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 = 이한꽃 기자] 광주 3.1운동의 발원지 수피아의 자존심 박애순 이윤옥 빛고을에 어둠 드리워 한치 앞을 볼 수 없으매 흰 옥양목 치마 찢어 남몰래 그린 태극기 높이 들고 수피아의 어린학생 이끌어 밀물처럼 장터로 뛰쳐나갔네 쌀장수는 됫박 들고 엿장수는 가위 들고 부둥켜안고 외친 광복에의 절규 무등산 너머 백두대간으로 뻗쳐올랐네 피 끓는 그 함성 넘치던 기개 태고의 강렬한 빛으로 뭉쳐 활화산처럼 타올랐어라 그 불씨 당긴 수피아여! 그 이름 영원히 기억하라! ▲ 박애순 애국지사 ▲ 수피아여학교 학생들이 만세운동을 부르며 달려 나오던 서문통 골목 박애순 (朴愛順,1896.12.23 ~ 1969. 6.12) 매일신보 1919년 4월 17일 치에는 광주지역 3.1운동 관련자 공판 기사가 다음과 같이 실려있다. 광주지방법원에서 31독립운동관련자 김복현, 김강, 최한영, 서정희, 박길상, 박애순등 80여 명에 대한 공판이 열렸다. 독립만세운동 혐의로 광주관헌(光州官憲)에 검거 된 자는 3월 11일 이후 99명에 달하였고 관련자 김복현은 나주에서 왔으며 기타는 광주예수교학교(光州耶蘇敎學校)졸업자이고 박애순(朴愛順)은 예수교학교 여교사이다.
[그린경제 = 이윤옥 기자] 압록강 너머 군자금 나르던 임시정부 안주인 '정정화' 이윤옥 장강의 물은 그냥 흐르는 것이 아니다 지금 사람들 강물 위에 배 띄워 노래하지만 물의 근원을 캐는 사람은 없다0 혈혈단신 여자의 몸 압록강 너머 빼앗긴 조국 땅 오가며 군자금 나르던 가냘픈 새댁 그가 흘린 눈물 장강을 채우고 넘친다 돌부리에 채이면서 몇 번인가 죽을 고비 맞으며 수십 성상 국경 넘나든 세월 거친 주름 되어 골마다 패어있다 바닥난 뒤주 긁어 배고픈 독립투사 다독이며 가난한 임시정부 살림 살던 나날 훈장 타려 했었겠나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뛰어온 구국의 일념 압록의 푸른 물 너는 기억하겠지. ▲ 시화 이무성 한국화가 정정화(鄭靖和, 1900.8.3~1991.11.2) 26년이라는 전혀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나는 임시정부와 같이 살았다. 백범의 말대로 거지나 다름없는 상해 시절 어느 때는 이동녕, 차리석, 이시영 같은 분들과 시장 뒷골목에서 동전 한 닢짜리 중국 국수 찌꺼기를 달게 사먹기도 했고 등 뒤로 왜놈의 기관총 쏘는 소리를 들으며 임정의 피난 짐보퉁이를 싸기도 했다. 이동녕 선생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지켜볼 때나 백범 부인 최준례 여사의 식
[그린경제=이윤옥 기자] 열여섯 조선의용대 처녀 독립군 - 전월순 이윤옥 여산 안개 젖히고 대륙의 젖줄 장강 따라 흘러든 곳 계림 동령가 칠성공원 푸르른 숲 속엔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지만 칠십여 년 전 이곳은 항일기치 높이 들고 분연히 일어난 조선의용대 피 끓는 동포들 모여들던 곳 열여섯 꽃다운 처녀 독립군 되어 시퍼런 일본군 정보 캐러 다니며 넘나들던 계림의 구중 계곡 골짜기 휘몰아치던 중원의 흙바람 먼지 일며 조여 오던 일본군 총칼 앞에 결코 굽히지 않아 우리는 한국 독립군 조국을 찾는 용사로다 나가! 