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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삼가고 새로 세우는 을미년 설날

[한국문화 재발견] 설날의 말밑과 세시풍속

[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오늘은 을미년(乙未年) 양띠해가 시작되는 설날이다. 설날을 맞아 그 깊은 뜻을 살펴보는 것도 좋을 일이다. 먼저 “설날”이란 말의 말밑(어원)부터 살펴보자. 먼저 조선 중기 실학자 이수광(李睟光, 1563 ~ 1628년)의 《여지승람(輿地勝覽)》에 설날을 “달도일(怛忉日)”이라 했다. 곧 한 해가 지남으로써 점차 늙어 가는 처지를 서글퍼하는 말이다. 그런가 하면 “설”은 ‘사리다'(愼, 삼가다)'의 `살'이 변한 말이라며 설날은 신일(愼日) 곧 “삼가고 조심하는 날”이라 하여 몸과 마음을 바짝 죄어 조심하고 가다듬어 새해를 시작하는 날이라고 생각한다.

 

   
    ▲ 찬란하게 떠오르는 설날 아침 해돋이

 

또 설은 새해라는 정신적ㆍ문화적 의미의 ‘낯 설은 날'을 뜻한다고 보기도 했다. 처음 가보는 곳, 처음 만나는 환경은 낯 설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일리가 있는 말이기도 하다. 그밖에 연세설(年歲說)도 있는데 산스크리트어는 해가 바뀌는 연세(年歲)를 '살'이라 하는데 이 '살'이 '설'로 바뀌었다고 보기도 하며, 한 해를 새로이 세우는 날이라는 뜻일 수도 있다.  

참고로 올 을미년을 청양(靑羊) 곧 푸른 양띠해라고 하는 이들이 있다. 을미(乙未)에서 “을(乙)”이 푸른빛을 뜻한다고 해서 붙인 말인데 예전에 있었던 황금돼지해니, 백호(흰호랑이)해니 하는 것들이 모두 그런 것으로 우리 겨레가 예전부터 생각해왔던 것이 아니라 최근 상술로 붙여진 것임을 알 필요가 있다.

 

세배하는 법과 설날의 세시풍속들 

경북 영일, 안동 지방에서는 이 날 눈이나 비가 와서 질면 풍년이 든다고 한다. 속담에 '설은 질어야 하고, 보름은 말라야 한다.' 고 했다. 집안마다 차례가 끝나면 마을 어른들을 찾아뵙고 새해인사를 하고 덕담을 나누는 풍습은 종요롭다. 이때 세배하는 법을 바르게 해야 세배를 받는 분을 위한 올바른 예의이다. 먼저 여자는 오른쪽 무릎을 세우고 어깨너비 정도로 손을 내려뜨리며 절한다. 양손을 어깨 폭만큼 벌리고 손가락은 모은 채 약간 바깥쪽으로 향하게 한 뒤 서서히 몸 전체를 굽힌다. 갑자기 목만 떨어뜨려서는 안 되며 머리는 땅바닥에 닿을 듯 말 듯 하게 한다.

 

   
▲ 세배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남자는 왼손을 오른손 위에 포갠 다음 절을 한다. 손을 잡는 법을 ‘공수법(拱手法)'이라고 하는데 남녀가 반대이고, 절을 받는 사람이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일 때는 또 반대다. 세배를 하면서 흔히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처럼 명령 투의 말을 하는데 이것은 예절에 맞지 않는다. 세배를 한 뒤 일어서서 고개를 잠깐 숙인 다음 제자리에 앉는다. 그러면 세배를 받은 이가 먼저 덕담을 들려준 뒤 이에 화답하는 예로 겸손하게 얘기를 하는 것이 좋다. 덕담은 덕스럽고 희망 섞인 얘기만 하는 게 좋으며 지난해 있었던 나쁜 일이거나 부담스러워할 말을 굳이 꺼내지 않는 게 미덕이다. 

세배 말고도 설날에는 여러 가지 세시풍속이 있다. 사돈 간 부인들이 새해 문안을 드리려고 하녀 곧 문안비(問安婢)를 보내기도 하다. 설날 꼭두새벽 거리에 나가 맨 처음 들려오는 소리로 한 해의 길흉을 점치는 청참(聽讖), 장기짝같이 만든 나무토막에 오행인 금·목·수·화·토를 새긴 다음 이것을 던져서 점괘를 얻어 새해의 신수를 보는 오행점(五行占) 풍속도 있다.  

남녀가 한 해 동안 빗질할 때 빠진 머리카락을 모아 빗상자 속에 넣었다가 설날, 해가 어스름해지기를 기다려 문밖에서 태움으로써 나쁜 병을 물리치는 원일소발(元日燒髮), 섣달 그믐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희어진다고 했으며, 아이들이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잠들면 잠든 아이들의 눈썹에 떡가루를 발라 놀려주던 해지킴(守歲)도 있다.

