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은 11월만 되면 모두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연하장을 쓴다.”고 일본에 있을 때 나는 친구에게 농담을 건넨 적이 있다.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백여 장 이상, 평범한 사람이라도 적게는 십여 통, 많게는 수십 통 씩 쓰는 일본인들을 보면서 힘들지 않느냐고 물어 본 적이 있다. 대답이 재미나다. 그만 보내고 싶지만 상대가 보내니까 어쩔 수 없이 보내고 있다는 고백을 살짝 귀에 대고 하던 친구들 모습이 떠오른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이 있는 한국인들에게 “유소식이 희소식”인 일본인들의 연하장 풍습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연하장을 주고받지만 본인의 글씨가 아닌 규격화된 연하장을 보내거나 대필을 시킨 듯한 연하장은 별로 인기가 없다. 일본인들의 연하장은 반드시 자신의 빛깔로 자신의 향기를 담아 보낸다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연하장은 대개 연하엽서를 이용하는데 판에 박힌 우체국 엽서가 아닌 자신만의 독특한 엽서를 만들어 보내는 것이 일본 연하장의 묘미다. 자녀가 결혼을 했으면 결혼사진을, 아기가 태어나면 방긋 웃는 아기사진을, 파리여행을 했으면 에펠탑 아래서 찍은 사진 등을 엽서에 아로 새겨 마치 ‘저희는 한해를 이렇게 살았습니
날씨가 추워짐에 따라 따뜻한 국물이 있는 음식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포장마차 안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오뎅(표준말 어묵) 한 그릇은 추운 몸을 녹이기에 그만이다. 겨울이 되면 필자는 일본에서 먹었던 오뎅이 생각난다. 고춧가루를 쓰지 않고 간장이나 소금 간을 해서 먹는 일본음식을 몇 끼니 먹어 본 사람은 누구나 한국의 매콤한 음식을 그리워한다. 닝닝했던 일본 음식 가운데 가장 맛나게 먹은 음식이 바로 이 오뎅이다. 한국에도 오뎅을 팔고 있는데 대개 포장마차 수준으로 맛이 천편일률적이지만 일본의 오뎅은 ‘오뎅정식’으로 꽤 괜찮은 식당에서도 맛볼 수 있는 음식이다. 와세다대학에서 만난 케이코 씨는 겨울만 되면 자신의 집으로 나를 불러 정성스런 오뎅 요리를 대접했는데 안타깝게도 몇 해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비교음식문화연구가인 아라이요시미(新井由己) 씨가 지은 《일본 전국 오뎅 이야기(日本全おでん物語)》에 따르면 오뎅의 출현은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1336~1573)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의 뎅가쿠(田樂)를 궁녀들은 오뎅(御田)이라 불렀는데 뎅가쿠는 꼬치에 낀 야키뎅가쿠(燒き田樂)와 꼬치에 끼지 않고 끓여낸 니코미뎅가쿠(煮み田樂)두 가지였다. 그러나 오늘날
엊그제 11월 17일은 제73회 순국선열의 날로 전국 곳곳에서 나라를 위해 순국하신 분들을 기리는 행사를 가졌다고 신문과 방송에서 보도했다. 이러한 국가 행사에서 빠지지 않고 하는 것이 있는데 “국민의례”가 그것이다. 국민의례란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정의 하기를 “국민의례(國民儀禮): 공식적인 의식이나 행사에서 국민으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격식.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따위의 순서로 진행한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말은 일본에서 유래 한 것으로 일본 위키피디어 사전에는 그 출전을 《영남판교회100년사,南坂100年史》로 밝히면서 “國民儀禮(こくみんぎれい)とは、日本基督團が定める儀禮樣式のことで、具體的には宮城遙拜、君が代齊唱, 神社參拜」である。” 곧 이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국민의례란 일본기독교단이 정한 의례의식으로 구체적으로는 궁성요배, 기미가요제창, 신사참배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일본의 국민의례를 표준국어대사전이 그대로 베끼면서 스리슬쩍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으로 바꿔 놓은 것이다. 더 황당한 일은 필자가 국립국어원 온라인가나다에 질문한 국립국어원 쪽 답변이