나가! 압록강 건너 백두산 넘어가자 힘찬 압록강 행진곡 목 터져라 부르며 다잡은 광복의 투지 그 선봉장 되신 이여 왜놈들 두려워 벌벌 떨던 의열단 청년 만나 맺은 가약 혼수도 신혼 꿈도 모두 바쳐 되찾은 조국 땅에서 장가계 원가계 계림의 산수구경 가는 사람들아 뾰족뾰족 솟은 기암괴석 올려다볼 때 골짜기 굽이마다 광복군 심은 얼 잊지 마시게.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 조선항일의용군(朝鮮抗日義勇隊) 혹은 국제여단(國際旅團)이라고도 불렸으며 대장 김원봉과 조선민족혁명당의 주도로 1938년 10월 10일 중국 한커우(漢口)에서 결성된 독립군이다. 중국의
[그린경제= 이윤옥 기자] 일제의 여공 착취에 항거한 오뚜기 이효정 이윤옥 나라가 없는 판에 시험이 다 무엇이냐 백지동맹 앞장서던 겁 없는 열여섯 처녀 광주학생 만세 함성 듣고 피 끓어 떨치고 일어선 종로거리 만세운동 경성 트로이카 열혈 청년 이재유 도와 노동자 권리 찾다 고등계형사에 잡혀 갖은 고초 당했어도 의연한 자세 죽음을 불사한 민족차별 철폐 운동 후회는 없어 폐병 견뎌가며 쟁취한 해방된 이 땅에서 안락을 구걸한 적 없다마는 사회주의 남편 빨갱이로 몰려 숨죽여 살던 삶 어린 삼남매 부여잡고 떠돌던 시절을 더는 묻지 말라 영혼 떠나버린 빈 껍질 홀로 추슬러 마산 딸네 집 허름한 뜨락의 이름 없는 들꽃을 사랑하다 시집 한 권남기고 홀연히 떠난 자리 오늘도 목백일홍 저 혼자 외롭게 피어있네. ▲ 해방된 조국에서 푸대접을 받으면서 시와 벗하며 지은 시집 이효정(李孝貞, 李春植, 1913.7.28~2010.8.14) 1930년대 초 서울에서 노동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효정 애국지사는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친구들과 함께만세를 부르다가 종로경찰서에 구속되었다. 졸업 후에는 노동운동에 참여하였는데 1933년 9월
[그린경제=이윤옥 기자] 수원의 논개 33인의 꽃 “김향화” 이 윤 옥 하얀 소복 입고 고종의 승하를 슬퍼하며 대한문 앞 엎드려 통곡하던 이들 꽃반지 끼고 가야금 줄에 논다 해도 말할 이 없는 노래하는 꽃 스무 살 순이 아씨 읍내에 불꽃처럼 번진 만세의 물결 눈 감지 아니하고 앞장선 여인이여 춤추고 술 따르던 동료 기생 불러 모아 떨치고 일어난 기백 썩지 않은 돌 비석에 줄줄이 이름 석 자 새겨주는 이 없어도 수원 기생 서른세 명 만고에 자랑스러운 만세운동 앞장섰네 김향화 서도흥 이금희 손산홍 신정희 오산호주 손유색 이추월 김연옥 김명월 한연향 정월색 이산옥 김명화 소매홍 박능파 윤연화 김앵무 이일점홍 홍죽엽 김금홍 정가패 박화연 박연심 황채옥 문롱월 박금란 오채경 김향란 임산월 최진옥 박도화 김채희 오! 그대들 수원의 논개여! 독립의 화신이여! ▲ 청초한 김향화 모습(사진 게옹, 수원박물관 이동근 전문위원) 김향화(金香花, 1897. 7. 16~ 미상) 김향화를 비롯한 수원기생들은 고종 임금이 돌아가셨을 때도 나라 잃은 설움을 토해내었다. 당시 고종 임금의 승하 발표가 나자 기생, 광대, 배우들은 모두 휴업을 하고 근신에 들어갔다. 그리고 덕수궁
