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양종승 민속학자] 우리 춤의 뿌리를 붙들고 무궁 창성에 앞장섰던 전통춤 계승자, 추악하고 해로운 액운을 제치고 새로운 세상 문을 열어 이로운 기운을 불러들였던 시국춤 창안자, 그가 시대의 춤꾼 이애주다. 옛 전통과 시대적 창안을 오가며 무한히도 펼쳐졌던 그의 춤 세계는 세기에 부응하여 신명의 날개를 활짝 펴고 겨레의 춤으로 거듭났다. 가락에 흥과 멋을 얹어 신명에 거듭난 춤으로 불태웠고, 그 자태는 궁극에 달하여 예술로 승화되었다. 그 춤새가 혼돈에 처한 시국에 올라앉으니 그 또한 민주화를 울부짖는 바람맞이춤으로 승화되었다. 전통춤 계승자로 그리고 민중의 희로애락을 풀어낸 시대의 바람맞이 춤꾼으로 우뚝 선 그가 우리 시대를 풍미한 이애주다. 전통춤 계승자 이애주 이애주(여, 1947~2021)는 서울 종로구 운니동에서 3남 3녀 가운데 다섯째로 출생했다. 그가 출생할 당시, 운니동에는 국립국악원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린 이애주는 일찍이 국악원 활동을 알게 되었다. 그러던 중, 이애주는 어머니 손을 잡고 국악원 악사로 활동하다 춤을 가르치고 있던 김보남(남, 1912~1964) 문하에 입문하였다. 한국동란 때 황해도 사리원을 떠나 서울에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승 무 - 조지훈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니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승무(僧舞)’는 승복을 입고 추는 줌으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춤꾼은 치마저고리나 바지저고리 등을 갖추어 그 위에 장삼을 걸쳐 입고 가사를 두르고 고깔을 쓴다. 염불장단에 맞추어 합장하면서 춤이 시작되고, 마지막에는 굿거리장단에 천천히 호흡을 조절하며 춤을 마무리한다. 오랜 세월 예인들에 의해 만들어져 온 춤으로 한국춤의 본질인 정중동(靜中動)이 살아있다는 평가다. 곧 멈춘
[우리문화신문=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오는 12월 29일(목)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소정 김명자(김정수)의 팔순 기림공연이 열린다. 국가 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와 국가 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두 종목의 전승 교육사를 맡고 있으며, 1973년 국가 무형문화재 승무와 국가 무형문화재 살풀이춤 두 종목의 보유자였던 고 우봉 이매방 선생과 부부의 인연과 동시에정석현 기자사제의 인연까지 맺은 소정 김명자 선생의 팔순 기림공연이다. 기존의 김명자 선생, 고 우봉 이매방 선생의 제자들과 함께 2021년 새롭게 이수 준비과정반에 입문한 50명의 제자가 어우러져 준비한 승무와 살풀이춤, 그리고 이매방류 입춤, 이매방 검무를 비롯하여 이매방 선생의 주옥같은 창작 작품인 이매방 삼고무, 이매방 오고무, 이매방 대감놀이, 이매방 장검무가 한 무대에서 펼쳐질 예정이다. 승무와 살풀이춤 같은 전통무용의 군무가 가지고 있는 장엄함과 경건함 뿐만 아니라, 김명자 선생의 독무를 통해 연륜에서 묻어나는 우아함과 단아한 멋을 한껏 느낄 수 있는 공연이 될 것이며, 고 우봉 이매방 선생의 생전 모습을 추억할 수 있는 무대와 화려한 창작 춤으로 관객들을 완벽하게 매료시킬 것이다. 10대에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머리엔 고깔 쓰고 어깨엔 붉은 가사 그 땡중 춤사위 한번 활달하다. 봉긋한 가슴 잘록한 허리, 두 여인을 사이에 두고 장삼으로 휘감으며 오락가락 앉았다 섰다 어르고 달래는 듯, 연못가의 붕어보단 덩더꿍 선이 굵고, 지족선사 유혹하는 황진이 자태치곤 춤사위 거만하다. 끊지 못할 인연에 대한 번뇌인가 파계인가. 아무리 좋게 보아도 난봉꾼이 분명하다. 이 각시가 내 각신가 물 건너 온 꽃각신가 이쪽을 취할라니 저쪽이 서운하고 남 주긴 더 아까우니 셋이 함께 놀아보자 <해설> 이제 사설 그만하고 본격적으로 승무를 놀아보자. 이 오광대 승무 추는 이의 굿거리장단이 활달하다. 장삼 휘날리며 이리 얼쑤, 저리 얼쑤. 이 여인 한 번 보고 저 여인 한 번 보고, 에라 모르겠다. 둘 다 취하면 어떨꼬? 난봉꾼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어차피 내 팔자 학승도 못되고 선승도 못되니 팔자대로 살다 가면 될 것이니. 아, 저 꽃각시 아름다운 자태도 서럽다. 이 밤 다 새도록 춤이나 추다 한세상 살다 가자.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잔치마당 소극장》의 기획 프로그램으로 김묘선의 승무 이야기를 하였다. 1900년대 초, 원각사에서 <춘앵전>, <검무>와 함께 <승무>를 추었다는 증언이 있는 점으로 이 시기에 이미 대중 예술로 확산했다는 점 등을 이야기하였다. 이번 주에는 춤꾼 김묘선의 활약상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본다. 그는 한 시대를 승무와 살풀이의 명인으로 국가 무형문화재의 예능보유자로 활동하다가 세상을 뜬 이매방 명무의 제자이다. 스승의 자리를 이어받는 승무의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 예고가 2019년, 9월 초에 있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예능보유자 0순위였던 김묘선이 탈락한 것이다. 전통 무용계는 물론이고, 국악계, 문화계가 시끄러웠다. 보통은 예능보유자가 세상을 뜨면 그 뒤를 잇는 자리는 전수조교 가운데서 뽑아 왔으나, 승무의 경우에는 유일한 전수조교인 김묘선이 배제되고, 그 아랫급인 이수자 가운데서 한 사람이 예능보유자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어떠한 필연이 존재하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무형문화재 전승제도에 관한 필자의 의견은 그가 한 분야에서 얼마나 많은 활동을 해 왔는가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