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중국 전한 시대에 유안(劉安)이 펴낸 《회남자(淮南子)》라는 책이 있습니다. 일종의 백과사전으로 지식이 총망라되어있는 책입니다. 거기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옵니다. <乞火 不若取燧 (걸화 불약취수)> "불을 구걸하는 것은 부싯돌을 취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라는 말씀입니다. 유대인 속담의 "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고기 잡은 방법을 가르쳐라."란 말씀과 상통하는 말이지요. 굶고 있는 사람에게 밥 한 끼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밥을 해결할 수 있도록 자립을 돕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금전적으로 부유한 집의 자녀 가운데 제대로 된 자녀가 드믑니다. 의존적 상속인으로 만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재벌들은 2세를 혹독하게 교육하기도 합니다. 한때 대우기업을 이끌었던 김우중 회장의 아들은 미국 유학 시절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합니다. 그때 김우중 회장이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지요. "좀 더 좋은 차를 사 줄걸…." 요즘 사회적 문제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아마도 일자리라 생각됩니다.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서 청년의 꿈을 실현해주는 것을 마다할 사람은 없습니다. 문제는 정말 일자리가 없어서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아그네스 곤자 보야지우는 향년 87살까지 가난한 자의 친구로 평생을 몸 바쳤던 테레사 수녀의 본명입니다. 테레사 수녀가 인도의 한 마을에서 다친 아이들의 상처를 지극정성으로 돌봐주고 있었습니다. 그때 이웃 마을 주민이 묻지요. "수녀님 당신은 당신보다 더 잘살거나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 편안하게 사는 것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안 드시나요? 당신은 평생 이렇게 사는 것에 만족하십니까?" 그러자 테레사 수녀가 말합니다. "허리를 굽히고 섬기는 사람은 위를 쳐다볼 시간이 없답니다." 사람의 눈은 앞을 보도록 설계되어 있지만 사람 대부분은 아래보다는 위를 쳐다보고 평생을 살아갑니다. 남들보다 더 가지지 못해서, 남들보다 더 높아지지 못해서 불행을 안고 사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지요. 머리를 숙이면 부딪칠 일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아래만 보고 살아가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명심보감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知足常足 終身不辱 知止常止 終身不恥 지족상족 종신불욕 지지상지 종신무치 "만족함을 알아 늘 만족하면 평생토록 욕됨이 없고 그침을 알아 늘 알맞게 그치면 평생 치욕이 없을 것이다." 적당한 선에서 만족할 줄 아는 삶이 행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농사는 사람이 준비하지만, 하늘이 짓습니다. 물론 스마트팜을 비롯한 인공적 환경을 제공하면서 식물의 특성에 맞게 농사를 짓는 방법도 있지만 아직 대부분의 농사는 하늘이 내려준 비와 은혜로운 햇살의 영향을 받습니다. 곧 농사는 혼자 짓는 것 같지만 모든 여러 가지 여건이 성숙하였을 때 풍작을 이룰 수 있습니다. 《논어》의 옹야편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옵니다.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기욕립이립인 기욕달이달인 해석하면 "자신이 서고 싶으면 남을 먼저 세워주고 자신이 이루고 싶으면 남을 먼저 이루게 하라"라는 의미입니다. 더불어 사는 삶을 이야기 하는 것이지요. 소통이란 기술과 기교가 아니라 진실과 진정성입니다. 살아가면서 자기중심적 사고에 빠져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 안에 낀 티끌을 지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의 잘못은 감추고 남의 잘못과 허물은 들추어내기를 좋아합니다. 남을 평가하는 데 앞장서지만 남에게 평가받는 것에 관해서는 관대하지 못합니다. 정론직필(正論直筆)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올바른 논조로 바르게 써야 한다는 의미이지요. 그 중심에는 가치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여하튼 홀로서기도 중요하지만, 함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공자의 제자는 3,000명을 헤아리지만, 그 가운데서 가장 사랑했던 제자는 안회였습니다. 그와 관련된 일화 하나를 소개하지요. 하루는 안회가 시장에 들렀는데 포목점 앞에서 주인과 손님이 시비가 붙었습니다. 