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유명한 건 알겠는데, 왜 유명한 거야?” 우리 그림 가운데는 좋은 작품이 참 많다. 다만 서양 화가들의 그림과 견주어 접할 기회가 다소 부족했기에 잘 모르는 이들이 많다. 학교에서도 서양화 중심으로 배우고, 한국화보다 서양화를 다루는 책들이 더 많은 편이다. 그러다 보니 유명한 우리 그림에도 서양화 못지않은 이야깃거리와 의미가 물씬 배어있지만, 막상 왜 유명한지는 잘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알면 알수록 조금 더 새롭게 보이는 것이 그림이다. 이유리가 쓴 이 책, 《왜 유명한 거야, 이 그림? 한국미술편》은 무심코 지나쳤던 명작들이 품고 있는 뜻을 하나하나 깨우쳐주는 책이다. 좋은 작가 뒤에는 좋은 후견인이 있었다. 안견과 정선이 대표적이다. 안견은 세종대왕의 아들이었던 안평대군이, 정선은 ‘이병연’이라는 인물이 든든한 후원자였다.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는 말 그대로 ‘꿈속에서 노닐었던 복숭아밭을 그린 그림’이라는 뜻으로, 안평대군의 꿈을 그림으로 그려낸 것이다. 안평대군은 예술을 사랑하는 당대 으뜸 수집가였다. 수집품이 무려 222점에 달했다고 하는데, 그 가운데 36점이 안견의 작품일 정도로 안견의 실력을 아꼈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K 교수는 점심 식사를 끝내고 연구실로 돌아오자마자 조교를 불렀다. 조교는 서울에서 통근차를 타고 출퇴근한다. K 교수는 《캘리포니아 좋은 날씨》라는 책을 사 오라고 조교에게 제목을 적어주었다. 다음 날 조교에게서 1, 2권으로 된 책을 받아서 책장을 넘겼다. 안 표지에는 책의 저자인 남자가 손에 담배 한 개비를 들고 있는 사진이 있었다. 남자는 남자가 잘 안다. 강인한 인상을 주는 호남형 남자였다. 여자들이 좋아할 그런 남자였다. 인물 소개를 읽어 보니 그 남자는 평범한 남자가 아니었다. 그 남자는 약관인 스무 살에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하여 문단에 데뷔했단다. 그 뒤 연극인으로 성장하였는데, 유명한 극작가 동랑(東浪) 유치진(1905~1974)이 창설한 동랑 극단의 기획실장을 오랫동안 맡았다고 했다. 그 남자는 연극, 영화, 출판, 광고, 방송 등 대중문화 전반에 일대 돌풍을 일으킨 인물로 소개되었다. 또한 그는 뒤늦게 기업계에 뛰어들어 나산 그룹 기조실장, 논노 그룹 부회장을 역임했다. 그 남자는 상도 많이 탔다. 연극 <오늘 같은 날>로 1994년 한국희곡문학상(대상)을 받은 거 말고도 일간스포츠 광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보리밟기 어영차! 들뜬 땅을 밟아주세 (초) 꼭꼭 밟아 다지고 또 다져야 (돌) 보리가 보리심의 새싹 될까 (달) 올 봄엔 힘찬 보리밭 볼까나 (심) ... 25.1.18. 불한시사 합작시 보리는 가을에 씨를 뿌린다. 싹은 이내 흙 위로 얼굴을 내밀지만, 그 삶은 곧 겨울을 건너야 한다. 엄동설한, 얼었다 녹기를 거듭하는 땅은 부풀고 갈라지며 뿌리를 느슨하게 만든다. 이때 보리를 살리는 일이 바로 ‘보리밟기’다. 차가운 흙 위를 발로 꼭꼭 눌러 주어야, 흔들리던 뿌리가 다시 땅을 움켜쥐고 봄을 맞이할 힘을 비축한다. 밟힘은 꺾임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다짐이다. 인고의 겨울을 견딘 보리싹은 한때 보릿고개를 넘기던 민중의 삶을 지탱한 푸른 생명이었다. 허기를 달래고, 하루를 이어 주던 그 풀잎에는 말없이 버텨 온 세월의 체온이 스며 있다. 어린 시절, 겨울 끝자락 들녘에는 눈을 밀치고 솟아오른 보리밭이 장관을 이루곤 했다. 아직 봄농사에 손이 덜 가는 때, 온 가족이 들로 나서 보리를 밟았다. 조부모의 느린 걸음, 부모의 굳은 발걸음, 아이들의 장난스러운 발자국까지 겹치며 그 밭은 하나의 몸처럼 단단해졌다. 그 풍경은 노동이자 놀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조지 포크가 1885년 무렵 작업한 조선 팔도 지도 가운데서 이번에는 함경도 지역을 유람해 보자. 글쓴이의 논평 없이 직접 감상해 보기로 한다. (아래 그림들의 출처: 미국지리협회 누리집 https://collections.lib.uwm.edu/digital/collection/agdm/id/918/rec/2) 이 미국인은 이처럼 조선 팔도의 모든 고을, 산과 강, 섬들은 물론 산성과 창고(세곡창)까지 수천 개를 헤아리는 한자 지명을 남김없이 영자로 표기하였다. 1만 개도 넘을 것으로 보이는 한자 하나하나의 음을 정확히 옮긴 것이다. 