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얼마 후 김 과장이 입을 열었다. “미스 나, 결혼한다고 했지? 내가 오늘은 미스 나에게 어떻게 살면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를 보여 줄게.” “정말이에요? 기대되는데요.” 라디오에서는 엉뚱하게도 최희준의 엄처시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열아홉 처녀 때는 수줍던 그 아내가 첫 아일 낳더니만 고양이로 변했네...’ 차는 중부고속도로에서 진천나들목(IC)으로 빠져나갔다. 꾸불꾸불한 시골길을 얼마간 달리니 커다란 건물 몇 동이 멀리서부터 보였다. 입구에는 ‘꽃동네’라고 쓰인 돌간판이 있었다. 그 위쪽에는 커다란 돌에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라고 새겨져 있었다. 현관에는 앉은뱅이 할아버지가 손가락도 없는 손으로 신발을 정리하고 있었다. 모습은 흉해도 얼굴은 온화해 보였다. 사무실에 들어가니 안내원이 미소로 두 사람을 맞았다. 두 사람은 안내원을 따라 건물을 둘러보았다. 안내원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꽃동네는 1976년 최귀동 할아버지와 무극 성당의 오웅진 신부님과의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되었답니다. 최귀동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때 징용으로 끌려가 심한 고문 끝에 정신병을 얻었고 고혈압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그림씨(형용사) 낱말은 본디 느낌을 드러내는 것이라, 뜻을 두부모 자르듯이 가려내는 노릇이 어렵다. 게다가 그림씨 낱말은 뜻덩이로 이루어진 한자말이 잡아먹을 수가 없어서 푸짐하게 살아남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세기 백 년 동안 소용돌이치는 세상을 살아오면서 선조들이 물려준 이런 토박이말을 제대로 건사하지 못했다. 그래서 뒤죽박죽 헷갈려 쓰는 바람에 힘센 낱말이 힘 여린 낱말을 밀어내고 혼자 판을 치게 되니, 고요히 저만의 뜻과 느낌을 지니고 살아가던 낱말들이 터전을 빼앗기고 적잖이 밀려났다. ‘날래다’와 ‘이르다’ 같은 낱말들도 6·25 전쟁 즈음부터 ‘빠르다’에 밀리면서 갈수록 설 자리를 잃어 가고 있다. 이대로 가면 머지않아 ‘날래다’와 ‘이르다’가 ‘빠르다’에 자리를 내주고 자취를 감출 듯하다. 우리네 정신의 삶터가 그만큼 비좁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빠르다’는 무슨 일이나 어떤 움직임의 처음에서 끝까지 걸리는 시간의 길이가 짧다는 뜻이다. 일이나 움직임에 걸리는 시간의 길이가 길다는 뜻으로 쓰이는 ‘더디다’와 서로 거꾸로 짝을 이룬다. ‘날래다’는 사람이나 짐승의 동작에 걸리는 시간의 길이가 몹시 짧다는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토요일 아침, 좀처럼 특근을 안 하는 김 과장은 오늘은 회사일로 좀 늦겠다고 아내에게 연막을 치고, 퇴근하자마자 약속한 다방으로 갔다. (필자 주: 당시에는 회사들은 토요일 오전에는 근무했다) 아가씨는 예쁘게 차려입고 나왔다. 젊고 예쁜 아가씨를 보니 새삼스럽게 젊음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은 고급 식당에서 연인처럼 식사를 마치고 근처 커피숍에서 자메이카 커피까지 마셨다. 창밖을 보니 청춘 남녀들이 다정하게 웃으며 걷고 있었다. 햇볕이 따사로웠다. 평화로운 토요일 오후였다. “미스 나, 우리 드라이브나 할까?” 김 과장이 슬쩍 유혹의 말을 던졌다. “네, 좋아요.” 아가씨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김 과장이 운전하는 프라이드 승용차는 올림픽 대로를 거쳐 중부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창밖의 경치가 시원했다. 도시의 우중충한 빌딩과 좁은 사무실, 그리고 인파 속에서 지내다가 모처럼 시속 110km로 달리니 시원했다. 먼 산과 푸른 숲, 물이 흐르는 하천과 작은 집들을 바라보니 기분이 상쾌해졌다. 미스 나도 마냥 즐거운 모양이다. 김 과장은 차의 라디오를 틀었다. 시기적절하게도 라디오에서는 최성수가 부른 인기 가요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기쁘다’와 ‘즐겁다’는 누구나 자주 쓰지만 뜻을 가리지 못하고 마구 헷갈리는 낱말이다. · 기쁘다 : 마음에 즐거운 느낌이 나다. · 즐겁다 : 마음에 거슬림이 없이 흐믓하고 기쁘다. 《표준국어대사전》 국어사전에서 ‘기쁘다’를 ‘즐겁다’ 하고, ‘즐겁다’를 ‘기쁘다’ 하니 사람들이 어찌 헷갈리지 않을 것인가! 