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6)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던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조각가 김종영의 생가는 <고향의 봄> 동요의 노랫말에 나오는 ‘울긋불긋 꽃대궐’ 이다. 경상남도 창원시 소답동, 지금도 ‘새터마을 소답꽃집’으로 불리는 그 집이다. 한국 조각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한국의 대표적인 추상 조각가, 김종영은 이렇게 아름다운 집에서 태어났다. 조은정 작가가 쓴 이 책, 《생각을 새긴 조각가, 김종영》은 한국 조각계의 거목인 김종영의 삶을 보여주는 ‘어린이미술관’ 시리즈 가운데 한 편이다. 이 ‘어린이미술관’ 시리즈는 ‘온 가족이 보는 예술책’답게, 어른과 어린이가 함께 볼 수 있을 정도로 쉽고도 알차게 내용을 담아냈다. 김종영의 증조부 김영규는 조선이 강제로 합방되자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에 은거했다. 그리고 1915년, 증손자 김종영이 아버지 김기호와 어머니 이정실의 5남매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종영은 집안 어른들이 가르쳐주는 대로 사랑방에서 글씨를 쓰고 난초와 대나무를 그리며 자랐다. 열여섯 살이 되던 1930년, 일본인이 세운 학교가 아닌 민족재단에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한의학 치료의 기본은 흔히 일침(一針), 이구(二灸), 삼약(三藥)이라 하여 침을 놓고 쑥뜸을 뜨고, 한약을 복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치료 방법들은 기본 이론의 토대가 명확하고 실질적인 효과가 있어 의학 기술이 발달한 현대에서도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한의학의 정수는 섭생(攝生)과 양생(養生)으로 대표되는 건강법이라 할 수 있다. 정신을 기르고, 기를 단련하며, 몸을 보양하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고 이를 실천하는 것에 있다 할 수 있다. 이러한 바탕 속에 ‘도창법’과 ‘하천고’를 소개하고자 한다. 봄이 오면 피로(疲勞)를 호소하는 분들이 많다. 이는 어린이와 성인 모두에게 적용되며 하다못해 동물의 세계에서도 보이는 모습이다. 왜 봄에 피로를 많이 느낄까? 왜 보약은 봄과 가을에 먹으라 했을까? 이러한 의문과 더불어 실질적으로 어떻게 하면 피로를 풀어내고 활기찬 상태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필자의 경우 피로하면 노폐물이 먼저 떠오르고, 노폐물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백호탕(白虎湯)’을 기본으로 다양한 배합의 처방들이 떠오른다. 한편으로 노폐물을 제거하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동의보감에 기록된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젊은 시절에 나는 방황하는 구도자였다. 기독교의 ‘예수원 방문기’에 이어서 또 다른 구도 여행인 불교의 ‘금산정사 방문기’를 연재한다. 광복절 전날인 1997년 8월 14일 낮 1시 30분, 나는 불교계 친구인 연담 거사와 함께 수원역에서 광주행 무궁화호 열차에 몸을 실었다. 두 남자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2박 3일 동안 전남 고흥군 건너 남해에 있는 섬, 거금도로 현정(玄靜) 스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그것은 참으로 오랫동안 그려 오던 여행이었다. 내가 현정 스님을 최근에 만난 것이 1989년이었으니까 무려 8년이나 기다렸던 여행이었다. 8년 만의 외출. 무슨 소설 제목 같기도 하고, 나는 괜히 가슴이 설레었다. 내가 현정 스님을 처음 만난 것은 순전히 인연이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10년 전인 1987년 어느 날, 나는 이전 직장인 국토개발연구원에서 광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나는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시끄럽고 닭장 같은 아파트가 가득한 대도시가 싫었다. 모처럼 서울을 떠나 출장을 가는 김에 하룻밤을 광주 근처의 산사에서 보내고 싶었다. 나는 직장의 불교 모임인 국불회(國佛會)의 회장 연담 거사에게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봄 여름 가을 겨울, 두루 사시를 두고, 자연이 우리에게 내리는 혜택에는 제한이 없다. 그러나 그 중에도 그 혜택을 풍성히 아낌없이 내리는 시절은 봄과 여름이요, 그중에도 그 혜택을 가장 아름답게 내는 것은 봄, 봄 가운데도 만산에 녹엽이 싹트는 이때일 것이다." 