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두루한 참배움연구소장] XX 앞에 ‘국민’을 꼭 써야 할까? 한국방송(KBS)은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을 들려주고 국민과 같이 가는 국민의 은행인 국민은행은 주택은행과 통합하고 다시 *kb[국민]은행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요즘은 가수, 배우, 사회(MC), 여동생, 애니메이션 등 ‘국민 XX’라는 표현을 꽤 많이 쓴다. 1996년 한 연예주간지에서 신승훈에게 국민가수라 불렀다. 그 뒤로 높은 인지도나 대중에게 사랑받는 사람이나 큰 인기를 끄는 인물의 직업이나 호칭 앞에 ‘국민’을 붙인다. 흥행보다 전 세대를 아우름이 잣대이다. 박찬호가 나라 밖에서 크게 활약하면서 '국민투수'가 되더니 이승엽이 홈런 신기록을 갈아치우고 국제 경기에서 크게 활약하자 '국민타자'가 되었는데 이처럼 ‘국민 XX’라 부르는 것이 가수나 배우가 아닌 다른 쪽에도 널리 퍼졌다. ‘대한민국헌법’에 쓰인 ‘국민’은 어떤 뜻인가? ‘국민연금’, ‘국민대학’, ‘국민일보’, ‘국민의 정부’ 등에서도 보듯이 ‘국민’을 널리 쓰고 있다. 구한말 당시에도 ‘국민교육회’에서처럼 쓰였고 광복 뒤 정치사에서 대한민국 숱한 정당 이름에서도 국민을 달았고 현재도 여당인 국민의힘이 그러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횃불은 사위고 광대놀이 끝났건만 신명은 신명대로 취기는 취기대로 흥타령 사랑타령에 삼삼오오 몰려간다 봄밤은 깊어가고 달은 이지러진다 광대놀이 끝나고 나니 개구리만 청승인데 멀리서 별똥별 하나 벽방산을 넘어간다 < 해설 > 이제 하직 막죽*이다. 언제나 끝에 이르면 미진한 것에 눈길이 간다. 부족한 부분도 많고, 다 못한 얘기도 많다. 하지만 재능이 그 정도이니 어쩔 수 없다. 광대놀이 끝나고 파장이 되면 그동안 놀았던 신명은 찾을 길 없고, 집에 갈 걱정, 두고 온 식구들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진다. 달아올랐던 취기도 차츰 가라앉고, 달도 저만치 이지러진다. 연재를 마치면서 나도 먼지를 툭툭 털고 일어선다. 구부려 앉은 무릎이 아프다. 고성오광대를 주제로 한 시집 《말뚝이 가라사대》, 그 다섯 과장을 허위허위 달려오다 보니 숨은 턱에 차고 발목은 저려온다. 단시조와 연시조, 사설시조를 혼용하여 오십 네 수로 엮은 시조 작품에 해설이랍시고 붙이다 보니 더러 허튼소리도 많았다. 이런 노래일수록 사설시조가 제격이란 생각으로 넋두리나 흥타령 등 중요한 부분은 사설시조로 구성했다. 사설시조란 앞말이 뒷말을 부르고 뒷말이 앞말을 주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학교 명예교수] 세종을 도와 세종르네상스를 만든 인물들을 살피고 있다. 몇몇 신료들을 요약ㆍ정리해 본다. 신숙주(申叔舟 태종 17, 1417~ 성종 6년,1475) 조선 전기 문신이다. 저서(작품)에 《보한재집》, 경력으로는 집현전응교, 우부승지, 도승지, 병조판서, 대사성, 좌의정 등을 지냈다. 아버지는 공조참판 신장(申檣)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세종 20년 (1438) : 사마양시에 합격하여 동시에 생원ㆍ진사가 되었다. 이듬해 친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전농시직장(典農寺直長)이 되고, 세종23년 (1441) : 집현전부수찬을 지냈다. 세종 24년(1442) : 나라에서 일본으로 사신을 보내게 되자 서장관으로 뽑혔다. 《훈민정음》을 창제할 때 참가하여 공적이 많았다. 중국음을 훈민정음인 한글로 표기하기 위하여 왕명으로 성삼문(成三問)과 함께 유배 중이던 명나라 한림학사 황찬(黃瓚)의 도움을 얻으러 요동을 열세 차례나 내왕하였는데, 언어학자인 황찬은 신숙주의 뛰어난 이해력에 감탄하였다고 한다. 세종 29년(1447) : 중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집현전응교가 되고, 문종 1년(1451) : 명나라 사신 예겸(倪謙) 등이 당도하자
