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고조선, 고구려 시대 우리의 활동 무대였던 구이원(九夷原) - 캄차카반도에서 곤륜산맥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 –을 잃어버린 것은 애석하나 고향을 잃고도 기억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경계하며 옛 선조의 기상과 포부를 회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집필하게 되었다.” 이는 고조선 역사대하소설 《구이원(九夷原)》 서문에 나오는 작가 무곡성의 집필 의도다. 얼마 전 신문사로 소설 《구이원(九夷原)》 제1권에서 5권까지 5권이 배달되어왔었다. 사실 나는 소설을 서평의 대상으로 쓴 적이 없고, 더구나 한꺼번에 5권이라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고조선 역사대하소설’이란 장르에 나도 모르게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고, 별로 어렵지 않게 5권 읽기를 끝냈다. 소설의 시작에는 “하늘이 처음 열리고”란 서곡 같은 글이 있었다. 여기엔 “그동안 구이원의 주인 배달국, 조선은 수천 년 동안 은성하며 태평성대를 누리었고 가달의 무리는 전혀 보이질 않아 사람들은 모두 그들이 영원히 세상에서 사라진 줄 알았다. 그러나 마도의 무리는 절대 없어지지 않고 오히려 무리가 불어나 죽은 가달마황을 신으로 받드는 가달마교를 조직하여 세상 사람들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배흘림기둥에 기대어 - 이정환 배흘림기둥 끌어안고 가만 울어나 보렴 참으로 눈물 날 일 하고 많은 이 세상에 참으로 눈물날 일이지 저물녘 서녘 하늘 이곳까지 와서 그대 껴안고 울다니 소백 연봉이 하냥 저물고 있어서 그런가 마침내 뜬돌돼버린 붉은바람 탓인가 경북 영주시에 있는 <부석사>, 그곳에는 아미타여래 불상을 모신 부석사의 중심 건물 무량수전이 있다. 그런데 무량수전보다 더 유명세를 타는 것은 무량수전을 받치고 있는 ‘배흘림기둥’이다. ‘배흘림기둥’은 단면이 원형인 원기둥 가운데 허리부분의 지름을 가장 크게 하고 기둥머리와 기둥뿌리로 갈수록 지름 크기를 줄인 항아리 모양의 기둥을 말한다. 이에 견주어 기둥 윗부분보다 아랫부분의 지름을 크게 한 기둥은 민흘림기둥이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이 글은 미술사학자 최순우 선생이 그의 책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에 쓴 것으로 배흘림기둥을 참으로 아름답게 소개했다. 이 덕분에 배흘림기둥은 널리 알려지게 됐다. 배흘림기둥은 부석사 무량수전말고도 강진 무위사 극락전, 구례 화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어제저녁 성턴몸이 금일위시 하야 오한 두통에 사지가 아프니 이일이 가련치 않느냐 오를숨만 남아있고 내릴숨은 전혀없으니 부르나니 어머니요 찾느니 냉수로구나 이내 일신의 침중한병은 전제전곡이 귀치않고 탕약환약이 무효로 구나 이렁저렁 수일되야 정신버려 혼전하니 세상공명은 꿈밖이로다 육진장포 열두매끼 꽝꽝 동여 상구대차에 올려놓고 붉은명정을 표불할제 보통분 송백성아 이별아껴 설워마라 인간이별 남녀중에 날 같은 인생이 또 어데 있나 무대가 열리자 민속악단 유지숙 예술감독이 저 무대 뒤 한편에서 슬픔을 다 내려놓은 듯 처연하고 담담한 북녘의 소리 ‘제전’을 풀어낸다. <제전(祭奠)>이란 서도좌창의 대표적인 곡으로 한식 명절을 당하여 죽은 남편 무덤을 찾아가서 정성껏 제물을 차려놓고 제사 지내는 서도소리다. 그저 슬픈 것만도 아닌 담담하고도 깊이 있는 소리가 심금을 울린다. 어제 6월 29일 저녁 7시 30분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는 국립국악원(원장 김영운) 민속악단(예술감독 유지숙)의 정기공연으로 서도ㆍ경기ㆍ남도 지역의 상여소리를 중심으로 만든 ‘꽃신 신고 훨훨’을 선보였다.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이 떠나는 사람과 남겨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지난 2019년 국립중앙도서관은 “천자문, 종류가 이렇게나 많아요!” 전(展)을 열었습니다. 그에 따르면 글씨 교본으로서의 천자문(千字文)을 우리나라에서 펴낸 것은 110종이라고 합니다. 서예 대가로 알려진 한석봉(1543~1605)의 목판본 천자문은 정자체인 해서(楷書)의 글씨 교본으로 사용되었고 천자문 가운데 가장 많이 알려진 책입니다. 