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콘크리트로 포장한 길이 끝나면서 흙길이 나타난다. 작은 차 한 대가 겨우 다닐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길이 숲속으로 나 있다. 나는 사전 답사 때에 모닝을 운전하여 전체 구간을 다녀왔기 때문에 길 잃을 염려는 없었다. 우리가 이날 걸은 길은 평창으로 귀촌하여 살기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걷는 산길이다. 걸어가다가 나무가 나타나면 나무 이야기, 풀꽃이 나타나면 풀꽃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계속해서 숲속 길을 걸어가다가 보니 길가 손 닿는 곳에 빨간 산딸기가 많이 달려 있다. 크지는 않지만 따서 먹어보니 맛이 아주 좋았다. 우리들은 모두 산딸기를 따 먹느라고 걸음이 느려졌다. 동심으로 돌아간 우리들은 손이 빨갛게 물드는 줄도 모르고 산딸기를 따 먹었다. 좌우 양쪽으로 산딸기가 계속해서 나타난다. 문학길 제4구간은 산딸기 길이라고 이름 붙이면 좋겠다. 출발한 지 50분이 지나 10시 20분에 우리는 작은 쉼터에 도착하였다. 아마도 산에서 일하는 일꾼들을 위한 쉼터인 것 같다. 간식거리로 누군가 참외를 가져왔고 누군가 떡을 가져왔다. 황병무 선생이 막걸리를 두 병이나 사 왔다. 나는 술에 약한 체질이어서 막걸리를 한 잔만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올해 제79돌 광복절을 맞아 일제강점기 빛바랜 수의(囚衣)를 입고 옥중 순국한 독립유공자들에게 독립운동 정신을 담은 한복을 입혀드리는 운동이 추진중이다. 국가보훈부와 빙그레는 8월 한 달 동안 옥중에서 순국한 독립유공자 87명에게 인공지능기술을 활용해 한복을 입은 모습으로 변신시켜 새로운 영웅의 모습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하는 ‘처음 입는 광복’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 운동에 포함된 독립운동가는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내에서 옥중 순국으로 기록된 독립운동가 가운데 일제감시대상 인물카드 등에 수의(囚衣)를 입은 사진이 마지막 모습으로 남은 87명이 대상이다. 이들 가운데는 안중근(1962년 대한민국장), 안창호(1962년 대한민국장), 강우규(1962년 대한민국장), 신채호(1962년 대통령장) 등의 독립유공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온라인 사진전(처음입는광복.com)에는 독립운동가 87명의 복원 전ㆍ후 사진과 인물별 공적이 정리돼 있다. 좋은 발상이지만 나라가 진정으로 챙겨야 할 데는 또 있다. 독립운동에 몸을 바친 분들의 후손들이다. 우리 주위에 독립운동에 헌신한 분들은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갖다 바쳤다. 후손들은 교육도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국박!’ 국립중앙박물관을 줄여 부르는 애칭이다. 요즘 ‘국박’이 인기다. 예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이라는 묵직한 이름이 주는 엄한 느낌이 강했다면, 요즘은 내가 좋아하는 소장품이 있는, 내가 좋아하는 풍경이 있는 친근한 곳으로 느끼는 사람이 더 많다. 이 책, 《보고, 쉬고, 간직하다》의 지은이 이현주는 일편단심 국립중앙박물관을 사랑해 온 ‘국박 바라기’다. 1990년 <박물관 신문> 담당자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입사해 홍보전문경력관으로 33년째 일하고 있다. 그냥 일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진심으로’ 신바람 나게 일한다. 3년 동안 박물관신문에 ‘박물관 풍경’을 찍어서 게재하기도 했고, 날마다 아침 SNS에 박물관이 관련된 글과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이 책도 한 일간지에 박물관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담아 연재한 ‘이현주의 박물관 보따리’ 칼럼을 엮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책 곳곳에 박물관을 향한 애정이 뚝뚝 묻어난다. ‘박물관이 다 거기서 거기 아닌가?’라고 생각했던 독자가 있다면 생각이 바뀔 것 같다. 박물관의 ‘제철 풍경’은 어떤 것인지, 박물관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어떤 것인지 자연스레 알 수 있다. 책에 소개된 장소
