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한국민화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다. 그 속의 호랑이나 용이나 토끼나 닭이나 꿩이나 거북이가 다 우리들과 같이 춤출 수 있는 친구들로 그린 그림이다. 필요할 때는 비도 오게 하고 귀신도 쫓아주고 복도 갖다 주는 영물들이다. 그 속의 나무나 바위나 물이나 구름까지도 다 신령이 깃든 대상들이다." 조자용(趙子庸, 1926~2000) 선생이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민화를 전시할 때 우리 민화는 이렇게 설명되었다. 민화를 처음 만난 관람객들은 민화 속에서 동물들이 어덯게 서로 대화하고 함께 노는지를 구경할 수 있었다. 그들의 반응이 뜨거웠다고 한다. 조자용은 1967년 한 골동품상에서 까치 호랑이 민화를 만났다. 호랑이 머리에서 까치가 세상 소식을 전하며 대화하는 그림이다. 그 그림이 그의 운명을 바꾸었고 우리나라 호랑이의 운명을 바꾸었다. 민화 속 호랑이는 88년 서울 올림픽의 마스코트가 되어 올림픽을 주최한 한국인들이 해학과 익살을 좋아하는 좋은 사람들이란 사실을 대변해 주었다. '민화', 곧 일반 민중들이 좋아하고 키워온 그림이란 뜻의 말은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가 처음 쓸 때는 한국인들의 예술에는 비애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지난달 초 중남미 카리브해라는 바다 가운데에 있는 섬나라 쿠바의 수도 아바나 외곽의 한 유대인 묘지에 우리나라 대사가 헌화를 한 행사가 있었다. 묘지의 주인공은 아이작 본다르(Isaac Bondar)라는 이름의 한 쿠바인으로 우리의 6ㆍ25 전쟁에 미군 병사로 참전했다가 전사한 사람이다. 1928년 쿠바에서 태어난 본다르는 어릴 때 미국으로 건너가 생활하다가 미군에 입대해 미군 45보병사단 소속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이후 전장에서 미사일 공격을 받아 중상을 입고 1952년 5월, 23살의 나이로 전사했다. 쿠바는 1959년 사회주의 혁명 전에는 미국과 매우 가까운 나라여서 많은 쿠바인들이 미국에서 살다가 미군에 입대했었기에 참전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지만 현재로서는 본다르 상병만 알려져 있다. 이날 이호열 주쿠바 한국대사는 재쿠바 유대인협회와 함께 묘소를 방문해 "한국 정부를 대표해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라며 "본다르 상병을 대한민국은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쿠바는 우리에게는 참으로 먼 나라였다. 카리브해 중간에 있으므로 뱃길로 바로 연결되지도 않는다. 거기에 가려면 미국 마이애미나 다른 지역에서 비행기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근엄한 유학자로 알려진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가 19살에 금강산에 들어가 불도를 닦은 일은 유명하거니와 그때 너무나 멋진 경치에 흠뻑 빠져 한 줄에 5자씩 600줄(句)의 장편시를 지어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칭송한 적이 있다. 한자 글자로 3천 자나 되는 엄청난 길이의 이 시에서 율곡은 이런 멋진 산을 세계에 알릴 문인이 없어 금강산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것을 안타까워했다. 일만 이천의 봉우리가 눈길 닿는 데마다 모두 맑기만 하여라 아지랑이는 휘몰아친 바람에 흩어지고 우뚝한 봉우리는 푸른 허공을 버티었네. 멀리서 바라만 보아도 기쁜데 더구나 산에 다니며 보는 것이랴 흔연히 지팡이를 잡았는데 산길은 다시 끝이 없어라 (중략) 천지 사이에 생겨난 온갖 만물들은 누가 그 자취를 오래 전할 수 있었겠는가 두자미는 동정호에서 시를 썼고 소동파는 적벽부를 지었다 모두가 큰 솜씨의 문장을 빌려 가지고서 훌륭한 이름이 내내 사라지지 않았느니 .... 이이(李珥), 풍악산을 읊다 율곡이 아쉬워한 '천하제일' 금강산이 마침내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금강산이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의 유산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잠시 세계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않았더니 이런 일이 있었다.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가 중국이 아니라 인도라는 것이다, 인도는 2023년 4월 기준으로 인구가 14억 2,577만 명으로 중국의 14억 2,60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나온다. 