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이쯤 되면 대개의 아가씨는 넘어가기 마련이다. 자기를 예쁘다는데 싫어할 아가씨가 어디 있을까? 고향, 나이, 성씨, 코, 입, 눈, 등등 모든 것이 다 예쁘다니 그것이 빈말인 줄 알면서도 아가씨들은 일단 이 남자에게 호감이 느끼고 대하는 것이다. 한참 떠들면서 술을 먹다가 김 교수가 지방 방송을 끄라고 하더니 썰렁한 퀴즈를 냈다. “여러분, 인연과 연인의 차이를 압니까? 옷깃이 스치면 인연이라고 했는데, 그러면 연인은 무엇이 스치나요?” “입술!” “정답은 아닙니다.” “그러면 뭘까?” “정답은 속옷입니다. 속옷이 스치면 연인이 됩니다.” “말이 되네요, 하하하.” 김 교수가 술집에 가서 쉽게 인기를 끄는 것은 우스운 이야기를 많이 알기 때문이다. 구세대 사람들이 익숙한 고금소총 이야기는 물론, 과거에 유행했던 참새 씨리즈, 그리고 요즘 신세대 사이에 인기인 만득이 시리즈. 그리고 술자리에서 안줏감으로 빠질 수 없는 갖가지 Y담 등등 김 교수의 이야기보따리 속에는 온갖 종류의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들어 있다. 술자리의 분위기에 따라서 적절한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기술을 김 교수는 가지고 있었다. 몇 차례 사람들이 재미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이번 글로 <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가 100회를 맞았습니다. 그동안 독자의 편에 서서 쉽게 풀어 환경이야기를 써주신 이 교수님께 깊은 고마움을 드립니다. 2024년 2월 21일 현재 "지구온난화라는데 왜 겨울이 더 추워질까?" 편을 12,233 명의 독자가 읽었고, "생물대멸종의 원인은 기후변화였다" 편을 10,813명, "내가 발생시키는 탄소발자국 계산해볼까?" 편을 10,158명이 읽는 등 한 편에 1만여 명에 육박하는 독자들이 글을 읽었습니다. 유명 언론이 아닌 <우리문화신문>으로서는 작지 않은 반향입니다. 앞으로도 더욱 큰 호응을 기대합니다.(편집자 말) 2006년에 처음 발견된 가습기살균제(아래 살균제) 사고로 2024년 1월 31일까지 18년 동안에 피해 신고자 7,901명 가운데 1,847명이 죽었다. 피해자 대부분은 어린 아기였지만 어린 아기를 기르는 산모도 상당수 포함되었다. 이 사건은 사고라기보다는 참사라고 표현해야 마땅하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사망자가 세월호 참사(304명 죽음)나 이태원 참사(159명 죽음) 때보다 훨씬 많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국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오랜만에 어른들과 새해 인사를 나누기 위해 인사동 한정식집의 조용한 방에 들어가니 벽 위에 액자가 하나 걸려있다. 현대 우리 서단의 최고봉이었던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 1921 ~ 2006) 씨가 경신년 신춘에 쓰신 것이다. 경신년은 1980년이니 일중 선생이 육순에 쓰신 것으로 네 글자 가운데 세 번째 글자를 잘 모르겠다. 먼저 나는 그것이 '한가지' 혹은 '같다'는 뜻을 가진 '동(仝)'이란 글자 같다고 하니 다른 사람이 동조하면서 손말틀(휴대폰)을 두들기더니 `仝`의 옛 글자가 저렇게 생겼단다. 그래서 일단 동이란 글자로 보고 '양소동진' 네 글자의 뜻을 함께 유추해 보니 '소(素)를 기르는 것이 진(眞)과 같다'라는 식의 풀이가 나온다. 여기서 소(素)는 소박함, 본래의 것일 터이니 욕심 없고 꾸미지 않고 참된 본 바탕 정도의 뜻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본래의 마음을 기르는 것이 참된 것이라는 해석이 된다. 그렇게 뜻을 새기면서 일중 선생의 멋진 예서(隸書) 글씨에 찬사를 보냈다. 그러다가 집에 와서 아무래도 이 문장이 그냥 튀어나온 것이 아닐 것 같아서 인터넷 사전을 뒤져보니 중국 삼국 시대 위(魏)나라 혜강(嵇康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지난 1월 15일은 신영복 선생 8주기였습니다. 세월 참 빠르네요. 장례식에 참석한 것이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8주기라니... 8주기에 참석하였을 때 선생의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신영복 선생의 책은 거의 다 읽어보았는데, 참석자들이 선생님에 대한 추억을 얘기하는 것을 들으면서 오래간만에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읽을까 생각하다가 신영복 선생의 마지막 강의를 담은 《담론》을 다시 읽기로 하였습니다. 