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학교 명예교수] 세종 시대 황희와 더불어 황금시대를 연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맹사성(孟思誠)이다. 맹사성은 고려 공민왕 때인 1360년(공민왕 9)부터 세종 20년(1438)까지의 문신으로 태종과 세종 시대 사이 6조를 두루 걸치며 참판과 판서를 지냈고 세종 9년(1427)에 우의정에 올랐다. 이때 좌의정이던 황희와 한 팀을 이루었고 이후 세종 13년(1431) 황희가 영의정이 되자 좌의정에 올라 조정을 관장했다. 76살이 되던 세종 17년(1435)에 스스로 벼슬에서 물러났지만 세종은 주요 정사에 대하여서 자문했다. 온양 출신으로 아버지는 고려의 맹희도(孟希道)이며 고려 말기 최영(崔瑩) 장군의 손녀 사위이기도 하다. 우왕 12년(1386)에에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춘추관검열이 되었다. 조선이 건국된 뒤 태조 때 예조의랑(禮曹議郎)이 된 이래, 정종 때 간의우산기상시가 되었다. 태종 초에 동부대언(同副代言)ㆍ이조참의를 두루 역임하였다. 1407년(태종 7) 진표사(進表使)로 명나라에 가는 세자를 시종관으로서 수행하여 다녀왔다. 그는 여러 가지 업무를 수행했으나 특히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 그의 연대기를 음악 중심으로 살펴보자.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한의사는 일반적으로 진맥해서 병증을 파악한다. 지금은 양방의 소견도 참고하지만 본래 한의학의 변증(辨證) 방법은 ‘망문문절(望聞問切)’이다. 곧 보고, 듣고, 묻고, 만져서 이루어내며 그 가운데 진맥은 만지는 것 중의 하나다. 실제로 이러한 여러 가지를 참고하고 종합해서 판별하는데 이러한 변증의 시작은 망(望), 곧 보는 것부터다. 보는 것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형상(形相)’이라 하고 이를 깊이 파고들어서 체계적으로 정립한 것으로 ‘형상학(形相學’), ‘골상학(骨相學)’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한의사들이 안색을 살펴 기운의 허실과 청탁을 살피는데, 경륜을 가진 연로한 한의사들이 흔히 말하는 ‘혈색이 좋아졌다’, “안색이 밝아졌다‘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곧 얼굴을 보고 대강의 건강을 유추할 수 있게 되는데 이때 혈색(血色)이라 표현하는 혈(血)이 진짜 피의 색인 것이다. 혈액의 색깔이 피부에 투영되어 고스란히 외부에 노출되고 특히 얼굴에 적나라하게 드러나므로 얼굴의 혈색으로 건강상태를 파악하되 실질적으로는 얼굴의 색을 살펴서 혈액의 건강상태를 유추하는 것이다. 혈색을 좌우하는 다양한 요소가 있는데 이를 크게 분류하면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한강의 발원지가 바뀌자 우통수가 있는 평창군은 섭섭했다. 특히 월정사 측에서 실망이 컸다. 그래서 평창군과 월정사가 공동으로 주관하여 2015년에 월정사성보박물관 옆에 ‘한강시원지체험관’을 만들었다. 얼마 전에 내가 체험관에 들어가 보았는데, 우통수 모형관을 만들어 놓았다. 한강의 근원을 언급한 가장 오래된 문헌인 《세종실록지리지》에 “오대산 수정암 옆에 물이 솟아 나오는 샘이 있는데, 색과 맛이 보통과 다르고 그 무게 또한 그러하여 우통수라 한다. 우통수는 금강연이 되고 한수(漢水)의 근원이 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수는 한강의 옛 이름이다. 한강의 발원지 지위를 검룡소에 넘겨주고, 이제 우통수는 한강의 ‘역사적 시원지’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대학 동창생들이 모여서 수다를 떨다 보니, 아무래도 다른 동창생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1974년 군에서 제대한 뒤에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연구원으로 근무를 했다. 그때 동창인 ㄱ 교수를 나의 사촌 여동생에게 중매한 적이 있다. 중매는 실패하였고, 간호사였던 여동생은 다른 남자와 결혼하여 미국으로 가서 잘살고 있다. 그런데 나는 ㄱ 교수가 왜 여동생이 싫다고 했는지 물어보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이 몸은 말뚝이올시다 천하고 못난 탈놀음의 어릿광대 팔자는 오그라들고 청승은 늘어난다고 뛰어봐야 벼룩인 말뚝이올시다 주인공은 애시당초 언감생심이라 이 마당에서 저 마당으로 한고비 넘길 때나 스리슬쩍 등장하여 익살맞은 몸짓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엑스트라급 조연이오 하지만 말뚝이 없는 탈마당은 재미는 고사하고 막힌 가슴 뻥 뚫어 줄 그 무엇도 없는 맹탕이 되고 마니 그 또한 소용됨이 꽤나 쏠쏠한 놈이라는 항간의 추임새도 있긴 있나 보옵디다