정확한 숫자는 차이가 있지만 그 나라의 인구수 측정치에다 출산율, 의료환경에 따른 유아생존율 등을 살펴서 추정된 것이란다. 어떻거나 인도 인구가 세계 1위다. 인도의 출산율은 중국(1.2명)보다 높아 인구 증가세가 지속되고 있고, 인도의 젊은 인구 구조(30세 미만 50% 이상)가 노동력과 소비 시장 확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어 그 차이가 더 벌어져, 순위가 바뀔 가능성은 없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중국의 인구가 늘기는커녕 줄고 있는 것이다. 인구가 급증하던 1978년 ‘한 가정 한 자녀 정책’을 도입했던 중국은 21세기 들어 출산율이 하락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중국의 연간 출생아 수가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1,000만 명을 밑돌았고, 전체 인구 역시 3년 내리 줄었다는 점이다. 인구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중국은 2016년에 ‘두 자녀 허용’ 정책을 전면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요즘 '시그니처'라는 말을 주위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영어단어 ‘signature’의 한글식 표기이다. 그 뜻은 일반적으로는 그 사람의 사인(sign), 혹은 서명(署名)을 뜻하는데 이 단어의 뜻이 넓어져 어떤 사람이나 현상을 대표하는, 그것만 보면 그게 누구인지,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는 것이란 해석이 함께 쓰인다. 그런데 최근 일본의 유명 식품회사에서 '시그니처 한식'이란 이름으로 봉지식품이 일본과 동남아 시장에 나왔다. '시그니처 한식'이라니, 아마도 가장 대표적인 한식, 혹은 가장 한국적인 음식이란 뜻을 담은 선전문구로 쓴 것 같다. 포장지의 전면에는 우리 한글로도 표기하고 있고 동남아에서 통용되는 한자표기는 아주 작게 쓰여 있어서 한국 식품인 것으로 오해할 정도다. 나온 식품은 세 종류다. 소고기 당면볶이, 치킨당면볶이, 트리플 치즈 당면볶이 이렇게 세 가지다. 그런데 이 제품을 만든 회사 이름이 ‘Nissin’이다. 일본을 좀 안다는 사람이 이 말을 듣더니 깜짝 놀란다. "아니 니신이 한국 이름으로 한국 맛 식품을 만들어 내놓았다고?" 이 사람이 놀란 것도 이상한 것은 아닌 것이. 이 니신이라는 이름은 1958년에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오늘은 6월 25일이다. 남북 간의 충돌, 아니 북한이 우리를 남침해서 시작된 동족 사이의 전쟁이 일어난 날이다. 75년 전에 일어났으니 이제 이 전쟁의 참상이나 아픔을 보고 듣고 기억하는 분들이 주변에서 거의 만나기가 어려워졌다. 그런 만큼 전쟁에서 고향을 잃고 가족을 잃고 남으로, 북으로 흩어진 사람들의 기막힌 아픔도 점점 역사 속에서 희미해져 가고 있다. 필자도 전쟁이 막 휴전으로 들어간 뒤인 1953년 10월생이니 이 전쟁의 실상이나 아픔을 알 턱이 없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한 논픽션 소설이 생각난다. 《통일교향곡》이란 제목으로 2012년에 나온 책이다. 1950년 6월, 이 논픽션 소설의 주인공인 19ᅟힲᆯ의 청년 윤정호는 서울에서 열린 전국 음악 콩쿠르 대회 피아노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한다. 성악 부문에서 대상을 받은 최영애와 사랑에 빠진다. 영애는 정략결혼을 추진하는 아버지의 뜻을 따를 수 없어 가출하여 정호와 결혼하기 위해 충주로 갔으나, 결혼식을 올리기 직전에 인민군의 남침으로 6ㆍ25 전쟁이 터지고, 정호와 영애는 인민군에게 붙잡히고 만다. 그들은 곧 의용군으로 인민군에 징발되어 침략한 북한군을 위한 위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우리나라에서 다도(茶道) 인구가 가장 많고 차를 함께 마시는 차회(茶會)도 가장 많은 곳이 부산 경남이다. 이 지역이 차문화가 성행하면서 차를 마실 때 쓰이는 도구, 곧 차를 우려내는 주전자와 찻물을 담아 올리는 찻잔 혹은 찻사발도 중요해졌는데 부산과 경남 지역에서 인기를 얻은 차 도구를 만든 대표적인 도예가들 가운데 경북 문경에서 도예를 시작한 분들이 있다는 점이 특별하다. 경남 양산에 가마를 열고 도예문화를 일으킨 신정희(申正熙 1930~2007) 씨가 그렇고 부산 기장에서 상주요를 운영한 김윤태(金允泰, 1936~2012) 씨도 그러하다. 문경은 도자기의 원료가 되는 적토, 백토, 사질점토, 도석 등이 널리 분포되어 있고 계곡의 물이 좋아 1700년 무렵 영ㆍ정조 시대의 공장안 폐지에 따라 문경새재를 넘어온 장인들이 정착하면서 처음으로 가마가 만들어졌으며, 그 전통이 이어져 오던 곳이었고 임진왜란 때 부산과 경남, 전라도 등지의 사기장들이 일본으로 납치된 이후 문경은 납치를 모면해 도자기 기술자들이 살아남은, 민수용 도자기의 대표적 산지였다. 