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그치다’나 ‘마치다’ 모두 이어져 오던 무엇이 더는 이어지기를 그만두고 멈추었다는 뜻이다. 이어져 오던 것이므로 시간의 흐름에 얽혀 있고, 사람의 일이나 자연의 움직임에 두루 걸쳐 쓰이는 낱말이다. 그러나 이들 두 낱말은 서로 넘나들 수 없는 저만의 남다른 뜻을 지니고 있다. ‘그치다’와 ‘마치다’의 뜻이 서로 넘나들 수 없게 하는 잣대는, 미리 어떤 과녁이나 가늠을 세워 두었는가 아닌가다. 미리 어떤 과녁이나 가늠을 세워 놓고 이어지던 무엇이 그 과녁을 맞혔거나 가늠에 차서 이어지지 않으면 ‘마치다’를 쓴다. 아무런 과녁이나 가늠도 없이 저절로 이어지던 무엇은 언제나 이어지기를 멈출 수 있고, 이럴 적에는 ‘그치다’를 쓴다. 자연의 움직임은 엄청난 일을 쉬지 않고 이루지만, 과녁이니 가늠이니 하는 따위는 세우지 않으므로, 자연의 모든 움직임과 흐름에는 ‘그치다’만 있을 뿐 ‘마치다’는 없다. 비도 그치고, 바람도 그치고, 태풍도 그치고, 지진도 그친다. 과녁이나 가늠을 세워 놓고 이어지는 무엇은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일이라고 모두 과녁을 세우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사람의 일이나 움직임에는 ‘그치다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는 그때까지 자지 않고 있다가 문을 열어 주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요? 요즘 세월이 좋은가 봐요.” 아내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어, 우리 회사 그 박 과장 있잖아. 카페에서 대중가요 스무 곡을 가사 하나 틀리지 않고 2절까지 내리 부르고 마담한테 술을 뺏어 먹었다는 그 사람 말이야. 그 친구가 오늘 부장으로 승진했다고 전화가 와서 한잔했어.” 김 과장은 슬쩍 둘러댔다. “지금이 대체 몇 시에요?” 아내는 화가 난 모양이다. “어디 시계 좀 보자고. 어, 벌써 두 시가 넘었군. 오늘은 너무 늦었는걸. 여보 미안해.” 김 과장이 아내를 포옹하면서 달래려 했다. “빨리 가서 세수나 해요. 그 분냄새 나는 와이셔츠도 빨리 벗어 치우고요!” 아내가 뿌리치며 언성을 높였다. 김 과장은 속으로 아차 했다. 술김에 용기를 내어 아가씨와 포옹하면서 좌충우돌 키스를 두 번인가? 했는데, 아가씨의 화장이 너무 진했거나 아니면 아내의 코가 너무 예민했나 보다. 부부싸움 덜 하려면 후각이 무딘 여자를 고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면서 김 과장은 와이셔츠를 벗어서 빨래통에 던지고 세수하고 이빨까지 닦은 뒤에 잠자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민보어신(民保於信) 백성을 보호하고 사랑하는 마지막 단계는 나라의 정치 제도가 백성에게 믿음[信]을 주는 일이다. 신(信)은 민본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신(信) : 임금이 말하기를, 나라를 다스리는 법은 믿음을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처음에는 저화(종이돈)를 보물로 삼아 그것을 쓰게 하였다가, 인제 와서 오로지 돈만을 쓰게 하고 그것을 헛되이 버리게 된다면, 백성 가운데 저화를 가지고 있는 자가 어찌 근심하고 한탄하지 아니하랴.(세종 7/4/14) 처음에는 저화를 쓰게 하다가 지금에 와서 못 쓰게 한다면 이는 백성들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 강조하고 “민간에 돈을 주고서 저화를 거둬들이는 것이 옳을 것이다.”라고 한다. 백성이 정부의 시책을 따르게 하려면 국가가 먼저 믿음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믿음/신(信) : 그윽이 생각하건대 나라는 백성에게서 보전되고, 백성은 믿음에서 보전되는 까닭으로, 임금님의 정사(政事)는 반드시 믿음을 중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세종 9/1/26) 가뭄으로 그만두기로 한 강무를 병조의 계로 다시 강무하는 데 관해 정지시키자는 상소가 올라온다. 강무를 해야 하는 것, 백성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정말로 이번 주가 2023년의 마지막 한 주구나. 올해가 며칠 남았다고? 그래, 나흘 있으면 새해가 온다. 적어도 달력으로는 말이다. 그런데 무사히 새해는 오겠지? 이 며칠이 길다고 느껴지는 것은 올해 하도 예상도 못 한 일들이 터졌기에 또 무슨 일이 터지는가 하는 걱정 때문일 것이다. 