[우리문화신문=허홍구 시인] 누가 제주도를 이야기하면 성산포의 채바다 시인을 생각한다. 1996년에 <하멜기념사업회>를 만들어 25년째 활동 중이다.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하멜이 표착한 터에는 <난파 희생자 위령탑>을 세우고 해마다 여러 행사를 해 오고 있다 96년, 97년, 2001년에는 제주에서 뗏목 배를 타고 목숨을 건 항해로 대한해협을 3번이나 건넌 바다의 사나이 해양탐험가다. 채길웅 이란 자신의 이름을 채바다로 바꾸고 제주-강진, 고대 뱃길, 왕인 박사 뱃길, 삼별초 뱃길로 탐험을 이어갔다. 1653년 하멜 일행 64명을 실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무역선이 일본 나가사키로 가다가 풍랑으로 제주에 표착했을 때 하멜은 그때 나이가 23살이었으며 선원 중에는 15살 전후의 10대도 있었다. 그래서 채바다 시인은 젊은이들의 도전을 기대하며 해양대국을 꿈꾸도록 독려한다.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도전정신을 심어주고, 해양의 역사를 알리고, 왜곡된 일본 역사문화를 일깨워준 공로로 대통령 표창과 해양수산부 장관상인 <장보고상>도 받았다 값어치 있는 일에 흥미를 갖고 일을 한다면 늙음을 치료하는 최고의 처방이라 믿는다는 78살 채바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한방에서 몸의 노폐물을 없애는 방법으로 치료를 진행하는 것은 한의학의 출발과 더불어 시작된 고유한 방법이다. 한의학의 토대가 되는 《황제내경(黃帝內經)》의 ‘한토하(汗吐下) 삼법’에서 유래한 것으로 상한론에서 3종류의 승기탕(承氣湯)을 사용하여 숙변을 비롯한 조시(燥屎), 사기(邪氣)의 울체 등을 치료하며 한하(寒下), 온하(溫下), 준하(峻下), 완하(緩下) 등의 여러 하법(下法-설사시키는 법)을 응용하였다. 이러한 치료의 한 방법이었던 하법은 점점 발달하면서 건강 증진을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발달하였다. 1. 도창법 이러한 한토하의 방법이 발전하여 하나의 법으로 승화시킨 것으로 ‘도창법’이 있다. 도창법이란 장과 위의 찌꺼기를 싹 씻어내는 비법으로 음식에 심하게 상한 일은 없어도 몸 안에 머물러 있는 담(痰,疲)과 어혈(瘀血)이 조금씩 몰려서 여러 달이 되면 비위(脾胃)가 깨끗하지 못하게 되고 소화 작용이 제대로 수행되지 못하여 여러 성인병과 만성질환 등이 드러날 때 활용하였다. 도창법은 쇠고기를 졸여서 만든 하천고(霞天膏) 또는 자기 소변을 이용한 윤회주(輪廻酒)를 사용한다. 소고기를 사용한 하천고의 처방은 쇠고기의 영양분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이달균 시조집 《말뚝이 가라사대》는 지난 2009년 펴낸 뒤 그 걸쭉한 언어의 유희에 많은 이가 환호를 했다. 그는 시조집 서문에서 “어허, 할 말 많은 세상, 대신 이놈 말뚝이 잘난 놈 욕도 좀 하고 못난 놈 편에서 슬쩍 훈수도 두려 했다.”라고 읊조렸다. 지금 우리네 세상은 그야말로 할 말 많을 때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우리문화신문>은 이달균 시인을 다시 불러내 그의 걸쭉한 언어유희와 함께 세상을 훈수하는 연재를 오늘부터 시작하여 주 1회 매주 금요일 이어싣기(연재)를 한다. (편집자 말) 이달균 시조집 《말뚝이 가라사대》 자작시 해설을 시작하면서 이달균 시조집 《말뚝이 가라사대》는 고성오광대를 원용하여 쓴 서사극 형태의 시조 54수를 묶은 책이다. 고성오광대는 춤으로 연결되었기에 춤과 춤의 서사적 개연성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오광대’의 다섯은 정설이 없다. 오행설, 혹은 다섯 마당, 오방색 옷을 입은 양반들 등 여러 주장이 있으나 딱히 ”이것이다!