[우리문화신문=신부용 전 KAIST 교수] 훈민정음은 성리학의 원리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필자는 부끄럽게도 그간 공학도라는 핑계로 성리학이 무엇인지, 그리고 훈민정음 창제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크게 관심 두지 않았으며 그래서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중고교 국어 시간에 제대로 배웠으면 기억이라도 날 텐데 그런 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훈민정음이 성리학의 원리로 만들어졌다는 말에 그저 하는 소리이겠지, 당시 학자들은 모두 성리학에 빠져 있었으니 뭐든 성리학과 연관 지었겠지, 더구나 중국이 우리 고유의 문자를 만드는데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볼 것을 걱정해 성리학을 내세웠겠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혹시 독자들께서는 제대로 아시는지 궁금합니다. 이미 다 잘 아신다면 필자를 꾸짖어 주시고 혹시 그렇지 못하시다면 이 글을 읽으며 같이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틀린 말을 한다고 생각하시면 꼭 제게 알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함께 토론하여 옳은 방향으로 나가도록 하십시다. 훈민정음 예의편 제자해(制字解)에 보면 ‘천지의 이치는 하나의 음양과 오행뿐이니. (가운뎃줄임) 사람의 말소리도 다 음양의 이치가 있는데 다만 사람들이 살피지 못할 따름이다. 이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봄을 상징하는 것들 가운데 음식에서 오늘날 건강과 식도락을 상징하는 다양한 음식을 말할 수 있게 되었지만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봄은 “보릿고개”로 대표되는 빈곤의 계절이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봄의 제철음식은 먹을 것이 없을 때 생명을 연장해주는 흔히 말하는 “초근목피(草根木皮)”가 주를 이루었다. 수확하는 음식이 아니라 채취하는 음식이 주를 이룬 것이다. 이 초근목피의 내면에는 힘든 시절을 보낼 수 있게 도와주는 영양성분과 생명력을 도와주는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우리에게 가장 값어치 있는 건강식이라 할 수 있다. 실질적으로도 봄을 상징하고 봄에 건강을 도와주는 적절한 의미와 이미지를 지닌 먹거리들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음식이 가지는 이미지를 활용하면 건강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이미지는 몇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째 힘겨운 ‘겨울을 이겼더니 봄이 왔다’라는 고난을 이겨낸 결과로서의 이미지가 있고, 둘째 ‘만물의 생장과 활동의 시작이다’라는 시발의 의미가 있고, 셋째로는 꿈과 희망을 상징하는 미래 지향적 이미지가 있다. 이러한 연유로 한방의 관점에서 봄에 좋은 음식들은 이러한 이미지에 맞는 음식을 의미한다
[우리문화신문=김두루한 참배움연구소장] 서양말 ‘에듀케이션(education)’을 한국말로 뭐라 옮기면 좋을까? 대한민국 교육부에서 보듯이 ‘敎育’을 '교육'이라 읽고 쓰는데 이 말은 어디서 온 것일까? 흔히 맹자의 '得天下永才而敎育之(천하 영재를 모아 가르치고 기른다)'에서 유래했다지만 과연 그럴까? 일본은 오쿠보 도시미치, 후쿠자와 유키치, 모리 아리노리 세 사람이 ‘education’을 ‘敎育’으로 뒤쳤다.(번역) 모리 아리노리(森有禮-초대 일본 문부대신)가 활약한 메이로쿠사(明六社, 메이지 시대 초기에 설립된 일본 최초의 근대적 계몽 학술단체)에서 한 일이다. ‘교화’(敎化)를 내세운 오쿠보와 ‘발육’(發育)을 말한 후쿠자와 말을 듣고서 모리가 교화와 발육에서 한 자씩을 따 와 ‘교육(敎育)’이라 제안한 것이다. 일본인들이 새로 만든 ‘교육’은 조선에서 썼던 ‘학부(學部)’의 ‘학’과 견주어 볼 수 있다. 조선은 6부 가운데 하나였던 ‘예조(禮曹)’를 학부라 바꾸고 대한제국(1897~1910) ‘학부령’에서 보듯이 ‘배움(학)’을 써 왔으나 누에가 뽕을 먹듯 ‘학(부)’이란 말 대신 일본말 ‘교육’이 똬리를 틀었다. 교육강령이라고도 부르는 조서(189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하직 막죽 가는 길에 소원이나 빌어주소 어화넘자 어화넘자 조심넘자 어화넘자 밀어라 땡겨라 어화넘자 이장님 면장님 군수님도 지전 한 장 꽂고 가소. 조롱박 벙거지 다 닳아가고 상두꾼 짚신 마련 시급하니. 어화넘자 어화넘자 탈바가지 벗어보소. 갑갑해서 지리 죽것다. 탈 쓰고 탈놀음 백날을 놀아도 말뚝이 누군지 문둥이 누군지 아무도 모른다. 몰라도 탈, 알아도 탈, 먼지 탈탈 털지 마라. 어화넘자 어화넘자 춤꾼도 구경꾼들도 목축이고 파장하자 < 해설 > 한참 광대놀이 빠져 있다 보니 벌써 밤이 찾아왔다. 몇 고개도 넘어야 하고, 집에 갈 일이 막막하다. 그래도 마지막을 보고 가야지. 어느덧 오광대 다섯 과장이 끝나고 맨 마지막 상여 나가면서 광대패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마당을 휘돌아 간다. 에라 모르겠다. 구경꾼들도 꽹과리에 맞춰 뒤뚱뒤뚱 신명을 푼다. 