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중국 전한의 회남왕 유안이 지은 회남자에는 '천하유삼위(天下有三危)'가 나옵니다. 곧 천하에는 세 가지 위험이 있다는 말씀이지요. 소덕이다총 일위야(少德而多寵 一危也) 재하이위고 이위야(才下而位高 二危也) 신무대공이유후록 삼위야(身無大功而有厚祿 三危也) "덕이 적은데도 총애를 많이 받는 것이 첫 번째 위험이고 재능이 없으면서도 지위가 높은 것이 두 번째 위험이고 자신에게 큰 공적이 없는 데도 높은 자리와 봉록을 받는 것이 세 번째 위험이다." 덕이 부족한 사람이 권력을 쥐면, 그 권력은 개인의 이익을 위해 남용되기 쉽습니다. 역사적으로 덕이 부족한 군주들은 백성을 착취하고,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로, 능력보다는 인맥이나 배경으로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들은 공공의 이익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재능이 없으면서도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은 그 자리에 걸맞은 소임을 수행하기 어렵습니다. 이는 조직 전체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결국에는 조직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특히, 지도력이 요구되는 자리에서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자리를 차지하면, 조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조선의 의인 조지 포크>라는 제목으로 오마이뉴스에 몇 년 동안 연재한 적이 있다. 올해 책으로 펴내기 위하여 관련 자료를 재검토하는 중이다. 자료가 뜻밖에 많다. 첫째는 그가 고국의 가족에게 보낸 서신이다. 1884년 5월부터 1887년 7월까지 그는 우편선이 있을 때마다,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부모님 전 상서를 썼다. 이 기간은 그가 조선살이를 한 기간이다. 그러니까 그는 개항초기 3년 동안의 조선 견문록을 사신으로 남긴 것이다. 둘째는 조선 여행기다. 1882년 6월 조선 땅(부산)에 첫발을 디뎠을 때의 관찰과 소감, 그리고 1884년 가을과 겨울 두 차례에 걸쳐 행한 내륙 여행에 대한 세밀한 여행록이다.셋째는 외교관으로 3년 동안 조선에 근무하면서 조선의 외교부서와 주고받은 공문이다.넷째는 서울 근무하면서 본국 정부와 주고받은 공문서다.다섯째는 그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기록이다. 이상의 기록물은 다행히 사라지지 않고 전해 온다. 단지 서로 다른 나라의 다른 곳에 소장되어 있으며 그 내용이 대부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소중하고 값진 자료와 정보가 잠들어 있는 것이다. 그것들은 인간 조지 포크에 대해서 뿐 아니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1949년10월1일 중국공산당의 지도자인 마오쩌둥(毛澤東)은 북경의 천안문광장 높은 문 위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을 정식으로 선포했다. 중국 대륙의 주인공이 완전히 바뀌었음을 세계에 알린 것이다. 공산당과의 전쟁에서 패한 장제스( 蔣介石)는 그해 12월에 대만(臺灣)으로 옮겨와 중화민국의 성립을 알렸다. 그리고 대만의 중화민국이 유엔에서 나오고 그 자리에 중화인민공화국이 대신 들어감으로써 대만의 중화민국은 국제사회에서 독립국이 아니라 중국의 속국 신세로 주저앉았다. 중화민국 총통을 지낸 장세스(蔣介石)를 우리는 예전에 장개석으로 불렀다. 원래 이름은 장중정(蔣中正)이고 개석(介石)은 자(字)인데 흔히 장개석으로 통용되었다. 대만 발음도 장개석에 가깝다. 그 뒤 중국 보통화의 독법대로 이름이 장제스로 바뀌어 불린다. 그래도 나 같은 사람은 예전대로 장개석으로 부르는 것이 편하다. 마찬가지로 타이완(臺灣)도 대만으로 표기한다. 1989년 6월4일 중국 북경에서는 천안문 사건이 발생해 중국 정부에 대해 민주화를 요구하며 광장을 메우고 있던 대학생들이 중국 인민해방군의 강제진압에 의해 많은 사상자를 내며 진압되었는데 당시 한달
