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육철희 기자] 조선시대에 어른이 되면 처음으로 술 마실 수 있는 자격을 주며 술은 적당히 마시면 맛이 좋고 향기로운 음식이지만 지나쳐서 몸을 해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당부의 말을 하지만 예전에도 고주망태니 술 먹은 개라는 표현을 했던 것을 보면 술로 인해 일어나는 부작용은 과거에도 늘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술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가 이제는 개인차원을 넘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다. 요즘 사람들은 술 마시는 법에 대해 어른들에게 직접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적기 때문에 술 마시는 예절에 대해 잘 모른다. 술 마시는 예절에 대해 조금 배워서 아는 사람들도 실제 술자리에서 그대로 실천하는 경우는 드물다. 조선시대에는 향촌의 선비와 유생들이 향교나 서원에 모여 예로써 주연(酒宴)을 함께 즐기는 의례인 향음주례(鄕飮酒禮)를 하였다. 향음주례는 학덕과 연륜이 높은 분을 큰 손님으로 모시고 여러 유생들을 손님으로 모셔서 진행하였다. 향음주례는 주인이 손님을 초청하여 주인과 손님 사이의 예절바른 주연을 통하여 연장자를 존중하고 덕 있는 사람을 높이며, 바른 예법과 풍속을 일으키기 위하여 시행하였다. 《예기(禮記)》 45편 향음주의에 의하면, 향음주란
[그린경제 육철희 기자〕내가 요즘 일과를 정해서 새로 펴낸 《춘추(春秋)》를 읽어 왔는데 오늘에야 겨우 끝났다. 그런데 자궁(慈宮, 조선 시대 임금의 후궁 또는 왕세자빈(王世子嬪)으로부터 태어난 아들이 왕위에 올랐을 때, 그 임금의 친어머니를 임금이나 신하들이 부르는 말)께서 내가 어렸을 때 책씻이[冊施時, 우리나라 풍속에 아동이 독서하다가 책을 다 떼면 그 부모가 음식을 차려놓고 기쁨을 표시하는데 그것을 책씻이라고 한다.] 하던 일을 생각하시고 음식상을 마련해 주셨기에 경들과 함께 맛보려고 하는 것이다. 위 글은 정조 23년(1799년) 12월 8일 왕조실록에 정조임금이 책씻이 곧, 어릴 때 세책례를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춘추를 읽고 난 후 그것을 기념하여 신하들과 함께 축하한 내용이다. ▲ 전통 세책례 모습 이와 관련한 기록으로 정약용은임금이 책 한 권을 다 읽으면 음식을 준비하여 세서례를 하셨으니 임금이 시를 짓고 나로 하여금 화답 시를 짓게 하셨다.고 하여 그의 책 여유당전서에서 왕실의 세책례에 대해 밝히고 있다. 정조실록에 보이는 것처럼 왕실에서도 세책례를 했지만 세책례란 보통 조선시대 서당에서 책을 한 권 뗄 때마다 학동이 훈장님에게 감사함을
책을 씻고 스승과 제자가 함께 만나는 세책례(洗冊禮)새로운 세상을 여는 스승과 제자의 발걸음〔그린경제 육철희 기자〕각신(閣臣)을 소견(召見)하였다. 하교하기를 내가 요즘 일과를 정해서 새로 간행된 《춘추(春秋)》를 읽어 왔는데 오늘에야 겨우 끝났다. 그런데 자궁(慈宮)께서 내가 어렸을 때 책씻이冊施時] 하던 일을 생각하시고 음식상을 마련해 주셨기에 경들과 함께 맛보려고 하는 것이다.하니, 신하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축하하였다. [상이 어제(御製)를 써서 내리며, 입시(入侍)한 신하들 및 《춘추》에 구두를 달거나 감독하며 간행하는 일에 참여한 신하들과 상이 동궁으로 있을 때 세자의 교육을 담당한 춘방(春坊)과 세자를 호위하던 계방(桂坊)의 신하들에게 화답하여 올리라고 명하였다.위 글은 정조 23년(1799년) 12월 8일 왕조실록에 정조임금이 책씻이 곧, 어릴 때 세책례를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춘추를 읽고 난 후 그것을 기념하여 신하들과 함께 축하한 내용이다.이와 관련한 기록으로 정약용은임금이 책 한 권을 다 읽으면 음식을 준비하여 세서례를 하셨으니 임금이 시를 짓고 나로 하여금 화답 시를 짓게 하셨다.고 하여 그의 책 여유당전서에서 왕실의 세책례에 대해 밝