“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필자 역시 시집을 엮으면서 고성오광대 연희에 얽매이지 않고 극적 요소를 가미하여 창작하였다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학교 명예교수] 태종 조에서 성종 조까지의 문신 정인지는 조선 태종 때부터 세종 그리고 문종과 단종 그리고 세조와 예종 다시 성종 때까지 활약한 유학자이자 공신이다. 정인지는 조선전기 병조판서, 좌의정, 영의정부사 등을 지낸 문신이다. 태조 5년(1396)에 태어나 성종 9년(1478년)에 죽었다. 태종 11년(1411) 생원시에 합격했고, 태종 14년 식년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세종 즉위년(1418)에 병조좌랑을 거쳐 세종 3년에는 상왕(上王 : 태종)의 “대임을 맡길만한 인물이니 중용하라.”라는 말과 함께 병조정랑에 승직되었다. 이후 세종의 신임을 받으면서 이조ㆍ예조의 정랑을 역임하였다. 세종 6년에 집현전관(集賢殿官)에 뽑히면서 응교에 제수되고, 직전(直殿)에 승진되었다. 다음 해(1427)에 문과중시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다시 직제학에 승진한다. 세종 13년(1431)에는 정초(鄭招)와 함께 대통력(大統曆)을 개정하고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을 저술하는 등 역법을 정비하였다. * 《칠정산 내편》 : 중국 최고의 역법으로 알려진 수시력(授時曆)을 바탕으로 하는 재래의 동양역 법. 세종 24년(1442)에는 예문관대제학으로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한의학이란 학문을 돌아볼 때 뼈대가 잘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동양 학문의 토대인 음양오행(陰陽五行)에서 출발하여 정신과 육체를 함께 말하는 ‘정기신(精氣神)’의 논리와 더불어 인체는 소우주(小宇宙)란 전제 아래 이루어지는 인체관(人體觀)을 완성하였다. 이러한 튼실한 바탕이 있기에 현대의 발달된 과학과 의료 기술에서도 한의학의 존재가 필요하고 필요한 의학적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인체는 소우주라는 언어에 대하여 다양한 해석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완전(完全)함에 대한 근거가 된다. 이는 인체는 스스로 건강한 삶을 위한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곧 일정한 세포단위에서 시작하여 외부의 활동에 이르는 생리 리듬, 지구에서 존재하기 위하여 적당하고 일정한 체온과 내부 장부조직의 구조와 기능의 완비 등등 현대에도 미처 밝히지 못하는 치밀한 설계로 이루어진 존재인 것이다. 따라서 건강한 삶은 이러한 본디 완전함을 방해하는 요소만 없다면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의미가 숨어있다. 이때 본디 완전함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을 우리는 자생력(自生力)이라 하고 방해하는 요소를 노폐물(老廢物)이라 정의하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길 따라 걷다 보니 가양과 함께 걷게 되었다. 그는 환경교육에 관해서는 우리나라 최고의 전문가다. 한국교원대 환경교육과 교수로 은퇴한 이후에도 그는 국가환경교육센터장 직을 5년이나 잘 수행하였다. 나는 그와 함께 중학교 환경 교과서를 만든 경험이 있다. 분야별로 교수 여러 명이 참여해 함께 작업을 했는데, 그가 팀장을 맡았었다. 그는 일 처리가 꼼꼼하고 기획력과 추진력이 대단해서 우리는 그에게 ‘등소평’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자연과 꽃과 나무에 대한 호기심이 조금도 식지 않은 가양은 왼편 언덕 비탈에 있는 붉은 꽃을 사진 찍었다. 나리꽃 종류인 줄은 알겠는데, 이름을 정확히 모르겠단다. 나중에 이름을 알아보겠다고 한다. 나리는 우리말이고 백합(百合)은 한자말이다. 나리와 백합은 같은 이름이다. 그런데 백합에서 백은 ‘흰 백(白)’이 아니고 ‘일백 백’이다. 나리의 알뿌리는 많은 수의 비늘줄기로 이뤄져 있는데, 그 수가 100개쯤 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식물도감을 찾아보면 나리꽃이라는 꽃은 없다. 참나리, 땅나리, 솔나리, 하늘나리, 말나리, 하늘말나리 등등이 모두 나리꽃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진짜 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