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山上有山天出地 산 위에 또 산이 있어 하늘 가득 땅이로구나 水邊流水水中天 곳곳에 물이 흐르고 그 속에 또 하늘이 있네 蒼茫身在空虛裏 내 몸은 아득하고 텅 빈 하늘 속에 있으니 不是烟霞不是仙 내가 저녁 노을인가 혹은 신선인가 모르겠네 ... 「遊楓嶽和車紫洞 풍악에서 놀며 차자동에게 화답하다」 금강산이 좋아서 자신의 호도 봉래(蓬萊)라는 금강산의 여름 이름을 쓰던 양사언(楊士彦, 1517∼1584)이 금강산에 들어가 남긴 시 가운데 하나다. 금강산 하면 양봉래(楊蓬萊)를 생각할 정도로 그는 금강산을 노래한 많은 시를 썼고 멋진 바위에 글을 새겨 놓았다. 금강산 인근의 회양군수로 있을 때는 금강산이 자기 집 정원 격이었다. 그가 당시 만폭동 바위에 새겨 놓은 “봉래풍악원화동천(蓬萊楓岳元化洞天)”의 여덟 글자와 “만폭동(萬瀑洞)” 세 글자는 지금도 남아 있다. 어느 날 금강산 절승의 하나인 불정대(佛頂臺)에 올라 장쾌한 십이폭포(十二瀑布)를 바라보며 드디어는 눈앞의 자연과 하나가 된다. 山岳爲肴核 높고 낮은 산들을 안주 삼고 滄溟作酒池 동해 바다 물로 술 빚어라. 狂歌凋萬古 취해서 실컷 노래 부르고 不醉願無歸 취하지 않고는 돌아가
[우리문화신문=안승열 명리학도] 음기 양기의 물리적 의미 수분의 증발에는 양기, 비가 내리는 데는 음기가 작용한다고 하는데 이것을 물리적으로 표현하면 “수분의 증발은 태양력이 수분을 움직인 일이고 비가 내린 것은 지구의 중력이 수분을 움직인 일이다. 이같이 “음기 양기는 서로 상반된 방향성을 갖는 에너지” 이다. 서로 반대 방향의 운동성을 갖는 두 에너지가 동일한 공간에 존재하려면 지속적으로 운동해야 하며 이는 곧 순환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명리학은 자연계의 기를 애초부터 음기와 양기로 구분된다고 보았는데, 물리적으로 충분히 설명되는 일종의 에너지라고 볼 수 있다. 음기와 양기는 구체적으로 아래와 같이 정의된다. 음기: 양기를 끌어 들이거나 내리려는 에너지 (흡수 수렴 수축 저장시키는 에너지) 양기: 음기를 밀어 내치거나 올리려는 에너지 (발산 팽창 확장 소모시키는 에너지) 우리가 현상계에서 확인하는 것은 대부분 양기를 머금고 있는 물질을 음기가 내리거나 또는 음기를 머금고 있는 물질을 양기가 올리거나 하는 일이기 때문에 매개체인 물질보다 그 물질이 갖고 있는 에너지를 보아야 음기 양기의 실체를 잘 이해할 수 있다. 목욕탕에서 열탕과 냉탕을 오가는 건강법을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배알’과 ‘속알’은 오랜 업신여김과 따돌림 속에서 쥐 죽은 듯이 숨어 지내는 낱말들이다. 그런 가운데서 ‘배알’은 그나마 국어사전에 올라서 목숨을 영영 잃지는 않았다 하겠으나, ‘속알’은 아주 목숨이 끊어졌는지 국어사전에조차 얼씬도 못 하고 있다. 국어사전들에서 풀이하고 있는 ‘속알’의 뜻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알맹이. (평북) 2) 단단한 껍데기가 있는 열매의 속알맹이 부분. 3) ‘알맹이’의 방언. (평북) 이런 풀이는 여기서 이야기하려는 ‘속알’의 뜻과 사뭇 다른 엉뚱한 풀이들이다. 국어사전에 올라 있다는 ‘배알’은 풀이가 또 이렇다. 1) ① 동물의 창자. ② ‘사람의 창자’의 낮은말. ③ ‘부아’의 낮은말. ④ ‘속마음’의 낮은말. ⑤ ‘배짱’의 낮은말. 2) ‘밸’을 속되게 이르는 말. 3) ① ‘창자’를 비속하게 이르는 말. ② ‘속마음’을 낮잡아 이르는 말. ③ ‘배짱’을 낮잡아 이르는 말. ‘동물의 창자’라는 것 말고는 모조리 ‘낮은말’이니 ‘속되게 이르는 말’이니 ‘비속하게 이르는 말’이니 ‘낮잡아 이르는 말’이니 해 놓았다. ‘배알’은 제 뜻을 지니지도 못하고 겨우 다른 말을 낮추어 쓰는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그렇다면 교수라는 직업은 어떠한가? 우선 ‘사’자가 붙지 않았으니 돈 잘 벌고 인기 있는 직종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경제학의 이론을 빌면 수요 공급에 따라 값이 형성된다. 교수 자리는 매우 제한되어 있는데, 최근에 교수를 지망하는 사람들은 엄청나게 많아졌다. 당연히 학교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봉급을 많이 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교수봉급은 예전에 견줘 나빠졌다. 최근에는 계약제다 연봉제다 해서 교수 사회에도 경쟁이 도입되고 경쟁에 따른 불안이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람들은 흔히 대학교수들은 정년이 65살이어서 좋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생각이다. 