[그린경제 육철희 기자〕부모의 자녀교육에 대한 이야기로는 맹자의 어머니가 단연 으뜸이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 하여 맹자(孟子) 어머니 급씨(伋氏)가 아들의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하여 맹자가 스스로 학업에 정진할 수 있도록 하였다는 널리 알려져 있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자녀교육에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주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과연 맹자의 어머니가 이사를 다니는 것만으로 맹자에게 깨우침을 주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맹자 어머니의 자식을 위한 진정한 교육방법은 베를 잘라 아들을 가르쳤다는 열녀전의 단저교자(斷杼敎子)에서 더 잘 드러난다.집을 떠나 공부하던 맹자가 어느날 갑자기 공부도 싫증나고 부모가 그리워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맹자의 어머니는 마침 베틀에 앉아 베를 짜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돌아온 맹자를 따뜻하게 반겨주기는커녕 맹자를 돌아보지도 않고 오히려 엄하게 맹자에게 물었다.공부를 다 마치고 왔느냐?맹자가 대답하기를 공부를 여전히 하고 있는 중입니다.라고 하자, 그런데 어찌하여 중간에 돌아왔느냐?하고 다시 묻자 맹자는 제 물건이 하나 없어져 그 물건을 찾고자 돌아왔습니다.라며 변명을 하였다.이때 맹자의 어머
[그린경제=육철희 기자〕우리의 전통적인 밥상예절은 웃어른을 공경한다는 동양이론의 기본적인 사상이며 맛있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웃어른께 드린다는 정신이 바탕이었다. 그러나 서양의 생활양식이 들어오고 핵가족화로 인해 일반 가정의 식사풍속이 달라져 밥상 보다는 식탁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전통적인 밥상예절은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 예전 사대부는 외상(독상)을 받는 것이 기본이었다. ▲ 1809년(순조 9) 빙허각(憑虛閣) 이씨(李氏)가 엮은 가정백과 ≪규합총서≫ 조선시대 가정백과사전인 ≪규합총서(1869)≫에 보면 밥을 먹을 때는 첫째, 음식에 들어간 정성을 헤아린다. 둘째, 내가 과연 음식을 먹을 자격이 있는지 성찰한다. 셋째, 입이 즐겁고 배부른 것만으로 일삼지 않는다. 넷째, 음식이 약이 되도록 골고루 먹는다. 다섯째, 인성을 갖춘 후에야 음식을 먹는다는 식시오관(食時五觀) 곧, 밥을 먹을 때 살펴보아야 할 다섯 가지를 들어 밥을 먹을 때도 마음가짐을 바르게 할 것을 강조하였다. 전통적으로 이어져온 우리의 일반적인 식사예절을 간추려보면 첫째, 밥을 먹기 전에 국 국물이나 찌개국물을 먼저 먹는다. 둘째, 밥그릇이나 국그릇을 손에 들고 먹지 않고 밥
[그림경제=육철희 기자] 고래에 따르면 제왕은 하늘을 제사 지내고, 제후는 산천을 제사지내며, 사대부(士大夫)는 조상을 제사지낸다.'고 했다. 제사 지내는 대상에 따라서도 그 이름을 달리했는데 하늘의 귀신(天)에 대한 제사는 사(祀), 땅의 귀신(地)에 대한 제사는 제(祭), 문묘의 공자에 대한 제사는 석전(釋奠), 그리고 사람 귀신(人鬼)에게 지내는 제사는 향(享)이라 하였다. 모시는 대상에 따라 제사를 지내는 장소도 달리했는데 하늘에 대한 제사는 원구단(圓丘壇), 땅과 곡식에 대한 제사는 사직단(社稷壇), 농사를 관장하는 농신(農神)에 대한 제사는 선농단(先農壇), 누에를 관장하는 신에 대한 제사는 선잠단(先蠶壇)에서 지냈다. 왕실 조상에 대한 제사는 (宗廟), 공자를 비롯한 선현의 제사는 문묘(文廟)에서 지내고, 일반 백성들은 사당(家廟)이나 대청, 안방 등에서 조상에게 제사를 지냈다. ▲ 전통제례를 지내는 모습 조상을 제사 지내는 의식절차가 제의례이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존재하게 한 근본에 보답해야 할 것이고(報本之禮) 그것이 효도(孝道)이다. 효도란 부모와 조상을 극진한 정성과 공경으로 섬기는 일인데, 살아계신 조상을 지성으로 섬기면서 돌
