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김영조 편집국장] 시내버스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청년이 버스를 타려다 말고 묻는다. 경교장 가나요? 경교장??? 서울역사박물관요. 서울역사박물관이라 해야지. 거긴 가는데 경교장은 몰라. ▲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주석이던 김구(金九) 선생이 암상당하기 전까지 겨레를 위해 일했던 서울 서대문 사적 제465호 경교장 그 청년은 고개를 흔들며 버스를 탄다. 아마도 경교장을 모르다니 배달겨레 맞아?라고 속으로 되뇌었을 것이다. 경교장이란 어떤 곳인가? 경교장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주석이던 김구(金九) 선생이 1945년 11월 중국에서 환국한 이래 안두희의 흉탄에 암살당하기까지 민족을 위해 일했던 곳이다. 서울 서대문 서울역사박물관 옆 삼성병원 구내(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29)에 있는 사적 제465호로 지정된 문화유적이다. 국사편찬위원회의 김득중 편사연구사에 따르면 선생이 암살당한 6월 26일부터 28일 오후 1시까지 약 75만 명이 빈소인 경교장을 다녀갔다. 김 연구사는 장례가 10일장으로 치러진 만큼 조문객수는 200만 명이 훨씬 넘었을 것이며, 영결식 당일에는 인근 상가가 가게 문을 닫았고, 경교장에서 서울운동장(동대문운동장)까지 인파가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병약한 몸 이끌고 독립의 노래 부른 신의경 이윤옥 금지옥엽으로 기른 귀한 딸 왜경의 군홧발에 치어 학교 안에서 잡혀가던 날 담담히 수갑 차고 돌아서던 병약한 외동딸 다신 못보고 무더위 속 가슴 앓다 끝내 숨져간 어머니 쇠창살 속에서 오매불망 그리던 어머니 영정으로 만나 어머니 몫까지 독립의지 다지며 묵묵히 걸어온 고난의 길 천국의 어머니도 장하다 웃음 지으시겠지 대한애국부인회와 신의경(辛義敬, 1898. 2.21 ~ 1997.8.11)애국지사 ▲대구감옥소 동지들 1 김영순 2 황애덕 3 이혜경 4 신의경 5 장선희 6 이정숙 7 백신영 8 김마리아 9 유인경 (사진 연동교회 제공) 고어(古語)에 이르기를 나라를 내 집같이 사랑하라 했거니와 가족으로서 제 집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 집이 완전 할 수 없고 국민으로서 제 나라를 사랑하지 않으면 그 나라를 보존하기 어려운 것은 아무리 우부우부(愚夫愚婦)라 할지라도 밝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아! 우리 부인도 국민 중의 한 사람이다. 국권과 인권을 회복하려는 목표를 향해 전진하되 후퇴 할 수는 없다. 의식 있는 부인은 용기를 분발해 그 이상(理想)에 상통함으로써 단합을
[그린경제/얼레빗 = 이한꽃 기자] * 구한말 국권을 잃자 왜군에 항쟁하며, 의병의 후원자로 식량과 가축(소)을 지원하고 호군활동을 하였다. 왜군이 감나무에 결박 고문과 폭행 장독으로 현장에서 절명하신 증조부 정환종. 100년 편지에 대하여..... 100년 편지는 대한민국임시정부 100년(2019년)을 맞아 쓰는 편지입니다. 내가 안중근의사에게 편지를 쓰거나 내가 김구가 되어 편지를 쓸 수 있습니다. 100년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역사와 상상이 조우하고 회동하는 100년 편지는 편지이자 편지로 쓰는 칼럼입니다. 100년 편지는 2010년 4월 13일에 시작해서 2019년 4월 13일까지 계속됩니다. 독자 여러분도 100년 편지에 동참해보시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매주 화요일 100년 편지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문의: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02-3210-0411 * 아들을 살리기 위해 숨겨주고 의병의 군량지원과 호군활동을 하다 발각되어 역적으로 몰려 고문 폭행의 장독으로 돌아가신 증조모 선갈음. * 국권쟁취의 의를 행함이 사람의 도리다. 