[우리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일본요리는 눈으로 먹는다.”라는 말이 있다. 내가 볼 때는 일본과자도 그런 것 같다. 흔히 일본전통 과자를 화과자(和菓子, 와가시)라고 한다. 명치유신 이후 일본엔 과자를 비롯한 서양문물이 봇물처럼 밀려들어 왔는데 이때 들어온 과자를 양과자(洋菓子, 요가시)라고 부르고 일본 전통 과자를 화과자라 부르는 것이다. 우리로 치면 한과(韓菓)에 해당한다. 특히 다도(茶道)가 발달한 일본에서 화과자는 차를 대접하는 자리에 빼놓을 수 없는 과자이다. 화과자는 모양과 색이 다양하여 거의 예술작품에 가까운 과자도 수두룩하다. 대개 기름지지 않고 담백하지만 설탕을 많이 써서 그런지 매우 달다. 설탕이 흔치 않던 시절에는 주로 감이나 화삼분(和三盆, 와삼봉)이라고 해서 사탕수수로 만든 정제되지 않은 흑설탕 덩어리를 사용했는데 특유한 향이 있어 지금도 고급 화과자의 재료로 사용된다. 화과자를 예술작품으로 생각해 여름엔 청량감을 느끼도록 과자를 투명하게 만들고 가을에는 단풍을 연상케 하는 등 화조풍월 모양 과자도 만들어 내고 있다. 특히 화과자 중에서 천년 수도였던 교토에서 만드는 과자를 경과자(京菓子, 쿄가시)라고 부르며 2~3백년 된 과자점도
일본에는 어린아이들의 돌이 없는 대신에 시치고상(七五三)이라는 풍습이 있다. 시치고상이란 11월 15일에 여자아이는 7살과 3살, 남자아이는 5살 되는 아이들을 축하 해주는 행사이다. 이러한 행사는 어린아이의 무사성장을 축하하고 앞으로도 건강하게 잘 자라도록 빌어주는 풍습으로 기모노 차림의 아이들을 부모님이 데리고 신사에 참배한다. 신사에서 ‘시치고상’ 의식을 치른 아이들은 손에 ‘치토세아메(千歲飴)’를 하나씩 들고 있는데 이는 가늘고 길게 만든 사탕으로 장수를 비는 뜻이 있으며 학과 거북이, 소나무, 대나무, 매화 등이 그려진 봉투에 담아준다. 요즈음은 일본도 맞벌이 부부가 많아 꼭 11월 15일에 얽매이지 않고 토, 일요일이 낀 주말에 신사 참배를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따라서 이 무렵 일본을 여행하게 되면 길거리 어딘가에서 곱게 차려입은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바로 신사참배를 하러 신사에 가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이 날은 잘 차린 일본 전통옷을 입은 아이들과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가 손을 잡고 신사참배를 하러 나서는 정겨운 모습을 신사 경내나 시내
가을의 오오츠는 곳곳의 단풍으로 길손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곳이다. 고구려 스님 혜자의 제자인 성덕태자가 지은 천년고찰 백제사(百濟寺, 滋賀 東近江市)는 일본의 이름난 단풍명소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곳이다. 뿐만 아니라 오오츠 시내에 자리한 삼정사(三井寺)와 신라선신당(新羅善神堂)도 이제 슬슬 단풍으로 곱게 물들을 것이다. 오오츠의 유명한절 삼정사를 부흥시킨 사람은 지증대사 원진(円珍, 814-891)으로 그의 어머니는 신라계 홍법대사 공해(空海,774-835)의 조카딸이다. 오늘 이야기는 삼정사 이야기가 아니라 삼정사가 있는 오오츠에 살다간 고대 한국인들에 대한 유적지인 온돌터 이야기이다. 알다시피 일본의 방은 다다미라고 해서 우리네 돗자리 같이 풀로 엮은 방바닥을 사용하고 있으며 중국은 지역마다 다르긴 해도 일반적인 형태는 침대이다. 한·중·일 세 나라 가운데 한국의 난방형태는 온돌로 바닥을 돌로 데워 장시간 그 온도를 유지하는 형태이며 방안 전체가 따뜻해 세 나라의 난방법을 다 경험한 필자로서는 한국의 난방법이 탁월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과거 일본과 중국의 난방을 말하자면
필자는 독립운동가 특히 여성독립운동가의 역사가 있는 곳이면 국내외를 막론하고 달려가 이분들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이번 옛 정명여학교 출신의 7명의 잔다르크 이야기를 필자는 내년 2월 펴낼 예정인 <서간도에 들꽃 피다> 3권에 실을 것이며 이 책으로 60명에 이르는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조명하게 된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바란다. -기자 말 터졌고나 죠션독입셩 십년을 참고참아 이셰 터젓네 삼쳘리의 금수강산 이쳔만 민족 살아고나 살아고나 이 한소리에 피도죠션 뼈도 죠션 이피 이뼈는 살아죠션 죽어죠션 죠션것이라 한사람이 불어도 죠션노래 한곳에셔 나와도 죠션노래 ▲ 독립운동가와 격문 1983년 교실 수리 중 천장에서 발견된 독립가(왼쪽) 격문(원본, 독립기념관 소장) ⓒ 정명여중 위 노래는 목포정명여학교(현 목포정명여자중·고등학교) 학생들의 독립가이다. "이 자료는 1983년 2월 중학교 교실 보수작업 중에 발견된 것입니다. 바로 이 건물 천장에서 발견된 것인데 보관상 어려움이 따라 현재 천안독립기념관에 가 있으며 우리 자료관에는 복사본이 있습니다. 어서 가서 보시죠." 정명여자중
