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일취스님(철학박사)] 우리의 만남은 어머니 배속에서 세상 밖으로 태어남과 동시에 시작된다. 맨 처음, 태어남과 동시에 만나는 사람은 대부분 산부인과 의사와 간호사와의 만남이라 하겠고, 곧이어 아버지와 만남 그리고 같은 날 태어난 친구들 그리고 친족 등등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아름다운 세상을 만났다는 것이 더없이 거룩한 일이며, 태어남과 동시에 세상 다양한 존재들과 만나서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그 때문에 탄생이란 너 나 할 것 없이 축복의 대상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탄생의 성스러움은 인간뿐만 아니라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들에게 해당하는 축복이다. 또한 어떤 모습으로 태어났건,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들 어느 것 하나 차별 없이 모두 다 고귀한 것이며 마땅히 보호받아야 하는 것이 생명 존엄의 원칙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이라고 해서 특별하게 의미 부여한다는 것은 모순적 해석일 수가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란 은유를 써서 사람의 권위를 높이 치켜세우고 있다. 게다가 사람으로 태어나기란 1억 겁 선행을 해야 태어날 수 있다고 하여 ‘맹구우목(盲龜遇木)’이란 비유를 들어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일하다’와 짝을 이루는 ‘놀다’는 일제의 침략을 만나서 갑자기 서러운 푸대접을 받았다. 저들은 우리네 피를 남김없이 빨아먹으려고 ‘부지런히 일하기[근로]’만을 값진 삶의 길이라 외치며 ‘노는 것’을 삶에서 몰아냈다. 일제를 몰아내고 분단과 전쟁과 산업화로 이어진 세월에서는 목숨 지키는 일조차 버거워서 ‘놀다’에 눈을 돌릴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놀다’는 ‘일하다’를 돕고 북돋우고 들어 올리는 노릇이고, ‘일하다’에 짓눌린 사람을 풀어 주고 살려 주고 끌어올려 주는 노릇이며, ‘일하다’로서는 닿을 수 없는 저 너머 다함 없는 세상으로 사람의 마음을 데려다주는 노릇이다. 그래서 우리네 삶에서 밀려난 ‘놀다’를 다시 불러들여 제대로 가꾸는 일에 슬기를 모아야 하는 것이다. ‘놀다’는 네 가지 이름씨 낱말로 우리네 삶 안에 살아 있다. 움직씨 ‘놀다’에 가까운 것에서부터 ‘놀기’, ‘놀이’, ‘놀음’, ‘노름’이 그것들이다. 그러니까 움직씨 ‘놀다’가 ‘놀기’라는 이름씨로 탈바꿈하여 벌어져 나오면, ‘놀이’를 거치고 ‘놀음’에 닿았다가 마침내 ‘노름’까지 가지를 치며 나아가는 것이다. ‘놀기’는 ‘놀다’를 이름씨로 바꾸어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얼마 후 김 과장이 입을 열었다. “미스 나, 결혼한다고 했지? 내가 오늘은 미스 나에게 어떻게 살면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를 보여 줄게.” “정말이에요? 기대되는데요.” 라디오에서는 엉뚱하게도 최희준의 엄처시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열아홉 처녀 때는 수줍던 그 아내가 첫 아일 낳더니만 고양이로 변했네...’ 차는 중부고속도로에서 진천나들목(IC)으로 빠져나갔다. 꾸불꾸불한 시골길을 얼마간 달리니 커다란 건물 몇 동이 멀리서부터 보였다. 입구에는 ‘꽃동네’라고 쓰인 돌간판이 있었다. 그 위쪽에는 커다란 돌에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라고 새겨져 있었다. 현관에는 앉은뱅이 할아버지가 손가락도 없는 손으로 신발을 정리하고 있었다. 모습은 흉해도 얼굴은 온화해 보였다. 사무실에 들어가니 안내원이 미소로 두 사람을 맞았다. 두 사람은 안내원을 따라 건물을 둘러보았다. 안내원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꽃동네는 1976년 최귀동 할아버지와 무극 성당의 오웅진 신부님과의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되었답니다. 최귀동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때 징용으로 끌려가 심한 고문 끝에 정신병을 얻었고 고혈압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세종 때에는 계층이라 할 수도 없는 계급적 사회였다. 