예전에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아 이 책에 줄을 쳐가며 읽었지요. 그러나 한 번만 읽고 그칠 수 없어 다시 한번 읽고, 그리고 특히 마음에 들어오는 부분은 일일이 타자를 쳐서 따로 저장해 두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오래간만에 다시 읽었는데, 《담론》은 여전히 나에게는 울림이 있는 책이네요. 마지막 강의라고 하였는데, 선생은 2006년 성공회대를 정년퇴임한 뒤에도 석좌교수로 <인문학 특강> 한 강좌는 계속하였습니다. 그러다가 2014년 희귀 피부암 진단을 받아 그해 겨울학기에 마지막 강의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강의 녹취록을 바탕으로 한 《담론》이란 책이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성북동에 가 본 이들은 느꼈을 것이다. 그 동네의 따뜻한 정취를. 거닐다 보면 문화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성북동의 이런 고아한 분위기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아마 근현대 시기부터 문화예술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살며 서로의 삶에 의지처가 되어주었던 오랜 역사가 켜켜이 쌓여 그럴 게다. 이 책, 《성북동 길에서 예술을 만나다》를 쓴 송지영, 심지혜 두 사람은 최순우 옛집의 학예사로 함께 지내며 성북동에 남아 있는 문인과 예인들의 발자취를 모아 나갔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한때는 ‘동네 형’, ‘옆집 이웃’으로 정답게 지냈을 그 시간이 떠오른다. (머릿말 가운데) 성북동 길가에 개천이 흐르고, 성벽 위로 해가 떠오르고, 흰 두루마기를 입은 전형필 선생이, 단장을 짚은 조지훈 선생이, 미풍 같은 웃음을 짓는 최순우 선생이 길에서 만나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지금 우리들과 다를 바 없이 서로 안부를 묻고, 가족 이야기를 하고, 때로는 새로 구한 애장품 자랑도 하셨겠지요. 책에 소개된 간송 전형필, 혜곡 최순우, 우두 김광균, 상허 이태준, 구보 박태원, 만해 한용운 등은 한 번쯤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10일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는 의미이지요. ‘권불십년(權不十年)’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십 년 넘게 이어지는 권력은 없다는 것이지요. 요즘 국회의원은 권불 4년이고 대통령은 권불 5년입니다. 나라의 100년을 계획해야 할 사람들이 코 앞만 보고 있으니 문제입니다. 요즈음 여의도를 보면 ‘우리’는 없고 ‘끼리’만 난무합니다. 국민과 나라는 안중에 없고 욕심에 점철된 파당만 존재합니다. 그러면서 말끝마다 국민을 외치고 민생을 이야기합니다. 국민은 선거할 때만 반짝 주인이고 나머지 장구한 세월은 피지배자로 돌아갑니다. 기득권을 내려놓는다고 하면서 철옹성같이 자기 것을 움켜쥐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홈런타자라고 해서 매번 홈런을 치는 것은 아닙니다. 병살타도 치고 삼진도 당합니다. 국민가수로 매우 유명한 사람도 신곡을 낼 때마다 히트곡이 되는 것도 아니지요. 중국의 진시황은 불로초를 구해 영원한 삶을 희구하였고 그의 왕국이 만년 가기를 원했지만 본인은 49살에 세상과 작별을 고했고, 진나라도 2세 황제가 즉위한 지 15년 뒤에 멸망
[우리문화신문=양종승 민속학자] 한순옥은 부산의 춤 생활을 접고 상경한 뒤 서울 성북구 삼선교에 70여 평의 큰 공간을 마련하여 다시 한순옥무용연구소 문을 열었다. 이화여대 등 여러 대학 무용과 진학을 꿈꾸는 입시생들을 대상으로 각 분야 전담 지도자를 초빙하여 한국무용을 비롯한 현대무용, 창작무용 그리고 발레까지 가르쳤다. 이 무렵, 한순옥은 국립무용단 창립 단원으로 참여하게 되었고, 실력을 인정받아 지도위원으로도 활약하였다. 그러면서 한순옥은 전국 어느 곳에서나 스승 최승희 춤에 대한 행사가 있게 되면 서슴지 않고 달려갔다. 1990년대 후반에는 부산지역에서 세기의 무용가 최승희 춤 예술의 부활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래서 부산 무용가 양학련 등이 주축이 된 추진위원회에서는 최승희 춤 계보를 잇고 있는 김백봉과 한순옥 두 명무를 앞세워 최승희 춤 조명에 나선 것이다. 