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류리수 기자] 지난 기사에서는 왜 생명체가 들어갈 수도 없는 고열터널에 일본인 대신 조선인들이 들어가서 일해야만 했는지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번에는 뜨거운 고열로 인한 잇따른 사고들, 그리고 험준한 산속의 눈사태로 인해 어떠한 희생이 있었는지 알리고자 한다. 약 6km의 구로3 공사 전체에서 300명 이상의 희생자가 나왔는데, 그 가운데서 가장 위험한 일을 한 조선인 희생자의 비율이 높다. 고열터널에서만도 “고열터널 742m 암반을 굴착하는 동안 170명이 죽었다. 4.3m당 1명씩 사라진 잔인한 인신공양임에 틀림없다.”(《고열터널》, 196쪽)라고 밝히고 있다. 구로3 공사에서는 준비과정에서부터 벼랑에 낸 좁은 수평도로를 다니며 떨어지는 사고가 있었다. 그리고 다른 터널 공사에서처럼 터널 공사 중 암반에 깔리거나 광차(도롯코)에 딸려 들어가는 사고가 일어난다. 또한 불발 다이너마이트 폭발로 구로3에서도 얼굴이 아스러지고 내장이 쏟아져나와 죽거나 손발이 날라가는 일들이 빈번했다. 하지만 이 기사에서는 구로3에서만 특별하게 일어난 사고를 중심으로 소개하겠다. (1) 다이너마이트 자연발화 폭발사고와 처리 과정 화약류취급법에 따르면, 다이너마이트 사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우리나라 곳곳에는 아직도 '마고할미'의 자취가 두루 널려 있다. 북으로는 평안도에서 남으로는 제주도까지, 놀랄 만큼 큰 돌이 있는 곳에는 으레 마고할미 이야기가 살아 있다. 제주도에서는 '설문대할망', 충남 바닷가에서는 '갱구할미'라고 이름을 조금 달리 부르기도 하고, 이야기 줄거리도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이야기 꼬투리는 모두 서로 비슷해서 본디는 커다란 하나의 이야기에서 흩어져 나간 것들임을 짐작하게 한다. 꼬투리들을 대충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1. 마고할미는 하늘에서 내려온 여인이며(충북 단양), 본디 하늘에 살던 하느님의 딸이었다(지리산) 2. 키가 하늘에 닿아서 해를 가리고(경남 통영), 한라산 꼭대기를 베개 삼아 베고 누우면 발은 제주 앞바다 관탈섬에 얹혔고(제주), 옷을 입고 춤을 추자, 삼남 지방에 그늘이 져서 농사를 지을 수가 없었다(충남 바닷가) 3. 자연을 만드는 힘이 있어서 치마폭에 흙을 담아 나르다가 터진 구멍으로 흘러서 오름들이 되고, 마지막으로 날라다 부은 흙은 한라산이 되었으며(제주), 임금님에게 쫓겨나서 주리고 목이 말라 흙을 먹고 바닷물을 마시다가 설사하였더니 우리 강산이 되었고(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여럿이 술을 마시면 시간이 금방 가는데, 단둘이 술 마시니 시간이 더디게 간다. 김 교수는 평소에 궁금했던 술집 아가씨들의 세계에 관해서 물어보았다. 술을 매일 마시다 보면 몸이 견디지 못할 텐데, 어떻게 그러한 폭음을 견디느냐고? 그들 세계에는 나름대로 술 적게 마시는 비법이 있단다. 술잔을 받았다가 안 볼 때에 다른 그릇에 슬쩍 따르기도 하고, 술을 마신 후 입에 머금고서는 물잔을 들어서 마시는 척하면서 뱉는 방법도 있고. 손님들이 취한 이후에는 남이 얼마나 마시는지 볼 겨를이 없으니까 쉽게 속일 수가 있단다. 내친김에, 손님이 여관에 가자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노골적으로 물어보았다. 그 말을 물으면서 아가씨를 바라보니 별걸 다 물어본다는 듯이 약간은 뜨악한 표정이다. 술을 한 잔 마시더니 아가씨는 솔직히 털어 놓았다. 자기는 속된 말로 몸을 팔기도 한단다. 돈이 필요할 때 2차 가자는 손님이 있으면 유혹을 뿌리칠 수 없는 것은 당연하지 않으냐고 되묻는다.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돈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니까. 그렇지만 느낌으로 싫은 남자하고는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따라가지 않았다고 한다. 일단 남
[우리문화신문=안승열 명리학도] 역(曆)은 “시간의 흐름 곧 절기의 변화”를 뜻하며 역법(曆法)은 “역을 표시하는 법“이다. 역법에 따라 연월일시와 절기를 기술한 책을 달력, 역서, 책력(冊曆) 또는 calendar라고 한다. 명리학은 태양 지구 등, 천체의 주기적인 움직임이 천기(天氣- 하늘의 에너지)의 실체이고 천기가 시간을 흐르게 하며 우주를 오행의 기운으로 가득 차게 한다고 믿었으며 출생시점의 오행 기운이 개개인의 운명 에너지를 유인한다는 관념을 정립(定立)하게 된다. 이 관념이 오행론의 시초(始礎)다. 그리고 선천에서 받은 운명이 유인하는 대로 성별 성품이나 지능지수(I.Q.)와 같은 에너지를 타고나며 이 에너지가 역서에서 유도해 낸 간지(천간과 지지)들에 상징되어 있으므로 이 간지들을 제대로 감정하면 후천의 길흉을 예측할 수 있다고 보았다. 과거의 역서는 음력이 기본인 달력에 양력의 일종인 ”절기의 역법“을 덧입힌 것이다. 아래에서 우선 역법의 기본인 음력과 양력이 무엇이 다른지 알아보고 다음절에서는 절기의 역법을 살펴보고 이후 위에 언급한 근세 이전에 사용한 역서에 대해 알아보자. 음력과 양력 우리는 달력이란 말을 통상 역법을 서술한 책의 의미로
