 보다시피 그림씨 ‘부산하고’를 더 넣고 빼고 했을 뿐이니, 사람들은 그것이 어떻게 다른지 알 도리가 없다. 외국인이라면 이런 뜻풀이 정도로 알고 그냥 써도 탓할 수 없겠지만, 우리 겨레라면 이들 두 낱말을 같은 것쯤으로 알고 써서는 안 된다. 선조들이 값진 삶으로 가꾸어 물려주신 이들 두 낱말은 저마다 지닌 뜻넓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부랴부랴’는 느낌씨(감탄사) 낱말 ‘불이야!’가 겹쳐서 이루어진 어찌씨(부사) 낱말이다. “불이야! 불이야!” 하던 것이 줄어서 “불야! 불야!” 하게 되었는데, 오늘날 맞춤법이 소리 나는 대로 적기로 해서 ‘부랴부랴’가 되었다. 이렇게 바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세 번째 만남 박 교수의 예상을 깨고 미스 최가 《아리랑》 제1권을 읽었기 때문에 약속대로 박 교수가 점심을 사게 되었다. “아니, 김 교수의 실력이 그 정도인 걸 몰랐는데.” “뭐 말입니까?” “아가씨 홀리는 재주 말이요. 어떻게 꼬셨으면 미스 최가 《아리랑》을 다 읽어요?” “미스 최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문예반에 들어갔다네요. 방통대의 국문과에 1년 다니다가 중퇴했다나 봐요.” “그래도 그렇지요. 아마 미스 최가 김 교수에게 마음이 있는가 봐요. 김 교수, 조심해야겠어요.” “예, 조심해야지요. 그러나 자신이 없네요.” “그럼 뜨겁게 연애를 한번 해봐요. 우리 나이에는 젊은 아가씨하고 연애하면 젊어진다고 합디다. 소녀경(素女經)에도 있지 않소. 젊은 여자와 관계하면 젊은 기를 빨아들여 젊어진다고.” “대학교수가 돈은 없고. 우리는 한 달에 한 번만 만나기로 했어요. 매달 《아리랑》 한 권을 읽은 뒤에 연락하기로 했지요. 아리랑이 모두 12권이니까 최소 일 년은 만날 수 있겠네요. 아리랑이 끝나면 《태백산맥》으로 넘어가야지요.” “《태백산맥》은 몇 권짜리요?” “열 권이지요.” “꿈도 야무지시네.” “인생이란 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