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1970년대 후반에 직장을 시작해 퇴직하기까지 30여 년을 텔레비전 방송국의 기자였던 필자는 일반적인 기자들보다는 대형다큐멘터리를 많이 제작하는 행운을 누렸다. 기자라고 하면 사건이 일어나거나 세상이 변하는 현상 등을 취재해서 짧은 뉴스 속에 담아내는 일이 주 업무로 인식되고 있고, 그 뉴스라는 것이 보통 1분 30초를 기준으로 만들어내는 것인데, 그런 매일의 뉴스와는 달리 장기간에 걸쳐 회사 밖으로 나가서 취재해서 50분 단위로 만들어내는 큰 프로그램을 필자가 다른 기자들보다도 더 많이 맡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취재는 국내는 물론 멀리 나라 밖에도 가게 되고, 그것도 남들이 가지 못하던 곳을 처음 간 경우도 많았다. 주요한 것으로는 1987년에 우리나라 국산자동차 3대를 직접 북미대륙으로 가져가서 그 차를 몰고 넉 달 동안 2만 킬로미터를 달리면서 그 나라의 자연과 역사, 사람과 문명의 문제를 조명한 '세계를 달린다'란 프로그램의 북미편이 있었고, 지금은 누구나 갈 수 있는 중국의 실크로드를 한국인 처음으로 1989년 5월 한 달 동안 수도인 베이징에서 우르무치까지 5천 킬로미터를 취재한 '서역기행 대륙회당 5천킬로'
[우리문화신문=안동립 기자] (5일 차 2022년 9월 22일) 이동 거리 220km 새벽 5시에 텐트에서 나와 하늘을 보니 초승달이 떠 있어 날이 좋아지려나 했는데, 다시 잠들었다가 일어나 보니 눈이 엄청나게 내린다. 텐트 밖 세상은 첫눈으로 온통 설국이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기온이 0도이나. 체감 온도는 영하 2~3도 정도로 춥다. 아침 먹고 출발하였다. 바람 속도를 재보니 15~30m/s로 눈이 수평으로 내려 눈을 뜰 수 없다. 멀리서 소 떼와 말을 탄 목동이 온다. 세찬 눈을 맞고 오는 목동이 안쓰럽다. 자신의 추위보다 소를 먹이기 위하여 눈보라를 헤치고 묵묵히 소의 뒤를 따라간다. 잠시 만나서 인사하였다. 한참을 달리니 휴화산(?)이 수십 개가 보이며 대평원에서 구릉 산지 지대로 진입하며 약간씩 고도를 올린다. 눈이 많이 와 멀리 볼 수 없어 지형 파악에 어려움이 많다. 온종일 달려도 지나가는 차 한 대도 볼 수 없다. 대평원에서 땅속으로 쑥 들어가 있는 탈인아고이(초원 동굴)을 찾았다. 굴속에 들어가 보니 용암동굴로 규모는 작으나 이 지역이 화산지대임을 증명하는 곳이다. 인근 관광 캠프장을 보니 인적 없이 쓸쓸해 보인다. <호르깅혼디 Khu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항상 경영자들이 경계하는 것이 있다. 바로 위기! 기업마다 ‘위기관리 매뉴얼’이 있고, 국가에서도 위기가 닥쳤을 때 체계적으로 대응하고자 컨트롤타워를 만드는 등 위기관리에 큰 노력을 기울인다. 평소 위기관리를 빈틈없이 해야 실제 위기가 왔을 때 실기(失期)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조선에도 이런 위기관리 비법이 있었을까. 물론이다. 군주의 역량에 따라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조선은 끊임없는 기록과 관리를 통해 위기에 대비했다. 비록 시간이 흐르며 대응체계가 형편없이 무너져 종국에는 나라를 잃었지만, 조선 역사의 면면을 살펴보면 아주 체계적으로 대응한 사례가 많다. 이 책, 《조선의 위기대응노트》는 마치 기출문제를 풀 듯, 그러한 위기대응 사례를 한 건 한 건 살펴보며 오늘날에도 참고할 만한 좋은 통찰력을 얻는 책이다. 역사와 경영의 만남, 꼭 필요하면서도 어려운 이 과제를 지은이는 이해하기 쉬운 설명으로 훌륭히 해내고 있다. 책은 모두 20개 사례로 구성했다. 위기라고 해서 꼭 전쟁이나 재난 같은 급박한 상황만 다루지 않고, 사전의 정의처럼 ‘안정을 흔드는 급격한 변화, 또는 결정적으로 중대한 순간’까지 모두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1. 인간은 자야 하지만 자려 하지 않는다 인간의 활동과 숙면의 고리를 살펴보면서 ‘인간은 자려 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인간의 깊은 심층의식은 자지 않고 끊임없이 활동하려 하는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잠을 자는 동안에 외부의 적에 대해 무방비 상태인 것을 두려워하는 불안감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건강에 자신이 있고 마음이 강인한 사람은 과감하게 잠을 자지만 건강에 자신이 없고 마음이 약한 사람은 어떻게 해도 잠들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경향성 속에서 인간의 몸은 휴식과 회복을 위해 잠을 자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수면이란 자지 않고 버티려는 심층의식과 회복을 위한 수면요구의 시소게임이라 할 수 있다. 