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관찰은 한자로 쓰면 觀察이 됩니다. 엄밀하게 구분 지어서 이야기하면 대충 보는 것을 관(觀)이라 하고 자세히 살펴보는 것을 찰(察)이라고 하지요. 관계는 관찰에서 시작됩니다. 우린 저마다의 삶의 경험과 가치관에 따라 반응하는 감정이 다릅니다. 다름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지요. 오해를 해결하고 소통으로 나아가는 데는 이러한 존중이 중요합니다.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받으면서 성장합니다. 내 삶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사람들을 "의미 있는 타인"이라고 정의하지요. 나를 일관되게 지지해주거나 깊은 신뢰를 주거나 가치관을 공유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의미 있는 타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좋은 연결감과 유대감이 행복의 깊이를 더해줍니다. 애급옥오(愛及屋烏)라는 말이 있습니다. 옥오는 지붕 위에 있는 까마귀를 말합니다. 예로부터 까마귀는 흉조로 보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애급옥오는 "사람을 사랑하면 지붕 위의 까마귀까지 귀엽게 보인다."라는 말씀입니다. 마음가짐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다른 것도 사실이니까요. 어느 시인이 말한 것처럼 뽑으려 하니 모두 잡초였지만 품으려 하니 모두 꽃이었다는 말씀과 자
[우리문화신문= 정운복 칼럼니스트 ] 시골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탓에 산과 나무는 늘 친숙한 대상이었습니다. 나무를 해 때던 시절이라 겨울이면 지게를 지고 나무하러 다니던 숲으로 난 오솔길도 아련한 추억 속에 정겨움으로 남았습니다. 앞산에는 제법 큰 소나무가 여러 그루 자라고 있었습니다. 넓은 그늘로 쉼을 제공하기도 하고 산길의 이정표 역할도 한 소나무는 대부분 못생긴 소나무가 많았습니다. 잘생기고 쭉쭉 뻗은 소나무는 그 쓰임새 덕분에 쉽게 베어져 대들보나 기둥, 서까래로 변신하여 어느 집 귀퉁이를 채우고 있겠지만 쓸모없고 볼품없는 소나무는 끝까지 산을 지키고 있으니 말입니다. 굽은 소나무가 산을 지키는 것을 성어로 표현하면 왕송수산(枉松守山)이 됩니다. 우리나라 전통 민화나 문인화에 등장하는 소나무는 곧은 나무가 없습니다. 배배 틀어지고 이리저리 꼬인 소나무가 주인공인 경우가 많지요. 물론 줄기가 바람이나 지형의 영향으로 비틀려 자랐겠지만 이런 소나무가 예술적으로 아름다워 작품의 좋은 소재가 됩니다. 어쩌면 비틀어진 소나무는 포기하지 않는 의연한 인생을 닮았습니다. 옛날에는 가난 때문에 학업의 기회를 얻지 못한 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동생들 뒷바라지를 위하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사회 초년병시절에 아마추어 무선국을 운영한 적이 있습니다. 핸드폰이 일반화되기 전에 무선은 신기한 꿈의 영역이었죠. 깡통 전화기로 통화를 해본 이후로 20km 떨어진 거리에 있는 사람과도 자유롭게 의사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여간 신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무전기는 반이중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곧 말을 하고 있으면 들을 수 없고 듣고 있으면 말할 수 없는 양방향 서비스지만 어느 한순간은 단일 통로로 이용된다는 말씀이지요. 그때는 안테나가 참으로 중요했습니다. 무전기의 출력도 중요하지만, 안테나를 잘 세워야 통화 품질이 깨끗하고 멀리 가기 때문입니다. 다이폴, J폴, 스위스 쿼드, 휩, 야기, 3단 GP 등등의 안테나를 설치하고 만들어보면서 전파와 통신에 대한 사실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것이 재미있기도 했지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스피커보다는 안테나가 중요합니다. 그것을 달리 표현하면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영어에 Big Mouse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입이 큰 사람이 아니라 떠버리처럼 말이 많은 사람을 의미하는 용어이지요. 대부분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힘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독특한 성품을 갖고 태어납니다. 그것을 천성(天性)이라고 부르지요. 천성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천성교육이란 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개개인 모두가 산속의 나무와 같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거기에 있었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두어야 합니다. 자기 스스로 자연과 더불어 살 수 있도록 두어야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때론 그 나무가 내가 보기에 불편해 보입니다. 