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곳에 따라 비가 오는 곳이 있다는데 제가 있는 곳은 해가 쨍쨍입니다. 오늘 일을 마치고 더위를 식힐 수 있는 곳으로 떠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사람이 많이 가는 곳이 좋은 곳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사람이 많은 곳을 찾아 가는 사람도 있고 일부러 사람이 많지 않은 곳으로 가기도 하지요. 여러분은 어느쪽이신가요? 좋은 곳을 찾아 길을 나서기는 했지만 먼 길 수레를 타고 가다보면 '멀미' 때문에 힘들어 하는 분도 계시죠. '멀미'라고 하면 이렇게 차, 배, 비행기 따위의 흔들림을 받아 메스껍고 어지러워짐. 또는 그런 증세'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쓰실 겁니다. 차를 탔을 때 하는 멀미는 '차멀미', 배를 탔을 때는 '배멀미', 비행기를 탔을 때는 '비행기멀미'라고 하는데 이렇게 탈 것을 타지 않아도 어지러움을 느낄 때가 있지요. 흔히 흐드러지게 핀 아름다운 꽃을 보거나 꽃에서 나는 꽃내음 때문에 어지러움을 느끼기도 하는데 그걸 '꽃멀미'라고 한다는 것도 아시는 분은 아시더라구요. 그리고 사람이 많은 곳에 갔을 때 머리가 아프거나 어지러울 때가 있는데 그걸 가리키는 말이 '사람멀미'랍니다. 많은 사람들한테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아침부터 햇볕이 뜨겁습니다. 어제는 한낮에 해가 났지만 그렇게 뜨겁게 느껴지지는 않았는데 어제 데워 놓은 데 더해서 그런지 오늘은 보다 뜨거운 느낌입니다. 저처럼 수레를 타고 일터를 오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집과 일터 사이가 조금 가까운 사람과 먼 사람이 다르겠지요. 수레 안에 누가 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수레를 모는 것을 보면 누군지는 모르지만 어떤 사람인지는 어림할 수 있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해 주거나 다른 사람을 생각하면서 수레를 모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과 함께 길을 달리느냐에 따라 좋은 마음으로 하루를 열기도 하고 안 좋은 마음으로 하루를 마감하기도 합니다. 사람의 됨됨이가 수레를 모는 것에 드러난다는 것이지요. 사람의 됨됨이를 가리키는 토박이말이 바로 '사람됨'입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인품(人品)', '인격(人格)'이라는 말을 많이 쓰기 때문에 '사람됨'이라는 말을 처음 보는 분도 계시지 싶습니다. 하지만 '사람됨'이라는 말을 처음 보아도 이 말이 사람의 됨됨이를 나타내는 말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됨은 그 사람이 하는 말에서도 드러나기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가유산청 국립무형유산원(원장 박판용)은 주오사카한국문화원(원장 김혜수)과 함께 한일 국교정상화 60돌을 맞이하여 6월 28일 토요일 저녁 5시에 일본 오사카 스카이시어터MBS에서 <장인의 시간들, 빛과 바람> 공연을 연다. 이 작품은 지난 4월 국립무형유산원 개막공연으로 초연되었으며, 한국 전통공예의 미학과 장인정신을 무용과 음악을 통해 재해석한 창작 공연이다. 특히, 국가무형유산 나전장(螺鈿匠) 박재성 보유자와 선자장(扇子匠) 김동식 보유자가 직접 무대에 올라 자개를 끊고 부채의 살을 가르는 실제 작업과정을 시연하는 가운데, 무용과 생황, 거문고의 음율이 어우러지며 장인의 철학과 시간을 감각적으로 표현한다. * 자개: 조개의 껍데기 안쪽 부분을 썰어 낸 조각으로 나전공예의 재료로 사용됨. 공연은 빛을 머금고 세월을 새긴 나전과 바람을 품고 시대를 넘어온 합죽선이라는 상징물을 중심으로, 장인의 손과 시간이 오늘의 공연예술로 새롭게 되살아나는 여정을 담고 있다. 장인이 만든 공예품과 사물에 깃든 시간의 흔적은 무대 위에서 예술적 형상으로 드러나며, 정적인 사물이 지닌 역사성과 시간성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이와 더불어 박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국립전주박물관(관장 박경도)은 2025년 특별전 <나고 드는 땅, 만경과 동진>을 오는 6월 27일부터 10월 12일까지 연다. ‘만경(萬頃)’과 ‘동진(東津)’은 강의 이름이자 땅의 이름이다. 이번 전시는 만경과 동진으로 대표되는 전북 지역의 고대 문화교류를 조명하며, 고고학 성과를 바탕으로 지역의 역사적 위상을 되새기는 전시다. 전시는 모두 3부로 구성되며, 전북의 자연환경 속에서 이루어진 문화적 접촉, 융화, 충돌, 교역 등 다양한 교류의 층위를 구체적인 유물과 자료를 통해 풀어낸다. 