숙면을 취하기 위한 기본요건 가운데 하나는 인간의 깊은 심층의식에 안전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다. 잠자는 공간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나의 생명에 위협이 안 되며 같은 공간의 어떠한 사람도 나를 해치지 않는다는 확신을 무의식에 심어주어야만 쉽게 잠이 들 수 있다. 한편으로는 회복의 필요성을 늘리는 것이 수면을 유도하는 방법이 된다. 곧 활동에 비례한 반대급부로 회복의 필요성이 왕성해지므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물레야 물레 잦아라 빙빙빙 돌아간다 물레 돌아가고 샛별 넘어갈 때 꼴까닥 내 목숨도 따라 넘을지 모른다네. 구름 따라 바람 따라 저 별 넘어가는 문경새재 아우라지 고개는 몇 고갠가. 구부야 구부구부를 눈물첩첩 밟고 가네 < 해설 > 시골 양반댁에 시집왔으니 호화롭게 살았으리라 생각하지만, 어디 꼭 그렇기만 했을까. 여인네의 인생이란 처음부터 남녀칠세부동석이니 공평치는 못했을 터. 게다가 남편이란 작자는 뻑 하면 정지에 앵오리(고양이) 드나들 듯 기생방 출입이고, 끊이지 않는 손님 뒤치다꺼리, 시부모에 시조부모까지 모셨으니 그 삶인들 그리 편했을까. 물레 돌 듯 빙빙 도는 모양으로 예까지 걸어왔다. 문경세재 아우라지 구부구부 돌고 도는 길처럼 눈물 흘리며 살아왔다. 이제 겨우 어른들 저세상으로 모셔 보내고, 자식들 시집 장가 보내고 살만하다 싶었는데, 기껏 젊은 첩살림으로 눈에 흙을 뿌리다니, 아하! 내 팔자야. ※이 시를 쓰면서 문경세재로 할 것인가, 문전세재로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진도지역 주민들은 진도 옛 성문 앞에 있는 남산재, 연등재, 굴재 등 고개 3개를 의미한다며 문전세재가 맞다고 하고, 교과부에서는 국립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학교 명예교수] 우여곡절의 일생 세종시대의 인물을 살펴보고 있다. 마음 착한 한 선비의 인간성이 일생을 통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 바로 세종의 스승 이수(李隨, 1374년 공민왕 23~ 1430 세종 12)를 통해서이다. 한 선비 삶의 우여곡절이 녹아 있어서 한 폭의 그림 같기도 하다. 세종의 스승이다 보니 자연스레 부왕인 태종대부터 시작된다. 인품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아 “(대사성 유백순이 시독관으로 생원 이수를 천거하다.) 성균관 대사성 유백순(柳伯淳)을 불러 시학(侍學, 임금이나 왕세자에게 가르치고 문답하는 일) 할 만한 사람을 물었다. 임금이, "경이 오래 성균(成均)에 있었으니, 선비들의 우열을 알지 못함이 없을 것이다.’... 유백순이 생원 이수(李隨)가 자질이 순수하고 아름답고 학문이 정숙(精熟)하다고 천거하니, 임금이, "내가 시험하여 보겠다." 하였다. (《태종실록》 7/7/28) 그의 본성은 스승으로 모범이 될 만했다. 이에 임금 태종은 생원(生員) 이수(李隨)에게 옷 1벌[襲]을 내려 주었다. (《태종실록》 12/8/12) 관리로서 일하는 도중 실수도 저질러 “겸 상서소윤(尙瑞小尹) 변처후(邊處厚)와 주부(注簿)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답사 날짜> 2022년 6월 27일 월요일 <답사 참가자> 이상훈, 박인기, 원영환, 최돈형, 홍종배 모두 5명 <답사기 작성일> 2022년 7월 11일 동강 따라 걷기 제5구간은 청심대에서 출발하여 막동계곡 입구에 도착하는 12.4km 코스이다. 이날은 장마전선이 중부지방으로 올라와서 비가 많이 내린다고 예보되어 있었다. 또한 공교롭게도 회원들이 이런저런 사정들이 겹쳐서 5명만이 답사에 참가했다. 경기도 용인에 사는 홍종배 교수가 가양을 태우고 차를 운전하고 와서 참가했다. 석영과 석주는 기차를 타고 진부역으로 왔다. 우리 일행 5명은 11시에 옛골청국장 식당에서 이른 점심을 먹고서 청심대로 이동하였다. 은곡은 청심대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은곡은 사정이 생겨서 참가를 못 한다고,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막걸리 2병과 안줏거리를 우리에게 전해주고는 여우재로 돌아갔다. 