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화관무란 꽃으로 만든 화려한 관을 쓰고, 추는 춤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국전쟁 이후 남쪽으로 내려온 민천식 명인이 기존의 화관무에 탈춤과 교방무의 양식을 더해 완성도 높은 춤으로 재탄생시킨 춤, 당시 그는 나라의 태평성대와 민족의 영원을 염원하며 이 춤을 연희하였다고 한다. 이 춤은 정갈하고 기품이 있으며, 호방한 한삼의 뿌림이나 유연한 몸놀림 등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궁중무의 ‘규칙’과 민속춤의 ‘자유로움’도 갖추고 있다는 점으로 요약된다, 또한 그 반주음악이 서도의 ‘삼현육각(三絃六角)’이란 점에서도 흥미롭다. 앞에서도 말 한 바와 같이, 1930년대의 민천식은 민형식이라는 이름으로도 대단한 인기를 얻었던 서도의 명창이었다. 그런가 하면 춤에 대한 열정도 대단해서 황해도 해주ㆍ개성 등지의 권번에서는 민천식이란 이름으로 기녀들의 춤사범으로도 활약했던 인물이다. 당시 한국 무용계를 대표하던 최승희도 그에게 와서 춤을 배웠다는 점으로 그의 명성은 어느 정도 짐작이 될 것이다. 민천식의 제자 김정순이 전해주는 말이다. “최승희가 와서 며칠을 자면서 춤을 배우고는 ‘다음에 다시 오겠습니다.’라며 인사를 하고 갔는데,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화관무란 꽃으로 만든 화려한 관을 쓰고, 추는 춤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점. 꽃으로 장식한 무리의 여인들이 인류의 영원과 번영을 기원하며 추는 춤, 청중들 앞에서 꽃을 매개로 하여 이상(理想)의 세계를 안내하는 춤이 곧 화관무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당시 민천식이 나라의 태평성대와 민족의 영원을 염원하는 춤을 안무하여 민족의 고통을 위로하기 위해, 화관무를 연희하였다는 점, 화관무의 반주음악이 삼현육각(三絃六角)이란 점에서 반주음악에 관한 연구나 전승에도 필연성을 제기해 주고 있어서 신뢰가 되는 긍정적인 결과라는 점 등을 지난주에 이야기하였다. 한국전쟁 이후 남하하여 인천에 터전을 잡은 민천식은 탈춤과 교방춤의 양식을 더해 기존의 화관무를 완성도 높은 춤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악(樂)ㆍ가(歌)ㆍ무(舞)의 예술 활동을 통해서 나라의 번영을 노래하고, 우리의 이상 세계를 추구하려는 노력은 바로 우리뿐 아니라 인류가 하나 됨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의식에서 출발하는 춤의 기원을 찾을 수 있어 화관무는 더더욱 전통에 기인하고 있는 우리의 춤이면서 세계인이 함께 즐기는 그러한 춤이 아닐까 한다. 이 춤의 구조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국립국악원》의 기획공연에서 황해도 지역, 민천식의 춤 방에서 전래해 오던 춤들이 현대에 와서 되살아나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이야기하였다. 민천식(閔千植, 1898∼1967)은 어린 시절부터 탈춤, 특히 봉산탈춤을 배웠으며, 월남 이후에는 <아악부(雅樂部)>에 다니며 궁중무용의 강습 과정을 수료하였다는 점, ‘화관무(花冠舞)’, ‘기본 춤’, ‘수건춤’ 등이 그의 대표적인 춤이란 점, 그는 봉산(鳳山)탈춤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 당시, 김진옥(金辰玉) 등과 함께 고증자로 활동하였다는 점을 말했다. 또 이 탈춤은 20세기 초, 이춘강ㆍ임재현ㆍ정순조ㆍ김봉학 등으로부터 1930년대에는 이동벽ㆍ김경석 등에게, 월남한 뒤에는 김진옥ㆍ민천식ㆍ이근성ㆍ이용익ㆍ양소운 등에 의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점, 등을 이야기하였다. ‘수건춤’은 ‘손목 사위’, ‘수건 뿌림’, ‘발놀림’이 독특하다는 점이며, ‘기본 춤’은 타령 춤의 양식을 굿거리 음악에 입혀 재구성하였다는 점을 이야기하였다. 이번 주에는 화관무(花冠舞)와 관련된 이야기를 한다. 화관무란 글자의 뜻, 그대로 꽃으로 만든 화려한 관을 쓰고, 추는 춤이라고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국립국악원>의 기획공연에서 황해도 지역의 권번(券番)에서 추던 민천식의 춤방과 양소운 춤방이 재현되었다는 이야기, 이들은 오랜 전통을 지닌 이북, 황해도 지역의 춤들이 현대에 와서 되살아나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점, 민천식(閔千植, 1898∼1967) 명인은 황해도 사리원 출신으로 7살 때부터 탈춤을 배우기 시작, 성장하면서 이윤화ㆍ박천만 등에게 봉산탈춤을 배웠고, 월남해서는 인천에서 살면서 인천국악원을 운영한 것에 관해 얘기했다. 또 그의 작품들은 현재 이북5도청 황해도 지방의 ‘화관무(花冠舞)’, ‘기본춤’, ‘수건춤’ 등이라는 점, 봉산탈춤(鳳山─)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할 당시, 김진옥(金辰玉) 등과 함께 주요 고증자로 활동하였다는 점, 봉산탈춤은 20세기 초, 이춘강을 비롯한 임재현ㆍ정순조ㆍ김봉학 등이 활동하였고, 1930년대에는 이동벽ㆍ김경석 등에게 전하였으며, 그 이후에는 6·25 때 월남한 김진옥ㆍ민천식ㆍ이근성ㆍ이용익ㆍ양소운 등에 의해 오늘에 이른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날, 발표된 수건춤은 민천식의 계승자인 김나연과 차지언이 무대에 나와 ‘손목 사위’, ‘수건 뿌림’, 경쾌한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서한범의 우리음악이야기’는 판소리 <심청가>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젊은 소리꾼, “어연경의 심청가 발표회”와 관련된 이야기를 시작으로 해서 고 성창순(成昌順) 명창의 판소리 사랑 이야기, 그리고 판소리로 듣고 부르는 <심청가>는 슬픈 애심감자(哀心感者)의 소리로 계면소리라는 이야기, 까마귀의 반포지은(反哺之恩)이야기와 새벽을 알리는 반야진관에 있던 맹상군 이야기, 돛을 단 배가 넓은 바다 위로 유유히 떠가는 범피중류(泛彼中流) 이야기를 해 왔다. 소리 자체도 힘들고 어려운 것이 판소리라고 하지만, 대목마다 어려운 사설의 내용이 또한 많은 공력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판소리의 유익한 감상을 위해서는 사설에 대한 이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심청가> 이야기는 잠시 뒤로 미루고, 이번 주에는 지난해 10월 26일, 서초동 국립국악원에서 기획공연으로 열린 ‘일이관지(一以貫之)’ 이야기를 한다, 일이관지의 딸림 제목은 ‘조선 춤방’인데, 여기서 하는 공연 곧 조선 8도에서 춤 방의 맥을 이어 온 작품들이 선을 보이는 기획된 공연이었다. 당일의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