우리에게 수필가로 기억되는 영문학자 이양하(1904~1963) 선생의 대표적인 수필 「신록예찬」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러면서 신록을 만끽할 때로 5월을 거론하신다.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고 먼 산을 바라보라. 어린애의 웃음 같이 깨끗하고 명랑한 오월의 하늘, 나날이 푸르러져 가는 이 산 저 산, 나날이 새로운 경이를 가져오는 이 언덕 저 언덕, 그리고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 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우리가 비록 빈한하여 가진 것이 없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때 모든 것을 가진 듯하고, 우리의 마음이 비록 가난하여 바라는바, 기대하는 바가 없다고 할지라도, 하늘을 달리어 녹음을 스쳐 오는 바람은 다음 순간에라도 곧 모든 것을 가져올 듯하지 아니한가?" 이양하 님의 수필을 다시 펴지 않아도 대체로 사람들은 5월을 신록의 계절로 보는 데에 이견은 없을
[우리문화신문=신부용 전 KAIST 교수] 더욱 절실해진 한글보급 전번 이야기에서 지석영, 헐버트, 주시경이 지하에 묻혀있던 훈민정음을 살려내기 위해 어떻게 노력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당시는 매우 혼란한 시기였습니다. 1894년 1월 동학 난이 일어나고 이를 진압할 능력이 없던 조정은 청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여 6월에는 청군이, 7월에는 일본군이 우리나라로 진군하여 결국 우리 국토를 놓고 두 나라가 전쟁을 벌였습니다. 이때 명성황후는 러시아 세력을 끌어드리려 하다가 일본 무관에 의해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동학 농민의 세력은 일본군을 당해내지 못하고 진압되었습니다. 1895년 일본이 청일전쟁에서 이겨 조선은 500년 동안 섬겨오던 청나라로부터 해방됨으로써 일본의 한국 지배가 유력해졌습니다. 이에 고종은 1896년 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러시아 공관으로 피신하여 일본에 대항하려 하였습니다. 한마디로 나라 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1898년 당시 23살이었던 한힌샘 주시경은 망국의 위험을 실감하고 서둘러 국문법을 정리하여 닥치는 대로 보급을 서둘렀던 것입니다. 한글맞춤법의 출현 1905년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까지 물리친 일본은 을사늑약을 맺어 조선의 외교권을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11월 17일. 대련 수상경찰서.’ 독립운동가 이회영의 죽음을 알리는 전보는 짧았다. 그가 살다 간 태산 같은 인생에 견주면 허무한 결말이었다. 독립운동을 하는 이들은 죽음의 그림자와 함께 살아간다지만, 30년이 넘는 숱한 시련에도 건재했던 아버지였기에 아들 이규창의 충격은 그만큼 컸다. 그는 곧 동지들을 불러 모았다. 아버지가 대련으로 간다는 정보가 어떻게 일본 경찰에게 들어갔는지 모든 연결망을 동원해 샅샅이 알아보았다. 아버지를 죽게 한 밀정이 누구인지 찾게 될 때는, 그 누구라도 용서할 수 없었다. 김은식이 쓴 이 책, 《이회영-내 것을 버려 모두를 구하다》는 1910년, 망국의 파도가 대한제국을 집어삼킨 그해, 일제의 치하에서 단 한 해도 살 수 없다며 1910년 12월 30일 재산을 처분해 전 가족이 만주로 망명한 이회영 일가의 이야기다. 나라가 망했을 때 조상 대대로 나라의 녹을 먹으며 조선을 좌지우지하던 권문세족은 어떤 모습을 보였을까? 책에 소개된 내용은 자못 충격적이다. 교과서에서 배웠던 것처럼 자결, 사설 게재, 무장투쟁을 하는 저항의 움직임도 있었지만, 대다수 양반은 일제가 던져주는 달콤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보통 날씨가 추워지거나 환절기가 다가오면 “감기 조심하세요!”란 광고가 떠오른다. 이런 감기보다 무서웠던 코로나19의 팬데믹 상황을 거쳐 조금 안심하려는 차에 올봄에 유난히 감기가 극성을 부려서 많은 어린이가 고통을 겪고 있다. 사회 분위기가 코로나19에 해방된 것 같은 생활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하루 평균 10,000명 정도 감염자가 유지되고 있다. 예전과 달리 철저한 역학조사와 검진이 이루어지지 않기에 실질적으로는 더 많으리라 생각된다. 더불어 겨울과 봄만 되면 우리 아이들을 괴롭히는 독감도 꾸준하게 유행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전통적인 감기바이러스마저도 극성을 부리기에 올봄은 유독 힘이 든다. 실질적으로 질병관리청 통계로도 3월 말부터 현재까지 호흡기계 환자 수가 작년 같은 기간 대비 30% 이상 늘었는데 증가치 대부분이 감기 환자로 여겨진다. 독감과 같은 유행성 감기와 보통 감기, 코로나19등 많은 호흡기 질환이 현재 유행하고 있지만 감기가 아닌 심각한 질환이 동반된 경우가 있으니 현명한 대처가 필요하다. 1. 열감기와 다른 체기 또는 병행된 경우 아이들에게 열이 나면 먼저 감기를 떠올린다. 실제 대부분 감기의 시작인 경
