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산에 있는 활엽수들은 이제 거의 다 새잎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싱싱한 연두색 기운이 새잎에서 힘차게 뿜어져 나온다. 사람으로 견주면 십 오륙 살의 소년 같다고 할까? 참으로 좋은 계절이다. 5월은 계절의 여왕이라는 표현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조그만 다리, 구룡교를 건너간 일행이 가지 않고 서 있다. 내가 오기를 기다린다. 다리를 지나서 길이 양쪽으로 갈라지는데 이정표가 없어서 나를 기다리는 것이다. 나는 며칠 전에 사전 답사 차 이 길을 갔기 때문에 알고 있다. 오른쪽으로 가면 마을을 지나는 길이고, 왼쪽 길은 하천 둑길이다. 두 길은 조금 지나 다시 만나므로 어느 길로 가든지 길을 잃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처음 걷는 답사객은 불안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평창군 담당자에게 이곳에 표지판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여기서 질문 하나. 이효석은 어느 쪽 길을 걸었을까? 이효석은 마을로 난 길을 걸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걷는 길은 마을과 마을을 잇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콘크리트 둑길은 최근에 하천정비공사를 하면서 만들었을 것이다. 옛날 길은 직선보다는 곡선이 많다. 곡선은 자연을 따라 만들어진다. 옛날의 마을길은 모두 구불구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장마철로 접어들어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살판이 난 동물세상이 있다. 바로 개구리들이다. 집으로 가기 위해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면 조경을 위해 파놓은 작은 연못에서 개구리와 맹꽁이들이 정말 제 세상을 만난 듯 목소리를 높인다. 몇 마리가 그러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고막이 멍멍하다. 거기 돌맹이라도 하나 떨어지면 잠시 조용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운다. 그 울음소리가 그야말로 개골개골하기에 혹은 귀를 멍멍하게 하기에 이 작은 동물의 이름도 개구리나 맹꽁이일 것이다. 자기들이 제철을 만나 신이 나서 우는 것은 좋지만 그게 사람에 따라서 듣기에 무척 괴롭고 힘든 경우도 있을 것이다. 누구는 기분이 울적할 때는 이렇게 너무 시끄럽게 우는 것을 들으면 심사가 뒤틀린다. 조선왕조 광해군, 인조 때 글을 잘해 유명해진 계곡(谿谷) 장유(張維, 1587~1628)는 한양의 서쪽에 살면서 개구리들의 울음소리에 짜증이 난 모양이다. 생육하고 번식하여 / 生育繁息 그 수를 헤아릴 수도 없는데 / 厥麗不億 이때다 생각하고 / 乘時得意 떠들썩하게 기분 내며 / 叫呶自嬉 패거리들 이끌고 와 / 命儔引類 턱을 치 받들고는 / 張頷樹頤 한목소리
[우리문화신문=안승열 명리학도] 몸이 더운 열증이나 찬 한증은 각기 실증(實熱)과 허증(虛證)이 있으며 이들은 음양의 관점에서 구별해야 그 참 모습을 볼 수 있다. 실증- 음양 어느 한 기운이 모자라거나 지나치지만 음양의 순환은 정상인 경우. 실열증- 과도한 열기(양기)로 얼굴색이 붉어지며 입속이 마르고 소변이 적어지며 대변이 굳고 맥이 빨라짐. 해열제로 양기를 감해주면 열증이 해소되며 음양의 순환이 순조로워진다. 실한증- 한기(음기)가 과하여 몸이 차고 얼굴은 창백하며 소변이 맑고 길다. 대변은 누렇고 무르며 맥은 느리다. 더운약으로 한기를 눌러 한증이 해소되며 음양이 순환도 좋아 진다. 허증- 음기 양기 어느 한쪽이 과도하거나 모자라는 점은 실증과 마찬가지이지만 기의 순환이 순조롭지 못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순환이 여의치 않으니 과도한 기운이건 약한 기운이건 끼리끼리 몰려서 기운 간에 분리가 일어난다. 기가 분리가 심화 되면 강한 기운이 부분 부분 소부위로 몰려서 더 강해 보이는 기운으로 나타난다. 분리가 일어난 경우 이런 기운을 제압하기위해 약을 써도 증상은 더 심해진다. 이렇듯 심해지는 증상을 한의학은 허증이라 하였다. 허열증- 음기가 부족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이황과 이이. 이름도 비슷한 두 사람은 조선 중기 비슷한 시기에 살면서 조선의 사상사를 한 단계 발전시킨 거목들이다. 