손님은 3x8은 23인데 당신이 왜 24전(錢)을 요구하느냐고 따졌습니다. 안회는 이 말을 듣고 “3x8은 24입니다. 당신이 잘못 계산한 겁니다.”라고 말했지요. 손님은 주변에서 가장 똑똑한 공자님께 판단을 받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내기를 걸지요. 손님이 지면 목숨을 내놓을 것이고 안회가 지면 관(冠)을 내놓으라고 말이지요. 공자는 말을 다 듣고 나서 안회에게 웃으면서 말하기를 "네가 졌으니 이 사람에게 관을 벗어주거라" 안회는 스승인 공자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뒤에 공자는 이야기하지요. “한번 잘 생각해보아라. 내가 ‘3x8=23’이 맞는다고 하면 너는 그저 관하나 내어주면 그뿐이지만 만약에 ‘3x8=24’가 맞는다고 하면 그 사람은 목숨을 내놓아야 하지 않겠느냐?” 관이 중요하냐, 사람 목숨이 중요하냐?“ 공자의 인본주의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공자의 제자 가운데 학자ㆍ정치가ㆍ웅변가로서 뛰어난 사람이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재화만사성(財貨萬事成)’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의 비틀린 표현이긴 한데 “돈이 있으면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라는 말이지요. 배금주의나 황금만능주의, 물질만능주의도 비슷한 말입니다. 사람들은 돈을 최고의 값어치로 알고, 신(神)처럼 숭배하기도 하며 돈의 노예가 되어 삶의 값어치를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 중의 하나가 돈입니다. 꼭 자본주의가 아니라고 하더라고 돈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지요. 돈을 한자로 전(錢)이라고 씁니다. 글자를 파자하면 ‘金(쇠 금)’과 ‘戈(창 과)’가 두 개 나옵니다. 곧 쇠붙이로 만들어진 것(돈)인데 이것을 두고 서로 창을 맞대고 싸우는 형국의 글자지요. 돈에는 선악이나 미추의 개념이 들어있지 않지만, 그것을 차지하려는 인간의 욕심이 다툼과 전쟁으로 비화하는 예를 찾기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누군가 불이익을 받거나 사고를 당하면 사람들은 돈으로 보상받기를 원합니다. 인간의 권위와 존엄성이 돈으로 측정되는 세상이 되면서 배금주의(拜金主義, 돈을 숭배하는 사상)가 만연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돈이 좋은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돈 앞에 장사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우리나라 첫 금서는 《금오신화(金鰲新話)》입니다.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을 못마땅하게 여긴 김시습은 생육신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의 법호인 설잠(雪岑)은 ‘눈 덮인 봉우리’로서 외로운 방랑의 삶을 의미하고 또 다른 호인 청한자(淸寒子)는 맑고도 추운 사내, 벽산청은(碧山淸隱)은 푸른 산에 맑게 숨어 산다, 췌세옹(贅世翁)은 세상에 혹 덩어리일 뿐인 늙은이라는 뜻이어서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금오신화》는 왜 금서가 되었을까요? 거기에 실린 5편의 단편소설 가운데 〈남염부주지〉에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정직하고 사심 없는 사람이 아니면 이 땅의 임금 노릇을 할 수 없다.”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폭력으로써 백성을 위협해서는 안 된다." "덕망 없는 사람이 왕위에 올라서는 안 된다.” 모두 세조를 두고 비판한 내용이라고 여겨지기에 금서로 된 것이지요. 원주에 가면 치악산 자락에 운곡(耘谷) 원천석의 무덤이 있습니다. 태종 이방원의 스승이었던 원천석은 이성계의 편에 서지 않고 멸망해버린 고려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태종이 친히 치악산 자락까지 와서 출사를 권했지만 만나주지도 않은 그였지요. 그는 고려 신하의 시각으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미국 역사에서 흑인 최초로 국무장관이 된 콜린 파월이 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뉴욕 빈민가 출신으로 몹시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가 어느 공장에서 아르바이트하는데 다른 인부들과 함께 도랑을 파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삽에 몸을 기댄 채 회사가 충분한 임금을 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있었지요. 그 옆에서 한 사람은 묵묵히 열심히 도랑을 파고 있었습니다. 몇 해가 지난 뒤 다시 그 공장을 찾았을 때 불평했던 사람은 여전히 삽에 몸을 기댄 채 불평을 늘어놓고 있었지만 열심히 일하던 사람은 지게차를 운전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여러 해가 흘렀습니다. 