초기철기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전북이 어떻게 문화의 통로이자 중심지로 기능했는지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이번 특별전은 바다와 강, 평야와 고원이 만나는 독특한 지형을 바탕으로 전북이 변방이 아닌 동아시아 교류의 중심지이자 핵심이었음을 강조한다. 1부: 강과 바다, 땅이 만나다 전북은 다양한 자연 지형이 교차하는 지역이다. 1부에서는 바다였던 강이 들판으로 변화하는 지형적 특성과, 이러한 자연환경 속에서 형성된 주요 고대 유적지를 소개한다. 조선시대의 『동여도東輿圖』, 『만경현지도萬頃縣地圖』, 『김제군지도金堤郡地圖』와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지리산국립공원경남사무소(소장 김종식)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최소 800년 이상 자리를 지켜왔던 지리산 성모상(聖母像)이 지역주민의 힘으로 새롭게 조성·복원되었다고 밝혔다. 지리산 성모상은 고려 태조의 어머니 위숙왕후, 석가모니의 어머니 마야부인, 또는 지리산 산신으로 여겨지며 오랜 세월 동안 영호남 주민들의 마음속에 천왕봉의 상징으로 자리해 온 지리산 대표 향토문화 자원이다. 성모상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1188년 《고려사》에 등장하며, 이후 김종직 등 조선시대 문인들의 《지리산 유람기》와 조선전기 관찬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다양한 고문헌에도 남악 지리산 최고봉에 모셔진 호국신앙의 상징으로 기록하고 있다. ※ 김종직의 《유두류록》(유람일 1472년 8월) 중에서 : 이른바 ‘성모’는 석상인데, 눈과 눈썹, 그리고 머리 부분에 모두 색칠을 해 놓았다. 목에 갈라진 금이 있어 그 까닭을 물으니, “태조께서 인원에서 왜구를 물리치던 해에 왜구들이 이 봉우리에 올라 칼로 석상을 쪼개고 갔는데, 후세 사람들이 다시 붙여놓았다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 성모상이 갑작스럽게 분실 되었고, 이후 천왕성모를 제자리에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재홍)은 보존과학 전문 학술지인 《박물관 보존과학》 제33집을 펴냈다. 이번 학술지에는‘미국 클리블랜드 박물관 소장 호렵도 병풍의 보존처리와 조사분석’, ‘광주 조선백자 요지 출토 폐자기의 보존처리’, ‘테라헤프츠 파의 특성을 이용한 내부 구조 진단 연구’ 등 모두 8편의 논문을 수록하였다. ‘미국 클리블랜드 박물관 소장 호렵도 병풍의 보존처리와 조사분석’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외국박물관 한국실 지원사업의 하나로 클리블랜드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시대 <호렵도(虎獵圖) 8폭 병풍>을 2023년부터 약 2년 동안 보존처리 하며 규명한 내용을 담고 있다. 보존처리 과정에서 확인된 병풍의 원래 규격과 원 장황 직물의 문양 등을 바탕으로 19세기 우리나라 전통 병풍 형식을 복원하였다. 아울러 구조적인 손상과 수해, 충해 등으로 인한 병풍의 물리적인 손상을 정밀하게 복구하였으며 적외선 촬영, 섬유식별, XRF 분석 등을 통해 제작기법과 안료 성분도 밝혔다. ‘광주 조선백자 요지 출토 폐자기의 보존처리’는 경기도 광주 조선백자 요지에서 폐기된 도자기 편들을 모아 회청사기표형병, 황명백자발, 백자철화운룡문연적으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4대강 사업의 두 번째 목표는 ‘홍수를 막기 위함’이다. 4대강 사업에서는 홍수를 막기 위하여 강바닥을 깊게 팠다. 바닥을 깊게 파면 홍수 때에 강물의 수위가 낮아질 것이다. 굴삭기 같은 중장비가 없던 옛날에는 강바닥을 파는 대신 제방을 높였다. 바닥을 깊게 파거나 제방을 높이거나 효과는 마찬가지이다. 홍수가 제방을 넘지 못하게 하여 범람을 막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예산 22조 원(필자 주:4대강 사업을 시작한 2009년도 국가 총예산은 274조 원이었음)을 들여 4대강 사업을 추진하면서 다음과 같은 경제성 이유로 4대강 사업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매년 홍수 피해와 복구비로 평균 7조 원의 예산이 지출된다. 4대강 사업을 마치면 더 이상 홍수 피해는 발생하지 않으므로 3년만 참으면 4대강 사업비 22조 원은 자동적으로 절약된다." 