그런데 옛날 서당에서 천자문을 배운 바로 뒤는 무슨 책으로 공부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조선 명종 때 학자 박세무(朴世茂)와 민제인(閔齊仁) 쓴 것으로 알려진 《동몽선습(童蒙先習)》이란 책이지요. 이 책은 《천자문》을 익히고 난 뒤의 아이들이 배우는 초급교재로, 앞에선 부자유친, 군신유의,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의 오륜(五倫)을 설명하였습니다. 그 뒤를 이어 중국의 삼황오제에서부터 명나라까지의 역사와 조선의 단군에서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역사를 간단하게나마 썼습니다. 특히 단군, 주몽, 왕건, 마의태자, 이성계 등의 인물들 이야기를 하며 자연스럽게 우리의 역사에도 접근할 수 있게 합니다. 물론 이 책은 중국 중심의 역사관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우리나라가 비록 땅은 좁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어허, 할 말 많은 세상, 그럴수록 더욱 입을 닫으시오. 조목조목 대꾸해봐야 쇠귀에 경 읽기니 침묵이 상수요 대신 이놈 말뚝이 잘난 놈 욕도 좀 하고 못난 놈 편에서 슬쩍 훈수도 두려 했는데” 이는 지난 2009년 이달균 시인이 동학사를 통해 펴낸 사설 시조집 《말뚝이 가라사대》에서 나오는 대목이다. 할 말 많은 세상에 독자들은 그냥 침묵을 무기로 하고 대신 시인이 말뚝이가 되어 세상의 탈이란 탈은 다 잡아줄 것이란 약속을 했다. 그런데 이 《말뚝이 가라사대》가 책에서 끝나지 않고 인기가 이어가더니 드디어 오페라가 되어 나타났다. 합천군(군수 김윤철)은 경상오페라단의 오페라 `말뚝이 가라사대` 공연을 오는 29일 저녁 7시 30분 합천군문화예술회관에서 연다고 밝혔다. 오광대놀이를 주제로 한 이번 공연은 그 발상지인 합천에서의 첫 무대이며, 지역문화를 현대예술과 결합한 이번 공연을 통해 군민들에게 지역문화의 매력을 알릴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 오페라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지난해 1월 진주시 주최로 국립경상대학교 콘서트홀에서 열린 것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부산 을숙도문화회관대공연장에서 을숙도문화회관 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한국문화재재단(이사장 최영창)은 오는 7월 11일 저녁 7시 30분, '청춘별곡(靑春別曲)' 공연을 한국문화의집KOUS(서울 대치동 소재)에서 연다. 이 시대 청년들, 우리 시대‘청춘(靑春)’들이 재해석하는 전통의 색다른 별(別) 곡(曲) : 청춘별곡(靑春別曲) '청춘별곡(靑春別曲)'은 한국문화재재단에서 올해 처음 선보이는 기획공연으로, '전통의 재발견’을 주제로 전통 국악을 젊은 국악인들의 감각으로 재해석 하여 선보이는 창작국악콘서트다. 한국문화재재단은 지난 1월 공모를 통해 출연진을 뽑았으며, 다른 퓨전국악공연의 공모와는 다르게 국악기로만 연주하게 하는 등의 제한을 두어 전통의 본질에 집중하면서도 참신한 팀을 뽑고자 노력하였다. 그 결과, 높은 경쟁률을 뚫고 개성이 뚜렷한 두 팀이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재단이 특별하게 선보이는 ‘청춘별곡' 공연은 전통예술이 세대를 이어가기 위해 시대와 함께 변화하고 끊임없는 도전을 시도하고 있는 현장을 직접 만나볼 특별한 기회가 될 것이다. 독창성을 가진 젊은 예술가들을 통해 재탄생된 전통국악공연의 새 면모를 보여주는 신선한 무대를 준비했다. 창작국악그룹 하모예ㆍ윤세연X투음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영조실록》 79권, 영조 29년 6월 25일 치 기록에 보면 ”숙빈(淑嬪) 최씨(崔氏)에게 화경(和敬)이라고 추시(追諡)하고, 묘(廟)는 궁(宮), 무덤은 원(園)이라 하였다. “이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조선 21대 영조(英祖) 임금의 어머니는 무수리 출신으로 알려진 숙빈 최씨입니다. 당시 무수리는 궁중 하인 가운데서도 직급이 가장 낮아서 흔히 “궁녀의 하인”으로 불렸는데 어머니의 천한 신분 때문에 영조는 같은 왕자이면서도 이복형이었던 훗날 경종 임금이 되는 왕세자와는 전혀 다르게 주위의 은근한 멸시 받으며 자랐습니다. “붓을 잡고 글을 쓰려고 하니 눈물과 콧물이 얼굴을 뒤덮는다(涕泗被面). 옛날을 추억하노니 이내 감회가 곱절이나 애틋하구나.”라는 글은 영조 임금이 어머니 숙빈 최씨 무덤의 돌비석에 쓴 <숙빈최씨소령묘갈(淑嬪崔氏昭寧墓碣)>의 내용입니다. 