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모처럼 집을 떠난 남자들은 새장에서 벗어난 새 같은 기분이 되었다. 가장의 책임과 교수의 의무를 벗어나 모두 홀가분한 자유를 느끼게 되었다. 저녁식사 뒤에 집을 떠난 남자들은 자연스럽게 술집에 갔다. 서울에서 술집에 가면 룸에 들어온 아가씨가 혹시 학생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없지 않아 있다. 이러한 불안감은 사실 근거가 있다. 장 교수의 말에 따르면 어느 날 사업하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자기가 술집에서 만나 사귀던 아가씨가 너희 학교 학생인데 요즘은 잘 만나주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그 친구는 아가씨의 이름을 대면서 전화번호를 알아봐 줄 수 있겠느냐고 부탁하더란다. 김 교수도 그런 비슷한 말을 주변의 몇 사람에게서 들었다. 술집에 갔는데 옆자리에 앉은 아가씨가 자기를 대학생이라고 소개하면서 학교와 학과까지도 스스럼없이 밝히더라는 것이다. 요즘 대학생은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아르바이트로 술집에 나가는 사람이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니 교수 처지에서는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다가 자기 강의를 듣는 학생이 우연히 술자리에서 옆에 앉게 된다면? 술맛 떨어지는 이야기이다. 교수라는 직업이 다른 것은 다 좋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우리 토박이말에는 이치를 밝히고 올바름을 가리는 일에 쓸 낱말이 모자라 그 자리를 거의 한자말로 메워 쓴다. 이런 형편은 우리말이 본디 그럴 수밖에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머리를 써서 이치를 밝히고 올바름을 가리는 일을 맡았던 사람들이 우리말을 팽개치고 한문으로만 그런 일을 했기 때문이다. 마음이 있으면 말은 거기 맞추어 생겨나는 법인데, 그들은 우리말에 도무지 마음을 주지 않았다. 조선 왕조가 무너질 때까지 이천 년 동안 그런 분들은 줄곧 한문으로만 이치를 밝히고 올바름을 가리려 했기에 우리말은 그런 쪽에 움도 틔울 수가 없었다. 안타까운 노릇은 이처럼 애달픈 일을 아직도 우리가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이치를 밝히고 올바름을 가리려는 학자들이 여전히 우리말로 그런 일을 하려 들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말이라야 우리 삶의 이치를 밝히고 우리 삶의 올바름을 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것이다. ‘슬기’와 ‘설미’는 그런 역사의 가시밭을 뚫고 끈질기게 살아남아서 이치를 밝히며 올바름을 가리는 몫을 해 주는 우리 토박이말이다. ‘슬기’는 임진왜란 뒤로 가끔 글말에 적힌 덕분에 무서운 한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답사 날자: 2024년 5월 27일(월) 답사 참가자: 김수용, 김혜정, 윤석윤, 이상훈, 전선숙, 최동철 (6명) 답사기 쓴 날짜: 2024년 6월 3일 효석문학100리길의 제3구간은 대화 땀띠공원~방림농공단지다. 평창군에서 만든 소책자에서는 이 길의 이름을 ‘강따라 방림 가는 길’이라고 이름 붙이고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굽이치는 대화천과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금당계곡이 합류된 평창강을 따라 고봉과 절벽이 조화된 멋진 경관을 연출하고 있는 구간으로 주변경관을 조망하며 강변을 따라 걷는 길이다. 특히, 제3구간은 제방길과 강변길로 이루어져 있어 자전거 투어를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주변의 산과 계곡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자연의 정취와 멋진 풍경을 가슴에 담을 수 있는 길이다. 제2-2구간의 도착지가 제3구간의 출발지가 된다. 땀띠공원은 지하수가 솟아 나오는 작은 연못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연못의 유래에 대해서 돌비석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땀띠물 由來 이곳 땀띠물은 그 名稱이 언제부터 유래된 것인지 文獻에는 기록이 없으나 옛부터 마을 주민들은 이곳을 찾아 몸을 씻으면 땀