책을 사랑하는 어머니가 훌륭한 아이를 키운다 창원외동초등학교 어머니독서동아리 '우리말바라기' 12.10.24 16:00l최종 업데이트 12.10.24 18:23l 이윤옥(koya26) RT: 0l독자원고료: 0 이 시대에도 '맹모삼천지교'는 여전히 존재한다. 아니 맹자 시절보다 지나칠 정도로 극성이다. 하지만, 그런 극성스러운 맹모삼천지교가 진정 자식 교육에 도움이 될 것인가? 오히려 이웃을 외면하고 자신의 욕심만 차리는 부작용이 더욱 심해질 뿐이다. 그런 세태에 진정한 맹모들이 창원에 있다고 해서 다녀왔다. 경남 창원 외동초등학교(교장 맹종호)의 어머니독서동아리 '우리말바라기' 회원들을 만나보고 나니 이들이 진정한 이 시대의 맹모라는 생각이 들었다. 10월 4일 국화꽃이 반기는 교정을 지나 2층 어머니교실로 오르는 현관은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교실에는 외동초등학교 어머니들의 독서 동아리인 '우리말 바라기' 회원들이 필자를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다. 어머니들은 필자가 이른 아침 서울에서 내려 간 터라 속이 출출할 것을 생각하여 다과를 준비해놓고 있었다.차 한 잔을 마시고 나니 어머니들의 따스한 마음이 전해온다. 필자가 외동초등학교 어머니들을 만나러 간 것
0 해동성국이라 일컫던 발해(渤海, 698년 ~ 926년)는 고구려를 계승하여, 229년간 한반도 북부와 만주 동부 및 연해주에 걸친 광범위한 지역을 호령하던 나라로 뛰어난 문화 국가였다. 발해는 당나라와 친선 관계를 맺고 일본과는 200여 년간 교류를 하였으며 신라와 당나라를 견제하여 동북아시아에서 세력 균형을 유지하였으나 끝내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멸망하여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운명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발해의 유적은 지금 일본 곳곳에 남아 있다. 불가마를 연상하는 뜨거운 7월 중순, 교토의 자그마한 역 단바구치역(丹波口)에서 어렵사리 찾았던 발해유적지 홍로관터를 돌아 보고 와서 발해사를 뒤져보느라 이제야 글을 쓴다. 발해 사신들이 묵었던 교토의 홍로관(코로칸)을 찾아 나선 것은 지난 7월 중순이었다. 교토시내 단바구치역 근처에 있던 홍로관은 지금은 홍로관터였음을 알리는 작은 돌비석 하나만이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홍로관터 옆에는 제법 근사한 일본의 전통건물이 서있었는데 먼발치에서 이 건물이 홍로관인 줄 알고 반가운 마음에 단숨에 가보니 이곳은 요즈음으로 말하면 요정(角室, 스미야)으로 에도시대인 1641년에 세워져 현재는 교토시의 중요문화재이다. 그 건물
-시대마츠리의 주인공인 간무왕 어머니는 백제여인 고야신립- 천년고도 교토는 화려하다. 헤이안시대의 화려함이 재현되는 듯 수도 도쿄와는 또 다른 풍경이다. 그 화려함은 세련된 고층빌딩이 많아서도 아니고 유명 브랜드의 패션가가 즐비해서도 아니다. 세련되지 않으면서도 깊이가 있고 말끔하면서도 운치가 있는 것이 교토의 매력이다. 거기다가 역사와 전통이 깊은 절이나 신사가 즐비하고 또한 마츠리까지 볼 수 있으니 교토로 사람들이 몰릴 수밖에 없다. “경(京, 교토)”에 대한 자존심을 가질만한 도시 교토에서 10월 22일에는 지다이마츠리(時代祭)가 열린다. 교토의 3대 마츠리로는 5월 15일의 아오이마츠리, 7월 17일의 기온마츠리, 10월 22일의 ‘지다이마츠리’를 꼽는다. 화려한 고대 의상을 입은 출연자들이 교토 시내를 두어 시간 행진하는 이 광경을 보기 위해 일본 전역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이 교토다. 마츠리에 등장하는 사람이나 도구, 행렬 시간 등을 따지자면 7월의 기온마츠리(祇園祭)에 견줄 수가 없지만 5월의 아오이마츠리(葵祭)나 10월22일의 지다이마츠리(時代祭)도 꽤 볼만하다. 다만, 교토의 3대 마츠리 가운데 가장 그 역사가 짧은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