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는 고향 남원 땅에서 코를 베인 채 먼 이국땅에 가서 귀향하고 있지 못하는 원혼을 달래고자 내가 쓴 시 “코무덤”이다. 일본 교토(京都市 東山) 풍국신사(豊國神社) 앞에는 정유재란 당시에 풍신수길이 조선인의 코를 베어다 묻은 코무덤이 있다. 이 코무덤은 궁극적으로 고향 남원으로 돌려주어야만 한다. 현재 남원지방에서는 교토 코무덤의 귀환을 위한 시민들의 모임이 있다. 독자 여러분들도 구천을 떠도는 영혼들이 고국으로 돌아오는 그날 까지 깊은 관심과 힘을 모아주었으면 한다. 위 시를 본 남원의 한학자 소병호 님께서 ‘코무덤’ 한글 시를 한시로 바꿔 손수 글을 써서 보내왔다. 그 전문을 실어본다.
일본 친구로부터 부등교(후토코우, 不登校)에 관한 책을 선물 받은 지도 벌써 10년하고도 4년이 지났다. 그때 나는 도쿄에 있었고 친구는 출판사 편집 일을 하고 있어서 새 책이 나오는 대로 나에게 선물했었다. 뿐만 아니라 왕따(이지메) 따위에 관한 책도 한보따리 선물했는데 나는 오오츠카의 눅진 자취방에서 이런 책들을 읽으며 일본사회의 그늘진 구석을 들여다 본 적이 있다. 일본말 이지메(いじめ)는 우리말로 ‘왕따’에 해당되며 그 역사는 오래다. 그뿐만 아니라 ‘학교폭력’을 일본에서는 ‘교내폭력(校內暴力)이라 부르는데 일본 TBS방송에서 이를 주제로 한 드라마를 1979년부터 제작할 만큼(3年B組金八先生) 왕따와 학교폭력은 오랫동안 일본사회의 큰 관심거리였으며 현재도 진행형이다. 또한 부등교(不登校)라는 말도 흔한 말로 학교가기를 거부하는 아동들이 늘어가고 있는가하면 히키코모리(은둔형외톨이) 문제도 심각하다. 이러한 일들이 이웃나라 일이려니 여기고 있었더니 ‘부등교(不登校)’를 빼놓고는 한국사회도 이제 청소년들의 왕따, 학교폭력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또한 은둔형외톨이나 사회에 불만을 품은 자들이 휘두르는 ‘묻지마살인’도 하루가 멀다 하고 일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삶을 마감하는 일은 슬픈 일일까? 자유를 만끽 하는 것일까? 일본의 신문지상에서 심심찮게 보도되는 이른바 “독거사(獨居死)”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일본사회에 대두 되고 있다. 일본말로는 “在宅ひとり死, 자이타쿠히도리시”라고 하는데 적당한 우리말을 찾기가 쉽지 않아 ‘독거사(獨居死)’로 해보았지만 “재택1인죽음”, “자기집에서 죽기” 등으로 바꾸어도 마땅치는 않다. 2012년 일본 후생노동성 조사에 따르면 자택에서 삶을 마감하는 사람은 10명중 1명에도 못 미치며 나머지는 모두 병원이나 양로원 등의 시설에서 사망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개호보험(介護保險)”이 뒷받침해주고 있기 때문이지만 실질적으로 노부모를 보살필 여력이 없는 가족이 많은 것도 한 원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8월말 도쿄시내에서 열린 사회학자 우에노(上野千鶴子) 씨의 ‘독거사’ 세미나에는 무려 450명의 고령자들이 입추의 여지없이 몰렸다는 소식이다. 이날 세미나에서 우에노 씨는 ‘독거사’를 맞이하려면 첫째 본인의 강한 의지 둘째 경제력 셋째 가족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몇 천만 엔이나 하는 유료 양로원에 그간 모은 재산을
오사카 백제사와 예산 향천사 뜰을 거닐며 일본 최고(最古)의 설화집으로 고대 일본인들의 불교의식과 신앙생활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책이 있는데 ≪日本現報善靈異記≫가 그것으로 줄여서 ≪日本靈異記≫ 라고 부르는 이 책은 헤이안시대 (平安時代.794-1192) 초기에 쓰인 것으로 상·중·하권으로 나뉘며 모두 116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고승이야기를 비롯하여 위로는 왕부터 귀족, 서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층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 책 ‘상권 14’에는 백제 고승 의각스님 이야기가 있어 흥미를 끈다. 이야기를 요약하면, “의각스님은 원래 백제국 스님으로 사이메이왕(37대 齊明天皇, 재위 655- 661) 때에 일본에 건너와서 나니와쿄(難波京)의 백제사에 살았다. 의각법사는 키가 7척(210미터)으로 불교에 널리 통달했으며 항상 반야심경을 외웠다. 그때에 혜의(慧義)라 불리는 스님이 있었는데 한밤중에 나와 경내를 어슬렁거리다가 흘깃 의각스님 방을 바라보니 그 방에서 신기한 광채가 새어나왔다. 혜의스님은 이상한 생각이 들어 방문을 손가락으로 뚫고 들여다보았더니 단정히 앉아서 경을 독송하고 있는 의각스님 입안에서 별안간 광채가 났다.”는 내용이다. 일본 최고(最
