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굵은 수도관에 여러개의 수도꼭지가 달려있다. ▲ 수도꼭지에 나무로 마개를 만들어 달아 사용중에는 빼고 사용하고 난 다음에는 막았다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로마 폼페이에서 발굴된 청동제 수도꼭지이다. 굵은 수도관의 끝에는 여러개의 수도꼭지가 달려있어 여러사람이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도꼭지는 지금의 수도꼭지처럼나사를 파서 손잡이를 열고 닫을 수 있게 하지는 않았고, 물이 나오는 수전의 윗쪽에 구멍을 내서청동마개를 만들어사용할때만 뚜껑을 빼서 열었다가, 사용을 한 뒤에는 뚜껑을 막아, 물의 허비를 방지했다. 2000년 전에도 이렇게 깨끗한 물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였다. 로마제국의 도시문화와 폼페이전' 2015년 4월 5일까지 전시. 최우성(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자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북촌한옥마을 가옥 보수설계, 혜화동주민센타 개보수설계,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
▲ 홍살문 밖에서 본 명릉의 전경 ▲ 홍살문 안에서 본 명릉의 전경 ▲ 정자각에서 본 능상의 모습 ▲ 능의 아래에서 본 석물들(문인석 무인석 석마 망주석) ▲ 숙종과 인현왕후의 쌍릉 ▲ 문인석 무인석 그리고 망주석 석마 ▲ 장명등 ▲ 숙종과 인현왕후의 능 주변에 있는 난간석 ▲ 무인석 ▲ 문인석 ▲ 숙종과 인현왕후의 능 뒤에서 본 전경 ▲ 숙종과 인현왕후의 능에서 본 인원왕후의 능 ▲ 인원왕후의 능에서 본 숙종과 인현왕후의 능 ▲ 인원왕후의 능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서오릉이란 조선의 수도였던 한양을 중심으로 볼 때 서쪽에 5기의 왕릉이 있다는 뜻으로, 한양의 동쪽에 9기의 능이 있는 곳을 동구릉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것인데 그것이 이름이 된 것이다. 이 1600년대 조선에 살던 많은 사람들이 당쟁의 격랑 속에 죽음을 당하였고, 왕비로 살던 사람도 한 사람은 사약을 받고 죽었다. 그런 까닭에 후세들에게는 왕좌를 둘러싼 이야기 거리가 많아 지금에 와서도 드라마의 소재가 되어 서민들에게 안방극장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이미 여러 차례 걸쳐 영화도 되고 드라마도 되었지만, 그 때마다 흥행에 성공하니 영화나
▲ 부조-1. 도끼를 들고 있는 모습 사람의 모습은 측면으로 보인다. 이는 이집트시대 조각기법을 그대로 보여준다. ▲ 부조-2 몸의 형태가 그대로 드러나는 옷을 입고 오른손에 물건을 들고 있는 모습 ▲ 부조-3 ▲ 부조-4.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로마시대 폼페이에서 발견된 부조 조각상들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니 바로 어제 만든 것 같다ㅏ.이것들은 신전의 벽면을 장식한 부조로,부조의 기법은 매우 섬세하고 인물의 형태와 머리모양 그리고 옷주름이 매우 사실적이고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도끼와 창을 들고 있어도 무장이었으면 갑옷과 투구등으로 몸을 감쌌을 터인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들이 가지고 있는 물건들은 신전의 의식에 쓰이는 도구로 보인다. 모두가 오른 손에는 신전의 의식에 쓰이는 물건들을 들고 있고, 얼굴은 모두 측면상을 나타내고 있다. 얼굴이 측면상인 것은 이집트회화에서도 보이는 기법이다. 인물들의머리는 곱슬머리인데 남자도 머리를 자르지 않고 길렀다. 긴 머리를위로 틀어올려 테를 둘러 흘러내리지 않게 묶었으며 묶은 머리의 일부가 뒷쪽으로 흘러내린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발에는 신발을 신지 않고 맨발인 모습이 특이하다. 국립중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폼페이 도심지 사람들이 살던 집안이나 신전에 다양한 그림들이 있었다. 집안에 들어서면 중정이나 정원의 벽에 그려진 그림도 있고, 신전의 벽에도 그림이 그려졌다. 