신분적으로는 하민, 소민에서 정착못하는 란민(亂民, 무리를 지어 다니며 안녕과 질서를 어지럽히는 백성), 난민(難民, 전쟁이나 재난으로 곤경에 빠진 사람), 부민(浮民, 일정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곳저곳으로 떠돌아다니는 백성), 류민(流民, 고향을 떠나 이리저리 떠도는 백성), 유민(遊民, 직업이 없이 놀며 지내는 사람) 등이 있고, 경제적으로는 가난한 궁민(생활이 어렵고 궁한 백성), 빈민, 소민(小民, 상사람), 하민(下民, 서민) 등이 있고, 떠돌이 부랑민, 천민(賤民, 지체가 낮고 천한 사람)등의 부류가 있고, 정신적으로는 무지한 우민, 평민, 서민, 소민, 시기적으로는 휼민, 요민(饒民, 살림이 넉넉한 백성), 되살려야 할 화민(化民, 일반 백성) 등이 있다. 이런 모든 부류의 백성을 교육해 ‘자각하는 생민(生民)’으로 만들려 하는 것이 세종의 생각이었다. ㆍ 백성[民]에서 생민으로 병이(秉彝) : “내가 생각건대, 하늘이 준 바른 덕과 진심 그리고 의젓하게 타고난 천성은 생민이 똑같이 받은 것이라, 인륜을 도타이 하여 풍속을 이루게 하는 것은 나라를 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눈이 많이 온 날 둘레길을 걷다가 눈을 사진에 담아 보갰다고 장갑을 벗고 휴대폰을 작동해서 사진을 몇 장 찍고 나서 좀 가다가 보니 장갑 한 짝이 없어진 것을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어디서 떨어트렸을까? 잘 생각이 안 난다. 앞서가는 부인에게 이야기하기도 좀 그렇다. 칠칠치 못한 남편으로 다시 추인받는 것이 싫어서이다. 그다음 날 같은 길을 걸으며 살펴보았는데 분명이 떨어트렸을 것으로 생각되던 곳에서 혼자 몰래 찾아도 안 보인다. 다시 다음 날 아침 산책을 하려 장갑을 챙기다 보니 그렇게 짝을 잃고 외롭게 있는 장갑이 세 개나 된다. 그 가운데 하나, 짝없는 것만을 끼고 산책길에 가면서 부인에게 실토한다. 외톨이 장갑이 세 개나 되어 그 가운데 하나를 끼고 나왔다고. 그제야 부인이 언제 어디서 잃어버렸냐고 묻기에 대충 그저께 어디쯤에서 잃었다고 했더니 길을 올라가면서 다 훑어보다가 내가 생각했던 곳 조금 앞에서 누군가가 주워서 나뭇가지 위에 올려놓은 장갑 한 짝을 발견하고 이거 아니냐고 한다. 보니 맞는다. 이거 참. 기가 막힌다. 내가 보면 안보이고 부인이 그걸 보고 찾아내다니. 진짜 놀랐다. 사실은 이번만이 아니다. 살아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해녀들이 바닷가로 달려가 바다에 좁쌀을 뿌렸어. 칠머리 바다 밭에 풍년을 비는 거야. “영등할마님, 전복씨, 소라씨, 미역씨 드렴수다. 가시는 길에 씨 뿌려 줭 바글바글 나게 해 줍서.” 영이도 작은 손을 모아 엄마처럼 빌었어. “영등할마님, 씨 많이 뿌려 주세요!” 바닷가 사람들에게 행운은 꼭 필요한 것이었다. 거센 풍랑이 이는 제주에서는 더욱 그랬다. 제주는 안녕을 기원하는 의식이 유난히 발달한 곳이다. 비바람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 조금이라도 무탈한 귀환을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지은이 강난숙이 쓴 이 책, 《칠머리당 영등굿》은 많은 이들에게 생소할 영등굿을 따뜻한 그림과 동화로 보여준다. 이 그림책을 읽으면 칠머리당 영등굿이 어떤 것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제주 해녀들은 해마다 음력 2월이 되면 비바람의 신인 ‘영등신’을 맞이하고 보내는 잔치를 여는데, 이 잔치를 ‘영등굿’이라고 한다. 음력 2월 1일에 제주로 들어와 섬을 한 바퀴 둘러보고 2월 15일에 떠난다. 짧게 다녀가는 신이지만, 제주 사람들은 영등신을 ‘영등할마님’이라 부르며 각별하게 여겼다. 특히 해녀들에게 영등신은 더욱 특별한 존재였다. 비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그림씨(형용사) 낱말은 본디 느낌을 드러내는 것이라, 뜻을 두부모 자르듯이 가려내는 노릇이 어렵다. 게다가 그림씨 낱말은 뜻덩이로 이루어진 한자말이 잡아먹을 수가 없어서 푸짐하게 살아남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세기 백 년 동안 소용돌이치는 세상을 살아오면서 선조들이 물려준 이런 토박이말을 제대로 건사하지 못했다. 그래서 뒤죽박죽 헷갈려 쓰는 바람에 힘센 낱말이 힘 여린 낱말을 밀어내고 혼자 판을 치게 되니, 고요히 저만의 뜻과 느낌을 지니고 살아가던 낱말들이 터전을 빼앗기고 적잖이 밀려났다. ‘날래다’와 ‘이르다’ 같은 낱말들도 6·25 전쟁 즈음부터 ‘빠르다’에 밀리면서 갈수록 설 자리를 잃어 가고 있다. 이대로 가면 머지않아 ‘날래다’와 ‘이르다’가 ‘빠르다’에 자리를 내주고 자취를 감출 듯하다. 우리네 정신의 삶터가 그만큼 비좁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빠르다’는 무슨 일이나 어떤 움직임의 처음에서 끝까지 걸리는 시간의 길이가 짧다는 뜻이다. 