일반 직장은 대학을 졸업한 뒤에 바로 들어갈 수 있지만, 대학 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석사 2년과 박사과정 최소 3년을 더 투자하여야 한다. 남들보다 5년 동안 돈과 시간을 더 투입하고서 교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정년 퇴직은 다른 직장보다 늦지만, 대신 진입 시기가 늦으므로 근무한 연수로 계산해 보면 결국은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다. 김 교수는 자기가 얼마 전에 제주도 학회에 갔다가 들은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학회 행사를 마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김 삿갓이 아름다운 금강산을 보고 지은 시가 사람들의 칭송을 받는다; 一步二步三步立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가다 멈추고 보니 山靑石白間間花 푸른 산, 하얀 돌 사이에 곳곳에 꽃이 천지구나 若使畵工模此景 만약 화공을 불러 이 경치를 그리게 한다면 其於林下鳥聲何 나무 사이에 들리는 새소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조선 후기 최고의 화가인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1745~?)가 이 물음에 답을 그림으로 내었다. '말 위에서 꾀꼬리 소리를 듣다'라는 그림이다. 금방 꾀꼬리 소리를 듣고는 고삐를 당기고 꾀꼬리 소리를 확인하러 고개를 돌려 쳐다본다. 아 그 나뭇가지에 자그만 꾀꼬리가 있구나. 이렇게 꾀꼬리 소리가 그림 속에 영구히 잡혀 있다. 가야금의 명인이신 황병기(1936~2018) 님은 젊을 때 인사동 고미술 전시회에서 한 선비가 집 뒤 수풀 속에서 들리는 새소리를 듣고는 확인하려 고개를 돌리고 있는 그림을 보고 빠져들었다. 심전 안중식(1861~1919)의 <성재수간(聲在樹間)>이란 그림이었다. 황병기님은 그 그림의 느낌을 가야금 곡으로 작곡해 내고는 '밤의 소리'라는 이름으로 발표해 가야금 음악의 전설이 되고 있다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위’의 반대말은 ‘아래’이기도 하고 ‘밑’이기도 하다. 그것은 ‘위’라는 낱말이 반대말 둘을 거느릴 만큼 속살이 넓고 두터운 한편, ‘밑’과 ‘아래’의 속뜻이 그만큼 가깝다는 말이다. 이처럼 두 낱말의 속뜻이 서로 가까운 탓에 요즘에는 ‘밑’과 ‘아래’의 뜻을 헷갈려 쓰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을 지경에 이르렀고, 심지어 국어사전에서도 헷갈린 풀이를 해 놓았다. · 밑 : 나이, 정도, 지위, 직위 따위가 적거나 낮음. ¶과장은 부장보다 밑이다. 동생은 나보다 두 살 밑이다. 아래 : 신분, 연령, 지위, 정도 따위에서 어떠한 것보다 낮은 쪽. ¶그는 나보다 두 살 아래이다. 위로는 회장에서, 아래로는 평사원까지……. 《표준국어대사전》 ‘밑’과 ‘아래’가 뜻으로나 쓰임새로나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는 소리다. 하기야 ‘밑’은 ‘~ 따위가 적거나 낮음’이라 풀이하고, ‘아래’는 ‘~ 따위에서 어떠한 것보다 낮은 쪽’이라 풀이했으니 아주 같지는 않다고 할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낮음’과 ‘낮은 쪽’은 무엇이 어떻게 다르단 말인가? 게다가 달아 놓은 쓰임새 보기를 견주어 보아도 다른 구석을 전혀 찾을 수가 없다. “동생은 나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김 교수는 차를 집이 있는 대치동으로 몰았다. 차를 아파트 내 주차장에 주차해 놓고 거리로 나와 택시를 탔다. 김 교수가 다시 보스에 도착하니 8시 30분이었다. 김 교수는 ‘어서 옵쇼!’라고 깍듯이 인사하는 웨이터의 안내를 받아 박 교수 일행이 있는 방으로 안내되었다. 그들도 식사를 마치고 방금 도착했다고 한다. 그날은 ㅇ 교수가 박 교수에게 연구과제와 관련하여 신세 진 일이 있어서 한 잔 산다고 했다. 과일과 양주를 주문하고 아가씨를 불렀다. 조금 후에 나타난 미스 최는 김 교수를 보더니 깜짝 놀랐다. 그럴 법도 하지. 삼십 분 전에 헤어진 사람을 룸에서 다시 만나니 놀랄 수밖에. 호텔에서 만났을 때 미스 최는 까만 옷을 입었었는데, 어느새 노란색 옷으로 갈아입고 서 있었다. “웬일이세요, 오빠!” “너 보고 싶어서 박 교수님 따라왔다. 