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말뚝이 타령 이놈도 이리오라 저놈도 저리가라 통시 앉아 개 부리 듯 좌라좌라 우로우로 서러운 바사기 신세 어디 가서 한탄할꼬 말뚝이는 가벼운 놈, 남의 말 수이 마소 춤판 탈판 심심할까 재담하고 놀았는데, 반지빨라 못 쓸래라, 킥킥큭큭 이러쿵저러쿵 주둥이들 놀리지만, 쌀을 줬나 술을 줬나 눈대중으로 가늠마소. 버드남ㄱ에 쇠불알 추, 바람도 천근만근, 보풀인들 가벼우랴. 한치 앞 뵈지 않으니 제 앞가림 단디하소 연당못에 줄남생이 청석 틈에 송사리떼 말뚝인지 개뚝인지 맨맨한기 홍어좆이라 더럽고 아니꼬와서 유언장이나 쓰야것다 <해설> 어쭈구리! 양반님네들 춤을 보니 참 잘 나기도 하셨소 그려. “통시 앉아 개 부리 듯 / 좌라좌라 우로우로 / 서러운 바사기 신세 / 어디 가서 한탄할꼬” 첫수 중장과 종장에서도 요즘 사라져 가는 시어 둘을 차용했다. 사실 예전에는 ‘통시’란 말은 대체로 통용되었는데, 지금 젊은 세대에겐 쓸모없는 말이 되었다. 같은 곳을 의미하지만, 통시, 뒷간, 변소, 화장실 등으로 변천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어쩌면 화장실이란 말이 가장 잘 못 된 말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좋은 우리 말이 있는데, 굳이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학교 명예교수] 세종 시대의 인물을 살피고 있는데 전회에서는 하경복(河敬復)을 다루었다. 이어 하경복에 대한 세종의 마음을 알아보기 이전에 지난 7월 4일 국회의원 회관 대회의실에서 ‘세종정신 되살리기 대토론회’가 있어 시의에 맞추어 그 내용을 알아보자. 이번 토론회는 ‘세종대왕 나신 곳 복원과 기념관 건립’이라는 주제로 종로구 최재형국회의원실과 (사)세종대왕기념사업회와 (사)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이 함께 주관했다. 지난 3월 9일 청와대 개방을 맞이하여 그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세종대왕 나신 곳은 현재 통인동 길거리에 표지석 하나밖에 없어서 그 필요성은 여러 번 강조된 바 있었으나 이번 청와대 개방이 당위성을 안겨주고 있다. 그리고 기념관은 현재 홍릉에 기념사업회 건물이 있으나 출판물 등의 사업을 하고 있어 실제 기념관 취지와는 다르다. 이날 회의에서 제기되었던 내용을 요약해 보자. 준수방을 복원하자 한글문화협회의 리대로 대표는 ‘세종정신과 한글을 빛내는 길’ 발표에서 우리나라가 일어난 밑바탕에는 쉬운 우리말글로 국민과 정부가 한마음이 되게 한 세종 정신과 한글이 있다고 했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이 한글 단체의 소리를 듣고 정책에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비가 온다는 것은, 우산을 들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가는 길을 멈추게 하는 힘이 있다. 며칠 전 구파발역 쪽 병원에 내려갔다가 구파발천 옆길을 따라 올라오는데 예보에 없는 비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제법 굵은 빗줄기로 바뀌어 내리기 시작한다. 우산이 없으니 우선 길 중간에 설치된 휴게시설의 한 의자에 앉아 비를 피하며 쉬다가 문득 뒤를 보니 의자 뒤편에 시가 하나 판에 새겨져 있는데 자세히 보니 윤동주 시인의 <새로운 길>이란 시이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윤동주 하면 대충 '별을 헤는 밤'이라던가 '서시(序詩)'를 접해 온 우리에게 "아이구. 윤동주에게 이런 시가 있었나?" 하며 그의 시를 다시 보게 한다. 만주 용정에서 태어난 윤동주가 서울 연희전문을 다니면서 시를 많이 썼고, 이 시도 그때 써서 교지인 문우(文友)에 발표한 것이라는데, 청년 윤동주가 이런 소년 같은 감수성으로 새로운 길을 가고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물러갈 것이냐 나아갈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조선의 햄릿으로 살다간 김시습의 생애를 한 마디로 보여주는 문장이다. 한평생 출처(出處), 곧 선비의 나아감과 물러남을 고민한 그는 고뇌하는 지식인이었다. 