[우리문화신문=임세혁 교수] 2012년 10월 6일 자 빌보드 차트 순위에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2위에 기록되었다. 그리고 8년 정도가 지난 2020년 9월 5일 방탄소년단의 <Dynamite>가 빌보드 순위에서 1위를 기록하였다. 우리랑은 다른 세계라고 생각했던 미국의 빌보드는 이제 한국 음악 시장의 가시권에 들어오게 되었고 김치와 태권도만이 우리나라를 대표했던 과거와 달리 K-POP이라는 우리의 대중음악으로 외국에 우리를 나타낼 수 있게 되었다. ‘임세혁의 K-POP 서곡’은 아무것도 없는 맨땅 위에 치열하게 음악의 탑을 쌓아서 오늘에 이르게 만든 음악 선학들의 이야기다. 십 년이 좀 넘은 일인데 아끼던 후배 하나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일이 있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슬펐는데 사람이 눈물은 아래로 떨어져도 밥숟가락은 위로 올라간다고 시간이 지나면서 하루가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되고 그렇게 지나 보내니 급작스러운 상실에 대한 아픔도 빛바랜 사진 같은 그리움으로 바뀌게 된 것 같다. 그래도 한 번씩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지라 시간이 날 때마다 한 번씩 녀석을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엘리자베스 키스. 1919년 처음 한국을 찾은 뒤 한국의 여러 가지 풍속과 사람을 그린 화가다.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근무하는 언니 부부를 따라 일본에 왔다가 동양에 매혹되어 머물렀다. 그 뒤 언니 제시와 함께 1919년 3월 28일, 조선에 와서 한국의 다양한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이렇게 그린 그림을 1946년 《올드 코리아》라는 책으로 펴냈다. 엘리자베스 키스의 작품은 색동옷을 입고 마당에서 노는 아이들, 좁은 방에 마주 앉아 학문을 논하는 노인들, 추운 겨울바람을 막아주는 남바위 등 1900년대 초 한국의 모습을 따뜻하면서도 정교하게 담아내 지금까지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배유안이 쓴 이 책,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 그림에서 우리 문화 찾기》를 보면 경성시대 한국의 모습이 한층 정겹게 느껴진다. 물론 식민지배 치하의 엄혹한 시대, 사는 것이 신산하다고 고달팠을 테지만 그럼에도 일상은 무심히 흘러갔던 것 같다. 책에 실린 그림들은 ‘정겨운 사람들’, ‘마음에 남는 풍속들’, ‘아름다운 사람들’, ‘기억하고 싶은 풍경들’의 네 가지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엘리자베스 키스는 어떤 모습을 그리든 따뜻하고 애정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우리나라 지형의 특징은 동고서저(東高西低)입니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큰 강은 서쪽인 서해로 흘러갑니다. 그런데 중국은 우리와 반대여서 서고동저(西高東低) 지형입니다. 황하나 양자강이 모두 동쪽으로 흘러 황해로 들어가지요. ‘만절필동(萬折必東)’은 충북 괴산군 화양구곡에 새겨져 있기도 하고 가평 조종천의 만동묘에 새겨져 있기도 합니다. "만 번 꺾여도 반드시 동쪽으로 흐른다."라는 의미의 글은 우리나라와는 상관없는 중국과 관련된 글귀이지요. 어쩌면 ‘사필귀정(事必歸正)’과 같은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만 중국에 대한 사대(事大)의 의미가 큽니다. 우리나라의 서쪽에서 물이 동류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형상 사행천으로 굽이굽이 흐르다 보면 잠시 동쪽으로 흐르는 경우가 있는데 이곳이 중국과 닮았다고 여겨서 중국 황제를 기리는 만동묘를 세웠습니다. 만동묘는 중국의 만력제와 마지막 황제인 의종을 모시는 사당입니다. 그런데 만동묘를 오르는 마지막 계단은 중국 황제를 상징하는 9층으로 만들어졌고 경사를 70도 안팎으로 가파르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는 조선의 백성이 천자를 뵈러 올라가면서 똑바로 서서 올라갈 수 없도록 만든 의도가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윤 대통령이 12월 3일에 요건에도 전혀 맞지 않는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가, 국회가 재빨리 계엄 해제 요구 의결을 하였습니다. 발표한 포고령에서 볼 수 있듯이 비상계엄은 국민의 자유를 심대하게 제약하는 엄청난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요건에도 전혀 맞지 않는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윤 대통령을 탄핵소추할 수 있다고 할 것입니다. 게다가 그 뒤에 하나, 둘씩 드러나고 있는 것을 들으면서는, 저는 “이럴 수가!”하면서 제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뉴스에서 본 몇 가지만 들면, 한동훈, 이재명 등 자신의 맘에 들지 않는 많은 인사들을 체포하고 심지어는 사살까지 하려고 했더군요. 그리고 중앙선관위 직원들을 체포하려고 할 때 준비물을 보면 직원들을 고문하여 부정선거 자인서를 받아내려고 했으며, 심지어는 북한을 자극하여 북한의 무력도발을 유도하려는 정황까지 나옵니다. 저는 이 정도만으로도 탄핵사유는 차고도 넘칠 뿐만 아니라, 이는 내란죄에도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공수처에서는 이를 조사하기 위해 출석요구서를 3번이나 보냈는 데도, 윤통은 불응하였습니다. 이렇게 연속 출석을 불응하면 보통 당연히 체포영장을 발부합니