요즘 사람들이 많이 찾아 읽는 어느 책에서는 ‘즐겁다’를 “느낌이 오래가는 것”이라 하고, ‘기쁘다’를 “느낌이 곧장 사라지는 것”이라고 하였다. 여러 가지 쓰임새를 더듬어 뜻을 가리려 했으나, 이 역시 속살에는 닿지 못한 풀이다. ‘기쁘다’와 ‘즐겁다’는 서로 비슷한 구석도 있고, 서로 다른 구석도 있다. 서로 비슷한 구석은 무엇인가? ‘기쁘다’와 ‘즐겁다’는 모두 느낌을 뜻하는 낱말이다. 기쁘다는 것도 느낌이고 즐겁다는 것도 느낌이다. 그냥 느낌일 뿐만 아니라 좋은 쪽의 느낌이라는 것에서 더욱 비슷하다. 마음이 좋고, 기분이 좋고, 몸까지도 좋다는 느낌으로서 ‘기쁘다’와 ‘즐겁다’는 한결같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구석은 무엇인가? ‘기쁘다’와 ‘즐겁다’는 느낌이 빚어지는 뿌리에서 다르다. 좋다는 느낌이 마음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큰 바다에 눈이 먼 거북이가 한 마리 살고 있었대. 바다 가운데에 구멍 뚫린 통나무 하나가 떠서 물결 따라 움직이고 있었고. 거북이는 100년에 한 번씩 물 위로 떠올라 머리를 내미는데, 우연히 거북이 머리가 나무 구멍을 만날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거북이가 통나무 구멍에 용케도 목이 낄 확률만큼이나 어렵게 사람과 사람이 서로 만난다는 것이야. 그러니 내가 아가씨를 만난 것이 얼마나 엄청난 인연인지 짐작할 수 있겠지?” “재미있는 이야기인데요. 절에 나가세요?” “아니, 내가 불교에 대해서 무얼 아나. 그저 들은 이야기이지.” “그러면 인연을 끊기는 쉬운가요?” “그게 쉽다면 나도 처자식 다 버리고 벌써 산으로 들어갔지. 요즘처럼 사는 게 복잡하고 힘들어서야 일찍부터 중이나 될 걸 그랬다는 생각도 난단다.”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아가씨가 입을 열었다. “김 과장님. 저 석 달 후에 결혼하기로 했어요.” “그것 참 잘 됐군. 여자는 나이가 차면 당연히 결혼을 해야지. 아무튼 축하해.” “감사합니다.” 김 과장은 말은 축하한다고 했지만, 왠지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남자의 심리란 묘한 것이어서 자기 여자가 아닌데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지난 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국어 시험지에, “다음 밑금 그은 문장에서 맞춤법이 틀린 낱말을 찾아 고치시오.”에서와 같이 ‘밑금’이라는 낱말이 자주 나왔다. 그런데 1960년대를 넘어서면서 ‘밑금’은 시나브로 꼬리를 감추고 ‘밑줄’이 슬금슬금 나타나더니 요즘은 모조리 ‘밑줄’뿐이다. “다음 밑줄 친 문장에서 맞춤법이 틀린 낱말을 찾아 고치시오.”와 같이 되어 버린 것이다. 도대체 시험지 종이 바닥에다 무슨 재주로 ‘줄’을 친단 말인가? ‘금’은 시험지나 나무판같이 바탕이 반반한 바닥 또는 바위나 그릇같이 울퉁불퉁하지만, 겉이 반반한 바닥에 만들어진 자국을 뜻한다. ‘자국’이라고 했지만, 점들로 이어져 가늘게 나타난 자국만을 ‘금’이라 한다. 사람이 일부러 만들면 ‘금을 긋다’ 하고, 사람 아닌 다른 힘이 만들면 ‘금이 가다’ 또는 ‘금이 나다’ 한다. 사람이 만들 적에 쓰는 움직씨(동사) ‘긋다’의 이름꼴(명사형)이 곧 ‘금’이고, ‘그리다’와 ‘그림’과 ‘글’도 본디 뿌리는 ‘긋다’에서 벋어난 낱말이다. ‘줄’은 반반한 바닥(평면)에 자국으로 나 있는 ‘금’과는 달리,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이른바 입체로 이루어진 기다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끔찍한 이야기로군!” 김 과장은 대수롭지 않은 듯 한마디 했지만, 속으로는 뜨끔했다. 그 장로 이야기는 주인공이 바뀌어 자기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이 밀려왔다. “여보, 빨리 잡시다. 그런 무시무시한 이야기는 그만두고.” 김 과장이 아내의 손을 살며시 쥐며 말했다. 그 이후로 아가씨에게서 연락은 없었고, 김 과장도 나목에는 더는 가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살인하고 자살했다는 장로 이야기가 잊히지 않아서 가지를 못한 것이다. 아내도 더 이상 여자 문제로 추궁하지는 않았다. 모든 것이 나목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듯했다. 그런데 6달쯤 지난 어느 날, 뜻밖에도 사무실에서 김 과장은 미스 나의 전화를 받았다. 깜짝 놀라 웬일이냐고 묻자, 아가씨는 자기가 점심을 사겠다며 한번 만나자고 한다. 내일 당장 삼수갑산에 갈지언정 아가씨가 만나자는데 차마 거절할 수는 없었다. 대한민국 평균의 남자라면 이런 제안을 거절할 수가 없을 것이다. 김 과장은 회사 근처의 다방에서 다음 날 열두 시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막상 약속 장소에 나가려니 약간 불안한 생각이 들기는 해도, 그 옛날 연애하던 시절 데이트하러 가는 것처럼 가슴