왜 연말이면 공연히 마음이 어두워지는가? 왜 거리마다 휘황한 불을 내걸고 있고 사람들은 그 불빛을 찾아 몰려가는 것일까? 그것은 한해 가운데 밤이 제일 긴 날이 있는 달이고, 그것으로 해서 밤이 가장 긴 때이고, 또 날씨도 추워서 조건반사적으로 이뤄지는 현상이라고 일단 해두자. 며칠 전 세상을 밝혀주었다는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불빛과 장식들이 한바탕 잔치를 벌였다가 꺼지고 있다. 이제 차분하게 한 해를 되돌아보아야 할 때가 된 것이리라. 크리스마스가 예수의 탄생을 되새기는 날이라면 진정 예수가 탄생했을 때의 풍경은 어땠을까? 베들레헴의 어느 마구간이었다면, 거기는 북위 31도쯤 되는 구릉지대로서 원래 생일은 어떻든 12월 말이라고 몹시 추운 날은 아니었을 것 같다. 이 탄생설화가 북유럽으로 올라가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전설과 혼합된 것이 오늘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세계적인 부자는 참 많다. 그러나 그들이 어떻게 부를 쌓았는지에 대한 관심은 넘쳐나도, 그 돈을 어떻게 썼는지에 대한 관심은 그만 못하다. ‘그들은 부자가 된 뒤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처럼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서사는 많아도, 부자가 되어 사회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보여주는 서사는 훨씬 적다. 이향안이 쓴 책, 《나눔으로 따뜻한 세상을 만든 진짜 부자들》은 나눔을 실천한 전 세계의 부자들과 지식인, 영향력 있는 인물들을 다룬 책이다. 기부 문화를 만들어 낸 사업가 워렌 버핏부터 나눔의 정신을 세계에 퍼트린 배우 오드리 헵번까지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녹아 있다. 그 가운데 한국과 관련된 인물은 김만덕, 후세 다츠지, 전형필 세 명이다. 잘 알려진 대로 김만덕은 굶주려 죽을 위기에 처한 제주 백성들을 구한 제주의 거상이며, 전형필은 우리 겨레의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전 재산을 쓴 수장가다. 그런데 후세 다츠지는 무척 새롭다. 그는 조선 독립운동가들을 위해 법정에 선 일본 변호사다. 1880년 미야기현에서 태어나 메이지 법률학교에서 법 공부를 한 뒤, 23살의 젊은 나이로 판검사 시험에 합격한 촉망받는 법조인이었다. 인정받은 실력을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언젠가 박 과장이 이렇게 말하던 것이 생각났다. “김 과장은 여자에 너무 약한 것 같아. 술집 아가씨는 술집에서 술을 따르면 되는 것이요. 괜히 그 이상을 기대하는 것은 격에 안 맞는 일이라고나 할까? 달리 말하면 어리석은 짓이요. 술집에서 만난 아가씨에게 절대로 정(情)이나 명함을 주어서는 안 돼요. 나중에 괜히 귀찮아지지요.” 그러나 이 아가씨는 예외일지도 모른다. 박 과장의 경험에서 나온 조언은 존중하지만, 세상에 예외 없는 법칙은 또 없지 않은가? 어쩌면 이 아가씨는 비록 뿌리는 진흙 속에 내리고 있지만 심성은 더럽혀지지 않은 깨끗한 한 송이 연꽃일지도 모른다. 여러 가지 생각이 오갔다. 술을 한 잔 더 마신 뒤 김 과장이 말했다. “수련이, 술집 아가씨에게는 정을 주지 말라는 말을 알고 있지만 나는 수련이를 그저 술 따르며 웃음을 파는 보통 여자로는 보고 싶지 않아. 어리석은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저도 선생님을 보통 손님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대개 손님들은 저희들을 뭐라고 할까요. 노리갯감이나 감정이 없는 물건처럼 대하거든요. 그러나 선생님은 달랐죠.” 말없이 듣고 있던 김 과장이 말을 이었다. “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자유는 사람이 가장 간절히 바라는 바람이다. 그러나 사람은 몸과 마음에 얽힌 굴레와 멍에 때문에 자유를 누리기가 몹시 어렵다. 가끔 굴레를 벗고 멍에를 풀었을 적에 잠깐씩 맛이나 보며 살아갈 수가 있지만, 온전한 자유에 길이 머물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람의 몸과 마음에 얽힌다는 굴레나 멍에는 빗대어 말하는 것일 뿐이고, 참된 굴레나 멍에는 소나 말 같은 집짐승을 얽어매는 연모다. ‘굴레’는 소나 말의 머리에 씌워 목에다 매어 놓는 얼개다. 소가 자라면 코뚜레를 꿰어서 고삐를 코뚜레에 맨다. 그리고 고삐를 굴레 밑으로 넣어서 목뒤로 빼내어 뒤에서 사람이 잡고 부린다. 