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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포크의 공주 여행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지난밤의 천안 주막은 크고 깨끗한 편이었다. 오늘 아침은 날씨가 흐리고 안개가 끼었다. 주막 주위에 거위들이 어슬렁거린다. 8시 17분 주막을 출발하여 남쪽으로 향하다. 9시 8분에 휴식. 남쪽으로 작은 계곡이 흐른다. 주위는 구릉이 달리고 있는 첩첩산중이다. 남쪽으로 향하는 행인들이 꽤 많다. 짐꾼들이 동물과 쌀, 담뱃대 그리고 상자를 지고 가고 있다. 주막들에서 많은 양의 놋쇠 그릇이 보인다. 행인도 많고 마을도 많다. 10시 4분 주막 출발. 남쪽으로 향하다가 약간 서쪽으로 틀었는데 감탄할 만하게 경작이 잘 된 지역이 나타난다. 지금까지 본 것 가운데서 가장 훌륭한 논이다. 배수로도 완벽하다. 버려진 땅은 한 뙈기도 없다. 길을 따라 연달아 고을과 마을이 나타난다. 덕평 주막이라는 곳은 주위엔 관목이 우거져 있고 산악지역의 분위기가 풍긴다. 11시 16분 마을 언저리에서 휴식을 취하다. 11시 45분 주막이 있는 원토 마을 서쪽 끝에서 쉬었다. 조선에서 다랑이논을 처음 보다. 어떤 곳은 180m~270m까지 올라갔다. 조선의 서쪽 지형은 토양이 쉬이 씻겨 내려가 경작하기 어려운데 이곳은 그와 달라 이처럼 계단식 경작이 가능하다. 오던 중 오른쪽 벼랑의 바위 속 녹색 유황에서 구리의 증거들을 보았다(버나도우*를 위한 정보). 이 근방은 바위가 더욱 많다. 길 바깥으로 오래 방치된 듯한 당집(Tangchip) 돌무더기를 한두 번 보았다. 서낭당을 조사해 보면 광물학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서낭당에 쌓여 있는 돌무더기는 먼 곳들로부터 옮겨 온 돌이기 때문이다. 11시 52분 출발. 12시 8분 고갯마루 기압은 29.95. 온도는 화씨 63도. 12시 28분 산 아래에 이르다. 분지에 30~40채의 집이 흩어져 있는 마을이 있다. 남쪽으로 계속 나아간다. 가파른 언덕 위까지 경작이 매우 잘 되어 있다. 낮 1시 3분 계곡물을 건너(여기에서 동쪽과 서쪽으로 갈라져 흐른다), 광정(Kwangjong, 廣程: 현재 충남 공주시 정안면 정안리에 있는 역 마을)으로 들어선다. 공주의 ‘광정 (Kwangjong)’은 위에 적은 고갯마루에서부터 나 있는 계곡의 이름이다. 길은 몹시 좁았다. 오늘 나는 철제 선정비를 몇 개 보았다. 비의 윗 부분과 가장자리에 장식이 되어 있다. 언덕엔 풀이 많았고 나무는 매우 드물다. 들판은 일본의 들보다 더 넓다. 이 지역은 일본 비슷한 지역의 어떤 들판보다 더 정연하고 좋았다. 오늘 당집 돌무더기가 무척 많았다. 더러는 모양이 썩 말쑥하다. 그 가운데 하나는 돌을 쌓아 올려 오두막 모양으로 만들었다. 그 안에 돌 하나가 명판처럼 세워져 있다. 방금 지나온 산은 무성산이다. 이곳은 천안삼거리로부터 50리 거리이다. 2시 30분 출발. 계곡은 방향을 남쪽의 약간 동쪽으로 틀고 우리는 남남서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 지역은 논이 드물고 전체적으로 황량하다. 집이 거의 없고 담배밭이 좀 보인다. 4시 7분에 휴식. 마을들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하고 개울은 더 커진다. 주위는 첩첩이 구릉이고 산이다. 서쪽으로 화강암 능선이 남북으로 뻗어 나간다. 주변에 소나무 숲이 군데군데 보인다. 모란(Muran)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공주까지는 20리 거리다. 여기에는 내가 여태껏 본 중에서 가장 깨끗한 주막들이 줄지어 있다. 모란 주막에서 4시 12분 출발. 아름다운 평야가 넓게 펼쳐진다. 강줄기가 우리의 발길을 따라 남쪽으로 구비구비 흐른다. 5시에 우리는 두 언덕 사이에 나 있는 좁은 길로 들어갔다. 저 앞으로 공주산성이 바라보인다. 매우 넓은 들판과 제방이 시선을 끈다. 언덕이 촘촘히 경작되어 있고 주변에 목화밭이 있는 전경이 아름답다. (여기에서 포크가 스케치를 한 것 같음) 5시 39분 금강에 도착하다. 강은 북서쪽으로 흐르고 있다. 강바닥은 폭이 320m 정도. 북쪽면의 물줄기는 너비가 135m 정도인데 점토로 이루어진 둑이 있고 강바닥에는 모래가 깔려 있다. 