일본에서 건너온 화투를 보면 12달을 상징하는 것들이 거의 꽃과 나무 그림이다. 1월을 나타내는 것은 소나무고, 2월 매화, 3월 벚꽃, 4월 흑싸리, 5월 난초, 6월 모란,7월 홍싸리, 8월 달, 9월 국화, 10월 단풍, 11월 오동, 12월 수양버들을 볼 수 있다. 왜 이렇게 화투에는 식물들이 그려져 있을까? 서양의 카드에는 다이아몬드나 왕관 같은 것으로 되어 있는데 말이다. 이러한 답은 일본의 고전 속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다. 한국에서 나팔꽃으로 불리는 아사가오는 일본의 평안시대(平安時代, 794-1192) 이후 문학작품 속에 두 가지 의미로 쓰이는데 하나는 무상함이요, 다른 하나는 남자에 대한 사랑이다. “아침에 일어나 꽃을 보려하니 벌써 시들어 버리는구나”(新古今集), “믿음직한 그대 얼굴을 보는 듯 피어난 꽃”大和物語과 같이 나팔꽃에 대한 시가 있는가 하면 일본 고전수필의 백미라고 하는 즈레즈레구사(徒然草, 139단)에는 봄과 여름의 꽃으로 제비붓꽃(杜若), 패랭이꽃(撫子), 등나무(藤), 황매화(山吹)를 꼽고 있다. 특히 등나무는 일본 최고의 시집인 만엽집에서 ‘가난한 어부가 해 입는 등나무 옷’이라는 표현이 있으나 고킨슈(古今集)에
일본인들처럼 오마모리(부적)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없을 것이다. 일본의 신사(神社)나 절에 가면 반드시 부적을 파는 곳이 있는데 다양한 모양새만큼이나 지니고자 하는 목적도 제각기 다르다. 좋은 일이 생기도록 비는 뜻에서 몸에 지니는 것으로는 운이나 복 불러오기, 건강 지키기, 학업성취, 이사안전, 교통안전, 안산기원, 연애성취, 금전운, 사업번창, 출세, 승진 등 인간세상에서 빌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이 그 대상이며 나쁜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뜻에서는 액막이(厄除け)나 마귀 쫓아내기(魔除け) 용 부적을 몸에 지니기도 한다. 또한 가정이나 회사, 절, 신사 같은 공간에 걸거나 놔두는 오후다お札)는 크기가 크지만 오마모리(お守)는 몸에 지니는 것으로 크기도 작고 앙증맞은 것들이 많다. 이러한 부적은 가방이나 자동차 안에도 놓고 책상 위에도 놓아두는 등 사람에 따라서는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부적을 많이 가지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부적을 파는 곳은 주로 신사와 절인데 신사에서 파는 것은 부적이 곧 신체(神體)를 뜻하는 것으로 신사의 이름이나 축복의 말이 쓰여 있으며 신사에 모시는 신상(神像)의 다양한 모습으로 부적을 만들어 팔고 있다. 절에서 파는 부적은 그
“명치44년 2월(1911년) 조선은행 건축도 무사히 낙성식을 마쳐 나는 은행 측으로부터 5천 엔을 보너스로 받았다. 그 돈으로 경성 남대문 밖 봉래정 봉학산에 내 집을 지었다. 부지는 5,000평으로 남산이 바라다 보이고 한강물이 마치 정원수처럼 발아래 굽어보이는 명승지인데 내 나이 33살 때 일이다. 봄이면 산 정상에 올라 한강의 경치를 즐기는데 마치 극락에 이른 것 같았다.” 33살 청년의 나이에 부지 5천 평의 대저택을 지을 만큼 조선에 건너온 초보 건축가의 조선생활은 풍족했다. 1910년 한일병합 이전인 1907년에 나카무라 요시헤이는 조선에 건너와 조선은행의 공사 감독을 맡았다. 한반도와 만주의 경제권을 쥐려는 포석으로 착수한 일본 제1은행 한국 총지점(조선은행 본점)이 조선에서의 첫 공사 감독이었다. 일본 하마마츠 출신인 나카무라 요시헤이(中村與資平, 1880.2.8-1963.12.21)는 일본의 건축가로 조선, 만주를 비롯하여 출신지인 시즈오카 현의 공공건물 건축에 많이 관여한 사람이다. 어렸을 때는 공부가 죽기보다 싫어 아버지로부터 무척 꾸지람도 많이 들었던 그는 전기기사가 꿈이었으나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여 훗날 조선은행의 설계를 맡게