그 회화기법은 그리이스에서 완성된 회화기법을 이어받아,벽돌벽면에 회칠로 면고르기를 한 뒤에 밑그림을 그리고 물감으로 색을 칠하는 기법이 많은데 이는 고구려 고분벽화의 기법과 유사하다. 그런데 차이점은 고구려 고분벽화는 매우 상징적 생략기법이 많이 사용된 것에 견주어 로마의 그림들은매우 사실적인 형태로 그린그림으로 고구려 고분벽화와는 대조적이었다. 풍경을 그린 그림도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을 거의 그대로 묘사하였다. 특히 사람의 신체를 그린 그림에서도 이상적인 각부분의 비례와 인체의 아름다움을 추구한 모습에서 완성된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이상적 인간의 모습에서 신의 모습을 보려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중 2015년 4월 5일까지 최우성(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자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북촌한옥마을
▲ 술을 담아 보관하던 그릇들 ▲ 물을 담아 보관하던 그릇들-1 ▲ 물병-2 ▲ 요리용 그릇 ▲ 그릇의 윗부분 장식 ▲ 요리용 그릇 ▲ 다양한 용도의 그릇 ▲ 그릇의 윗부분 ▲ 유리병 ▲ 유리병 ▲ 기타 그릇들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로마인들은 다양한 그릇을 사용했다. 당시에는 표면을 반짝이게 빛나게 하는 유약이 개발되지 않아서우리가 보는청자나 백자 같은 자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표면을 보호하는 유약이 칠해져 있었다. 그 도기들의 색은 짙은 밤색이 대부분이지만 흙을 구워서 그대로 쓰지 않고 유약을 칠하여 도기의 표면에서 내부로 내용물이 스며들지 않게 했으며, 높은 온도에 구워 그 강도도 상당히 높였다. 동양에서도 2000년전 그릇이 있었으며 그 대부분은 토기다. 그러나 그 무늬나 모양은 다양하지 않았다. 그런데 로마인들이 사용하던 도기들은 그 형태도 다양하고 장식도 꽤 멋스럽게 되어있는 게 특이하다. 또 당시 로마에는 유리세공술도 매우 발달하였다. 모래를 녹여서 유리를 만들줄 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전시된 유물 중 유리그릇은 크기도 꽤 컷고, 곡선으로 가공한 그릇의아름다움도 놀랄 정도였다. 폼페이 최후의
▲ 청동등잔받침으로 등잔을 2개 받칠 수 있게 되었다.사자의 발모양으로 4귀퉁이를 받치고 있는 기단위에 사람과 말의 혼합상인 켄타우르스 조각상이 서서오른손에 낫을 들고 있고, 양쪽의 등잔 받침위에 등잔을 놓았다. ▲ 청동 등잔 ▲ 흙으로 구워서 만든 등잔-1 ▲ 흙으로 구워서 만든 등잔-2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폼페이 최후의 날에 화산폭발로 삶의 현장이 그대로 화석화 되어버린 뒤에 까마득히 잊혀졌던 당시의 유물들이 그대로 들어났다 귀족들의 생활상은 지금 우리가 보아도 전혀 뒤지게 보이지 않은 화려한 것들인데 조각의 기법도 무척이나 세련되었다. 그들이 사용하던 일상의 것들중에 집안을 밝히는 등잔들 또한 무척이나 아름답고 인상적이었다. 청동으로 만든 등잔이나 흙으로 만들어 구운 등잔, 청동으로 주조하여 만든 등장받침 등은 현대 조각가들도 쉽게 만들지 못할 것 같은 것들이었다.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중. 04월 5일까지 전시예정 최우성(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자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북촌한옥마을 가옥 보수설계, 혜화동주민센타 개보수
▲ 비너스상. 그리이스 조각기법을 그대로 계승한 듯 ▲ 청동인물상 포비디우스 가문의 인물로 추정 ▲ 대 저택의 집주인의 두상으로 추정 ▲ 여인의 두상 ▲ 정원의 조각상 ▲ 남자의 전신상 ▲ 청동인물상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국립중앙박물관 폼페이 발굴 유물전에 전시된 인물상들이다. 아름답고 세밀한 조각기법이 뛰어나 2000년 전의 조각상이 아니라 현대 조각가의 작품이라고 하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조각상들에 감탄이 절로 나는 작품들이다. 