[우리문화신문=류리수 기자] (1) 왜 조선인이 위험한 구로3댐에서 일하게 되었나? 1910년 한일강제합방 이후 ‘토지조사사업’으로 인해 조선인의 90%인 농민은, 소작농이거나 토지가 있어도 소작농과 다름없는 사람이 77%가 되었다. 여기에 1920년대 ‘산미증산계획 사업’으로 생산되는 쌀의 60%(891만 석)를 일본에 수탈당해서(노형석 《한국근대사의 풍경》, 267쪽) 1인당 미곡 소비량이 1912~1916년 평균 0.7188석이었던 것이 1932~1936에는 평균 0.4017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신용하 《일제식민지정책과 식민지근대화론 비판》, 297쪽) 이렇게 쌀을 수탈당하고 완전히 몰락한 농민은 농촌을 떠나 좋은 조건의 일자리를 찾아 유랑하다가 임금이 높다는 일본의 구로베(黒部)로 모여들었다. 조선인 노동자는 일본의 전시체제를 지탱하기 위한 정책 때문에 구로3 터널의 ‘고열’이라는 극한 상황에 내몰렸다. 돈 때문이라고는 해도 목숨을 걸고 고열 속에서 가장 위험한 일을 했던 노동자의 대부분은 조선인이었다. 구로3댐 공사에(1936~1940), 조선인이 처음에는 이렇게 돈 벌기 위해 자유 도항해서 왔지만 1939년부터는 ‘모집’이라는 형태로 강제동원된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뜬금없다'를 찾으면 "갑작스럽고도 엉뚱 하다."라고만 풀이해 놓았다. 그게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속이 후련하지는 않다. 어째서 속이 후련하지 않을까? '뜬금'이 무엇인지 알려 주지 않아서 그렇지 않을까 싶다. 뜬금을 알자면 먼저 '금'을 알아야 한다. 우리 토박이말 '금'은 두 가지 뜻이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금'은 '값'과 더불어 쓰이는 것이다. '값'은 알다시피 남의 것을 내 것으로 만들 적에 내놓는 돈이며, 거꾸로 내가 가진 것을 남에게 건네주고 받아 내는 돈이기도 하다. 값을 받고 물건을 팔거나 값을 치르고 물건을 사거나 하는 노릇을 '장사'라 하는데, 팔고 사는 노릇이 잦아 지면서 때와 곳을 마련해 놓고 사람들이 모여서 팔고 샀다. 그때가 '장난'이고, 그곳이 '장터'다. 닷새 만에 열리는 장날에는 팔려는 것을 내놓는 장수와 사려 는 것을 찾는 손님들로 장터가 시끌벅적하다. 값을 올리려는 장수와 값을 낮추려는 손님이 흥정으로 줄을 당기느라 눈에 보이지 않는 실랑이도 불꽃을 튀긴다. 그런데 우리 고장같이 농사로 살아가는 곳의 장날 장터는 크게 둘로 갈라진다. 농사꾼들끼저마다 팔거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아가씨는 7시 45분에야 나타났다. 근사한 저녁 식사를 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8시까지 출근하지 않으면 아가씨는 벌금을 물어야 하니까. 아가씨가 먼저 제안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보스에 가서 식사하고 술이나 한 잔 하자고. 김 교수는 원래 식사만 하고 그냥 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예쁜 아가씨가 미소를 보이면서 유혹하니 순간적으로 마음이 변했다. 지갑의 두께는 전혀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 조금 뒤에 두 사람은 웨이터의 영접을 받으며 보스로 들어갔다. 아가씨는 김 교수를 룸으로 안내한 뒤 옷을 갈아입으러 대기실로 갔다. 노크 소리가 나더니 사장님이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강 사장님, 오랜만입니다. 요즘 장사 잘 되십니까?” “그저 그렇지요.” “요즘 신문에서는 불경기라던데, 장사하시면서 그저 그렇다는 것은 잘 된다는 뜻이지요?” “이렇게 잊지 않고 찾아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저희 가게는 아직 괜찮습니다.” “다행입니다. 그런데 사장님, 미스 최라고 있지요. 그 아가씨 어때요?” “미스 최가 저희 집에서는 보배지요. 상냥하고 잘 웃고, 찾는 손님들이 많답니다” “제가 미스 최를 만난 지 딱 1년 되는데, 이 아가씨가