[그린경제=이윤옥 기자] 개성 31 만세운동을 쥐고 흔든 투사 어윤희 이 윤 옥 동학군 앞장선 남편 신혼 3일 만에 왜놈 칼에 전사한 뒤 나선 독립투사 길 저 앙큼한 년 저년을 발가벗겨라 협박 공갈하는 순사 놈 앞에 서서 스스로 홀라당 옷을 벗은 그 용기 이화학당 어린 유관순 함께 잡혀 먹던 밥 덜어주며 삼월 하늘 우러러 보살핀 마음 만세운동으로 군자금 모집으로 애국계몽운동으로 헐벗은 고아의 어머니로 살아낸 꺼지지 않는 불꽃 여든 해 삶 마치고 돌아가던 날 내리던 희고 고운 눈 순결하여라. ▲ 개성 31 만세운동을 쥐고 흔든 독립투사 어윤희 시화(시 이윤옥, 시회 이무성) * 어윤희(魚允姬, 1877.6.30~1961.11.18 ) 어윤희 애국지사는 당시 만세운동과 연루되어 형사들이 수갑을 채우려 하자, 천하 만방에 여자에게 수갑을 채우는 나라가 일본 말고 또 어디에 있느냐? 당신들이 내 몸을 묶어갈망정 내 마음은 못 묶어 가리라하고는 땅에 동그란 원을 그리고 그 안에 서서 여기 며칠을 서 있으라 해도 그대로 서 있을 나다.라고 오히려 당당히 큰소리를 치며 형사들을 기죽게 하였다. *어윤희 애국지사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서간도에 들꽃 피다1권에
[그린경제=이윤옥 문화전문기자] 중국 대륙 여자 광복군 맏언니 오광심 이윤옥 대륙의 찬바람 속 광복이 무엇이드냐 변절자의 방화로 심한 화상입고 바위굴 숨어들 때 놀란 박쥐들 퍼덕이며 날아갔었지 어제는 유화현 삼원포 민족교육 겨레 혼 심고 오늘은 눈보라 속 독립군 행진에 앞장선 이여 북녕 철로 산해관 넘어 북만주 땅 찾아가는 길 철통같은 일본군 수비대 따돌리고자 중국인 아낙으로 변장이야 했다지만 품속의 비밀문서 들킬까 통째로 외워버린 지략 만주에서 불호령 치던 유격대 출신 높은 기개 안휘성 부양에서 지하공작 선봉장 되어 열대여섯살 어린 독립군 보듬으며 광복군 후예 길러 낸 자상한 맏언니 해방된 조국에서 금의환향 바란 바 없지만 대륙을 호령하던 열혈 독립투사 빛 찾은 고국에서 갈 곳 없어 떠돌다 차디찬 골방에서 숨져갈 줄이야. ▲ 부부 독립운동가 오광심, 김학규 애국지사 오광심(吳光心, 1910.3.15~1976.4.7) 임시정부에서 활약한 남편 김학규와 함께 부부 독립운동가이다. 특히 만주사변 이후 일본의 막강해진 군사력을 피해 만주벌에서 악전고투하던 한국 독립군들은 활동 근거지를 점차 중국 관내로 이동해야만 했는데이때 김학규와 오광심 애국지사는 독립군
[그린경제=이윤옥 문화전문기자] 평남도청에 폭탄 던진 당찬 임신부 안경신 이 윤 옥 토지수탈 앞잡이 동양척식회사에 폭탄 던진 나석주 조선인 잡아 가두던 종로경찰서에 폭탄 던진 김상옥 상해 홍구공원 대 쾌거 윤봉길 도쿄 황거 앞에서 폭탄 던진 김지섭 이봉창 의사 제국주의 무모한 만행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여자의 몸 뒤질세라 치마폭에 거사 이룰 폭탄 몰래 숨겨 들여와 신의주 철도호텔, 의천경찰서, 평남도청에 던진 그 용기 꽃다운 스물세 살 임신부 폭탄 들어 평남도청 향해 힘껏 던지던 날 하늘도 놀라고 땅도 놀라고 온 천지가 부들부들 떨었다네 갓 낳은 핏덩이 끌어안고 왜경에 잡혀 철창 속에 갇혀서도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게 무슨 죄냐고 쩌렁쩌렁 호령하던 열사 출옥 후 핏덩이와 간 곳 알 수 없지만 어느 이름 모를 곳에서 또 힘차게 대한독립만세 외치며 그 투지 불태웠을 테다 불태웠을 테다. ▲ 여자폭탄범이란 기사로 대서특필한 1921.5.2 동아일보 안경신(安敬信, 1877~미상) 31 만세운동 때도 참여하였지만 그때는 큰 효과를 내지 못했다. 