이때 굴레는 고삐를 단단히 붙들어 주어서, 소가 부리는 사람의 뜻에 따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말은 귀 아래로 내려와 콧등까지 이른 굴레의 양쪽 끝에 고삐를 매어서 굴레 밑으로 넣고 목뒤로 빼내어 뒤에서 사람이 잡고 부린다. 굴레가 고삐를 맬 수 있게 하고 움직이지 않게 하여, 말이 부리는 사람의 뜻을 거스를 수 없도록 한다. ‘멍에’는 소나 말에게 수레나 쟁기 같은 도구를 끌게 하려고 목덜미에 얹어 메우는 ‘ㅅ’ 꼴의 막대다. 멍에 양쪽 끝에 멍에 줄을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소설을 지나고 대설도 한참 지나 동지로 넘어가는 어느 날 비가 내린다. 쌀가루 같은 흰 눈이 아니라 눈물같이 주룩주룩 내리는 비다. 아무 말이 안 나온다. 그냥 쓸쓸함 그 자체다. 포근함이 아니라 썰렁함이다. 마음이 차가워지며 문득 겪지도 않은 이별이 생각난다. 창문을 열어보니 한겨울에 웬 비 눈은 왜 비로 변했을까? 그대 없는 텅 빈 가슴에 찬기 서린 외로움, 사무친 그리움 한 줌 쓸쓸함마저 다가온다. ... 송태열, <겨울비> 중에서 20년 전 임현정이란 가수가 겨울비를 맞는 그런 마음을 노래로 잘 대변해 주었지. 사랑은 봄비처럼 내 마음 적시고 지울 수 없는 추억을 내게 남기고 이제 잊으라는 그 한마디로 나와 상관없는 다른 꿈을 꾸고 이별은 겨울비처럼 두 눈을 적시고 지울 수 없는 상처만 내게 남기고 이젠 떠난다는 그 한마디로 나와 상관없는 행복을 꿈꾸는 너 아직도 철없는 나뭇잎들이 갈 곳을 잊어버리고 애처롭게 매달려 떨고 있는 이 겨울에 죄 없는 미물들의 딱한 신세가 다 지구를 마구 사용한 우리들의 잘못 때문이 아닌가? 가을에도 덥다가 갑자기 추워져 미처 떨어질 준비도 못 하고 겨울을 맞은 이들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34) 천하의 일이 부지런하면 다스려지고 게으르면 망하는 것은 필연의 이치입니다. 작은 일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정사(政事)와 같은 큰일은 어떠하겠습니까? 천하의 일이 부지런하면 다스려지고 게으르면 망한다…자못 모골이 송연해진다. 군주에게 부지런하게 일해야 한다고, 게으르면 망한다고 ‘돌직구’를 날리는 정도전의 기개가 매섭다. 심지어 건물 이름도 ‘부지런하게 정치하라’는 뜻의 ‘근정전(勤政殿)’이니, 거기서 정사를 보는 임금은 자신도 모르게 태도가 엄정해지지 않았을까? 조선왕조는 문치 국가였다. 과거에 합격한 인재들은 모두 시작(詩作) 능력이 출중했다. 시 짓는 솜씨가 문재를 판별하는 주요 기준이었으니, 어릴 때부터 시를 쓰며 자라난 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필수 교양으로 시를 쓰고 읊었다. 조정에 출사한 최고의 문사(文士)들이 임금 곁에 머물며 늘 바라보는 장소가 경복궁이었던 만큼, 이들이 경복궁에 대해 지은 시문도 많이 남아 있다. 한문학자인 지은이 박순이 쓴 이 책, 《시가 흐르는 경복궁》은 경복궁을 주제로 옛 문인들이 쓴 글과 시에 지은이의 독창적인 관점을 덧붙인 책이다. 책에 실린 글이 모두 깊이 음미할 만하지만, 그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사랑하다’라는 말보다 더 좋은 말은 없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들으면 사람이나 짐승이나 벌레나 푸나무까지도 힘이 솟아나고 삶이 바로잡힌다는 사실을 여러 과학자가 밝혀냈다. 그리고 사랑하는 것이 그만큼 목숨의 바탕이기에, 참으로 사랑하면 죽어도 죽음을 뛰어넘어 길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여러 사람이 삶으로 보여 주었다. 세상 모든 사람의 말꽃(문학)이나 삶꽃(예술)이 예나 이제나 사랑에서 맴돌고, 뛰어난 스승들의 가르침이 하나같이 서로 사랑하라고 부채질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사랑하다’와 비슷한 토박이말에 ‘괴다’와 ‘귀여워하다’와 ‘좋아하다’가 있다. 이들 넷을 비슷한 토박이말이라 했지만, 저마다 저만의 빛깔을 지니고 있어서 아슬아슬하게 서로 다르다. 우선 이들 네 낱말은 ‘괴다’와 ‘귀여워하다’가 한 갈래로 묶이고, ‘사랑하다’와 ‘좋아하다’가 다른 한 갈래로 묶여서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앞쪽 갈래는 높낮이가 서로 다른 사람 사이에서 쓰는 것이고, 뒤쪽 갈래는 높낮이가 서로 비슷한 사람 사이에서 쓰는 것이다. ‘괴다’와 ‘귀여워하다’는 아이와 어른 사이, 제자와 스승 사이, 아들딸과 어버이 사이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