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명확한 지역은 절기가 변하는 시점인 환절기를 네 번 겪는다. 그 가운데 추운 계절에서 더운 계절로 진입하는 봄 환절기, 더운 계절에서 추운 계절로 진입하는 가을 환절기가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킨다. 이러한 변화의 와중에도 우리 몸은 춥다가 더워지는 변화에는 비교적 쉽게 적응하지만, 덥다가 추워지는 가을 환절기의 변화에는 적응하기 힘들어한다. 따라서 가을 환절기를 이겨낼 힘이 없으면 외부와 접하는 피부와 호흡기 점막이 버티기 힘들어서 쉽게 감기에 걸리거나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비염에 걸리게 된다. 특히 이렇게 힘든 계절에 수능이 100일이 채 남지 않은 수험생의 경우, 수험기간에 오는 긴장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서 과도한 공부로 신경이 바짝바짝 말라간다. 흔히 말하는 수험생 증후군을 겪고 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수험생의 시절이 인생에서 가장 건강한 시점이기에 그래도 견딜 수 있고 조금만 노력해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먹는 것과 충실한 수면에서 가능하며 이를 도와주는 다양한 방법들이 존재한다. 1. 머리를 맑게 해주는 식습관과 음식이 있다. 우리가 먹는 모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용항교를 건너면 주진리이다. 《조선지지》에 주진리(舟津里)라고 표시되어 있는 마을이다. 주나루라고도 부르는데, 나루 둘이 있으므로 두나루라 하던 것이 변하여 주나루가 되었다. 옛날에는 뱃터거리에서 나룻배로 사람과 우마차가 강을 건넜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 때(1934) 주진교가 놓였고, 80년대 초에 새 주진교가 건설되었다. 그렇다면 소년 이효석은 봉평에서 평창읍으로 갈 때 분명히 주나루에서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넜을 것이다. 배를 타고 평창강을 건너는 소년 이효석을 상상해 보았다. 그의 작품 중에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장면을 묘사한 글이 나오는지 궁금하다. 주진리에서 평창강 따라 동쪽으로 계속 걷다가 작은 하천을 만나 왼쪽 둑길로 돌아가니 주나루라고 쓰인 큰 비석이 나타난다. 공원 입구에 주진게이트볼장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비석의 아래에 주나루의 유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주나루란 나룻배로 강을 건너다니던 뱃터거리를 말하는 이곳의 옛 지명입니다. 주변에는 선사시대부터 선조들의 주거지로 추정되는 유물인 토기, 돌 연모, 고인돌 등이 산재해 있고 앞산 용산(龍山)은 용산정(龍山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던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인간이 생존하려면 먹고 자는 것을 온전히 하는 것은 기본이다. 창조주는 이러한 생존을 위해 우리가 노력을 충실하게 하도록, 생존의 욕구를 만족시켰을 때 가장 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생각된다. 곧, 성인에게는 먹는 것이 큰 즐거움 중 하나라면 아이들에게는 먹는 즐거움은 이 세상에 가장 큰 즐거움이 된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가장 큰 즐거움인 먹는 것을 외면한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므로 억지로 먹이지 말고 먹는 것을 외면하는 이유를 해결해주려 노력해야 한다. 1. 식욕은 기분에 따라 달라진다 어린이를 진료하다 보면 그 특징 가운데 하나가 솔직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곧 몸과 마음이 솔직하여서 몸에 이상이 있으면 얼굴이나 행동에 고스란히 드러나고, 기분이 나쁘면 나쁜 표정이 드러나며, 식욕이 없으면 먹는 모습에 정직하게 표현된다. 따라서 먹는 모습을 보면 잘 먹는 아이들은 얼굴에 행복감, 즐거움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못 먹는 아이들을 보면 억지로 먹거나, 먹는 것에 대한 부담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곧 아이들에게는 기분과 식욕이 거의 비례하여 주고받는 모양새를 보인다. 특히 식욕이 부진해서 입맛이 없는 아이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학교 명예교수] 세종 시대 큰 전투가 몇 번 있었는데 대마도 정벌과 두 번의 파저강 전투다. 