나는 일제 침략자를 놀라게 해서 그들을 섬나라로 철수시키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곰곰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곧
[그린경제 = 이윤옥 문화전문기자] 독립운동가 3대 지켜 낸 어머니 '김락' 나라의 녹을 먹고도 을미년 변란 때 죽지 못하고 을사년 강제 조약 체결을 막아 내지 못했다며 스무나흘 곡기를 끊고 자결하신 시아버님 아버님 태운 상여 하계마을 당도할 때 마을 아낙 슬피 울며 하루 낮밤 곡기 끊어 가시는 길 위로 했네 사람 천석 글 천석 밥 천석의 삼천 석 댁 친정 큰 오라버니 백하구려 모여든 젊은이들 우국 청년 만들어 빼앗긴 나라 찾아 문전옥답 처분하여 서간도로 떠나던 날 내앞 마을 흐르던 물 멈추어 오열했네 의성 김 씨 김진린의 귀한 딸 시집와서 남편 이중업과 두 아들 동흠 중흠 사위마저 왜놈 칼 맞고 비명에 보낸 세월 쉰일곱 늘그막에 기미년 안동 예안 만세운동 나간 것이 무슨 그리 큰 죄런가 갖은 고문으로 두 눈 찔려 봉사 된 몸 두 번이나 끊으려 한 모진 목숨 11년 세월 그 누가 있어 한 맺힌 양가(兩家)의 한을 풀까 향산 고택 툇마루에 걸터앉아 흘러가는 흰 구름에 말 걸어본다 머무는 하늘가 그 어디에 김락 여사 보거들랑 봉화 재산 바드실 어르신과 기쁜 해후 하시라고 해거름 바삐 가는 구름에게 말 걸어본다. 김락(金洛,1863.1.21~1929. 2.12
[그린경제 = 이윤옥 문화전문기자] 무명지 잘라 혈서 쓴 남자현 이윤옥 나라가 망해 가는데 어찌 홀로 집에 있으랴 핏덩이 아들 두고 늙으신 노모 앞서 죽음 택한 의병장 남편 왜놈 칼 맞아 선연히 배어든 피 묻은 속적삼 부여잡고 울 수만 없어 빼앗긴 나라 되찾고자 떠난 만주 땅 곳곳에 병들고 상처받은 동포들 삶 보살피고 어루만진 따스한 손 왜적 무토부요시를 응징하고 왼손 무명지 잘라 조선독립원(朝鮮獨立願) 혈서 쓰며 부르짖은 조국광복 만리타향 감옥에서 단식으로 숨 거두며 동지에게 남긴 마지막 한마디 말 만일 너의 생전에 독립을 보지 못하거든 너의 자손에게 똑같은 유언을 하라 최후의 한 명까지 남아 조국광복을 기필코 쟁취하라 당부하던 여장부 아! 조선 천지에 이만한 여걸이 어디 또 있으랴! ▲ 무명지를 잘라 혈서를 쓰는 남자현 애국지사 (이무성 한국화가 부채그림) 남자현(南慈賢, 1872.12. 7~1933. 8. 22) 19살 때 경북 영양군 석보면 지경동에 사는 의성 김씨 김영주에게 시집 가 단란한 생활을 꾸렸으나 일제의 만행이 점차 극성을 부리자 남편 김 씨는 1896년 여사에게 나라가 망해 가는데 어찌 집에 홀로 있을 것인가. 지하에서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