최승희 춤의 재조명 프로젝트는 20세기를 갈무리하고 새로운 천년의 시대를 맞이하는 한국무용계에 잠재적 포부의 폭발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무용학자 정병호(1927-2011)는 이 사업을 의미 있다고 강조하면서 “예술적 정신을 되살려 세계인의 공감을 끌어냈던 최승희 춤은 1990년대를 마감하는 한국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김 교수가 옆에 앉은 아가씨를 보니 눈이 약간 풀려 있다. 술 냄새가 약간 났다. 아마도 다른 방에 있다가 들어온 모양이었다. 김 교수도 지금 2차지만 아가씨도 2차인 모양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키는 작고 몸의 윤곽이 S 라인은 아니어도 얼굴이 동글동글한 모습이 귀여웠다. 머리는 약간 붉은 빛이 돌게 염색했으며, 입술에 빨간색 연지를 진하게 바른 것이 술에 취한 남자의 시선을 자극했다. 옷은 까만 블라우스에 아주 짧은 검은 치마를 입었다. 허벅지살이 다 드러나 보였다. 가슴이 많이 파진 옷은 아니어도 젖가슴은 봉긋해서 술에 취해 게슴츠레해진 눈에는 예쁘게만 보였다. “미스 최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오빠.” 아가씨는 처음부터 오빠라고 불렀다. “반갑습니다. 그런데 아가씨는 고향이 어디인가?” 김 교수는 처음부터 고향을 물었다. “전남 승주군이에요.” “그래? 나는 승주군 아가씨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좋더라. 승주군 아가씨를 꼭 한번 만나고 싶었는데. 아침 신문에서 본 ‘오늘의 운세’가 좋더니 내가 너를 만날 운명이었나 보다.” “정말이에요?” “그럼! 승주군이 고향인 아가씨가 예쁘다고 강남 술집에서 소문이 났지.” “무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박경민 작가의 《일본의 근대사 왜곡은 언제 시작되는가》를 보면서, 무능하고 비겁한 고종에 화가 많이 났었는데, 그러다 보니 또 하나의 무능한 임금 인조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인조를 다시 생각하다 보니 인조는 단순한 무능한 임금이 아니라, 살인자로 불러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도 듭니다. 너무 과격하다고요? 왜 제가 그런 과한 생각까지 하는지, 잠깐 얘기해 보겠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인조는 쿠데타로 집권한 임금입니다. 인조는 집권하면서 광해군의 외교정책을 전면 바꿨습니다. 광해군이 명나라와 청나라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잘 펼쳤음에 반하여 인조는 청나라는 오랑캐 나라라고 오로지 명나라에만 충성을 바쳤습니다. 그러나 광해군이 청나라가 좋아서 균형외교를 펼쳤겠습니까? 당시 명나라는 지는 해이고 청나라는 뜨는 해였습니다. 그래서 광해군은 조선을 위하여 멀리 내다보고 균형외교를 펼쳤던 것입니다. 그러나 균형외교를 펼치더라도 그동안의 명나라와의 관계나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조선을 도와준 은혜를 생각하여 표 안 나게 조심조심 균형외교를 펼쳤습니다. 그런데 인조는 조선은 소중화(小中華)라는 몽상에 빠져 어찌 오랑캐와 상종할 수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며칠 전 서울 인사동 남쪽 초입에 있는 어느 건물 뒤 카페의 정원에 가니 거기 명물이었던 오래된 오동나무가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뭇가지와 잎들이 다 말라버린 것을 보니 꽤 오래전에 쓰러진 모양이다. 지난해 5월 저녁에 그 나무 밑에 앉아서 맥주를 먹곤 했는데 몇 달 동안 가지 못한 사이에 쓰러진 것이다. 여주인 말로는 8월 큰비가 왔을 때 나무줄기와 가지, 잎에 물기가 잔뜩 많아지자, 무게를 못 이기고 쓰러진 듯하다고 한다. 쓰러지면서도 다행히 사람이 다치지 않았고 그 옆 다른 나무에도 피해를 주지 않아, 평소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던 그대로 가면서도 멋지게 갔다고 귀띔해 준다. 인사동의 오동나무는 백 년이 넘었던 것 같다. 오동나무로서는 원체 컸기에 이 일대의 명물이었고, 여름에는 무성한 나뭇잎으로, 겨울에는 그 가지들이 하늘로 뻗어간 기세로 사람들을 압도했다. 인사동을 누빈 시인 천상병 씨가 특별히 이 나무를 사랑해 당시 인사동 건달이라 불리던 전우익 씨(《혼자만 잘 살면 무엇하누》의 저자)와 자주 나무 밑에서 그 좋아하던 막걸리를 많이 마셨다는 것이고, 1970년대 말인가 이 나무를 베내려 하자 전우익 씨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