[우리문화신문=김순흥 교수] <의병 연구가 김남철 선생>이 힘들여 쓴 《남도 한말의병의 기억을 걷다》가 2024년 <세종우수도서>에 뽑혔습니다. 작금의 국가변란 시국에, 혹한에도 불구하고 응원봉을 들고 나와 길에서 밤을 새우는 20, 30대 소녀 의병들을 보면서, 새삼 우리의 의병 핏줄을 뼛속 깊이 느낍니다. 오늘의 젊은 의병들의 기록도 글로, 사진으로 남아 후세에 전해질 것입니다. (글쓴이) 우리가 5천 년의 역사를 이어온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세계사에서 어느 민족도, 어느 나라도 이만큼 긴 세월을 동질성을 지키면서 꿋꿋이 버텨온 사례가 없다. 그 밑바닥에는 저항의 역사와 함께 기록이 있다. 끊임없이 저항하고 이를 모두 기록하면서 반성했기 때문에 드물게 5천 년을 이어오는 민족이 될 수 있었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것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소통할 수 있는 언어라는 수단(문화)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이 마을에 들어오면 온 동네 개들이 떼창으로 짖어댈 수는 있지만, 우리 마을에 무슨 일이 있는지 다른 마을에 알릴 수 없고, 어제 우리 마을에 낯선 사람이 왔었다고 전할 수도 없다. 기록은 우리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우리가 살아가면서 기본적으로 충족해야 하는 세 가지 분야는 의식주(衣食住)인데, 옷이 제일 앞에 나온다. 예로부터 세속적인 성공을 나타내는 표현으로써 호의호식(好衣好食), 금의환향(錦衣還鄕)이라는 말은 매우 시사적이다. 모든 사람은 좋은 옷을 입고 싶어 한다. 여자는 물론이거니와 남자들도 멋진 옷으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고 싶어 하는 원초적인 욕망이 있다. 경제 발전 이전의 시대에는 물자가 풍부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많은 가정에서는 형이 입던 옷을 동생에게 물려주는 일이 허다했다. 이웃끼리도 옷을 물려주는 일이 흔했다. 학교에서는 교복을 후배에게 물려주기도 했다. 어른들은 옷이 열 벌 있으면 많은 편이었다. 옷장에는 여러 사람의 옷이 함께 들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옷이 너무 많아져서 입지 않고 버리는 옷이 많아졌다. 연예인들이나 웬만한 부잣집에 가보면 옷 방이 따로 있고 사계절 옷이 가득하다. 한번 입고 그냥 버리는 옷도 있다. 아예 한 번도 입지 않고 버리는 옷의 비율이 21%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즉석식품(패스트푸드)이 식(食)생활을 바꾸어 놓았다면 패스트 패션이 의(衣)생활을 크게 변화시켰다. 패스트 패션이라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1885년 꽃들이 만발한 4월 3일, 한양의 사대문과 종각(보신각)에 이런 취지의 공고문이 붙어 있다. 정부에서 병원 하나를 설립했는데 북부 재동 외아문(외교부) 북쪽으로 두 번째 집이다. 미국 의사 알렌을 초빙하였고 아울러 의학도와 의약 및 여러 도구를 갖추고 있다. 오늘부터 매일 미시(오후 1-3시)에서 신시(오후 3-5시)까지 병원 문을 열어 약을 줄 것이다. 알렌의 의술은 정교하고 양호한데 특히 외과에 뛰어나서 한 번 진료를 받으면 신통한 효과를 보게 될 것이다. 본 병원에는 남녀가 머물 병실이 있으니 무릇 질병에 걸린 자는 병원에 와서 치료받을 것이며 약값은 나라에서 대줄 것이다. 이를 숙지하여 하등 의심을 품지 말고 치료를 받으러 올지어다. 한편, 당국은 한성부에 지시해 모든 계(契, 동의 상위 조직인 계는 당시 한성에 300여 개가 있었다.)에 공고문을 게시토록 했으며, 지방에도 읍마다 공고하게 했다.(황상익, 《근대의료의 풍경》)이 첫 서양식 병원은 처음엔 광혜원으로 불리다가 곧 제중원으로 개명되었다. 오늘날의 헌법재판소 경내에 있었다고 한다. 의사 알렌의 일기(1885년 4월 10일 자)다. 병원은 어제 개원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