뱃사공은 강이 세 사람의 키 높이만큼(대략 4.5m) 깊다고 말한다. 강은 거울처럼 잔잔하다. 나루터 위쪽으로 6톤가량의 돛단배가 보인다. 남쪽 강안의 제방은 고운 모래로 이루어진 나지막한 굉장히 큰 둑이다. 유속은 기껏해야 2노트(시속 약 4km)가 넘지 않아 보인다. 평평하고 큰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넜다. 일꾼들이 한 남자에게 횃불을 가져오게 하여 불을 밝혔다. 나룻배에서 내려 모래사장을 서서히 헤치며 산성의 북문 방향으로 나아간다. 성의 문밖에 오두막이 몇 채 보인다. 이제 날이 어두워져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북문으로 들어가 멈춰 서서 횃불을 구하려고 소동이 일었다. 왼편으로 나아가 가파른 돌길을 올라 정상에 이른다. 이동하여 성의 남문을 지나자 가파른 내리막길로 접어든 뒤 좋은 길을 지나 시내로 들어선다. 길가에는 새로 지은 큰 집들이 많다. 마치 불이 나서 새로 지은 집들 같다. 거리에서 갑자기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린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많은 횃불을 들고 나타난다. 곧 구경꾼들이 쏟아져 나와 거리를 가득 메운다. 서양인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몰려든 사람들이다. 어느 집 앞을 지나가는데 이런 재미있는 말소리가 들린다. “여기 화륜선으로 온 사람(wharunsun-uro wal-nun-saram)이 있다!”(Fire wheel ship by, having come, man). 짚을 엮어 만든 원뿔 모자를 쓴 사람이 밥그릇을 긁으면서 내는 소리였다. 김선흥 작가전직 외교관(외무고시 14회), 《1402강리도》 지은이 이메일greensprout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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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선이 부족한 것이 악이다’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도올 김용옥은 선악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선의 대립 개념으로서 악(不善)이란 그 나름대로 독립된 실체가 아니라 선의 결여 상태일 뿐이라는 것이다. 선 자체도 악에 대칭되는 선이 아니며 서양인들이 말하는 ‘good’이라는 개념이 아니다. 선은 우리말로 ‘착할 선’ ‘좋을 선’ ‘잘 선’으로 훈을 다는데, 선의 의미를 가장 잘 나타내는 우리말은 부사적, 형용사적으로 자주 쓰이는 ‘잘’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미의 대립은 추가 아니고 오(惡)이듯이, 선의 대립은 악이 아니고 불선이며 선과 불선은 정도의 문제지 실체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를 ‘악의 축’이라고 말한 것은 지극히 서양적인 사고방식이다. 2002년 부시 대통령은 국정 연설에서 북한ㆍ이란ㆍ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선언하고 2003년에 이라크를 침공하였다. 노자의 관점으로 해석한다면 이라크의 후세인은 악이 아니고 부시 대통령이 생각하는 선이 좀 부족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라크의 후세인은 악의 축이기 때문에 때려 부숴야 한다”라는 것은 서양적인 사고방식이다. 노자의 관점에서는, 후세인도 개과천선하면 부시처럼 선한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선과 불선은 관점을 달리하면 음양이라고 볼 수 있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서 양(陽)이 부실해지면 음이 되고 음(陰)이 충실해지면 다시 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보름달이 기울면 반달을 거쳐 그믐달이 되고 초승달이 시간이 지나면 채워져서 보름달이 되는 이치와 같다. 