그래서 내 처지에서 나무를 자르고 다듬고 곧추세우고 구부려 놓습니다. 나는 그 나무의 멋스러움이 눈의 호사를 가져다준다고 좋아했지만 결국 그 나무는 자연스러움을 잃고 말라 죽고 맙니다. 변해야 할 것은 그 나무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음을 아는데 너무나 큰 대가를 지불했음을…. 때늦은 후회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연스러운 삶 속에서 사회의 변화를 꾀하는 것은 남의 변화가 아니라 나의 변화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추구하는 철학이나 지혜 지식이 비록 정당하다고 판단되더라도 결코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세상은 다른 사람들이 모여 무리를 이루며 살아갑니다. 세상엔 절대적으로 선한 것도, 절대적으로 악한 것도 없습니다. 나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어렸을 때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십중팔구는 대통령이었습니다. 로또 확률이 818만분의 1인데…. 대통령은 능력과 실력을 갖추면서도 5000만분의 1이니…. 하늘이 내리지 않고는 오를 수 있는 자리가 결코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19대 대선 때 양구에서 개표 요원으로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전자 개표가 동원되긴 했지만 그래도 사람의 손이 많이 가는 개표과정이었는데 약 15,000의 투표용지 중에서 2,000표 정도가 무효표라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어찌 보면 사회에 대한 불만이 무효표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 그 유형이 상당히 재밌습니다. 첫째는 온정주의로 모든 사람에게 표를 주고 싶은 마음에 13명의 후보에게 일일이 표를 찍어주어 붉은색으로 도배된 투표지도 있고 둘째는 양다리 형으로 두 사람에게 모두 기표한 사례도 있고 셋째는 자기표현형으로 투표지에 자신의 이름을 써넣은 일도 있고 넷째는 자기만족형으로 도장 대신에 볼펜으로 동그라미를 그린 예도 있고 다섯째는 여백 존중형으로 기표 장소 이외의 여백에 기표를 하기도하고 여섯째는 결정 장애형으로 세심하게 두 후보 사이에 기표하기도 한 사람도 있고 일곱째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우리나라 근대사는 일제강점기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그 시절을 풍미했던 사람 중에 육당 최남선이 있습니다. 그는 천재적인 언론인, 시인, 역사가로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지요. 《소년》이란 잡지를 창건하고 독립선언서를 집필한 민족대표 33인 중의 하나였고 청년 시절 민족혼을 드높이고자 무던히 노력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만년에 일제에 협조하면서 친일 행적을 남기게 됩니다.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하여 일제가 조선의 역사를 왜곡할 때 일조를 했던 사람이고 조선 유학생을 학병으로 나가게 하려고 강연을 하였는가 하면 일제의 침략 정책에 앞장서 온 변절자로 역사에 남아있습니다. 당연히 친일은 청산되어야 하고 독립운동가는 대우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역사의 준엄한 판단이지요. 수많은 사람이 일제에 협조하고 앞잡이 노릇을 자청해, 온 나라가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유독 지식인과 학자가 지탄받는 까닭은 그들이 세상에 끼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일 겁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조선 사대부가의 여인네 셋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만약 난리가 나서 자신을 욕보일 상황이 되면 어떻게 처신하겠느냐 하는 것이 주제였지요. 두 사람은 자결하여 떳떳이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제자백가(諸子百家)로 일가를 이룬 사상가가 허다하지만 가장 허풍이 세고, 황당무계한 장황설을 늘어놓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장자(莊子)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구라 대왕, 뻥의 극치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네요. 그 장자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북해에 한 물고기가 있는데 이름을 곤이라 한다. 곤은 그 크기가 몇천 리인지 알 수 없다. 이것이 변하여 새가 되는데 그 이름을 붕이라고 한다. 붕의 등 넓이도 몇천 리인지 알 수 없다. 한번 노하여 날면 그 날개가 하늘에 구름을 드리운 것 같았다. 이 새는 바다가 움직이면 남명으로 이사를 한다. 남명이란 하늘 연못이다.” 원래 곤(鯤)이란 물고기의 배 속에 든 알이나 새끼로 참으로 작은 생명체입니다. 