지금도 천 원권과 오 천원권 지폐의 주인공으로 왠지 모를 친근함을 주지만, 두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고 어떤 길을 걸었는지 견줘서 살펴본 일은 드물 것이다. 이황과 이이는 관직에 나아가 현실정치에 참여하는 경세가이기도 했지만, 조선 지성계를 주름잡는 학자이기도 했다. 특히 이황은 분주한 관료 생활보다 오늘날의 대학 총장과 흡사하게 후학을 양성하는 교육자의 역할을 더 만족스러워했던 것 같다. 조남호가 쓴 이 책, 《이황 & 이이, 조선의 정신을 세우다》는 비슷한 듯 다른 두 사상가의 모습을 견줘 보여주는 책이다. 둘은 ‘리(理)’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을 하며 사상적으로 대결하기도 했지만,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임금의 공부를 힘껏 돕기도 했다. 이황은 1501년에 태어나 1570년에 70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이이는 1536년에 태어나 1584년에 49살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이황의 사상적 스승은 중국 송나라 시대 학자인 주희였다. 주희를 평생 흠모했던 이황은 주희의 문집인 《주희대전》을 들
[우리문화신문=안승열 명리학도] 병증에도 음양이 있다. 음과 양이 같은 힘으로 맞물리지 못하고 어느 한편으로 치우칠 때 병이 난다. 음액(陰液 한의학에서 인체를 순환하는 정 혈 진액 등의 체액을 음기로 보고 한꺼번에 음액이라고 부른다. 양의학이 말하는 혈액, 림프액, 정액 등에 해당한다. 영양제나 한의가 쓰는 보약은 음액을 보강하는 약이다.)이 고갈되면 음액으로 활동하는 양이 허해지고 양의 허한 상태가 지속되면 음액을 생성하지 못하니 결국 음과 양이 모두 허해진다. 따라서 음병이 지나치면 양병이 되고, 양병이 더 세지면 음병이 된다. 그 시작이 음양 어느 것인지를 가려서 부족한 것부터 채우는 것이 음양병 치료의 대원칙이다. 일반 증세 겉으로 보이는 몸의 위쪽 (윗입술~등~ 항문전)에 나타나는 것은 양증이고 아래쪽 (아랫입술~ 배~항문)에 나타나는 것은 음증이다. 두통, 감기, 해소, 각혈 등은 양증이고, 각기, 설사, 탈핵 등은 음증이다. 열이 위로 올라와 가슴이 답답하고 눈이 붉어지고 귀가 울리는 것은 양증이고 열이 부족하여 복통 설사 요통 등 아래쪽에 증세가 나타나는 것은 음증이다. 급성 만성 급성병은 대부분 양병이라 밖으로 증세가 드러난다. 오한 발열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속’과 ‘안’은 본디 아주 다른 낱말이지만, 요즘은 모두가 헷갈려 뒤죽박죽 쓴다. · 속 : ① 거죽이나 껍질로 싸인 물체의 안쪽 부분. ② 일정하게 둘러싸인 것의 안쪽으로 들어간 부분. · 안 : 어떤 물체나 공간의 둘러싸인 가에서 가운데로 향한 쪽, 또는 그런 곳이나 부분. 《표준국어대사전》 국어사전의 풀이만으로는 누가 보아도 무엇이 다른지 가늠하기 어렵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이 밖에도 여러 풀이를 덧붙여 달아 놓았으나, 그것은 모두 위에서 풀이한 본디 뜻에서 번져 나간 것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다. 본디 뜻을 또렷하게 밝혀 놓으면 번지고 퍼져 나간 뜻은 절로 졸가리가 서서 쉽게 알아들을 수가 있다. 그러나 본디 뜻을 흐릿하게 해 놓으니까 그런 여러 풀이가 사람을 더욱 헷갈리게 만드는 것이다. 우선 ‘속’은 ‘겉’과 짝을 이루어 쓰이는 낱말이고, ‘안’은 ‘밖’과 짝을 이루어 쓰이는 낱말이다. “저 사람 겉 다르고 속 다른 데가 있으니 너무 깊이 사귀지 말게.” 하는 말은 ‘겉’과 ‘속’을 아주 잘 짝지어 쓴 보기다. 여기서 ‘겉’은 바깥으로 드러나서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행동과 말 따위를 뜻하고, ‘속’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세종은 사맛[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백성이 주가 되는 ‘민위방본(民爲邦本)’의 목표를 실현하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의 의견을 구해 듣고, 간하기를 권하고, 옛 문헌을 조사하여 의제[agenda]를 구하려 했다. 과제가 정해지면 좋은 해답이 나올 때까지 토론을 이어갔다. 요즘 정치에서 ‘국민은 언제나 옳다’라는 말을 듣는다. 세종은 신하들의 관점과 달리 백성 편에서 생각해 보려고 애쓴 흔적이 남아 있다. ⟪세종실록⟫에 ‘열민지사(悅民之事)’에 대해서 두 개의 뒷이야기가 있다. 