왜, 싫으니? 싫으면 다른 사람 옆에 앉거라.” “싫기는요, 저는 오빠 옆에 앉을래요.” 약간 이상한 느낌을 받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눈치채지 못한 박 교수가 미스 최를 바라보며 추궁하듯이 물었다. “미스 최. 자네, 아리랑이라고 아나?” “그럼요. 조정래 씨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세종은 사맛[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백성이 주인이 되는 ‘민위방본(民爲邦本)’의 목표를 실현하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의 의견을 구해 듣고, 임금에게 고하기를 권하고, 옛 문헌을 조사하여 의제[agenda]를 구하려 했다. 의제가 되는 주제를 가지고 토론하고 더욱 연구하여, 그것도 두뇌집단인 집현전의 집단지성을 통하여 좋은 해법을 찾아 현장에서 실현하고 ‘새로운 법칙을 만들어 나갔다.’(以爲恒式) 그 가운데 경연 등을 통해 옛 문헌을 공부하고 현실에서 고쳐 나갈 길을 찾으려 했다. 그 첫 번째 과제로 옛 문헌이나 관례를 찾는 ‘고제이문(古制以聞)’이 있다. 둑제(纛祭)에 대한 의견 한 예로 세종 12년 둑제를 지낼 때 무반의 참여 여부를 문헌에서 찾는다. 이에 무반의 배제를 허락지 말 것을 건의한다. “예조에서 아뢰기를, ‘이제 교지(敎旨)를 받자온즉, ‘서반(西班)에서 호군(護軍, 정4품의 무관) 이상은 둑제(군대를 출동시킬 때 군령권(軍令權)을 상징하는 둑[纛]에 지내는 국가 제사)를 지낼 때 재계(齋戒, 마음과 몸을 깨끗이 하고 부정한 일을 멀리함)를 드리지도 않고 배제(陪祭, 임금을 모시고 함께 제사 지냄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4월 23일 어제는 세계 책의 날이었다.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와 스페인의 소설가 세르반테스 등 두 문호가 세상을 뜬 날을 기리는 것이라고 한다. 영국이나 스페인에서는 대대적인 책 축제가 이어진다. 단 하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주일 이상 지속되고 책방이나 노점상이 많은 거리에는 관광객들이 유럽 각국에서 몰려와 책을 보고 사고 책에 대해 말하고 책을 사랑하는 시간을 갖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날을 전후해 많은 행사를 열었다. 성황을 이룬 곳도 많았다. 다만 그들처럼 모두의 축제 느낌은 없었다. 책의 날을 맞아 나도 책을 생각해보았다. 언젠가 《책바다 헤엄치기》란 제목으로 책을 찾아다니고 읽은 이야기를 책으로 낸 적도 있지만 그동안 이사 다니면서 조금 정리를 하고도 집안 서재에 책들이 많이 있다. 이 책들은 비좁은 서재의 책꽂이에 이중으로 넣어져 있어 이제 어떤 책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책을 내가 어떻게 사서 얼마나 보았는지도 알 수 없는 채로 이 집에서 몇 년 동안 나하고 동거하고 있다. 물론 또 읽고 싶은 책들이 생기니 더 사들이기도 한다. 점점 바닥에도 쌓이고 있다. 이 책들이 언제까지나 나하고 같이 있을 수 있을까?
[우리문화신문=양종승 민속학자] 무송(舞松) 박병천(朴秉千, 1933∼2007)은 전라남도 진도 세습무가 자손으로 태어나 74살를 일기로 삶을 마감했다. 박병천의 종조부 박종기는 대금산조 창시자이며 당숙 박만준은 피리 명인이었고 어머니 김소심과 고모 박선내는 당대 으뜸 세습무였다. 무속 집안을 배경으로 태어난 박병천은 어려서부터 가문 전통에 따라 어정판(굿판)을 따라다니며 소리를 배우고 춤과 장단을 익혔다. 악기와 재담은 물론이고 놀이와 향토문화를 배경으로 전승된 갖가지 민속예술을 두루 접하면서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다. 일곱 살 때부터는 마을 농악대에서 무동 역할을 맡아 마을공동체 연희와 놀이를 습득하였고, 18살 때부터는 명인 박동준에게 가야금을 배웠으며, 명인 양태옥에게서는 진도 북놀이를 익혀 국악인으로서 소양을 터득했다. 30대에 명무 이매방에게도 전통춤을 학습하여 무대 춤이 갖는 예술적 깊이와 값어치를 간파하였다. 20세기를 맞이한 한국 사회는 전래한 민족문화와 들어온 외래문화의 대립과 공존 속에서 서로 간 갈등을 겪으며 융합되기도 하고 동화되기도 하였다. 유입된 것에 적응 또는 대응할 수 없는 전래의 것은 자리를 내주어 소멸의 길로 들어서는 사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