자상하고 고마운 회원이다. 우리는 낮 1시 10분에 청심대를 출발했다. 마침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나는 커다란 우산을 들었다. 몇 사람은 비옷을 입었다. 비가 세차게 내렸다. 모처럼 비가 내리니 가뭄은 해소되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늦가을 인사동 거리, 못생긴 얼굴 같은 글씨로 서예전을 알리는 포스터가 눈에 들어옵니다. 한얼 이종선이란 분의 서예전인 모양인데, '七十而已'(칠십이이)라는 전시회 이름이 특이합니다. 개막식장에서 전시회의 주인공은 '칠십이이'라는 말은 "제 나이 칠십입니다" 혹은 "칠십이 되었군요"라는 뜻이랍니다. 고희를 맞아 그동안 작품활동 한 것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위해 지나간 작품들을 모아 전시회를 열었다는 겁니다. 전시장 안의 글씨들은, 한자 한문도 있고요, 한글 서예작품이 많은데, 뭐 글씨가 삐뚤삐뚤, 들락날락, 흐느적 흐느적... 보통의 서예글씨가 아니라 마치 글자들이 춤을 추는 그런 작품이더라고요. 요즘 사람들이 많이 언급하는 말 메멘토 모리, "언젠가는 우리들이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이런 무시무시한 말이 뭉툭 뭉툭한 채로 눈에 들어옵니다. 흔히 세로로 쓰는 작품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고 읽는 것이 보통인데, 이것은 왼쪽에서부터 읽도록 했고, 작은 글씨도 우리가 언젠가는 인생이란 역에서 내려야 한다는 내용을 깔고 있는, 제법 의미가 있는,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그런 글귀를 마치 우리네 인생이 그런 것처럼
[우리문화신문=안동립 기자] [4일 차 2022년 9월 21일] 이동 거리 378km 오랜만에 둥근 돔 형태의 글램핑 시설에 침대, 에어컨, 냉장고, 식탁, 따뜻한 물, 샤워까지 할 수 있는 곳에서 하룻밤을 잤다. 밤새 바람 소리, 파도 소리에 몇 번이나 깼다. 새벽 2시경 밖에 나와 보니 가로등을 켜놓아 별을 볼 수 없다. 아침에 호숫가를 산책하며 파도에 밀려온 진주조개 50여 개를 호수에 던져 주었다. 주방 아주머니가 메기를 손질하여 가져왔다. 요리할 시간과 재료가 없어 매운탕을 끓일 수 없다. 들기름에 볶아서 고추장을 발라 먹었다. 보이르호에서 메기가 많이 잡힌다고 한다. 이번 답사 중 할힌골강에서 낚시 체험을 하려고 간단한 낚시채비를 한국에서 준비해 왔고, 지렁이 미끼를 울란바토르에서 2만 투그릭(한화 약 8,000원)을 주고 사서 왔는데 낚시할 시간이 없다. 실제 팔뚝만 한 메기가 잡힌다고 한다. 내년에 낚시팀을 만들어 와야겠다. 캠프장을 출발하여 보이르호를 끼고 유전지대로 가는 포장도로를 찾는데, 키 큰 잘피 종류의 잡초가 1m 정도 자라서, 주변을 둘러보아도 온통 같은 풍경이라 포장도로를 찾을 수 없다. 남서쪽으로 초원을 질러가면 도로와 마주치기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태극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는 우리나라의 국기, 태극기도 한때는 용기의 상징이었다. 태극기를 높이 들어 올리는 것은 그 자체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태극기는 곧 독립운동이요, 독립운동은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험난한 가시밭길이었다. 그러나 그때도 과감히 태극기를 들었던 여성들이 있다. 자칫 인생이 끝날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서, 여자로서의 삶을 포기하면서, 민족과 조국을 위해 용기를 냈던 이들이 있다. 이 책 《태극기를 든 소녀 1》은 그 여섯 명의 지극한 용기에 바치는 헌사다. 의병가를 지어 의병의 사기를 드높인 의병대장 윤희순. 이화학당 교사이자 목숨을 걸고 고종의 비밀문서를 파리로 가져간 김란사. 기모노 속에 2.8 독립선언서를 숨겨 들여온 김마리아, 3.1운동의 불씨를 고향에서 이어간 유관순. 독립을 향한 의지를 보여주려 손가락을 자른 남자현. 전투기를 몰고 조선총독부를 폭격하려 했던 권기옥. 이 책은 이 여섯 명의 의로운 여성들을 차례차례 되살려낸다. 이야기를 읽어주는 듯 친근한 어투로 그들이 겪었을 고뇌와 삶의 고통을 풀어내, 어른도 그 아픔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폭력과 탄압이 난무하던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