[우리문화신문=류리수 기자] 지난번에는 조선인들이 혹독한 노동을 한 구로베댐을 일본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것에 관해 이야기했다. 이번에는 조선인들이 일했던 구로베댐 공사의 노동환경이 얼마나 참혹했는지를 알아보겠다. 일본에서 가장 큰 규모의 구로베댐(구로4댐, 1958~1963)은 구로3댐(1936~1940)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구로3댐은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일본이 중국 대륙으로 전선을 확대하게 되면서 군수품 생산을 위한 전력이 시급했기 때문에 추진되었다. 낙차를 이용한 수력발전소기 때문에 게야키다이라(欅平)에서 센닝다니(仙人谷)까지 약 6km의 수로터널과 궤도터널을 뚫어야 했다. 그 가운데 아조하라다니(阿曾原谷)에서 센닝다니(仙人谷)까지 742m 구간은 암반 온도 최고 200도가 넘는 고열터널이고, 유황 냄새가 구토를 유발하고, 온천수가 분출해서 화상을 입기 때문에 인간이 들어가기조차 어려운 공간인데, 그런 가장 위험한 곳은 대부분 조선인이 일했다. 구로3댐의 공사는 다른 공사에 견줘 극한의 노동환경이었다. 우선 험준한 산속으로 공사 장비와 자재를 가져가기 위해 벼랑 중턱에 암벽을 60cm 정도 도려내거나 몇 개의 통나무를 벼랑에 이어 붙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사람은 누구나 한 삶을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일을 겪게 마련이고, 그러면서 세상 돌아가는 속내를 조금씩 알게 되고 나름대로 이치를 깨닫기도 한다. 이렇게 세상 돌아가는 속내를 '아는 것'과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깨닫는 것'이야말로 삶의 보배로운 등불이다. '앎'과 '깨달음', 이 두 가지 가운데서도 삶의 길을 멀리 까지 올바르게 비춰 주는 밝은 등불은 말할 나위도 없이 '깨달음'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는 어쩐 일인지 앎에는 굶주리고 목말라하면서도 깨달음에는 마음을 두지 않는 듯하다. 하기야 신문이다, 라디오다, 텔레비전이다, 인터넷이다, 하면서 눈만 뜨면 쏟아지는 온갖 소식이 끊이지 않으니, 그것을 알기에도 시간이 모자랄 판이다. 어느 겨를에 깨달음까지 걱정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깨달음에 마음을 쓰지 않고 앎에만 매달리면 삶은 뜬구름같이 가벼워지고 말 것이다. 알찬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이나 알찬 세상을 꿈꾸는 동아리는 반드시 깨달음을 얻는 일에 마음을 써야 한다. 그런데 요즘 우리는 '깨닫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살아 가는 듯하다. 그것이 삶의 참된 등불이라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채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그해 여름에는 특별한 뉴스거리도 없이 지구의 공전에 따라 계절은 서서히 바뀌었다. 입추가 지나자, 더위는 한풀 꺾였다. 처서가 지나자, 가을이 완연히 느껴진다. 처서가 지난 어느 금요일, 연구실 창문 밖 오동나무를 바라보던 김 교수는 가을이 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미스 최가 생각났다. 미스 최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러기에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옛사람의 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다. 커다란 오동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던 그날 밤 8시 30분쯤 김 교수는 용기를 내어 보스에 전화를 걸어 공손한 목소리로 미스 최를 찾았다. 아마 사장님이 전화를 받았나 보다, 누구시냐고 대뜸 묻는다. 엉겁결에 아무개 교수라고 이름을 밝혔다. 그랬더니 사장님이 아는 체를 하며, 미스 최가 오늘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양재동으로 이사한 사실을 안다면서 집 전화 번호를 좀 가르쳐달라고 했더니, 집 전화 대신 손말틀(유대폰) 번호를 가르쳐 준다. 그날은 금요일이었다. 그날 오후 별다른 약속이 없었고 가을날이었다는 것이 이유라면 이유였으리라. 김 교수는 호기심과 약간은 떨리는 마음으로 손말틀에 전화를 하니 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