라며 변성명하고 항쟁하여 투옥 되어서도 탈옥하는 담대함과 용맹한 의병장인 조부 정태화. * 의병장 남편 덕분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미국에서 독립운동 뒷바라지한 차경신 이윤옥 일제가 조선의 독립투사에게 극악한 일을 했다 해도 장작 피고 그 위에 사람 집어넣긴 임의 엄니가 처음일 거외다 어머니 불구덩이에서 건져 올려 벗겨진 살 틈으로 벌건 피고름 흐르던 날 딸로서 해드릴 것 없던 그 통한의 눈물은 한 평생 임의 독립투지 자양분 되었어라 누렁 호박 익어 가는 고향 평안도 떠나 북풍한설 만주 땅 누비다가 이역만리 미국에서 목 터져라 부른 독립의 노래 고향땅 그 누구 있어 귀담아 들어줄거나 ▲ 중국 망명시절 차경신 애국지사(왼쪽) 언어와 의복 같은 동족이 한마음 한뜻 든든하구나 원수가 비록 산해 같으나 자유의 정신 꺾지 못하네 -국혼가 가운데서- 역사가 오래된 나의 한반도야 내 선조와 유적을 볼 때에 너를 사모함이 더욱 깊어진다. 한반도야 -한반도 가운데서- 차경신(車敬信, 모름 ~ 1978.9.28) 애국지사의 동생 차경수 선생은 경신 언니가 죽고 나서 유품을 정리하던 중 언니 수첩에 고국을 사모하는 노래, 절개의 노래가 여러 종류 적혀 있었다면서 《호박꽃 나라사랑》에 여러 편의 시를 소개했다. 위 시는 그 가운데 일부다. 낯설고 물선 남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노동자 권리 속에 숨겨 부른 독립의 노래 고수복 이윤옥 노란봉 정기 받고 자란 몸 경성에 올라와 푸른 꿈 펴렸더니 가지에 푸른 순 돋기도 전 밑동 잘렸네 방적공장 다니면서 노동자 권리 속에 숨겨 뜨거운 독립의 노래 목터져라 불렀어라 일제에 잡혀 모진 고문 당하지 않았다면 스물 둘 꽃다운 나이 접고 눈 감지 않았을 것을 고향집 동구 밖서 손 흔들던 어머니 귀한 딸 주검에 끝내 오열 터뜨렸네 ▲ 어여쁜 처녀 고수복 애국지사의 수감당시 모습 고수복 (高壽福, 1911 ~ 1933. 7. 28) 고수복 애국지사는 함경남도 정평군 정평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성으로 올라와 스무 살 되던 해인 1931년 9월 종방방직회사(鐘紡紡織會社) 경성제사공장(京城製絲工場) 직공으로 입사하였다. 1932년 1월 말 정길성, 김응룡 등과 협의하여 좌익노동조합준비회(左翼勞動組合準備會)를 결성하기 위해 경성부내 각 공장으로 분담 활동을 하였으며, 3월 하순 경성부 팔판동에 거주하는 강응진의 집에서 정길성, 김응룡, 권오경과 만나 노동조합을 조직하기 위한 준비단체인 좌익노동조합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준비위원회의 총책임자에 권오경, 조직
[우리문화신문 = 윤지영 기자] 입추의 여지가 없다는 말을 실감한 강연이었다. 8일 토요일 오후 2시. 일본 도쿄 신오쿠보에 있는 고려박물관에서는 아주 특별한 강연이 있었다. 1월 29일부터 3월 30일까지 전시중인 한국의 여성독립운동가 시화전(시 이윤옥, 그림 이무성) 전시 기간 중 이윤옥 시인의 특강에 150여명의 일본인들이 운집하여 뜨거운 열기를 보여주었다. ▲ 고려박물관에서 항일여성독립운동가 특강을 하는 이윤옥 시인(왼쪽), 동시통역을 하는 김리박 재일문인협회 회장 이날 오후 2시부터 열린 <여명을 찾아서 -항일여성독립운동가들의 활약상->에 대한 특강에서는 국난을 맞아 불굴의 의지로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키다 숨진 항일여성독립운동가들에대한 전반적인 소개와 아울러 이 시인이 중국 등 현지에 다니면서 현장을 확인하고 쓴 시를 조선침략과 함께 조목조목 설명하는 시간을 두 시간여 가졌다. 한국화가 이무성, 한국문화사랑협회 김영조 회장, 서대문형무소역사박물관장 박경목 등 10여명의 한국쪽 인사들이 참여했고 시인이자 재일본문학회 김리박 회장, 우에노미야코 시인 등 재일문학인도 다수 참석하였다. 이번 행사는 순수 시민단체인 고려박물관(관장 히구치유이치)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청홍 조각보에 새긴 태극기 꿈 '노영재' 이윤옥 구순 나이 이르도록 청홍조각 잇댄 태극기 품에 안고 모진풍파 견뎌 온길 장강의 푸른 물 따라 떠돌던 수많은 나날 혀 깨물며 천지신명께 맹세한 건 오직 조국 광복의 꿈 멀고도 험한 가시밭 길 내딛는 걸음마다 태극의 괘 나침반 되어 기필코 이뤄낸 광복의 환희여 노영재 애국지사 (盧英哉, 1895. 7.10 ~ 1991.11.10)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을 지냈던 고 김붕준 선생의 부인인 올해 93살인 노영재 여사가 오늘 공개한 이 대형 태극기는 가로 1m90cm에 세로1m50cm로 누렇게 퇴색되기는 했지만 명주바탕에 청홍의 태극과 괘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태극무늬와 괘는 물들인 것이 아니라 색깔 있는 천을 일일이 바느질로 꿰맨 것으로 당시 노여사가 밤을 새워 직접 만든 것이 특징입니다. ▲노영재 애국지사 1987년 2월 28일 MBC 문화방송에서는 이와 같이 노영재 애국지사가 만든 태극기를 공개했다. 당시 93살이던 노영재 애국지사는 이 태극기를 만들면 우리나라가 독립한다고 해서 기쁜 마음으로 만들었다. 이 태극기를 가보로 물려 후손들에게 독립정신