선비가 세상에 나아가는 것을 ‘출(出)’, 재야에 묻혀 자신을 갈고닦는 것을 ‘처(處)’라고 한다면, 김시습은 초야에 묻혀 세월을 보내던 처사(處士)에 가까웠다. 그러나 한평생 그를 괴롭힌 것은 출사(出仕)에 대한 욕망이었다. 불의한 세조 정권에 맞서 절의를 지키려 처사가 되었건만, 타고난 재능으로 조정에 출사하여 천하를 경륜하고자 했던 젊은 날의 꿈은 한평생 그를 괴롭혔다. 강숙인이 쓴 이 책, 《나는 김시습이다》는 이처럼 절의와 세속적 성공 사이에서 갈등한 김시습의 내면을 1인칭 시점으로 세밀하게 그려냈다. 지은이는 세조 정권에 저항하며 장렬히 목숨을 버린 ‘사육신’의 그늘에 가려진 ‘생육신’이 겪었을 ‘살아남은 자의 슬픔, 그 가늘고 여린 슬픔’에 대해 쓰고자 했다고 밝힌다. 사육신 곧 1456년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목숨을 잃은 성삼문ㆍ박팽년ㆍ하위지ㆍ이개ㆍ유성원ㆍ유응부 등 6명은 조선 중기 이후 충절의 상징으로 칭송되었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우리나라는 여름 장마 이전엔 봄기운이 남아서 아침저녁으로 서늘하고, 바람도 시원한데, 장마 때부터는 날도 덥고 습해지면서 음식물의 부패 속도가 높아져 우리의 몸도 장염이나 식중독의 염려가 가중된다. 장마 즈음해서 바다에도 변화가 드러난다. 6월 말 무렵이 되면 바다의 대부분 수상생물이 산란을 마쳐서 힘이 없고 취약한 상태가 된다. 곧 바다 생물들 역시 면역력이 취약해져서 감염되어 있기도 하고 힘이 없는 상태가 되어서 생선도 맛이 없다. 따라서 장마 시점부터는 수산물을 먹을 때 신선도를 유의하고 될 수 있는 대로 가열해서 먹어야 한다. 곧 육지건 바다건 6월 말 장마철을 분기점으로 음식물의 변화가 확연해지므로 관리를 소홀히 하면 가볍게는 장염, 심하면 식중독에 걸릴 가능성이 커진다. 1. 여름에 추천하는 생선 요리 현대의 여름은 냉장고와 에어컨으로 대표되는 문명의 이기로 쾌적한 환경과 건강한 식단을 제공한다. 따라서 방심만 하지 않으면 식중독이나 음식물로 인한 감염성 장염의 염려는 현격히 줄어든다. 보통 여름철 추천 음식을 보면 냉면이나 빙수, 수박 화채 같은 시원한 음식을 주로 권하고 삼계탕이나 초계탕, 사철탕과 같은 육류도 추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얼씨구, 양반님들 때깔 곱고 맵시 좋다 북방에는 흑제양반, 남방에는 적제양반 원양반 중앙을 돌며 춤판을 호령한다 나으리, 저 양반님들 인물평이나 들려주소 어디 보자 발맘발맘 걸음새를 뜯어보자, 이 몸으로 말한다면 양반 중의 으뜸양반 원양반님이시고, 물색옷 입은 저 양반은 청보생원님이시다. 끄덕끄덕 저 양반은 수원 백서방과 남양 홍서방이 한 이불 덥고 만든 접으로 된 양반이시고, 빨아 논 김치가닥 같고 밑구녕에 빠진 촌충이 같은 저 도령은 이 몸이 평양감사 갔을 때 병풍 뒤에서 낮거리로 만든 도령이시다. 남방 북방 동방 서방 니 서방인지 내 서방인지 올 서방은 오고 갈 서방은 가고 주 서방은 죽고 서 서방은 선 채로 양반님들 떵떵 울리며 저자행차 하였으니, 인사나 탱탱 꼴아 올려라 유명짜한 분들이시다. <해설> 한바탕 양반춤 추고 나니 뭔가 쬐끔은 부족해 보여 이젠 인물평이나 들어보자. 저기 저 가운데 양반이 원양이면 북쪽을 서성이는 저 양반은 흑제양반, 남쪽을 거니는 저 양반은 적제양반이라던가. 둘째 수 중장 첫 문장 “어디 보자 발맘발맘 걸음새를 뜯어보자”에 나오는 ‘말밤말밤’이란 말은 요즘 잘 쓰지 않는 말인데, 여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제14구간 답사 후기> 제14 구간 답사를 마치고 시간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김삿갓 문학관을 방문하였다. 김삿갓문학관은 답사 종점에서 24km 남쪽에 있었다. 김삿갓(1807~1863)은 57살의 나이로 전라도 동복(지금의 화순군)에서 객사하였다. 죽고 나서 3년 동안 가묘 상태로 있다가 둘째 아들 익균이 뒤늦게 유해를 영월로 운구하여 하동면 노루목 골짜기에 묻었다. 그의 무덤은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는데, 1982년에 영월의 향토사학자 박영국 선생의 노력으로 처음 발견되었다. 2003년에 개관한 김삿갓문학관이 있는 지점의 명칭은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였다. 그런데 영월군에서는 2009년에 하동면을 김삿갓면으로 변경하였다. 관광객을 끌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김삿갓면은 날로 인구가 줄고 있어서 큰 고민이다. 