석조와 청동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은 서양예술의 진수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서양미술은 이집트의 조각기법이 그리이스로 전해지고 그리이스의 기법은 로마로 전해졌다. 그런데 그리이스는 각 각의 폴리스들이 도시국가를 이루면서 자신들이 추앙하는 신들을 위하여 신전을 짓고 자신들의 신들을 가장 사실적이고도 아름답게 조성하였다. 그 조각기법은 로마가 그리이스를 정복함으로써 그대로 로마에 전수되었다. 한편 그리이스의 조각기법은 파키스탄 지역을 정벌했던 알렉산더대왕에 의해 파키스탄 간다라지역에 전수되어 불상의 출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 불상의 조각기법이 없었으면 지금 중국이나 한국에도 불상이 없었을지 모르
▲ 화산연기 속에 몸부림치는 개 ▲ 업드려서 최후를 ▲ 코를 막고 외롭게..무척이나 냉정한 자세이다. ▲ 화산지옥-1 ▲ 화산지옥-2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중인폼페이 발굴유물전에 다녀왔다.2000년 전 번성했던 로마의 한 도시였던 폼페이 근처에있던 베스비우스 산의 분화구에서 화산이 폭발하여 용암과 화산재 그리고 유독가스가 분출하여 그동안 로마최고의 문화생활을 하던 폼페이는 지상의 천국에서 아비지옥유황불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최후의 화산이 폭발한 때는 기원후 79년 8월 24일부터 하루동안이었고 그 이전에는 기원후 62년 격렬한 지진을 경험하여 그곳이 지진지대임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들이 살던 삶의 터전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인간의 습성 때문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험한 곳임을 알면서도 그곳을 떠나지 않고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전에 화산이 폭발한 때는 기원전 7세기이니,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로나 들어서생각하고 있었다. 그후 700년이 지난 당시(기원후 79년)화산이 또 폭발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며 하루 하루를 바쁘게 살았다. 또 그런 재난이 닥칠 것을 알았다고 해도,자신의 모든 것이 있는
[한국문화신문 = 최우성 기자] 삶은 현실이다. 삶은 관념이 아니라 처절한 현실이다. 바다는 그런 현실을 깨달은 사람들의 것이다. 아낙들은 정직하다. 꾸밈이 없다. 성형으로 삶을 뭉개는 도시의 여자들과 근본이 다르다. 하루종일 허리 한번 못 펴고 조개를 캔다해도 도회지 여자들 카페에 앉아 홀짝 마시는 커피 한 잔 값도 안나올 때가 허다하다. 그래도 캔다. 조개는 돈을 위해 캐지 않는다. 꿈을 위해 캔다. 그 꿈은 때로 아들을 변호사로 만들고 딸을 선생으로 만든다. 손자놈 군것질 거리도 되고 바튼 기침내뱉는 서방님 약값도 된다. 조개는 삶이다. 1월의 바다도 갯마을 아낙에겐삶의 현장일 뿐이다. -삼천포 바닷가에서-
▲ 새벽 7시 동녘에 여명이 밝아오고 있다.이시간에는 태양의 위치를 잘 알 수가 없어서 우왕좌왕!! ▲ 방위를 나타내는 조형물과 바닷가 배조형물을 배경으로 해돋이를 기다린다. ▲ 모래밭에 포크레인 사이로 배조형물을 넣어본다 ▲ 붉게 변하는 하늘과 수평선 저 편의 태양을 기다리며 ▲ 검은 배조형물과 암벽사이 방파제로 찬란한 태양을 받아본다. [한국문화신문= 최우성 기자] 해가 바뀌어 2015년이 되었다. 그 햇수는 서양력으로 예수의 탄생이후 2015년이 되었다는 것인데, 우리 조상님들이 써오던 한겨레의 기원으로 치면 2015+2333=단기4348년이 되고, 부처님의 입멸을 기준으로 한 불기는 2015+544=불기 2559년이 된다. 그 기준에 따라 기원의 시작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해가 바뀌었다는 것은 어찌보면 사람의 셈법상으로 볼 때 새롭게 정한 날짜의 시작을 의미할 뿐, 태양의 입장에서는 하등의 변화를 느끼기 어렵고, 우주적 관점에서는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자전축이 23.5도 기울어져 태양의 주변을 1년이라는 주기를 두고 한바퀴씩 돌고 있기에 지구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계절이 생기는 것이고, 그러다 보니 하루도 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