대마도의 왜인들은 평시에도 우리 바다에 드나들며 고기도 잡고 상행위도 하고 때로 약탈도 일삼았다. 한편 북방족은 통일이 되어 있지 않은 부족 형태여서 수시로 떼를 지어 쳐들어오고는 했다. 주로 노략질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마도와 달리 북방족에 대하여는 평소에도 상대방 부족들의 동향을 파악해 두어야 할 필요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 대비로 평소에도 첩보의 체제가 갖추어져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된다. 공험진과 주민 이주 국가란 영토, 주민 주권으로 이루어지는데 세종 시대의 북방정책의 영토 개념은 황무지의 개간이 된다. 국경을 지키려면 사람이 살아야 하고 사람이 살려면 양식이 있어야 하고 양식을 얻으려면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땅을 개간해야 했다. 따라서 북방의 장군은 국경을 지키는 것만큼 토지 개간에도 힘을 썼다. 오늘날에는 국토의 개념이 경제력, 언어, 종교, 문화, 사이버 영토 등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지만 세종 시대에는 영토의 확보와 이에 따른 주민의 이주 등이 초점이었고, 그래서 파저강 전투 1, 2차는 전쟁이 아닌 적극적 방어책이었다. 세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용항리 경로당이 오른쪽에 나타나자 용항교가 왼쪽으로 평창강을 가로지르고 있다. 다리 입구에는 효석문학100리길 제5구간 표시판과 안내도가 있다. 여기서 남쪽에 보이는 작은 고개를 넘어가면 후평리를 지나 노산을 거쳐서 평창읍으로 들어갈 수가 있다. 소년 이효석은 지금부터 100여 년 전에 지금 내가 걷는 걸을 걸었고, 내가 보는 산을 보았고, 내가 듣는 강물소리를 들었을 것으로 생각하니 감회가 인다. 나는 서울에서 친구들이 봉평으로 찾아오면 꼭 이효석 문학관으로 안내한다. 문학관에는 2명의 문화해설사가 근무하는데 단체 관광객에게는 해설해준다. 이효석(1907~1942)은 문학관 근처인 봉평면 창동리 남안동 681번지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부친은 진부면장을 했다. 그는 1914년에 평창읍에 있는 평창공립보통학교(지금의 평창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봉평에서 평창읍은 거의 100리 길이므로 이효석은 초등학교에 다닐 때 평창읍에서 하숙을 했다. 이효석은 1920년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유학하였다. 그는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지금의 경기고)를 1925년에 졸업하고 이어서 경성제국대학(지금의 서울대) 법문학부 영문학과를 193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많은 아이가 밥을 안 먹어서 고생하고 부모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식욕부진 현상에도 다양한 양상이 있지만 크게 구분하면 소화기 장관의 운동성이 떨어진 것과 소화액의 분비가 부족한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특히 소화기 장관은 입에서 씹는 것부터 시작하여 식도의 연동운동, 위장의 운동과 위대장 반사의 작용으로 인한 대장의 운동, 위장과 대장 사이의 십이지장과 소장의 운동이 입에서 항문까지 일관성을 가지고 넘기는 작용을 하고 있다. 곧 소화기 점막의 시작인 입술에서 항문까지 하나의 관이 위치를 달리하며 각기 다른 기능을 하되 일정한 리듬에 따른 일관성 있는 운동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의 운동성은 하나의 관(管)으로 통일되어 있기에 한쪽이 활발하면 덩달아 활발할 수 있고, 한쪽이 정지하면 전체가 정지할 수 있는 공동운명체 관계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의 전체적인 운동성이 느려 식욕이 부진한 아이에게 소화기 장관의 위치에 따라 각기 다른 병명을 붙이기 곤란하므로 소화기에 기체증이 있다고 표현하게 된다. 이러한 소화기장관의 기체증이 심한 아이들은 다음과 같은 증상을 보인다. 음식을 입에 물고 있거나 먹다가 딴짓을 많이 한다. 때
