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이 열 치 열 - 곽병희 덥다고 나무 그늘에 숨었지 에어컨 이글루 속으로 선풍기 부채 속으로 피신하였지 하지만 용감하게도 땡볕의 여름을 혼자 대적하는 이 있어 이글거리는 정열로 스스로 불타오르는 이 있어 저 공사장에 흠뻑 젖는 등짝들같이 저 사무실에 바삐 전화 받는 손들같이 그 가로수의 백일홍들 있어 여름강을 건네주는 나룻배 있어 요즈음 우리는 ‘폭염주의보’와 ‘폭염경보’를 알리는 기상청의 재난문자를 받는 날이 많아진다. 여기서 하루 가장 높은 기온이 33도 이상인 때가 이틀 이상 이어지면 ‘폭염주의보’를, 35도 이상인 때가 이틀 이상 이어지면 ‘폭염경보’를 보낸다. 지금처럼 불볕더위가 한창일 때는 복중(伏中)으로 중복이 지나고 말복이 눈앞에 다가온 때다. 그런데 최남선의 《조선상식》에는 이 복날을 '서기제복(暑氣制伏)'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서기제복’에서 '복(伏)'은 꺾는다는 뜻으로 복날은 더위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더위를 꺾는 날이라고 보는 것이다. 에어컨은 물론 옷을 훌렁훌렁 벗어젖힐 수도 없었던 조선시대에는 ‘복달임’ 곧 이열치열로 더위를 꺾으려 했다. 특히 이 무렵 이열치열 음식으로 ‘용봉탕’이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지난 6월 20일 문화재청은 종묘 신실에 봉안되어 전승된 「조선왕조 어보ㆍ어책ㆍ교명(御寶ㆍ御冊ㆍ敎命)」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하였습니다. 보물 「조선왕조 어보ㆍ어책ㆍ교명」은 조선이 건국한 1392년부터 대한제국을 선포한 1897년 이후 일제에 강제로 병합된 1910년까지 조선왕조의 의례에 사용된 인장과 문서입니다. 어보ㆍ어책ㆍ교명은 해당 인물 생전에는 궁궐에 보관하였고, 죽은 뒤에는 신주와 함께 종묘에 모셔져 관리되었지요. 어보란 임금ㆍ왕세자ㆍ왕세제ㆍ왕세손과 그 배우자를 해당 지위에 임명하는 책봉 때나 임금ㆍ왕비ㆍ상왕(上王)ㆍ왕대비ㆍ대왕대비 등에게 이름을 지어 올릴 때 만든 의례용 도장이며, 어책은 어보와 함께 내려지는 것으로 의례에 대한 역사적 배경과 의미, 내용을 기록한 것입니다. 교명은 왕비ㆍ왕세자ㆍ왕세자빈ㆍ왕세제ㆍ왕세제빈ㆍ왕세손ㆍ왕세손빈 등을 책봉할 때 내리는 훈유문서(訓諭文書)로 그 지위의 존귀함을 강조하며, 책임을 다할 것을 훈계하고 깨우쳐주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습니있다. ‘조선왕조 어보ㆍ어책ㆍ교명’은 세계사에서 그 유례가 없는 독특한 왕실문화를 상징하는 유물로서 500여 년 동안 거행된 조선 왕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벽 위에서 종소리가 사람을 대신 부르니 / 통속에서 전하는 말 조금도 어그러짐이 없네.” 위는 조선 후기 문인 김득련(金得鍊)이 쓴 한시집 《환구음초(環璆唫艸)》에 있는 내용으로 서구를 방문했다가 전화기를 보고 쓴 시입니다. 《환구음초》는 1896년 민영환 일행이 러시아황제 대관식에 참석하고 중국ㆍ일본과 미국 그리고 유럽을 대한민국 사람으로서는 처음으로 돌아볼 때 참사관으로 따라간 역관 김득련(金得鍊)이 보고 들은 것을 쓴 책으로 ‘지구를 돌며 읊은 시’라는 뜻이 담겼지요. 이 책에는 “카나다에서 기차를 타고 동쪽으로 구천리를 가면서”, “뉴욕의 부유하고 번화함이 입으로 형언할 수 없고 붓으로도 기술할 수 없다”, “뉴욕 전기박람회에 가서 보니 세상의 많은 물건이 모두 전기 기계로 만들어졌다. 관현은 저절로 연주되고, 차와 떡도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그 가운데 가장 기이한 것은 오백 리 밖에 있는 큰 폭포의 소리를 끌어와 물그릇 속에 담아 놓은 것이다. 귀를 기울여 들으면 사람을 오싹하게 한다.”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습니다. 민영환은 자결하기 9년 전 김득련, 윤치호 등 일행을 이끌고 일곱 달 동안 여덟 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달 팽 이 - 이시향 남의 말 듣는 게 좋아 달팽이는 느릿느릿 걷습니다.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달팽이는 귀가 몸보다 커다랗게 되었습니다. 남이 한 말을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달팽이관 안에 작아진 몸을 집어넣은 달팽이가 느릿느릿 걷습니다. 국립생태원은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연구시설에서 인공증식한 멸종위기 야생생물 II급 참달팽이 20마리를 지난해(2022년) 7월 8일 오전 전남 신안군 홍도 원서식지에 방사했다. 