일이나 움직임에 걸리는 시간의 길이가 길다는 뜻으로 쓰이는 ‘더디다’와 서로 거꾸로 짝을 이룬다. ‘날래다’는 사람이나 짐승의 동작에 걸리는 시간의 길이가 몹시 짧다는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토요일 아침, 좀처럼 특근을 안 하는 김 과장은 오늘은 회사일로 좀 늦겠다고 아내에게 연막을 치고, 퇴근하자마자 약속한 다방으로 갔다. (필자 주: 당시에는 회사들은 토요일 오전에는 근무했다) 아가씨는 예쁘게 차려입고 나왔다. 젊고 예쁜 아가씨를 보니 새삼스럽게 젊음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은 고급 식당에서 연인처럼 식사를 마치고 근처 커피숍에서 자메이카 커피까지 마셨다. 창밖을 보니 청춘 남녀들이 다정하게 웃으며 걷고 있었다. 햇볕이 따사로웠다. 평화로운 토요일 오후였다. “미스 나, 우리 드라이브나 할까?” 김 과장이 슬쩍 유혹의 말을 던졌다. “네, 좋아요.” 아가씨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김 과장이 운전하는 프라이드 승용차는 올림픽 대로를 거쳐 중부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창밖의 경치가 시원했다. 도시의 우중충한 빌딩과 좁은 사무실, 그리고 인파 속에서 지내다가 모처럼 시속 110km로 달리니 시원했다. 먼 산과 푸른 숲, 물이 흐르는 하천과 작은 집들을 바라보니 기분이 상쾌해졌다. 미스 나도 마냥 즐거운 모양이다. 김 과장은 차의 라디오를 틀었다. 시기적절하게도 라디오에서는 최성수가 부른 인기 가요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밤사이 눈이 하얗게 내렸네요. 아침 산책길에 보니 깊 옆 나무들에 눈들이 몽실몽실 맺혀 있습니다. 쌓여있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고 목화송이처럼, 꽃송이처럼 피어올라 있는 듯 합니다. 그야말로 눈꽃입니다. 그동안 겨울에 나뭇가지들이 하얗게 변하는 것을 보고 처음엔 설화(雪花)라고 했다가 그것이 서리에 의한 것은 상고대, 눈이 쌓여 만들어진 것은 설화라고 달리 부르는 것을 이제는 알겠지만, 이번 것은 진정으로 눈꽃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것 같군요. 게다가 바람이 살짝 부니 눈가루들이 작은 결정 그대로 얼굴을 때리고 볼 옆에 차가운 향수를 뿌려줍니다. 그리 시원할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수정처럼 맑고 투명하고 얼음처럼 차갑고 깨끗한 다이아몬드 가루들이, 이 겨울 이렇게 추울 때 우리에게 뿌려지니, 이것이 바로 자연의 선물이라 하겠습니다. 그 순간 나는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1874~1963)의 시 '자작나무(The Birches)'가 문득 다시 생각났습니다. 프로스트의 시 '자작나무'는 워낙 유명해서 많은 분이 알고 계시겠지만 길옆의 자작나무 가지들이 휘어져 있는 것을 보며 시상을 풀어갑니다. 자작나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박 진사는 집에 붙일 이름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어. 고민을 계속하던 어느 날, 박 진사는 고려시대 마지막 충신이었던 조상님 박문수 할아버지를 모신 사당에 다녀왔단다. 박진사는 사당에 걸려 있는 시를 읊조리다가 번뜩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옳지! 우리 집 이름을 박문수 할아버지께서 쓰신 이 시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어야겠다. 꿈과 마음을 담은 집, 몽심재로다!” 호랑이 머리를 닮아 호두산으로 불린 산, 그 아래 옹기종기 모여 살았던 죽산 박씨 문중에 박동식이라는 큰 부자가 살았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박 진사라고 불렀다. 박 진사가 꿈과 마음을 담아 오래도록 살 집을 지으니, 그것이 남원에 있는 ‘몽심재’다. 몽심재는 조선 후기에 지어져 지금도 전라북도 대표 양반집으로 남아있다. 알면 알수록 가족과 이웃에 대한 따뜻한 배려가 스며있고, 찾아오는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기로 이름나 영호남 선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김양오가 쓴 책, 《꿈과 마음이 담긴 집 몽심재》는 몽심재의 구석구석을 따뜻한 색연필 그림과 함께 보여준다. 글쓴이 김양오는 대학을 졸업한 뒤 아동 문학과 글쓰기를 공부하고 25년 만에 역사 동화 작가의 길에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