삽에 기댄 채 불평만 하던 사람은 원인을 모르는 질병으로 장애인이 되어 회사에서 쫓겨났지만 열심히 일하던 사람은 그 회사의 사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태도는 상황을 이깁니다. 우리가 운명을 고를 수는 없지만, 다양한 안팎의 사건에 대한 반응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결국 행복은 선택과 집중의 문제이지요. 세상을 살아가면서 긍정적이고 감사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틀(프레임)을 만들어가는 것은 우리입니다. 우린 스스로 믿는 대로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태도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오래전에 인적이 드문 섬 장고도에서 민박을 한 적이 있습니다. 걸어서 남북으로 10분 동서로 1시간 정도 걸리는 아주 작은 섬이었지요. 섬엔 분교 하나, 우물 하나, 해수욕장 하나, 갯벌 하나, 염전 하나, 교회 하나…. 모든 것이 하나로 이루어진 아주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뭍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덕으로 바다는 늘 생소했고, 염전을 가까이 본다는 것도 여간 신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염전은 바닷물을 그냥 퍼 올려놓고 마르기를 기다리는 행위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늘 일기를 보아 눈비를 걱정하는 것은 기본이고 증발 정도에 따라서 물꼬를 관리하고 소금 결정체가 생기면 넉가래로 거둬들여야 하는 땀과의 교환법칙이 성립되는 공간이었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소금은 모든 맛의 근원입니다. 뜨거운 햇볕과 해풍을 견디며 굵은 소금으로 익어가는 것이 향기롭지요. 어쩌면 가장 고통스러운 날에 가장 영롱한 결정을 만들어내는 것이 염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류가 수렵 위주의 생활을 하던 때는 소금은 중요한 자원이 아니었습니다. 동물 고기에는 염분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소금을 따로 섭취할 필요가 없었지요.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풍수지리는 우리 조상들이 국토를 바라보던 대표적 인식 체계입니다. 산과 물의 생김새 등 환경에 따라 인간의 길흉화복을 관련지어 좋은 터를 찾는 사상이지요. 살기 좋은 땅을 명당이라고 하는데 길지로 알려진 명당은 지형의 윤곽선이 여성의 음부를 닮았습니다. 사람의 심성은 사는 곳의 지형에 영향을 받습니다. 노년기 지형의 부드러움을 안고 사는 마을의 사람들은 비교적 온화할 가능성이 크고 뾰족하고 우람한 산 밑에서 사는 사람들이 성질이 급하고 호전적일 가능성이 큽니다. 어쩌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독 평화를 사랑하는 까닭이 노년기 지형이어서 일지도 모릅니다. 야트막한 산 아래 옹기종기 모여있는 초가집은 자연의 선을 닮았습니다. 한옥을 짓더라도 지붕과 추녀의 선이 주변과 잘 어울리는 멋짐을 갖고 있었지요. 요즘 켜켜이 위로만 쌓아 놓은 고층 아파트에 견줄 바가 아닙니다. 건물의 모양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지붕입니다. 요즘은 사각형으로 멋보다는 방수기능에 방점을 두어서 일률적 형태의 지붕이 많지만, 옛날엔 초가부터 기와의 맞배지붕, 팔작지붕, 우진각 지붕, 모임지붕 등등의 멋스러운 형태가 존재했고 지금도 절이나 한옥마을엔 여러 형태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인간은 다른 종의 생명을 빼앗을 수는 있지만 창조할 수는 없습니다. 첨단과학과 유전공학이 발달한 현대에도 멸종동물을 복원할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합니다. 없애기는 쉬워도 창조하기는 어려운 것이 종의 다양성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아프리카 대륙 동쪽에 모리셔스라는 독립된 섬나라가 있습니다. 그 섬에는 날지 못하는 도도새가 살고 있었지요. 도도라는 뜻은 게으름을 나타내는 현지 용어라고 하니 꽤 뚱뚱하고 둔한 새였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섬에는 도도새를 잡아먹는 천적이 없었고, 먹이가 풍부했으니 새지만 날아오를 필요가 없었고 몸집은 비대해져 15킬로 이상까지 자랐다고 합니다. 도도새의 천국에 인간이 발을 들여놓습니다. 뚱뚱하고 둔한 도도새는 쉬운 사냥감이었으니 마구잡이 사냥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인간과 함께 들어온 쥐와 고양이, 원숭이까지 도도새의 서식지를 파괴하고 알을 먹어 치웠지요. 인간은 도도새의 멸종을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1660년 무렵 도도새는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춥니다. 모리셔스 섬에는 도도나무가 있습니다. 현재 나이가 300살이 넘긴 13그루가 자라고 있다고 보고되었지요. 이 나무의 열매는 도도새의 위장을 통과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