어차피 놀이 속에 연출된 초상이니 상주도 백관도 있을 리 없다. 그러나 오광대 상두꾼들 노잣돈은 있어야지. “어허, 거기 군수님 지전 한 장 걸어주소. 그래야 군의원도 걸고, 영천 아재도 걸고, 들기미 이씨도 걸 것 아니요” 니 한 장, 내 한 장 걸다 보니 제법 주렁주렁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밤 9시 30분이 넘자 기도와 간증 순서가 되었다. 제일 먼저 공동체 가족 가운데 한 사람이 태백산 정상에 있는 단군성전을 방문한 이야기를 하였다. 발표자는 여성이었는데 단군 성전을 무슨 사교(邪敎)의 거점처럼 여기는 것 같아서 별로 공감이 가지 않았다. 그다음은 예수원에서 한 달 장기 체류를 허가받은 한 신학생이 자기의 신학적인 고민을 이야기하였다. 내가 젊었을 때 겪었던 고민을 회상시키는 간증이었다. 다음은 몽골에서 선교사로 일하다가 잠시 귀국한 젊은 선교사가 간증을 하였다. 낯선 선교지에서 겪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재미있게 소개하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우리 돈 1만 원이면 몽골에서는 한 달 생활비가 된다고 한다. 결론으로 그는 불쌍하고 가난한 몽골인을 돕고, 선교를 열심히 하자고 호소하였다. 몽골 사람들이 가난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으나, 그러니까 불쌍하고 불행하다는 관점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가난은 경제적인 척도이지만 행복이란 물질적인 척도라기보다는 정신적인 만족도라고 볼 수 있다. 1인당 국민 소득이라는 척도로 재는 가난을 국가 사이에 견줄 때는 매우 조심해야 한다. 중국인 한 달 봉급
[우리문화신문=일취스님(철학박사)] “좋은 말만 하고 살아도 모자라는 시간.”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글을 쓰는 나도 내 전생을 좋은 말로 다 채우기에는 자신이 없다. 불가에서는 부처님처럼 살라고 입에 달고 다니지만, 정말 부처님은 언어에 완벽했을까? 괜한 의심을 해본다. 예수가 말하기를 “어느 누가 오른쪽 뺨을 때리면 왼쪽 뺨도 내어주어라.”라고 했다. 과연 그 말에 책임을 질 수 있을까, 고민해 본다. 언어에 대해서 필자는 지난번에 언어도단言語道斷이란 글을 썼는데, 이번 글에서는 언어문화에 열쇠말(키워드)을 맞추어 언어적 갈등에 관한 내용을 생각해 보기로 한다. 세상만사는 대화 속에 이루어진다. 언어는 마술사처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말 한마디에 천사가 될 수도 있고, 괴물이 될 수도 있다. 말 한마디 잘못하면 매를 맞을 수도 있고, 말 한마디 잘하면 상을 받을 수도 있다. 말이 불씨가 되어 다투고 파멸을 자초할 수도 있고, 말을 잘하여 직업으로 삼아 돈벌이가 짭짤하게 잘 되는 사람들도 무수히 많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언어 때문에 살고 죽고 하는 기이하고 험난한 장면들이 극적으로 심심치않게 이루어진다. 이런 사건들이 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새로운 문
[우리문화신문=신부용 전 KAIST 교수] 《훈민정음》 해례의 서문은 세종대왕이 직접 쓰신 글이라 합니다. 그 첫 문장 “國之語音 異乎中國 與文字不相通”은 언해본에 “나랏 말쌈이 중국에 달아 문자와로 서로 사맛지 아니할 쌔”로 뒤펴(번역) 있습니다. 이는 600년 전 말이니 현대어로 옮기면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로는 서로 통하지 않는다.”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슬옹 교수는 그의 책 《세종대왕과 훈민정음학(2010, 지식산업사)》에서 지금까지 발표된 30여 편의 논문과 책은 서문을 구절별로 나누어 비교 분석하였는데 이 부분의 해석은 모두 비슷하며 교과서에도 ‘우리나라의 말이 중국말과 달라서 한자로는 서로 잘 통하지 못하므로’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공역 시안으로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통하지 않으므로’를 제시합니다. 이 표현은 자칫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첫째, 서로 통하지 못한다는 대상이 누구일까요? 예문을 들어 판단해 보겠습니다. 1) 너의 옷 색깔은 나와 달라 들어가지 못한다. (나와 옷 색깔이 같은 사람만 들어간다) 2) 네 것은 나와 달라 바꿔 줄 수 없다. (내 것과 같은 것만 바꿔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