그것을 몇천 리나 되는 고기로 둔갑시킨 장자는 대륙의 허풍이라고 치부하더라도 그 정도가 매우 심하지요. 그가 아주 작은 것을 매우 큰 것에 비유하는 것엔 까닭이 있습니다. 매우 작은 것이나 매우 큰 것이나 상대적인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곧 “크다, 작다.”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는 것이고 모든 사물은 평등하다는 것에서 장자는 출발합니다. 곧 선입견이나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요즘 도시에서 칠흑 같은 어둠을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빛 공해로 이름 지어진 도시의 밝음이 야간 운전에 전조등을 켜지 않아도 잘 모를 때가 있으니까요. 그것이 달빛과 별빛을 잃어버린 삶을 살게 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칠흑이란 옻칠을 한 것처럼 검은 것을 의미합니다. 참옻나무의 진액은 피부에 닿으면 강한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독성물질입니다. 이것으로 도료를 만들어 칠하게 되면 아주 검은 색으로 광택이 납니다. 칠흑의 칠(漆)이 옻나무를 가리키니까요. 옻칠하면 해충도 막을 뿐 아니라 잘 부식되지도 않으니 아주 훌륭한 도료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나전칠기나 칠서(漆書) 모두 옻나무 도료를 이용한 것이고요 영어 단어 '래커'(lacquer)도 옻나무의 원료를 포함하고 있다는 의미이지요. 어찌 되었거나 칠흑은 칠흙이 아니며 매우 어두운 상태를 의미합니다. * 나전칠기 - 아름다운 광채가 나는 자개 조각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박아 붙이고 옻칠한 공예품 전국시대 장자(莊子)는 몽(蒙) 지역에서 칠원리(漆園吏)라는 벼슬을 하였는데 칠원(漆園)은 옻나무 동산이니 장자의 벼슬 이름으로 쓰일 정도로 예로부터 옻은 귀하게 쓰였습니다.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중국에 양진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가난하게 성장하였으나 배우기를 좋아하여 ‘관서 땅의 공자’라는 별칭을 얻은 사람이기도 하지요. 양진은 승진을 거듭하여 형주자사가 됩니다. 그는 부임 중에 창읍을 지나게 되는데 양진이 전에 천거했던 왕밀이 창읍의 수령으로 있었습니다. 왕밀은 밤에 몰래 황금 열 근을 가지고 와서 양진에게 건넵니다. 양진이 말하지요. "나는 그대를 아는데 그대는 나를 모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청렴을 몰라주는 왕밀..) "밤이 저물어 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자네가 알고 내가 아는데 어찌 아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가?" 여기서 사지(四知)라는 고사가 나옵니다. 天知地知子知我知(천지지지자지아지)가 그것이지요. 왕밀은 부끄러워하며 그냥 돌아갔다고 합니다. 사람이 양심을 가지고 바르고 옳게 살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세상은 그런 사람을 끌어내리려 하기도 하지요. 오죽하면 다음과 같은 속담이 있습니다. "물이 지나치게 맑으면 고기가 없다." "높은 산 정상에는 나무가 없다." "흙이 너무 깨끗하면 초목이 자라지 않는다."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으면 세상에 부합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자동차는 이동의 수단이므로 일단 가는 것이 중요하지만 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멈추는 것입니다. 멈추기를 못하면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산에 다니면서 이분법적 사고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식물을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구분하기도 하니까요. 문제는 먹을 수 있는 것에만 지대한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식물도 먹을 수 없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잘 모르는 나물이라면 아예 채취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산나물과 일생을 살아온 농부도 독초를 먹고 사망하는 경우가 있으니 조심하지 않을 까닭이 없습니다. 대부분 예쁘게 생긴 것이 독초인 경우가 많습니다. 꼭 뜯고 싶은데 약초라는 확신이 들지 않으면 다음과 같이 감별합니다. 식물을 뜯으면 절단면에 액이 나오는데 그것을 연한 피부에 바르고 잠시 있으면 독초면 두드러기가 생기거나 가렵거나 통증이 느껴집니다. 살갗에 반응이 없을 때는 혀끝에 조금 묻혀보되 절대 삼켜서는 안 됩니다. 아린 맛이나 화끈거리나 고약한 냄새가 난다면 이는 독초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몸에 가시가 많이 나 있는 식물은 독초가 아닙니다. 가시로 몸을 보호하고 있으므로 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