[그린경제=육철희 기자] 옛 예서에 보면 소인(小人수양이 덜된 사람)의 죽음은 육신이 죽는 것이기 때문에 사(死)라 하고, 군자(君子수양이 된 사람)의 죽음은 도(道사람노릇) 를 행함이 끝나는 것이기 때문에 종(終)이라 하는데, 사와 종의 중간을 택해 없어진다는 뜻인 상(喪)을 써서 상례라 한다.고 했다. 상례란 사람의 죽음을 맞고, 주검(屍)을 갈무리해 땅에 묻고, 근친들이 슬픔으로 근신하는 기간의 의식절차를 정한 예절이다. ▲ 전통 장례행렬(사진작가 송봉화 제공)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언젠가는 죽어 돌아오지 못하는 저승길로 영원히 떠나는 것이니, 이 세상에 남아 있는 가족, 친척, 친지에게 이보다 더 슬프고 비통한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관혼상제(冠婚喪祭)의 의례 중에서 가장 엄숙하고 정중하여 그 절차가 까다롭고 그 이론이 구구한 것이 바로 상례이다. 중용(中庸)에는, '죽은 사람 섬기기를 산 사람과 같이 하고, 죽은 사람 섬기기를 있는 사람과 같이 해야 한다'고 했다. 또 예기(禮記)에 보면, 부모를 섬기는 데는 3년 동안 상사(常事)를 치르고, 임금에게는 3년의 복(服)을 입으며, 스승에 대해서는 3년 동안 심상(心喪)을 입는다
[그린경제=육철희기자] 무릇 사람 되는 바는 예의이다. 머리는 신체를 대표하고 정신이 담긴 곳으로 인간에겐 더없는 신령스러운 곳이기 때문에 머리에 관(冠)을 쓰면 몸가짐이 바르게 되고, 몸가짐이 바르면 행동도 바르게 되며 안색이 평정하게 되고 응대하는 말이 순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관이란 예의 출발인 까닭으로 옛날의 성왕들은 관을 중시하였다. 예기 관의(冠儀)에 나오는 말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거쳐야 하는 중요의례인 관혼상제 가운데 가장 먼저 치르게 되는 의례가 관례이다. 관례는 어른 나이가 된 남자에게 어른 옷을 입히고 머리에 관(모자)을 씌우는 의식을 말하고 여자는 어른 옷과 비녀를 꽂는 계례를 행하여 어른이 되었음을 사회적으로 알리고 축복하는 의식이다. ▲ 성년례를 하는 모습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다하는 정신적, 신체적 성장을 의미하고 나아가 사회적으로 어른다운 생각과 행동으로 어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게 하기 위한 신성한 의식이므로 엄숙하게 삼가례(三加禮)라 하여 차례대로 평상복, 외출복, 예복의 순으로 갈아입게 하였다. 조선시대 태종은 의례상정소를 설치했고, 세종은 오례의를 제정하여 가례편에 왕세자와 문무관리의 관례를 행하였음을 보여주고
[그린경제=육철희 기자〕혼례는 공경하고 신중하며 바르게 한 뒤에 친하게 되니 이것이 예의 대체이고 남녀의 구분이 이루어지는 까닭은 부부의 의를 세우는 것이다. 남녀가 유별한 뒤에 부부의 의가 있고 부부의 의가 있고 난 뒤에 부자의 친함이 있고 부자의 친함이 있은 후에 군신의 도가 바르게 된다. 그러므로 혼례는 예의 근본이다. 위는 예기에 모든 예절의 시작은 부부가 되는 혼례에서부터 비롯됨을 강조한 말이다. 통과의례인 관・혼・상・제 가운데 특히 혼례는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 하여 특별하게 여겨져 왔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던 남녀가 만나 또 하나의 가정을 이루는 일이고 두 집안이 하나로 합하는 일이니 당연히 중요한 일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혼인의 의미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채 무조건 화려하고 예쁘게만 예식을 치르려는 사람들이 많다. 여기서 먼저 요즘 사람들이 혼인(婚姻)이라는 말은 잘 쓰지 않고 대부분 결혼(結婚)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 살펴보자. 혼(婚)은 장가든다, 인(姻)은 시집간다는 뜻으로 혼인이라고 하면 남녀가 장가들고 시집간다는 뜻이 다 들어있어서 평등한 개념인데 결혼이라고 하면 남자가 장가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