경남 사천 출신인 신정희는 전국의 오래된 옛 도요지 200여 곳을 탐사하였다.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다시 아침 산책길에 뻐꾸기 소리가 들린다. 뻐꾸기가 내는 소리는 우리 한글이 가장 잘 표기할 수 있다는데 중국 한자어로 뻐꾸기 울음소리 ‘뻐꾹’을 형상화한 의성어 '벌곡(伐谷)'이라고 하거나 '포곡(布穀)포곡(布穀)' 한다지만 우리 귀에는 분명히 '뻐꾹뻐꾹'이라고 들린다. 이 뻐꾸기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은, 그동안 이미 지난달 와서 가끔 울어주었지만, 귀담아듣지 못한 것은 숲 바깥세상에서 벌어지던 정치적 회오리에 대해 우리들이 전혀 무관심하지 못했던 때문이 아닌가? 어찌 됐든 이제 정치판에 그동안 전쟁 같은 격전이 끝나고 세상이 조용해지고 있기에 비로소 그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런저런 연유를 넘어서서. 우리 아파트 단지 아래쪽에서 먼저 시작하다가 나중에 숲길 중반에까지 와서 울어주는 뻐꾹새가 우리 부부는 반가운 것이다. 어제는 그냥 흔히 하는 '뻐꾹 뻐꾹'이 아니라 '뻐뻐꾹 뻐꾹'을 연달아 내곤 해서 이들이 춘정을 나누고 있는 것인가 생각이 돨 정도였다. 뻐꾸기는 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소리는 명확한데, 저녁때 이 소리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영국의 시인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1770~185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소나무가 우거진 기분좋은 언덕배기,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호수, 어린 소나무와 호두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는 숲 속의 작은 빈터, 군데군데 녹은 얼음, 거무스레하고 물기에 젖어있는 호수. 우리가 상상하고 가보고 싶은 숲을 28살의 청년 데이비드 소로우(1817~1862)는 이렇게 묘사했다. 월든이란 호숫가에 들어가 살면서 묘사한 숲의 이야기다. 이 청년이 기록한 미국 동부 숲의 이야기는 단순한 숲 생활의 기록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 경외와 감사, 찬미이며 동시에 우리가 사는 삶의 방식에 대한 통렬한 반성,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었다. 우리가 숲의 소중함을 알게 된 것, 그런 숲에 가고싶어하는 마음을 일깨워준 것이 이 책이었다. 소로우가 묘사한 숲이 우리나라에도 있을까? 기후가 다르고 지형이 다르니 같은 숲이야 있겠는가만은 어릴 때부터 크낙새가 운다는 광릉의 숲이 아마도 소로우가 묘사한 숲의 이미지로 우리 가슴에 들어와 있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이 광릉 숲에 가보고 싶다고 마음을 먹었을 것이지만 막상 거기가 어딘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몰라 못 가본 분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 거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5월이 맞는가? 하루걸러 비가 오는 게 5월 날씨로 맞는가? 그런 의문을 가지고 비가 오는 날도 피하지 않고 산책길에 오르는 까닭은 산책로 입구의 자그마한 물웅덩이에 오늘은 안 오는가 하는 기다림 때문이었다. 근래 이곳 물웅덩이가 잦은 비로 물이 넘치는데도 텅 비어 있는 때가 많아졌다. 지난해 또는 그전에는 오리들이 자주 와서 놀아주기에 산책길이 외롭지 않았는데 영 오지를 않으니, 궁금증이 커지고 그만큼 외롭고 아쉬운 날도 많아졌다. 그러다가 마침내 기다리던 손님들이 왔다. 머리와 목덜미가 파란 청둥오리 두 마리가 다른 오리 두 마리와 함께 물에서 놀고 있는 것을 본 것이다. 마침, 해가 나서인지 오리들이 자맥질하며 한창 즐겁게 놀고 있다. 아침마다 이들을 기다리던 집사람과 필자는 우리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왔어? 왜 이제야 오는 거야? 다만 눈앞의 정경은 좀 특이하다. 오리 네 마리가 놀고 있는데 수컷 오리가 두 마리이고 다른 두 마리는 조금 작아 보이기에 새끼 같다. 열심히 자맥질하며 노는 것도 보면 역시 막 자라는 새끼들 같다. 그렇다면 이들의 구성은 어떻게 되는가? 엄마는 어디 가고 아빠만 두 마리인가? 나머지 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