이러한 주장이 사실이라면 4대강 사업을 반대할 어리석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4대강 사업비 22조 원을 아깝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3년만 참고 지내면 그 뒤로는 해마다 7조 원의 홍수 관련 예산이 절감되는데, 이처럼 경제성 있는 사업을 누가 반대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밀레의 ‘만종’이나 ‘이삭줍기’ 같은 그림을 보면 한편의 아름다운 시를 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밀레가 살았던 당시의 화풍과는 어울리지 않았고 밀레는 가난한 화가로서 힘든 세월을 보냈습니다. 부인과 자식들이 배고픔과 추위에 떨어야 했으니, 그의 삶은 참으로 팍팍했을 겁니다. 어느 날 절친 루소가 밀레를 찾아옵니다. 밀레의 화실은 온기 하나 없이 추웠습니다. 성공한 루소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지요. 그때 루소는 이야기합니다. "좋은 소식이 있네. 자네 그림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어, 그리고 미리 돈까지 보냈다네." 그리고 루소는 '접목하는 농부'라는 그림을 갖고 돌아갔습니다. 그 돈으로 밀레는 물감과 음식을 살 수 있었지요. 훗날 그는 루소의 집을 방문합니다. 그리고 거실에 걸려있는 자신의 그림 '접목하는 농부'를 발견하지요. 친구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하여 루소는 자기 돈으로 그림을 사고는 거짓말을 했던 것입니다. '접목하는 농부'라는 그림은 밀레와 루소의 우정을 상징하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마치 한 그루 나무에 다른 종의 가지를 접목하여 새로운 열매를 맺듯이, 두 사람의 우정은 서로에게 새로운 영감과 힘을 주었습니다. 그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이애주문화재단(이사장 유홍준)이 최근 ‘시대의 춤꾼’으로 불리는 고 이애주 선생의 일생과 춤 역정을 사진으로 기록한 《천명(天命)》(윤영옥, 김연정 엮음 / 임진택, 이애경 감수 / 개마서원 펴냄)을 펴냈다. 이 사진첩은 국가무형유산 승무 보유자이자 시대춤의 아이콘이었던 선생의 삶과 예술 세계를 오롯이 담아낸 귀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천명》은 선생이 자신의 춤을 법무의 시대, 신명의 시대, 터벌림의 시대, 천명의 시대로 나누어 정리했던 2014년 춤공연 <천명>의 구성을 따라 사진과 자료를 엮었다. 이를 통해 선생의 춤이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하며 시대와 호흡했는지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1부 ‘법무의 시대’에서는 어릴 적 김보남과 한영숙으로부터 승무를 배우고 첫 춤판을 벌였던 시기부터 1983년 ‘한영숙류 이애주 춤’ 공연까지, 이애주 춤의 뿌리와 젊은 시절 사회적 사명에 대한 깊은 고민을 엿본다. 2부 ‘신명의 시대’에서는 1984년 춤패 ‘신’을 창단하고 불교 의식을 재해석한 ‘나눔굿’,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도라지꽃’ 등 시대 창작물을 선보였던 시기, 그리고 민주화 현장에서 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바라옵건대 여러 책 가운데에서 일상에 가장 절실한 것, 이를테면 《소학》이라든가 《열녀전(列女傳)》ㆍ《여계(女誡), 여자의 생활과 처신에 관한 계율》ㆍ《여측(女則)》과 같은 것을 한글로 뒤쳐 찍어서 나눠주소서. 그리하여 위로는 궁액(宮掖, 궁에 딸린 하인)으로부터 조정 벼슬아치의 집에 미치고 아래로는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모르는 사람 없이 다 배우게 해서, 온 나라의 집들이 모두 바르게 되게 하소서.” 우리는 흔히 세종이 창제한 훈민정음을 조선시대 동안 홀대받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위의 《중종실록》 28권, 중종 12년(1517년) 6월 27일 기록을 보면 《소학》이라든가 《열녀전(列女傳)》과 같이 일상에 절실한 것들은 한글로 뒤쳐 찍어서 나눠주어 온 백성이 공부하게 하자고 임금에 아룁니다. 이에 중종은 그렇게 하라고 윤허를 내릴 정도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정조가 만 3~4살부터 46살인 정조 22년(1798년)까지 큰외숙모인 여흥민씨(驪興閔氏)에게 보낸 한글편지 16점을 모아 묵은 편지첩인 《정조국문어필첩(正祖國文御筆帖)》이 있을 정도였으며, 2010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펴낸 《명성황후 한글편지와 조선왕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