[우리문화신문=안승열 명리학도] 삼라만상의 씨앗에서 분화된 개개의 존재 속에는 음양이 존재하며 그들의 함량비가 제각각 다양하다. 이들 만상의 에너지를 음양만으로 분별하기보다 좀 더 현실적으로 그들의 구성비도 살펴 다섯 종의 에너지(목기, 화기, 토기, 금기, 수기)로 “생기고 머물다 변하며 사라지는” 세상의 뭇 존재를 이해하고자 하였으니 이 같은 이론적 체계를 ‘오행론’이라 하였다. 그런데 왜 오기라 하지 않고 오행이라 했을까. 행(行)에는 “돌아다닌다”라는 뜻이 있어서 기의 순환을 표현하기 적당한 말이다. 행을 순환하는 가상의 공간이라고 생각하고 여기에 힘(목, 화, 토, 금, 수)이 실리고 그 힘이 원운동 순환(거리 이동)하여 에너지 (목기, 화기, 토기, 금기, 수기)가 된다고 3자의 관계를 정립하자. 자연계의 오행 인간계의 오행 간지의 오행 음기, 양기라는 표현과 별개로 영역이라는 표현을 쓸 때 목행ㆍ화행에 속하는 간지는 양의 영역에 있다하고 토행은 중의 영역, 금행ㆍ수행은 음의 영역에 있다고 말한다. 또한 같은 행에 속하는 천간과 지지를 좀 더 양적인 양간/양지와 음적인 음간/음지로 구별하기도 한다. 천간 지지가 상징하는 바는 고정불변이 아니다. 시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쉬다’와 ‘놀다’는 싹터 자라 온 세월이 아득하여 뿌리를 깊이 내렸을 뿐만 아니라 핏줄이 본디 값진 낱말이다. 핏줄이 값지다는 말은 사람과 삶의 깊은 바탕에서 태어났다는 뜻이고, 사람이 목숨을 누리는 뿌리에 ‘놀다’와 ‘쉬다’가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다. 사람의 삶에서 그처럼 깊고 그윽한 자리를 차지한 터라 여간 짓밟히고 버림받아도 뿌리까지 죽어 사라질 수가 없는 낱말인 것이다. ‘쉬다’는 ‘움직이다’와 짝이 되어 되풀이하며 사람의 목숨을 채운다. 엄마 배 안에 있을 때는 ‘쉬다’와 ‘움직이다’를 아주 잦게 되풀이하다가 태어나면 갑자기 되풀이가 늘어진다. 늘어진다 해도 갓난아기는 하루에 여러 차례 되풀이를 거듭한다. 배고프면 깨어나 울면서 움직이다가 젖을 먹이면 자면서 쉬는 되풀이를 하루에도 여러 차례 거듭하다가, 예닐곱 살을 넘어서면 드디어 하루에 한 차례 ‘쉬다’와 ‘움직이다’를 되풀이한다. 되풀이는 해가 뜨고 지는 것에 맞추어 밤이면 쉬다가 낮이면 움직인다. 이처럼 몸 붙여 사는 환경에 맞추어 되풀이하던 ‘쉬다’와 ‘움직이다’가 멈추면 사람의 목숨도 끝난다. ‘쉬다’와 ‘움직이다’는 삶에서 맡은 몫도 서로 짝을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다섯 번째 만남 김 교수 학과 교수들은 한 학기가 끝나면 수련회를 가는 전통이 있다. 교수 사회를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최고의 지성인들이 모여 있는 곳이 대학이다. 그러나 같은 학과 교수들끼리 화목하게 지내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서로 치고받고 싸우지야 않지만, 실력 있고 자존심이 높은 사람들이 모여서 그런지 사이좋게 지내는 집단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는 속담이 있다. 사람은 배울수록 겸손해야 되지만 실은 그렇지 못한 사람이 많아서 그런 속담이 생겼을 것이다. 모든 세상사에는 양면성이 있다. “고개 숙인 벼”라는 속담도 있지만 “제 잘난 맛에 사는 게 인생”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박사 학위를 딴 으뜸 지성인들이 모두 제 잘난 맛에 살기 때문에 함께 어울려 사는 데에는 미숙한 곳이 교수 사회이다. 그럼에도 김 교수의 학과 교수들은 매 학기 마지막 성적처리가 끝나는 날에 1박 2일로 수련회를 간다. 아마 대한민국에서 그런 전통을 가진 학과는 드물 것이다. 기말고사의 성적처리가 끝나기 전에 학과 회의에서 교수 수련회를 유성 온천으로 가기로 날짜를 잡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날이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아침 10시 15분 무렵, 대화성당에 다니는 전아폴로(아폴로는 아폴로니아의 준말로서 세례명임) 자매가 쉬어가자고 하면서 준비한 간식을 꺼낸다. 자매님은 오이를 썰어서 플라스틱 통에 담아왔다. 우리는 싱싱한 오이를 감사한 마음으로 먹었다. 먹는 사람이야 오이 한 조각이지만 준비한 사람의 정성이 고마웠다. 대화천 물가에는 노란 유채꽃과 애기똥풀, 그리고 하얀 당근꽃 등이 많이 피어 있었다. 때때로 엉겅퀴, 지칭개, 매발톱꽃도 보였다. 이제부터 여름을 거쳐 가을 서리가 내리기까지 들판에는 온갖 꽃이 계속 피어날 것이다. 하천 따라 계속 남쪽으로 내려가니 왼쪽에 고대동교라는 이름의 다리가 나온다. 오른쪽 산길로 올라가면 법장사라는 절이 나온다. 절 왼쪽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가면 거문산에 오를 수 있다. 나는 몇 년 전에 친구들과 이 길을 따라 거문산과 금당산을 등산한 적이 있다. 이틀 후인 5월 15일(음력으로 4월 8일)은 부처님 오신 날이어서 다리에서부터 연등이 걸려있다. 다리 앞쪽에 넓은 공간이 있고 잘 지어진 정자가 있다. 