백성이 원망하는 것과 백성을 기쁘게 할 일을 진술하라 세종 25년에 비가 오지 않자 비를 오게 하려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신하와 백성을 위로하기 위해 ‘나이 든 자에게 영직(직함만 있고 일이 없는 허직)을 제수하고 환상(還上, 고을의 사창에서 봄에 백성에게 빌려주었던 곡식을 가을에 받아들이던 일)을 면제하는 것에 대해 의논’하게 된다. 임금이 승정원에 이르기를, "고려 때에는 원단제(圓壇祭)를 지냈었는데, 우리 태종(太宗)께서 참례(僭禮, 분수에 맞지 않는 지나친 예의)의 일은 다 혁파하셨다. 원단제를 혁파한 것도 그 가운데 하나다. ..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미스 최는 그날 매우 화려한 털 코트를 입고 나왔다. 김 교수는 서양 풍습대로 아가씨가 코트를 벗는 것을 도와주었다. 코트 안에 미스 최는 초미니스커트와 가슴이 많이 파인 얇은 옷을 입고 있었다. 김 교수는 눈을 둘 데가 마땅치 않은 불안한 모습이었다. 상대방 눈을 바라보고 이야기를 하지만 눈길이 자꾸 가슴 쪽으로 내려감을 감출 수 없었다. 아가씨가 눈치를 채고서 장난스럽게 말했다. “오빠, 오늘 옷이 너무 야하지요?” “야하기는 예쁜 걸 뭐.” “대개는 옷을 보스에 두고 다니는데, 집에 가져왔어요.” “왜?” “오빠, 나 이제 보스에 안 나갈 것 같아요.” “왜,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니?” “제가 잘 아는 전무님이 계시는데, 명퇴하고서 술집을 개업했어요. 저보고 몇 달만 도와달라고 해서 오늘부터는 그쪽으로 나가려고 해요.” “그 전무하고는 어떤 사이인데?” “오빠, 질투하는가 봐. 자주 오시던 손님이에요.” “질투는 무슨 질투? 너에게 좋은 사람 생기면 그건 나에게도 좋은 일이지.” 두 사람은 전처럼 피자를 시켜 먹었다. 메뉴판을 보니 전통차로서 국화차가 다이어트에 좋다고 쓰여 있다. 차를 마신다고 무슨 다이어트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답사 날자: 2024년 5월 13일(월) 답사 참가자: 김수용, 나명흔, 박명수, 윤희태, 이상훈, 전선숙, 최동철, 황병무 (8명) 답사기 쓴 날자: 2024년 5월 21일 효석문학100리길 제2-2구간은 제2구간 대화 장터 가는 길의 후반부로서 평창군에서 만든 소책자에서는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지역 명소인 토마토유리온실재배단지, 금당산 등산로, 법장사, 대흥사, 땀띠공원과 농촌체험마을인 대화6리 광천마을 등을 둘러보며 옛 추억의 정취와 평창의 따뜻한 인심과 정을 느낄 수 있는 길이다. 이효석 이야기를 이어가자. 평창공립보통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이효석은 13살 때에 학교장 추천으로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등학교, 당시는 중고등학교를 통합하여 5년제이었음)에 입학한다. 나는 제일고보 다닐 때의 이효석 행적에 관해서 궁금했다. 봉평면에 있는 이효석 문학관에 가서 문화해설사에게 물어보니 이렇게 대답한다. “1학년 때에는 하숙을 한 것 같고, 2학년부터는 기숙사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지만 명확한 근거 자료는 없다” 이효석은 제일고보에서 이후 평생을 절친한 벗으로 지내게 되는 1년 선배 현민 유진오 선생과 만났다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1969년 8월 15일부터 사흘 동안 미국 뉴욕주 북부 베델 근처 한 농장에서 열린 전설적인 우드스탁 음악제(Woodstock Music Festival)의 개막일은 날씨가 궂어 비가 많이 내렸다. 아침 5시에 시작된 이 공연은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11시부터는 출연예정인 인크레더블 스트링 밴드(the Incredible String Band)가 비 오는 날씨에 공연을 못 한다고 거부하는 사태가 생겼다. 마침 거기에 와 있던 22살의 여성 가수가 급히 무대에 대신 투입됐다. 그녀는 20분 동안 깜짝 공연했는데 50만에 이르는 축제 참가자들로부터 앙코르가 쏟아져 두 곡을 더 불렀던 일이 있었다. 이에 용기를 얻은 이 여성 가수는 이듬해인 1970년에 <Lay Down(Candles in the Rain)>이란 노래를 음반으로 발표했는데 이 노래가 크게 인기를 얻어 이후 이 여성가수는 곧 존 바에즈와 함께 미국 포크계의 양대 상징으로 올라섰다. 1971년 작 〈Brand New Key〉와 1972년 작 〈Nickel Song〉이 잇달아 크게 히트했고 우리나라에서는 그 이듬해에 〈Saddest Thing〉이란 노래가 엄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