그가 조선인의 도움을 받았다 하더라도 이는 상상키 어려운 작업이 아닐까? 손글씨 해독이 어렵다. 다음번에 같이 도전해 보겠다.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우리는 종종 숲을 거대한 나무들이 굳건히 서 있는 고독한 풍경으로 상상합니다. 그러나 숲은 결코 홀로 자라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뿌리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땅속 깊이 연대하고, 나뭇잎 사이로 스며든 햇살은 모두에게 고르게 나뉘며, 작은 풀 한 포기, 이름 모를 버섯 한 송이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숲을 이룹니다. 숲의 위대한 성장은 수많은 생명의 조화와 상생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가장 키 큰 나무도 홀로 설 수 없습니다. 거센 바람에 맞서 버틸 수 있는 건 뿌리들이 단단히 흙을 움켜쥐고 있기 때문이며, 그 뿌리들은 주변의 작은 식물들과 미생물로부터 영양분을 공급받기도 합니다. 또한, 쓰러진 나무는 새로운 생명의 터전이 되고, 그 자리에서 다시 어린나무가 싹을 틔웁니다. 숲은 끊임없이 순환하며 서로에게 의지합니다. 우리네 삶도 숲과 다르지 않습니다. 어떤 성공도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서 있는 자리,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은 가족의 사랑, 친구의 격려, 동료의 협력, 그리고 보이지 않는 수많은 이들의 도움 덕분입니다. 때로는 작은 위로의 한마디가, 때로는 묵묵히 지켜봐 주는 시선이 우리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유배는 고달프다. 가시울타리에 갇히는 ‘위리안치형’을 받으면 일단 곤장 100대를 맞는다.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맞은 상태로 천릿길을 가다가 병이 들어 죽기도 하고, 섬으로 유배되면 풍랑을 만나 죽기도 한다. 어찌저찌 유배지까지 간다고 해도 가시울타리 밖으로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하는 데다, 언제 사약이 내려올지 모른다는 ‘시한부 인생’의 공포가 짓누른다. 삼평중학교 국어 교사 두 사람이 같이 쓴 이 책, 《유배도 예술은 막을 수 없어》는 거친 유배지에서도 자신이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예술혼을 꽃피운 7인의 이야기를 담았다. 책에 실린 허균, 윤선도, 김만중, 이광사, 김정희, 정약용, 조희룡은 오히려 유배가 ‘인생 한 수’라 할 만큼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계기가 되었다. 이들이 남긴 눈부신 업적의 태반이 유배지에서 나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유배지에서 산다는 건 고달프긴 해도, 한편으로는 그동안 ‘일하느라 엄두도 못 냈던’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를 마음껏 하면서 시름을 달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시조 ‘어부사시사’로 유명한 윤선도 또한 유배지에 가서 시조를 짓기 시작했다. 윤선도는 언뜻 생각하면 평탄한 벼슬길을 걸었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광 야 (曠野) 백마 탄 초인은 언제 오는가 (돌) 분토된 땅 초인 올 자리 있나 (초) 초인이 와도 볼 눈이나 있나 (심) 눈 내리는 광야 텅빈 그곳에 (달) ... 25.1.16. 불한시사 합작시 이 시를 새해의 문턱에서 읽을 때, 자연스레 말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넓은 대륙을 가르며 달리던 북방 민족의 말들, 눈 덮인 초원을 바람처럼 질주하던 생명의 리듬. 말은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세계를 대하는 태도였다. 멈추지 않음, 주저하지 않음, 방향을 몸으로 아는 감각. 말 위에 올라탄 인간은 사유 이전에 결단을 배웠고, 말과 하나가 될 때 비로소 광야를 광야로 견딜 수 있었다. 올해가 붉은 말의 해라는 사실은 상징적으로 깊다. 붉음은 생의 기운이며, 피와 열정, 저항의 색이다. 