정자의 현판에는 ‘허생원이 머물던 곳’이라고 한글로 쓰여 있다. 허생원은 소설 <메밀꽃 필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박두진의 이름 높은 노래인 <해>는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이렇게 시작한다. 이 노래가 쓰인 1946년은 빼앗겼던 나라를 되찾은 때인데도,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는 아직 솟지 않았다고 느꼈던가 보다. 그러고 보면 반세기를 훌쩍 넘긴 지금도 남과 북은 갈라져 원수처럼 지내자는 사람들이 많고, 정권에만 눈이 어두운 정치인들은 힘센 미국만 쳐다보며 셈판을 굴리는 판국이니, 우리 겨레에게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는 여전히 솟지 않았다고 해야 옳겠다는 생각이 든다. 해는 솟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온통 ‘해가 뜬다’라고만 한다. 그렇다면 ‘솟다’는 무엇이며, ‘뜨다’는 무엇인가? ‘솟다’는 제힘으로 밑에서 위로 거침없이 밀고 올라오는 것이고, ‘뜨다’는 남의 힘에 얹혀서 아래에서 위로 밀려 올라오고 또 그 힘에 얹혀 높은 곳에 머무는 것이다. 그래서 ‘샘물’도 솟고 ‘불길’도 솟고 ‘해’도 솟는 것이지만, ‘배’는 뜨고 ‘연’은 뜨고 ‘달’은 뜨는 것이다. 샘물이 제힘으로 밀고 올라오고 불길도 제힘으로 밀고 올라오는 것은 알겠고, 배는 물의 힘에 얹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차를 마시며 이야기하다 보니 벌써 7시가 되었다. 새로 나가는 술집은 강남에 있는 라마다 르네쌍스 호텔 근처에 있다고 한다. 김 교수는 거기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제안했고 미스 최는 “오빠, 고마워요.”라고 화답했다. 김 교수는 카운터에서 계산하고 커피숍을 나섰다. 아가씨는 옆으로 오더니 자연스럽게 팔장을 끼었다. 김 교수는 속으로 걱정이 되었지만, 팔장을 뿌리치지는 못했다. 그날은 호텔 옆의 지상 주차장이 좁아서 뒤쪽 골목 건너편에 있는 3층짜리 주차건물에 주차했었다. 호텔 정문을 나와 뒤쪽 주차장까지 걸어가야 했다. 어두워진 길에는 사람들이 바쁜 걸음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김 교수는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어떻게 하나라고 은근히 걱정되어 슬그머니 팔짱을 뺐다. 아가씨가 쑥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역삼동 르네상스 호텔로 가는 길은 벌써 퇴근시간이 되어서인지 길이 막혔다. 서울거리가 안 막힐 때가 있나? 계속 차가 가지 못하고 서게 되자 김 교수는 걱정이 되살아났다. 반대편 차선에서 오는 차도 서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자연히 운전자끼리 눈이 마주쳤다. 대개는 남자가 운전을 하지만 차가 늘어나서인지 여성 운전자도 더러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산에 있는 활엽수들은 이제 거의 다 새잎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싱싱한 연두색 기운이 새잎에서 힘차게 뿜어져 나온다. 사람으로 견주면 십 오륙 살의 소년 같다고 할까? 참으로 좋은 계절이다. 5월은 계절의 여왕이라는 표현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조그만 다리, 구룡교를 건너간 일행이 가지 않고 서 있다. 내가 오기를 기다린다. 다리를 지나서 길이 양쪽으로 갈라지는데 이정표가 없어서 나를 기다리는 것이다. 나는 며칠 전에 사전 답사 차 이 길을 갔기 때문에 알고 있다. 오른쪽으로 가면 마을을 지나는 길이고, 왼쪽 길은 하천 둑길이다. 두 길은 조금 지나 다시 만나므로 어느 길로 가든지 길을 잃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처음 걷는 답사객은 불안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평창군 담당자에게 이곳에 표지판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여기서 질문 하나. 이효석은 어느 쪽 길을 걸었을까? 이효석은 마을로 난 길을 걸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걷는 길은 마을과 마을을 잇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콘크리트 둑길은 최근에 하천정비공사를 하면서 만들었을 것이다. 옛날 길은 직선보다는 곡선이 많다. 곡선은 자연을 따라 만들어진다. 옛날의 마을길은 모두 구불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