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즈믄해를 몰고 온 바람 소리
고마부에(高麗笛) 타고
가슴을 파고드는 밤
꺼진 듯 사라진 고구려 혼
레이가쿠샤 손끝에서
다시 부활한 날
동대사 대불전 앞
고구려 고승들
깊은 시름 딛고
다시 돌아올 고구려 영광
되새겼으리. - 이한꽃 ‘고마부에(高麗笛)’-
*고마부에(高麗笛) : 고구려피리
*레이가쿠샤(伶楽舎): 일본아악을 연주하는 단체로 1985년 결성
*동대사 대불전: 752년 개안 공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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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續日本紀> 731년 7월 29일자 기록. "“아악료(雅樂寮)에 소속하는 악생(樂生)의 정원은 대당악 39명, 백제악 26명, 고구려악8명, 신라락 4명, 탐라악 62명”이라고 나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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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즈문해를 몰고 온 바람 소리가 국립국악원 우면당을 가득 메운 밤이었다. 모든 근심과 걱정을 잠재운 천년의 소리 고마부에(高麗笛)는 그렇게 시공간을 넘나들며 관중들을 매료 시켰다. 18일(수)저녁 8시,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는 아주 특별한 공연이 있었다. “아악, 한·일 영혼의 울림 특별공연”이 그것이다.
국립국악원이 한·일 양국의 국교정상화 50주년을 기념하여 아악(雅樂)을 주제로 한 공연을 마련한 자리에 기자가 청중으로 참석한 것은 평소 일본의 역사에 깊은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1284년 전에 만든 일본의 정사(正史)인 <속일본기(續日本紀)> 731년 7월 29일자 기록을 보면,
“아악료(雅樂寮)에 소속하는 악생(樂生)의 정원은 대당악(大唐樂) 39명, 백제악(百濟樂) 26명, 고구려악(高麗樂)8명, 신라락(新羅樂) 4명, 탐라악(耽羅樂) 62명...” 등 일본 왕실에 악사를 둔 내용이 있다. 뿐만 아니라 740년 12월 4일조에는 "왕실에서 신라악을 연주하게 했다", 744년 2월 22일에는 "백제악을 연주하게 했다" 라는 기사 따위가 빈번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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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왕실 소속 악사 가운데는 고구려, 백제, 신라 출신의 악사가 많았고 특히 탐라 곧 제주 악사도 무려 62명이나 되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러한 고대한반도 출신의 악사들의 활동은 고마가쿠(高麗樂, 고려라고 쓰고 고마라고 읽으며 고구려를 뜻함)라는 장르로 분류되어 현재까지도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날 연주된 아악(雅樂, 가가쿠)은 일본 열도에 전해지던 본토 음악과 춤, 그리고 중국과 한국에서 건너간 음악과 춤이 섞여 있는데 특히 8세기에 무렵에 고대 한반도에서 건너간 고구려, 백제, 신라 음악과 춤이 고마가쿠(高麗樂)라는 장르로 이어져 온 것으로 모두 7곡이 연주 되었다.
연주를 맡은 레이가쿠샤(伶楽舎)는 일본왕실 소속의 궁내청 아악부에서 활동하던 악사들이 주축이 된 단체다. 이날 연주한 곡 가운데 4곡이 고마가쿠(高麗樂)이며 이 밖에도 아악곡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에덴라쿠(越天樂)와 752년에 열린 일본 동대사 대불 개안공양회에서 연주 되었다는 ‘바이로’ 연주, 그리고 춤과 음악이 어우러진 ‘라쿠손’ 등이 선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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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마가쿠(高麗樂) 연주곡 가운데 춤과 함께 이어진 ‘라쿠손’ |
인상 깊은 곡은 일본 왕실의 보물창고인 정창원에 전하는 덴표비와후(天平琵琶譜)의 ‘반카소’ 연주였다. 덴표비와후(天平琵琶譜)는 천평(天平 19년, 747) 연도가 적힌 사경료 영수증 뒷면에 적혀있던 악보로 이번 연주단인 레이가큐샤의 총 예술 감독 시바 스케야스 씨가 복원한 곡이다. 연주는 비파와 이 곡 연주를 위해 복원된 악기가 이용되어 덴표시대의 소리를 재현했다.
특히 이 곡이 연주될 때 기자는 감회가 새로웠는데 그 까닭은 나라(奈良)의 대표절인 동대사를 창건한 사람이 백제계 행기스님이며 초대 주지 역시 백제 출신 양변스님(良弁, 689-774) 등 고대 한반도 스님들과 깊은 인연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불상인 동대사 비로자나불 개안 공양 때 연주되던 곡을 복원한 것이라서 다른 어떤 곡보다도 관심 있게 들었다.
마지막 고마가쿠(高麗樂) 연주곡은 춤과 함께 이어진 ‘라쿠손’ 이었다. 연주에 맞춰 추는 춤을 혼자 추면 라쿠손이라하고 둘이 추면 나소리라고 하는데 이날 춤은 라쿠손이었다. 고대로부터 이어진 라쿠손은 음악과 무용으로 잘 알려진 곡으로 마치 처용무를 연상케 하는 춤동작을 고마가쿠(高麗樂)에 맞춰 추는 모습을 보면서 기자는 다시 한 번 천여년 전 고구려 음악을 일본에 전한 악사들을 떠올렸다.
130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도 일본 왕실에 전해진 고대 한반도 악사들의 수준 높은 음악과 무용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이날 우리 앞에서 ‘울림의 소리’,‘ 영혼의 소리’로 재현되고 있으니 그 누군들 감격에 젖지 않으랴!
전석 무료 초대석임에도 우면당의 객석은 빈 좌석 하나 없이 고마가쿠(高麗樂)연주를 들으러 온 사람들로 가득 찼다. 정연희 씨(52살)는 "고대한반도 음악이 일본에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백제를 비롯한 고대 삼국의 문물이 전해져 오늘의 일본을 이뤘다는 것은 익히 알았지만 이렇게 고마가쿠(高麗樂)라는 장르로 남아 오늘 직접 연주를 들으니 가슴이 먹먹한 느낌이다. 선율하나도 놓치지 않고 들었다. 아주 훌륭한 연주였다"고 했다.
연주도 흠잡을 곳 없이 완벽했지만 일본 고대사를 공부하는 기자에게는 <일본서기>와 <속일본기> 속에서 자주 접했던 고대한반도인들의 활약 가운데 특히 ‘일본 왕실의 가무(歌舞) 역사’의 토대를 마련한 조상들을 만난 듯 연주가 이어지는 내내 맨 앞줄에 앉아 눈과 귀를 뗄 수 없었다. 그리고 1300여 년 동안 소중한 고마가쿠(高麗樂)의 전통을 이어온 일본인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공연장을 빠져나온 뒤에도 내 가슴 속에는 여전히 고마부에(高麗笛, 고구려피리로 고마부에라고 부름)의 가늘고 긴 여음이 파고들었다.
이번 공연은 서울(국립극장 우면당, 18일)과 부산(국립부산국악원 예지당, 19일)에서 각각 있었고 국립국악박물관 기획전시실 3층에서는 12월 27일까지 이번 공연에 선보인 일본의 아악 악기들이 전시된다. (문의:02-580-3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