[우리문화신문=김동하 작가] 아버지의 살아남은 형제는 두 분이 더 있었다. 스물네 살에 딸 하나 남겨두고 죽은 고모를 빼고, 아버지 아래로 열한 살 어린 남동생과, 열여섯 살 어린 남동생 나이 차이로 봐선 그 사이에 몇 명의 동생이 더 있었을 듯하지만, 십 남매 중에 겨우 이 정도 남은 걸로 봐서는 이것도 당신에게는 큰 상처를 소환하는 일이겠다 싶어 자세하게 물어보진 않았다. 아버지 바로 아래 남동생은 아버지가 업어 키우셨다고 한다. 집에 거의 붙어있지 않는 할아버지와 그래도 남의 집 밭일이며 뭐라도 가지고 나가 시장에서 장사라도 하셔야 했던 할머니는, 애만 낳아놨지, 기르는 것에는 전혀 소질도 여력도 없으셨는지, 내 아버지가 갓난쟁이 어린 동생을 업고 일을 다니셨다고 한다. 열일곱 살에 갓난애기를 업고 철공소 일을 배우러 다니셨는데, 동내 처녀들이 항상 깔깔거리며 비웃어서 무척 부끄러웠다고 하셨다. 아버지의 아름다울 수 있던 청소년 시절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던 거다. 아버지가 업어 키우셨던 내 큰삼촌은 키가 작고 병약하셨다. 그리고 돌아가실 때까지 독립성도 그닥 많지 않으셨다. 항상 내 아버지를 찾아와서 이거 해 달라, 저거 해 달라 부탁하시는 것을 내가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한의학에서 기체증(氣滯證)이라고 진단을 내릴 경우, 세부적으로 접근하여 기체증의 위치에 따라 분류하여 소양기체증小腸氣滯證과 같은 병명이 있고, 기체증을 유발한 요인에 따라 분류하여 양허기체증(陽虛氣滯證)과 같은 병명을 붙이기도 한다. 현재 한의원에서 기체증이라고 진단 내릴 때는 그 증상이 다양하다.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경우는 오장육부(五臟六腑) 가운데 육부(六腑) 기능이 모두 함께 저하되어 식욕이 극도로 미진한 아이들에게 내리는 경우이다. 곧 소화기 장부의 전체적인 기능이 정체되거나 기운의 정체되었을 때 진단명으로 사용하는데, 육부 전체가 나쁘다기보다는 육부의 상태는 온전한데 기운이 정체되어 온전히 기능을 발현하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다. 1. 육부(六腑)의 기운 정체 소화기 장관의 기능이 정체된 모습을 보면 목구멍에서부터 시작하여 음식을 삼키는데 애로가 있어 잘 삼키지 못하고, 위장을 중심으로 운동성이 떨어지면서 음식을 받아들이는 양이 적으며, 췌장을 중심으로 소화액의 분비가 적어 충실하게 소화하지 못하고, 소장을 중심으로 흡수력이 떨어져 몸이 메마르고, 대장을 중심으로 발효환경이 흐트러져 깨끗한 변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이
[우리문화신문=허홍구 시인]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도 늘 반갑게 맞이해 준다. 누구는 마음이 넓다 하여 들판 같은 분이라 말한다. 뇌졸중으로 두 번이나 쓰러졌다가도 거뜬하게 일어나 보란 듯이 무슨 문학 행사장으로 쉼 없이 찾아다니며 참여하고 열심히 활동하는 시인의 이야기다. 내가 있었던 광화문 5층 사무실 승강기가 고장 나도 지팡이를 짚고도 거뜬하게 걸어 오르내렸던 분이다 인물 시(詩) 한 편 적어 내 기억의 창고에 저장하려 했더니 이미 시집 속에 자신의 이력서를 다 적어 놓았다 피난 시절에는 대구 서문시장, 칠성시장, 교동시장에서 장사하면서 공부를 했으니 학교는 야간부만 다녔다 중학교부터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까지 꼬박 12년을 야간부 학생으로 공부를 했다니 참으로 대단한 분이다. 오뚜기처럼 살아가는 멋쟁이 시인을 소개한다. 김 원 중 서울대학교를 안 나왔고 유학도 못 갔다 왔어요 먹고 살기도 바쁘고 힘든 세상을 살았으니까요 일요일도 내내 일을 했으니 장로도 못 되었고요 김원중 노 교수가 말하는 자신의 지난 이야기다. 시장에서 장사꾼으로 돈 벌며 공부했던 시인! 시골 초등학교만 빼고 중학교부터 고등학교 대학과 대학원까지 꼬박 12년을 야간에 공부했다며 그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답사 날자> 2021년 4월 20일 화요일 <답사 참가자> 이상훈 박인기 이규석 우명길 원영환 모두 5명 <답사기 작성일> 2021년 4월 27일 화요일 오늘 걸을 평창강 제5구간은 평창읍 용항리 용항민박집 앞에서 출발하여 평창읍 상리 평화길 입구에 이르는 10.9 km 거리다. 성남시 분당에 사는 석영(박인기)은 청량리역에서 오전 8시 22분에 기차를 타서 평창역에 오전 9시 40분에 도착한다고 알려왔다. 그런데 답사일 새벽 5시 42분에 카톡 방에 그가 글과 사진을 올렸다. ‘연두의 시간’이라는 제목의 글을 여기에 소개한다. <연두의 시간> 동네 가까운 대모산에 갔습니다. '봄날은 간다' 노래를 웅얼거리며... 노래 사연이 애틋합니다. 시간이 무한하다면, 애틋함이 어찌 생겨날까. 꽃들 많이 피고, 꽃 사진이 SNS에 넘쳐납니다. 오늘 대모산에서는 신록만 보기로 합니다. 이를테면 '꽃보다 신록'입니다. 신록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잎새들이 짙은 녹색의 중심에 닿기 전, 연두의 시간입니다. 저 연두의 봄날도 빠르게 가겠지요. 금방 사라지겠지요. 이런 봄날, 숲에서 느끼는 연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