영조임금은 이렇게 묘갈문을 직접 썼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 무덤가에 여막을 짓고 시묘살이를 한 효성이 지극한 임금으로도 알려졌습니다. 1724년 병약하던 경종이 후사 없이 33살에 죽자 그의 뒤를 이어 조선 제21대 임금이 된 영조는 어머니 최 씨가 천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장 미 꽃 - 서윤덕 태양보다 더 밝다 초록을 더 초록으로 빛내주는 장미 맑은날도 흐린날도 변함없이 초록과 어울려 예쁜 색과 고운 향을 선물한다. 나는 장미꽃같은 사람이 좋다. 우리나라의 현대 장미는 20세기 초에 일본을 거쳐 유입된 데다가, 서양권에서는 고대 그리스ㆍ고대 로마 시대부터 장미 얘기가 나오고, 르네상스 시대에 걸쳐 주로 유럽 남부에서 많이 재배되었기에 ‘장미’ 하면 우리 꽃이 아니라 유럽의 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장미의 원산지는 아시아다.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건너간 꽃이라고 한다. 따라서 우리 옛 문헌에는 장미가 종종 등장한다. 특히 《고려사》에는 〈한림별곡〉의 일부 기록을 소개한 내용 가운데 ‘황색 장미, 자색 장미’라는 대목이 나와 있다. 또 15세기 원예실용서 강희안의 《양화소록(養花小錄)》에는 사계화(四季花)란 이름으로 장미 키우는 법을 소개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중종실록》 36권, 중종 14년(1519년) 9월 18일 기록에는 “인가(人家)의 장미꽃이 초여름처럼 만발했으며”라는 내용이 보일 정도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예부터 장미는 자주 볼 수 있는 꽃이었다. 참고로 장미과 장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임금이 용천을 떠나 의주에 도착하여 목사(牧使)의 관청에 좌정하였다. 이때 고을 사람들이 평양이 포위당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흉흉하여 두려워하더니 명나라 병사들이 강을 건너 성안으로 들어와 약탈하자 백성들이 모두 산골짜기로 피해 들어가 성안이 텅 비었다. 목사 황진(黃璡)과 판관 권탁(權晫) 등이 벼슬아치들과 관아의 여종 두어 명을 직접 거느리고서 임금의 수라(水剌)를 장만하였으며 호종한 관원들은 성안의 빈집에 분산 거처하였다. 꼴과 땔나무가 계속 조달되지 아니하여 비록 행재소라고는 하지만 적막하기가 빈 성(城)과 같았다.” 이는 선조 25년(1592년) 한양이 함락되기 사흘 전인 4월 30일 새벽 백성 몰래 궁궐 뒷문을 통해 한양을 나와 22일 뒤 의주에 도착했을 때의 기록입니다. 문제는 명나라가 조선을 구원해줄 것으로 생각한 선조의 뜻과는 달리 명나라 병사들은 성안으로 들어와 약탈을 일삼았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모두 산골짜기로 피해 들어가 성안이 텅 빌 수밖에 없었지요. 김영진이 교수가 쓴 책 《임진왜란(성균관대학교출판부)》에 보면 조선 중기의 문신ㆍ정치인이자 성리학자인 윤두수는 선조에게 일갈하는 내용이 나옵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조선시대 으뜸 풍속화가인 단원 김홍도의 풍속도첩 가운데 <무동(舞童)>이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거기엔 무동이 춤을 추는데 위 맨 왼쪽에 좌고를 치는 이가 있으며, 그 오른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장구와 두 대의 향피리, 대금ㆍ해금이 연주합니다. 여기서 ‘향피리’란 중국에서 들어온 당피리에 견준 우리 고유의 피리를 말합니다. 그런데 <무동>의 그림에서 보는 이런 악기 편성이 삼현육각입니다. ‘삼현육각(三絃六角)’은 조선시대 궁중무용과 행진 음악, 지방 관청의 잔치, 높은 관리의 행차, 향교 제향 그리고 각 지방에서 신에게 제사 지낼 때 두루 쓰이던 민간의 주류음악이지요. 삼현육각은 <무동>에서처럼 6명으로 구성되지만. 경기ㆍ호남ㆍ해서ㆍ영남 등 지역에 따라 악기 종류, 편성인원, 음악적 특징, 악곡구성에 조금씩 차이를 보입니다. 삼현(三絃)이라 해서 3대의 현악기를 뜻하지는 않으며, 삼현육각이 주로 연주하는 음악이 <삼현영상회상>이어서 그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또 육각(六角)은 피리를 불고 북을 치는 6명의 연주자를 말합니다. 조선시대 민간음악의 주류를 이루던 삼현육각은 광복 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