“메이지신궁은 메이지천황의 성덕을 영원히 존경하고 사모하고자 국민들의 뜨거운 정성으로 만든 곳입니다. 이곳은 메이지천황과 쇼우켄황태후의 신령을 기리는 곳으로 정초 신사 참배지로 전국최고의 참배자 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메이지신궁의 한국어판 자료에는 친절하게 메이지신궁의 역사와 경내도 그리고 신사참배 방법 등이 자세히 쓰여 있다. 젊은이들의 거리인 하라주쿠와 NHK방송국에서 가까운 이곳은 일본 최고의 신사참배지로 부각되고 있을 뿐 아니라 꽃창포 정원으로 유명하여 종종 일본인 친구들이 나를 이곳으로 안내하곤 한다. 육중한 도리이를 지나 20여만 평에 이르는 경내에는 명치왕 사후에 전국에서 보내온 10만 그루의 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라고 있어 마치 원시림에 들어선 기분이다. 일본의 신궁(神宮)은 신사(神社)나 대사(大社) 보다는 급이 높은 곳이지만 신사이든 신궁이든 한국의 사당으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이들 시설은 죽은 자의 영혼을 기리는 시설이라는 점에서는 한국의 사당과 같은 역할이지만 다른 점은 문중 단위가 아니라 전 국민이 참배한다는 점에서 좀 독특하다. 또한 메이지신궁 같은 곳과 달리 후시미이나리대사 같은 곳은 농업번창의 신을 모시는 등 반드시 죽
항일여성독립운동가를 알리는 시집 서간도에 들꽃 피다를 미국에서 번역하기로 했습니다. 교포3,4세로 이어지면 모국의 역사를 알기가 어려운 현실입니다. 더군다나 영어로 번역하지 않으면 더욱 그 뜻을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 미국을 비롯한 영어권 사람들에게 한국의 수많은 잔다르크를 알리기 위해서는 번역이 꼭 필요합니다만 고맙게도 미국에서 이 책 번역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또한 다음 주 부터는 일본어 번역 작업도 들어갑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윤옥 아룀 다음은 제 책의 번역 소식을 알려준 글입니다. 참고하십시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345(2012). 9. 5. 얼레빗 독자 여러분께! 어느덧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로 접어들었습니다. 그간 안녕하십니까? 지난 무더위 속에서 광복67주년 기념으로 안국역 전시관에서 국내 최초로 항일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화전을 연바 있는 이윤옥 시인의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가 미국에서 번역 작업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있어 독자여러분께 알립니다.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을 중심으로 한국어와 영어가 모두 가능한 우수한 학생들이(지도교사 박혜성) 한국의 쟌다르크를 영어권에 알리고자 번역에 들어갔다는
고맙습니다. 여성독립운동가들을 알리기 위한 몸부림으로 시도한 시화전이 무사히 끝났습니다. 이번 시화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김철관 기자(한국인터넷신문기자협회장)가 취재해주셨습니다. 무더위 속에전시장을 찾아 주신 여러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 말씀 올립니다. 또한 전시장 발걸음은 못하셨지만 마음으로 항상 응원해주시는 여러 선생님들께도 깊이 고개 숙여 감사 말씀 올립니다. 그리고 행사기간 내내 나오셔서 당번으로 현장을 지켜주신 분 언론에 홍보해 주신 분 후원금을 보태 주시면서 용기를 주신 분 먼 걸음을 마다 않고 대전에서, 인제에서 달려와 축사를 해주신 분 수원에서 애국지사를 모시고 와 사회를 봐주신 분 특히 개막전 행사와 개막식 마무리를 해주신 남은혜 명창과 신재창 가수님 시루떡과 다과, 음료를 준비해 주신 분 화분과 화환으로 행사장을 빛내주신 분 마무리날 땀 범벅으로 전시장 정리를 도와 주신 분... 한분 한분의 정성과 관심과 사랑이 없었다면 결코 시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앞으로 광복절이나 삼일절 같은 뜻 깊은 날에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케 되는 계기가 되었기에 이번 행사를 마련한 저로서는매우 기쁩니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