멸종위기종복원센터는 2018년 홍도에서 참달팽이 5마리를 도입하여 국내에서 처음으로 기초생활사를 규명했으며, 2020년 12마리를 인공증식 하는 데 성공했다. 2년 뒤인 현재 참달팽이 수는 모두 65마리로 늘어났다. 2005년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으로 지정된 참달팽이는 다도해해상 국립공원에 속한 홍도 마을 인근에서 주로 발견되는 고유종이다. 이 가운데 개체밀도가 가장 높은 주요 서식처에서도 100 평방미터 당 5마리 정도만 발견될 만큼 개체군의 수가 매우 적다. 시민단체 가운데는 방송인 김민자 씨가 회장으로 있는 ‘(사)사랑의달팽이’라는 단체도 있다. 사랑의달팽이는 청각장애인에게 인공달팽이관 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지난 7월 26일 지리산국립공원전남사무소는 지리산 노고단 일원에 자라는 한국 고유종인 백운산원추리, 둥근이질풀, 지리터리풀을 포함한 30여 종의 여름철 들꽃이 활짝 폈다고 밝혔습니다. 물론 이 가운데는 노고단 꼭대기 부분에 활짝 핀 ‘기린초’도 소개되었지요. <다문다문> 블로그에는 “노란 병아리 같은 낮별들이 청신한 햇살을 쐬며 사각사각 소곤거리는 소리 자욱합니다, 꽃의 미소 눈이 부십니다,”라고 표현합니다. 또 어떤 블로그에는 “여름 산행길, 절벽이나 바위틈에서 수수한 노란색의 얼굴로 수줍게 다가온다.”라고 말하지요. ‘기린초’는 온 나라 산과 바닷가 양지바른 바위 겉에 흔하게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여기서 기린초처럼 잎이나 줄기가 두툼한 식물들을 일컬어 "다육(多肉) 식물"이라 부르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가뭄에 강하고, 독특한 방식으로 광합성을 합니다. 잎 세포의 부피가 넓어 물을 저장하는 탱크 역할을 해 모래나 돌투성이의 메마르고 척박한 땅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또한 밤에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저장하고 있다가 낮에 포도당을 만들어 내는 광합성을 해서 침실에 두면 공기정화 효과가 있다고 합니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쇠를 녹일 무더위에 땀이 마르지 않으니 가슴 헤치고 맨머리로 소나무 난간에 앉았노라 옥경의 신선 벗이 나를 지성스레 생각해 주어 맑은 바람 한 줄기를 나누어 보내주었구려 무더위가 쇠를 녹인다는 말은 한여름 더위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위는 1940년에 펴낸 옥담 김위원(金偉洹)의 시문집 《옥담고(玉淡稿)》에 나오는 한시 ‘부채선물에 화답’입니다. 오늘은 24절기의 열두 번째로 오는 “대서(大暑)”입니다. 사무실 안에서야 에어컨이나 선풍기로 더위를 식히겠지만 들판에서 일을 하는 농부들이나 밖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대서와 같은 한여름은 견디기 어려운 절기입니다. 더울수록 혀끝에서는 찬 것이 당기지만 이럴 때일수록 더운 음식으로 몸을 보양해온 게 옛사람들의 슬기로움입니다. 흔히 이열치열로 먹는 먹거리로는 전설의 동물인 용과 봉황 대신 잉어(혹은 자라)와 오골계로 끓인 “용봉탕”, 검정깨로 만든 깻국 탕인 “임자수탕” 그리고 보신탕, 삼계탕, 추어탕 등을 예로부터 보양식으로 즐겨 먹었습니다. 그러잖아도 더운데 땀을 줄줄 흘리며 뜨거운 음식을 먹는 것은 여름철 체온이 올라가는 것을 막으려고 피부 근처에 쏠리는 많은 양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그 늘 - 노원호 그늘이 있어 참 좋다. 땀 흘리며 걷다가 잠깐 쉬어갈 수 있는 곳 내 가슴 어딘 가에도 잠깐 머무를 수 있는 그늘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늘은 그늘진 곳이 아니라 마음을 앉힐 수 있는 시원한 마음자리다. ‘그늘’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 불투명한 물체에 가려 빛이 닿지 않는 상태. 또는 그 자리”가 기본적인 말 풀이지만, 그 밖에도 “상황을 가리어 드러나는 것을 방해하는 영향력”, “근심이나 불행으로 어두워진 마음. 또는 그 마음이 드러난 표정”,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이면(裏面)의 상황이나 처지. 불우하거나 부정적인 환경이나 상황”처럼 어두운 면을 주로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의지할 만한 사람의 보호나 혜택”이라고 풀어놓은 것을 보면 늘 한 면만을 바라볼 필요는 없다. 