김삿갓면의 인구수는 2021년 현재 1,700명에 불과하다. 내가 사는 봉평면의 인구수 5,700명에 견주어도 너무 적다. 영월에서 남쪽으로 88번 국도를 따라가다가 우회전하여 김삿갓계곡으로 들어갔다. 김삿갓계곡은 우리가 걸었던 금당계곡이나 뇌운계곡 못지않게 계곡이 깊고 길었다. 차창으로 보이는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아무리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라도 금방 잊어버린다. 국수 한 그릇에 담긴 이야기도 그런 것 같다. 새 대통령이 취임한 뒤 얼마 되지 않아 집무실 근처에 있던 한 국수집에 들른 일이 있었다. 언론들은 곧 이 국수집이 10년 만에 한 번씩 언론에 주목을 받은 사실을 소환해내었다. 1998년 겨울 이른 오전, 초라한 옷차림의 한 40대 남성이 서울 삼각지에 있는 국숫집에 들어왔다. 가게 주인 배 할머니는 한눈에 그가 노숙자임을 알아차렸지만, 말없이 당시 2,000원 하던 온국수 한 그릇을 말아줬다. 그가 허겁지겁 그릇을 비우자 다시 한 그릇을 더 줬다. 식사를 마친 남성은 '냉수 한 그릇 떠달라'고 했고, 배 할머니가 물을 떠 오기 전 달아났다. 그러자 배 할머니는 가게를 나와 앞만 보고 뛰는 그의 뒷모습에 대고 외쳤다. 그리고 또 말해주었다. "뛰지 말어. 넘어져 다칠라!" “배고프면 담에 또 와!” 물론 이 이야기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 묻혀질 뻔했었다. 그러다가 10년쯤 지난 뒤에 한 방송사에 제보편지가 왔다. 국수를 먹고 달아난 남성은 남미에 이민 가서 살고 있었는데 10년 뒤에 마침 이 국숫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공부의 신’. 흔히 수능 만점자나 고시 합격자가 나오면 세인들은 그들을 ‘공부의 신’, 약칭 ‘공신’이라 칭하며 앞다투어 공부 비결을 묻는다. 그러면 대개 “교과서 위주로 정독했다”라거나 “참고서 여러 권을 한꺼번에 읽으며 폭넓게 공부했다”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이런 공부법은 너무 평범한 듯해서 오히려 ‘그냥 하는 말이려니’하고 지나치기 쉽지만, 뜻밖에 평범한 공부법 속에 진리가 숨어있을 수도 있다. 이 책, 《공부도사-한국사 인물 10인의 공부 비법》에 소개된 우리 역사 속 공부 천재 10인의 공부 비결을 들여다보면 오늘날 ‘공신’들의 공부법과 크게 다를 바가 없으니 말이다. 지은이는 우리 역사상 공부로 이름을 날린 10명을 가려 뽑아 이들의 핵심 공부법을 짚어낸다. 세종의 ‘깊이 읽기’, 이황의 ‘사색’, 이이의 ‘궁리’, 이익의 ‘몰아치기’, 안정복의 ‘메모’, 박지원의 ‘창의력과 진솔함’, 정약용의 ‘질문하기’, 이규경의 ‘분류와 정리’, 안창호의 ‘연설과 토론’, 신채호의 ‘속독’이 그것이다. 옛 선현들의 공부법은 오늘날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훨씬 더 집요한 데가 있었다. 오늘날처럼 다양한 책과 온라인 강의, 학습 보조자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장마가 지나가면 불볕더위가 다가온다. 7월 초부터 시작하는 불볕더위는 8월 중순까지 이어지는데 이때 삶의 질 지표 가운데 하나인 불쾌지수가 높아진다. 불볕더위는 여름의 상징이며 자연의 순리이긴 하지만 우리를 힘들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위험한 상태에 빠지게 한다. 여름을 덥다고 느끼는 정도로 지나가는 해도 있지만 기억에 남을 정도로 더운 해도 몇 번 있었다. 필자가 기억하기로 가장 더웠던 시점은 1994년의 무더위와 2013, 2018년의 여름이다. 특히 2018년의 불볕더위는 거의 8월 말까지 이어져 많은 사람이 힘들게 보냈다. 요즘 한창 장마가 이어지고 있고 조만간 본격적인 더위가 다가오리라 예상되는데 올해도 불볕더위가 예상되는 몇 가지 소견이 있다. 하나는 올봄부터 이른 더위가 시작되어 현재도 예년에 견줘 평균기온이 높은 모습을 보인다. 다른 하나는, 장마가 지나간 일본이 지금 기록적인 불볕더위로 고생 중인 것을 보건대 조만간 우리나라도 장마가 지나고 나면 불볕더위가 우려된다. 따라서 불볕더위에 대한 대비와 아울러 여름철 더위에 적응하지 못했을 때 오는 일사병과 열사병 그리고 이를 좌우하는 땀에 대하여 알아보자. 1. 일사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