[우리문화신문=김두루한 참배움연구소장] 초등 교과서로 본 셈본, 산수, 수학 초등학교에서는 ‘셈본’을 1946년부터 1955년까지 펴낸 일이 있다. ‘산수’는 1941년부터 써 온 이름인데, 우리말 도로찾기 차원에서 셈본으로 바꾼 것이었다. 셈본은 셈하는 방식. 또는 그것을 전하는 책을 말한다. 1954년 4월부터 제1차 교육과정이 시작되는데, 1955년부터 교과서 이름은 산수로 다시 바꾸었다. 또 제6차 교육과정(1992~1997)에 따라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이름이 바뀌고, 1994년부터 '산수'가 '수학'으로 바뀌었다. 이전까지 수학은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 배웠던 과목이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두산백과사전》, 고등학교 《수학》 (박교식 외, 동아출판) 교과서에서는 ‘수학’을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숫자와 기호를 사용하여 수량과 도형 및 그것들의 관계를 다루는 학문《민족》 물건을 헤아리거나 측정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수(數)ㆍ양(量)에 관한 학문이다. 다른 학문의 기초가 되기도 하며, 인류의 역사상 가장 오래전부터 발달해 온 학문이다.《두산》 자연 현상 및 사회 현상의 탐구와 과학기술의 개발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핵심적인 도구. 수학을 공
[우리문화신문=일취스님(철학박사)]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靑山兮要我以無語)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蒼空兮要我以無垢)“ (아래 줄임) 고려 공민왕 때 나옹선사의 선시다. 선시에서 나옹선사는 "산이 말을 한다."라고 했다. 나옹선사가 산과 소통을 하고 있다는 증거다. 나옹선사뿐만 아니라 자연과 소통한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아무나 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그것은 산을 향하여 마음의 문이 닫혀 있으면 불가능하다는 것도 되고, 누구나 가슴을 열고 산을 바라보면 산과 대화가 어느 때고 가능하다는 뜻도 된다. 내가 새벽 예불을 마치고 법당문을 열고 나오면 눈앞에 산이 우뚝 서 있다. 비록 낮은 산이긴 하지만, 잠에서 깨어난 산은 뽀얀 안갯속에서 서서히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낼 때쯤, 나는 두 손 모으고 앞산을 바라보는 것이 그날 일과의 시작이다. 며칠 전 단비가 내린 뒤 산은 생기를 되찾았다. 온갖 꽃들이 앞을 다투어 피고 지고, 온 산은 연한 연두색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산은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자기들만의 독특한 색깔로 모습을 변화시켜가고 계절의 아름다움을 부지런히 연출해 내고 있다. 그 가운데 봄 산은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학교 명예교수] 세종을 도와 세종르네상스를 만든 인물들을 살피고 있다. 몇 신료들을 요약ㆍ정리해 본다. 이번에는 신장과 심온을 보자. 신장(申檣, 우왕 8년 1382~ 세종 15년 1433) 신장은 조선 태종~세종 때의 문신이다. 20살의 젊은 나이에 급제하고, 세종 때 창설된 중요한 학문 기관인 집현전의 첫 부제학을 역임하였으며, 명필로도 널리 알려졌다. 세조~성종 대 중요한 대신인 신숙주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본관은 고령(高靈)이고 신숙주(申叔舟) 등 다섯 아들을 두었다. 주요 활동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1382년(우왕 8) 윤2월에 태어났다. 1402년(태종 2) 식년문과에 20살의 젊은 나이로 급제한 뒤 예조 · 병조 · 이조정랑을 거쳐 세종 3년(1421) 집현전 부제학에 임명되었으며, 세종 14년(1431) 공조참판에 이르렀다. 경력에서 주목되는 사실은 집현전의 첫 번째 부제학으로 발탁되었다는 것이다. 세종은 세종 2년(1420) 3월 집현전을 창설하면서 부제학을 임명하지 않고 신장을 일단 직제학에 제수하였다가 이듬해 7월 부제학으로 승진시켰다. 이른 나이에 급제하고 중요한 학문 기관인 집현전의 첫 책임자로 임명된 것은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