지금은 한창 더울 때지만, 예전 농민들은 이때도 피사리와 김매기에 땀으로 온몸이 파죽이 되었다. 그때 솔개그늘은 농부들에게 참 고마운 존재였다. 솔개그늘이란 날아가는 솔개가 드리운 그늘만큼 작은 그늘을 말한다. 뙤약볕에서 논바닥을 헤매며 김을 매는 농부들에겐 비록 작은 솔개그늘이지만 여간 고마운 게 아니다. 거기에 실바람 한 오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흔히 사람들은 ‘가곡’ 하면 가고파, 꽃구름 속에, 동무생각 등의 근현대에 만들어져 서양 성악가들이 부는 노래를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오랫동안 전승되어온 전통가곡 곧 거문고ㆍ가야고ㆍ대금ㆍ단소ㆍ세피리ㆍ장구ㆍ해금 등으로 편성된 실내악 반주에 맞추어 시조시(時調詩)를 노래로 부르는 것이 있습니다. 지난 2019년 말 무렵 한 텔레비전에서 방영된 <풍류대장> 프로그램에 이 가곡이 소개되어 그동안 전통가곡을 모르던 젊은이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지요. 원래 가곡은 정가(正歌)라고도 부르는데 곡조가 아담하고 바른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러한 노래를 부르는 가객들이 우선해서 갖추어야 할 덕목이 바로 높은 기품과 바르고 당당한 태도입니다. 가곡은 ‘삭대엽(數大葉)’ 또는 ‘만년장환지곡(萬年長歡之曲)'이라고도 하며, 판소리, 불교음악인 범패와 함께 한국 3대 성악으로 꼽는데 2010년 유네스코 무형 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가곡은 남자가 부르는 남창가곡과 여성이 부르는 여창가곡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곡은 또한 우조와 계면조로 구성이 돼 있는데요. 우조는 밝거나 힘 있고 활기찬 느낌의 가락이고, 계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지난 5월에는 국가무형문화재 완초장 보유자 이상재 선생이 세상을 떴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완초장은 논 또는 습지에서 자라는 1, 2년생 풀인 왕골로 살림살이에 쓰는 도구들을 만드는 장인을 말합니다. ‘왕골’은 키가 60~200cm에 이르는 풀로 용수초(龍鬚草), 현완(懸莞), 석룡초(石龍草)라고도 부릅니다. 왕골제품으로는 자리, 돗자리, 방석, 송동이(손바구니), 합(밥그릇) 따위가 있지요. 《태종실록》에 보면 관청에서 수요를 빙자하여 민간에게 공납을 강요하는 몇 가지 품목 가운데 왕골도 포함된 것으로 미루어 조선시대에도 왕골은 매우 귀한 물건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만화석(滿花席), 만화방석(滿花方席), 만화각색석(滿花各色席), 용문석(龍文席), 화문석(花文席), 잡채화문석(雜彩花文席), 채화석(彩花席) 등 여러 이름의 왕골제품이 있어 궁중과 상류계층에서 썼고 또 외국과의 중요한 교역품으로도 쓰였음을 알 수 있지요. 1991년 12월 31일 조사에 따르면 609호가 왕골 생산에 종사하여 20,624매의 꽃방석을 생산하였고, 206호가 종사하는 꽃삼합은 연간 30,371매를 생산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엇그제 빚은 술이 얼마나 익었는가. (술잔을) 잡거니 권하거니 실컷 기울이니 마음에 맺힌 시름이 조금이나마 덜어진다. 거문고 줄을 엊어 풍입송을 타자꾸나. 손님인지 주인인지 다 잊어버렸도다 선비들은 거문고와 함께 한 삶이었다. 선비들은 아름다운 자연의 품속에서 시(詩)ㆍ서(書)ㆍ금(琴, 거문고)ㆍ주(酒)로 노니는 것을 풍류라 하여 삶의 중요한 영역으로 삼았다. 고악보 《양금신보》에는 “금자악지통야 고군자소당어야(琴者樂之統也 故君子所當御也)”라 하는 글귀가 있는데 “거문고는 음악을 통솔하는 악기이므로 군자가 마땅히 거느리어 바른길로 나가게 하라.”라는 뜻이다. 이 말은 거문고를 ‘백악지장(百樂之長)’이라고 하여 가장 귀하고 중요한 악기로 여기는 것과 같은 내용이다. 실제 전통사회에서는 피리나 젓대(대금)를 하는 잽이들이 전문음악인이고, 거문고를 하는 풍류객들은 아마추어 음악인이었는데도 풍류를 할 때는 거문고를 하는 선비가 이끌곤 했다. 거문고라는 악기가 합주를 이끌어 가도록 음악이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달 아래에서 거문고를 타기는 근심을 잊을까 함이려니 춤곡조가 끝나기 전에 눈물이 앞을 가려서 밤은 바다가 되고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