곧 선과 악(不善)은 정도의 문제지 실체의 문제가 아니다. 서양사상에 큰 영향을 미친 기독교에서는 선과 악이 너무나도 분명하다. 하느님이 선이고 사탄이 악이다. 믿으면 천당이요, 안 믿으면 지옥이다. 그러나 중국 사상에서 악은 선의 대립 개념이 아니다. 노자가 잘 지적했듯이 선이 부족한 것이 악이다. 선과 악이라는 실체가 있어서 대립되는 것이 아니고, 선과 악은 연속선상에 있는 상대적인 개념일 뿐이다. 선과 악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고, 정량적으로 차이가 있어서 다르다는 의미다. 쉽게 말해서, 나쁜 놈은 구제불능이 아니고 변하면 착한 놈이 될 수 있다고 보자는 것이 선과 악에 대한 노자의 주장이다. 그날은 세 분의 연로하신 학장님들과 함께 너무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이야기를 해서, 미스 K는 대화에 별로 끼어들지 않고 듣고만 있었다. 미와 추, 선과 악에 대한 현학적인 이야기가 끝나자, 일행은 다음에 다시 스파게티 먹으러 오자고 약속하고서 학교로 돌아갔다. K 교수가 미녀식당에 드나드는 동안에도 세월은 쉬지 않고 빠르게 흘러갔다. 미스 K의 소문은 S대를 벗어나 멀리 퍼져나갔다. K리조트에 골프 치러 오는 사람들도 소문을 듣고서 미녀식당에 왔다.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미녀식당에 와서 스파게티를 먹었다. 화성군청과 수원시청 사람들도 멀리서부터 미스 K를 보러 미녀식당으로 몰려왔다. 그러나 미녀식당에 오는 남자들 모두가 미스 K를 볼 수는 없었다. 여복이 조금이라도 있는 남자만 미스 K를 볼 수 있었다. 여복이 없는 남자는 그냥 스파게티만 먹고 갔다. S대 남자 교수들과 S전문대 남자 교수들이 미녀식당 문턱이 닳도록 번질나게 드나드는 동안, 아카시꽃이 피었다. 아카시꽃은 꿀이 많아서 양봉업자들이 매우 좋아하는 꽃이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꿀의 70%는 아카시꽃에서 나온다고 한다. 토종꿀은 한 해에 단 한 번 수확하는데 아카시 꿀은 개화기 동안 수시로 채취하며, 토종꿀보다 약 4배나 많은 양의 꿀을 수확할 수 있다고 한다. 아카시꽃은 대개 7일에서 10일 정도 피어있다. 날씨가 적당하면 아카시꽃은 열흘 가까이 진한 향기를 뿜어낸다. 아카시꽃이 지자 이어서 밤꽃이 피었다. 양봉업자들이 밤꿀까지 수집하면 그해 꿀농사는 끝이다. 밤꽃이 진 이후에는 나무 대신 풀에서 꽃이 피지만 꿀의 양이 많지 않다. 양봉업자들은 벌통의 벌들에게 오히려 양식을 공급하면서 이듬해 봄까지 기다려야 한다. 밤꽃은 비릿한 냄새가 남자의 정액 냄새와 닮았다. 그래서인지 여자들은 밤꽃 냄새에 본능적으로 끌린다. 재미있는 것은 옛날에 사대부 집에서는 밤나무를 심지 않았다고 한다. 밤꽃이 피면 안방마님부터 며느리까지 음풍을 주체하지 못하므로 아예 밤나무를 집안에 심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선 시대에 밤나무는 주로 사당 근처에 많이 심었다. 밤나무는 다른 식물과 달리 열매가 싹을 틔워 나무로 자란 뒤에도 뿌리 끝에 껍질이 썩지 않고 오랫동안 붙어 있는 특징이 있다. 조선의 선비들은 밤이 싹 나는 것을 보고서 자신을 낳아준 근본(조상)을 잊지 않는 효심과 가문의 대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짐을 상징한다고 여겼다. 그런 까닭으로 조상을 모시는 사당이나 묘소 주변에 밤나무를 심어 후손들에게 효의 값어치를 전달하려고 했다. 이러한 상징성 덕분에 밤은 제사상의 필수 과일인 조율이시(棗栗梨柿, 대추 밤 배 감)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S대 본관 건물의 동쪽 작은 동산에는 밤나무가 많다. 가을날 아침에 동산에 오르면 전날 밤에 떨어진 밤을 주울 수가 있다. 밤꽃이 필 무렵이면 대학에서는 봄 학기가 끝나고 학기말 시험을 치를 때가 된다. 밤꽃보다 더 늦게 대추나무에 꽃이 핀다. 대추꽃은 연두색 꽃이 아주 작아서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대추꽃이 필 무렵이면 대학교는 여름 방학이 시작된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