[그린경제/얼레빗 = 이한꽃 기자] 감자골 양양의 민족교육자 조화벽 이윤옥 삼월하늘 핏빛으로 물든 아우내 장터 비극 천애고아 된 시동생 거두며 불처럼 솟구치던 가슴 속 용암 덩어리 만세운동 현장에서 가슴에 총 맞고 선혈이 낭자하던 시부모님 끝내 숨지고 떠나온 고향땅 양양에서 아우내 솟구치던 애국혼 다시 되살려 삼일정신 올곧게 민족학교 이어간 양양 독립의 화신이여 ▲ 조화벽 애국지사 조화벽 (趙和璧, 1895.10.17 ~ 1975. 9. 3) 조화벽 애국지사는 강원도 양양이 고향으로 이 지역 3․1독립운동의 중심인물이다. 양양군 양양면 왕도리에서 아버지 조영순과 어머니 전미흠 사이에 무남독녀로 태어나 15살 되던 해인 1910년 원산에 있는 성경학원에 유학을 떠나 신학문을 배우게 된다. 원산 성경학원의 교육과정을 2년 만에 마친 조화벽 애국지사는 17살 때인 1912년에 원산 루씨여학교(樓氏女學校, Lucy Cunningham School) 초등과정에 입학하였다. 명문 미션스쿨인 원산 루씨여학교는 최용신, 이신애, 어윤희, 전진 등 한국여성사에 뛰어난 인물을 배출한 명문 학교다. 그러나 이곳에서 얼마 안 있어 개성의 호수돈여학교로 전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훈춘에 곱게 핀 무궁화 꽃 김숙경 젖먹이 어린 핏덩이 밀치고 남편 간곳을 대라던 순사 놈들 끝내 다문 입 모진 고문으로도 열지 못했지 구류 열흘 만에 돌아온 집엔 엄마 찾다 숨진 아기 차디찬 주검 위로 차마 떠나지 못한 영혼 고추잠자리 되어 맴돌았지 활화산처럼 솟구치던 분노 두 주먹 불끈 쥐고 뛰어든 독립의 가시밭길 아들 딸 남편 모두 그 땅에 묻었어도 항일의 깃발 놓지 않던 마흔 네 해 삶 훈춘의 초가집 담장 위 한 송이 무궁화 꽃으로 피어났어라. *이윤옥 시 - 훈춘에 곱게 핀 무궁화 꽃 김숙경- 함경북도 경원군의 한 가난한 농민가정에서 태어난 김숙경(金淑卿, 1886. 6.20 ~ 1930. 7.27)애국지사는 열한 살 나던 해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이웃집 소년 황병길에게 시집을 갔다. 두만 강변에 자리한 경원땅은 그 무렵 일제의 만행이 극에 달해 국모인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도탄 속에 빠진 조선인들이 살길을 찾아 중국 연변으로 이민 가는 길목이었다. 그 가운데는 풍전등화의 조국을 건지기 위해 구국의 뜻을 품은 애국지사들도 많았는데 남편 황병길은 어린 마음이지만 그들의 영향으로 나라를 구하는 일에 자
[그린경제/얼레빗 = 이한꽃 기자] 벽장 속에서 태극기 만들며 독립의지 불태운 통영의 김응수 이윤옥 벽장 문 걸어 닫고 호롱불 밝혀 만든 태극기 이로써 빼앗긴 조국을 찾을 수만 있다면 밤샌들 못 새우며 목숨인들 아까우랴 열여덟 꽃다운 처녀 숨죽여 만든 국기 들고 거리로 뛰쳐나와 목청껏 부른 대한독립만세 함성 죄목은 보안법 위반이요 죄질은 악질이라 차디찬 감옥소 시멘트 날바닥에 옷 벗기고 콩밥으로 주린 배 쥐게 해도 단한 번 꺾이지 않던 그 당당함 그대는 정녕 일신의 딸, 조선 독립의 화신이었소. ▲ 일신여학교 8회 출신 김응수 애국지사(왼쪽)와 1919년 무렵 여학생들이 태극기를 수놓은 밥상보 (동래학원 100년사에서) 김응수 애국지사(金應守, 1901. 1.21 ~ 1979. 8.18) 통영에서 태어나 부산 일신여학교(현, 동래여자고등학교) 고등과에 재학 중이던 김응수 애국지사는 1919년 3월 11일 일어난 만세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그의 나이 열여덟 살 때의 일이다. 당시 이들의 만세운동을 기록한 일본 쪽 자료의 따르면 부산진 소재 기독교 경영 일신여학교 한국인 여교사 임말이 외 학생 1명을 취조한바 이 학교 교장인 캐나다인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