북방 기마 민족의 기상은 단순한 정복의 기억이 아니라, 광야에서 스스로 잃지 않기 위한 긴장과 절제의 역사였다. 그 기상에 대한 그리움은 과거 회귀가 아니라, 오늘의 삶이 너무 복잡하고, 너무 땅에 붙잡혀 있다는 자각에서 비롯된다. 이 지점에서 자연스레 이육사의 시 "광야"가 떠오른다. 이육사의 "광야"는 자연 풍경이 아니라 정신의 지형이다. 그 광야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그다음 주 월요일 점심시간에 K 교수는 S전문대학에 근무하는 대학 후배 라 교수와 미녀식당에서 불고기 스파게티를 먹게 되었다. 식사가 끝나고 미스 K가 자리를 함께하여 커피를 마시는데, 라교 수가 미스 K에게 말했다. “그런데, 사장님이 여성잡지 Queen 6월 호에 나왔다던데요.” “네, 맞아요.” 미스 K가 대수롭지 않다는 어투로 말했다. “아, 그래요? 잡지를 구할 수 있나요?” K 교수가 약간 놀라는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저기 한 권 있는데.”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가더니 두툼한 여성잡지 한 권을 가져왔다. K 교수가 잡지를 받아 목차를 살펴보았다. 미용 섹션에 그녀에 관한 기사가 있었다. 페이지를 찾아가 보니 그녀의 예쁜 사진 몇 컷과 함께 그녀에 관한 여러 가지 새로운 정보가 실려 있었다. 그 기사는 미스 K가 40대인데도 불구하고 20대의 몸매를 가졌다는 소문을 듣고 잡지 기자가 취재를 나와서 쓴 기사였다. 기사 내용을 읽어 보니 얼마 전에 미스 K는 먹는 화장품인 이메딘(IMEDEEN)의 광고 모델로 뽑혀서 파스타 밸리에서 사진까지 찍었다고 한다. 미스 K가 고운 피부를 유지하는 비결은 먹는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진회숙 음악평론가가 이번에 상상스퀘어를 통해 《길 위의 클래식》이란 책을 펴냈습니다. 그동안 20권 가까이 음악 관련 책을 냈으니, 이번에도 당연히 음악 관련 책이라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더구나 제목에 ‘클래식’이 들어가니까요. 그런데 이번 책은 제목의 ‘클래식’보다는 ‘길’에 더 방점이 찍히는 책입니다. 곧 기본적으로는 여행서인데, 제목에서 보듯이 여행하면서 그 여행지와 관련되는 음악 이야기 또는 여행지에서 떠오르는 음악 이야기도 하는 책입니다. 아! 참 진 선생의 책 중에 음악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책도 있네요. 《기쁜 우리 젊은 날》이란 책인데, 이 책은 1970년대 중후반 긴급조치와 계엄 등으로 엄혹했던 군부독재 치하에서 민주화 운동을 했던 학생운동 1세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대음대를 나와 음악평론가로 활동하는 진 선생이 이런 책을 냈다는 것이 좀 이상해 보이지요? 진 선생은 대학시절 야학교사를 하면서, 학생운동에도 잠시 몸을 담았었지요. 저는 예전에 진 선생의 음악 강좌를 수강한 적이 있는데, 제가 잘 모르던 음악을 접하는 즐거움과 진 선생의 맛깔스러운 강의에 되도록 빠지지 않고 열심히 강의를 들으려고 하였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다음 지도를 보자. 포크의 손글씨가 촘촘히 적혀 있다. 포크는 일찍이 1886년 무렵에 조선팔도 지도상의 모든 고을, 산과 강, 섬들(독도 포함), 성(城), 심지어 창고(세곡창-稅穀倉)에 이르기 빠짐없이 영어로 표기했다. 1만 개가 넘을지도 모르는 한자 정보를 모두 영어로 옮겼다. 조선 강토를, 탁본을 뜨듯 새긴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지도의 여백에 인문지리, 명승지, 지방 특산물 등에 대한 정보까지 수록해 놓았다. 우리의 역사에 대해서도 조예가 깊었다. 충무공의 명량대첩 일대를 보자 특히 가운데 위쪽을 보면 글자가 마모되어 해독하기 어렵지만 ‘丁酉忠武公破倭處(정유충무공파왜처)’ 곧 ‘정유년에 충무공이 왜구를 격퇴하다’라는 뜻으로 보이는 부분이 있다. 이를 포크는 이 한문 문구를 해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음과 같이 글 풍선을 달아 관련 역사 정보를 적어 놓았다. In the year called chong yu nyon I-sun-shin(Posthumous name=Chhung Mu Kong) fought & defeated Japs in naval battle. (정유년이라고 불리던 해에 이순신(시호=충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