[우리문화신문=일취스님(철학박사)] 정(情)이란 무엇일까? 가수 조용필의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정이란 무엇일까 받는 걸까 주는 걸까 받을 땐 꿈속 같고 줄 때는 안타까운 것 정을 쏟고 정에 울며 살아온 살아온 내 가슴에 오늘도 남모르게 무지개 뜨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공기처럼 보이지 않은 정의 기운을 주고받고 살아간다. 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짐 속에서도 가슴과 가슴으로 보이지 않게 흐르는 것이 정일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정 때문에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정이란 우리 마음속에 따뜻한 감정의 원천이며 무형(無形)의 보시며 사랑이다. 정은 우리 혈관을 통해서 흐르는 피와 같다. 또 정을 생각하면 모정(母情)을 떠오르게 한다. 어머니 사랑이야말로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 어머니 사랑을 잘 받고 자란 아이는 밝고 건강하게 자란다는 것을 두말할 나위가 없다. 누구나 모성애 같은 정을 받기를 원한다. 정은 무엇보다 받는 쪽보다 베푸는 쪽에 값어치를 둔다. 이처럼 정에 근접한 용어를 찾는다면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 ‘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베풀되 베풀었다는 생각마저 같지 않은 마음)일 것이다.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그치다’나 ‘마치다’ 모두 이어져 오던 무엇이 더는 이어지기를 그만두고 멈추었다는 뜻이다. 이어져 오던 것이므로 시간의 흐름에 얽혀 있고, 사람의 일이나 자연의 움직임에 두루 걸쳐 쓰이는 낱말이다. 그러나 이들 두 낱말은 서로 넘나들 수 없는 저만의 남다른 뜻을 지니고 있다. ‘그치다’와 ‘마치다’의 뜻이 서로 넘나들 수 없게 하는 잣대는, 미리 어떤 과녁이나 가늠을 세워 두었는가 아닌가다. 미리 어떤 과녁이나 가늠을 세워 놓고 이어지던 무엇이 그 과녁을 맞혔거나 가늠에 차서 이어지지 않으면 ‘마치다’를 쓴다. 아무런 과녁이나 가늠도 없이 저절로 이어지던 무엇은 언제나 이어지기를 멈출 수 있고, 이럴 적에는 ‘그치다’를 쓴다. 자연의 움직임은 엄청난 일을 쉬지 않고 이루지만, 과녁이니 가늠이니 하는 따위는 세우지 않으므로, 자연의 모든 움직임과 흐름에는 ‘그치다’만 있을 뿐 ‘마치다’는 없다. 비도 그치고, 바람도 그치고, 태풍도 그치고, 지진도 그친다. 과녁이나 가늠을 세워 놓고 이어지는 무엇은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일이라고 모두 과녁을 세우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사람의 일이나 움직임에는 ‘그치다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는 그때까지 자지 않고 있다가 문을 열어 주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요? 요즘 세월이 좋은가 봐요.” 아내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어, 우리 회사 그 박 과장 있잖아. 카페에서 대중가요 스무 곡을 가사 하나 틀리지 않고 2절까지 내리 부르고 마담한테 술을 뺏어 먹었다는 그 사람 말이야. 그 친구가 오늘 부장으로 승진했다고 전화가 와서 한잔했어.” 김 과장은 슬쩍 둘러댔다. “지금이 대체 몇 시에요?” 아내는 화가 난 모양이다. “어디 시계 좀 보자고. 어, 벌써 두 시가 넘었군. 오늘은 너무 늦었는걸. 여보 미안해.” 김 과장이 아내를 포옹하면서 달래려 했다. “빨리 가서 세수나 해요. 그 분냄새 나는 와이셔츠도 빨리 벗어 치우고요!” 아내가 뿌리치며 언성을 높였다. 김 과장은 속으로 아차 했다. 술김에 용기를 내어 아가씨와 포옹하면서 좌충우돌 키스를 두 번인가? 했는데, 아가씨의 화장이 너무 진했거나 아니면 아내의 코가 너무 예민했나 보다. 부부싸움 덜 하려면 후각이 무딘 여자를 고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면서 김 과장은 와이셔츠를 벗어서 빨래통에 던지고 세수하고 이빨까지 닦은 뒤에 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