 

   
▲ 머리카락을 모아 빗상자 속에 넣었다가 설날, 해가 어스름해지기를 기다려 문밖에서 태움으로써 나쁜 병을 물리치는 원일소발(元日燒髮)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 양괭이 귀신(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그런가 하면 양괭이 야광귀(夜光鬼) 풍속도 있다. 양괭이는 설날 밤, 사람들의 집에 내려와 아이들의 신을 두루 신어보고 발에 맞으면 신고 가버리는데, 그 신의 주인은 불길한 일이 일어난다고 믿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이 귀신을 두려워하여 신을 감추거나 뒤집어놓고 잠을 잤다. 그리고 채를 마루 벽이나 장대에 걸어 두었다. 그것은 야광귀가 와서 아이들의 신을 훔칠 생각을 잊고 채의 구멍이 신기하여 세고 있다가 닭이 울면 도망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섣달 그믐날 밤에 쌀을 이는 조리를 새로 만들어 복조리라 하여 붉은 실을 꿰매어 부엌에 걸어 두는 복조리 걸기 풍습도 있다. 한 해 동안 많은 쌀을 일 수 있을 만큼 풍년이 들라는 뜻이 담겨 있다. 예전에는 새해부터 정월대보름까지 "복조리 사려!"를 외치며 다녔다. 복조리를 부뚜막이나 벽에 걸어두고 한 해의 복이 가득 들어오기를 빌었다. 남정네들은 복을 갈퀴로 긁어모으라는 뜻으로 복갈퀴를 팔고사기도 했다.

 

   
 

그밖에 설날의 대표적인 놀이는 윷놀이와 널뛰기, 연날리기, 썰매타기, 팽이치기, 바람개비놀이, 쥐불놀이 따위가 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하는 놀이로 풍물굿이 어느 지방에서나 행해졌으며, 지신밟기, 석전(石戰), 동채싸움(차전놀이), 나무쇠싸움, 횃불싸움, 달불놀이, 달집사르기 따위가 있었다.

 

첨세병과 도소주, 설날의 명절음식 

설을 쇨 때 반드시 떡국을 먹어야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다고 하였고 그래서 떡국에 나이를 더 먹는 떡이란 뜻의 '첨세병(添歲餠)'이라는 별명까지 붙이기도 하였다. 또 떡국은 꿩고기를 넣고 끓이는 것이 제격이지만 꿩고기가 없는 경우에는 닭고기를 넣고 끓였기에 “꿩 대신 닭”이란 속담도 있다.

 

   
▲ 나이를 더 먹는 떡이란 뜻의 '첨세병(添歲餠)'이라는 별명을 가진 떡국

 

설날에는 꼭 술을 마시는데 ‘설술은 데우지 않는다.’는 뜻의 '세주불온(歲酒不溫)'이라 하여 찬술을 한 잔씩 마셨다. 이것은 옛사람들이 정초부터 봄이 든다고 보았기 때문에 봄을 맞으며 일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뜻에서 생긴 풍습이다. 또 설에는 도소주(屠蘇酒)도 마셨는데 이 술은 오랜 옛날부터 전해져 오는 술이다. 도소주는 육계, 산초, 흰삽주뿌리, 도라지, 방풍 등 여러 가지 한약재를 넣어서 만든 술이다. 그러므로 이 술을 마시면 모든 병이 생기지 않는다고 믿었다.

 
구정(舊正)’은 조선총독부의 작품, ‘설날‘ 이라고 써야……  

설은 태음력을 기준으로 한 것이어서 일제강점기 이후 설의 수난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조선총독부는 1936년 ≪조선의 향토오락≫이란 책을 펴낸 이후 우리말, 우리글, 우리의 성과 이름까지 빼앗고 겨레문화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또 음력을 없애고 모든 행사를 양력으로만 하던 조선총독부는 '설'을 '구정(舊正)'이란 말로 격하시켜 민족정신을 말살시키려 했다.

 

   
▲ 새해인사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광복 후에도 양력이 기준력으로 사용됨으로써 양력설은 제도적으로 계속되었다. 1989년까지만 해도 양력 1월 1일부터 3일간 공휴일이었다. 음력설인 고유의 설은 '민속의날’이라 하여 단 하루 공휴일이었으므로 양력설에 짓눌릴 수밖에 없었다. 양력 설날은 연말연시라 하여 성탄절과 함께 잔치처럼 지내는 풍속으로 굳어지는 듯했다. 그리고 민족 고유의 설은 이중과세라는 명목 아래 오랫동안 억제해 왔다.  

그러나 굳세게 설날을 버리지 않고 지내온 국민에게 정부는 손을 들었다. 1989년 2월 1일 정부가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고쳐 설날인 음력 1월 1일을 전후한 3일을 공휴일로 지정, 시행함에 따라 이젠 설날이 완전한 민족명절로 다시 자리 잡았다. 이제 우리는 일제강점기의 찌꺼기라 볼 수 있는 '구정'이란 말을 삼가고 꼭 '설날'이란 말을 써야만 한다. 

을미년 새해에는 우리 겨레 모두에게 환한 나날이 되기를 빌어본다. 또한 설날에는 그 말밑이 뜻하는 것처럼 삼가고 조심하며, 몸과 마음을 바짝 죄어 가다듬어 새해를 시작하는 날이기를 비손해본다.

또 한 가지 흔히 연하장에도 양을 면양으로 그렸는데 면양은 우리나라에서 키우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20세기 중반에 들어온 것으로 12지신의 양은 염소로 보는 게 타당하다. 대한제국의 큰 나라 행사에 쓰였던 깃발의 하나인 “정미기(丁未旗)”에도 면양이 아닌 염소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보아도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