[우리문화신문=안승열 명리학도] 하도낙서가 주역에 근거 한다거나 심지어 그 전설들이 실재했던 사실이라는 등 이설(異說)이 분분하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공부하는 하도낙서는 12세기 후반 남송의 대유학자이며 음양오행에도 조예가 깊었던 주희(朱熹)가 그간의 이론과 자신의 궁리를 종합하여 완성하였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아무튼, 명리학이 하도낙서를 중히 여기는 이유는 오행을 수량화(數量化)하여 많은 학인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으며 오행을 사상적 근거로 하는 명리학을 차원 높은 철학으로 거듭나게 한데 있다. 주희는 행별 음기 양기의 양을 수량화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고려했을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➀ 짝수는 음기로 홀수는 양기로 구별하기 ➁ 오행으로 구별한 만물의 음기 양기를 추론하여 그 *대표값을 정하기 ➂ ➁에서 얻은 음기 양기의 구성비를 1~10의 숫자로 단순화하기 (*자료 전체의 성격을 대표하는 값. 현상계는 극단적일 수 있어서 전체 자료 모두를 참고하는 것이 오히려 대표성을 띠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는 극단적인 값은 버리고 일정 범위의 값들로 평균값을 구한다.) 결과론이지만, 상기 구성비를 ‘수화목금토’의 순으로 나열해보면 그 수리적 배열이
[우리문화신문=안동립 기자] # 2일 차, 2024년 5월 9일, 목요일 숙박 : 주천시 酒钢宾馆 0937-6201888 ○ 란저우 서역 ~ 장액 서역 (兰州西 ~ 张掖西) (08:29~11:10, 고속열차 D2743, 500km) 2시간 40분 이동 ~ 칠채산 풍경구 ~ 주천시 하서회랑(河西回廊)의 아름다운 광경이 차창을 스쳐 지나간다. 고속열차를 타려고 새벽에 일어나 준비하여 란주역으로 이동하였다. 역 입구부터 공항 검색대가 설치되어 몸수색까지 한다. 일행 가운데는 과일 깎는 칼을 가지고 있었는데 압수당했다. 테러 방지를 위하여 개인의 소지품까지 검사하니 시간이 오래 걸리는 대신 안전을 보장하니 불편해도 응해야 한다. 또 회원 가운데 허리에 차는 복대 지갑을 검색대에 통과하면서 두고 왔는데, 30분 뒤 잃어버린 것을 인지하고 허둥지둥 찾으러 가니 유실물 보관소에 있어서 찾았다. 중국의 선진화 수준을 볼 수 있었다. 고속열차에는 입석 손님도 많다. 기차의 속도는 260~280km로 달린다. 기차는 서쪽으로 달려 청해성 서녕역에 정차하고 출발한다. 건조하고 메마른 사막을 달리는 기차는 철로 주변 황하 상류 오아시스 계곡이 화서회랑으로 불리는 곳이다. 멀리 설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남의 글을 우리글로 바꾸어 놓는 일을 요즘 흔히 ‘옮김’이라 한다. 조선 시대에는 ‘언해’ 또는 ‘번역’이라 했다. 요즘에도 ‘번역’ 또는 ‘역’이라 적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지난날 선조들이 쓰던 바를 본뜬 것이라기보다 일본 사람들이 그렇게 쓰니까 생각 없이 본뜨는 것이다. 언해든 번역이든 이것들은 모두 우리 토박이말이 아닌 들온말에 지나지 않고, ‘역’이란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쓰겠지만 우리에게는 낱말도 아닌 한갓 한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우리 토박이말을 쓰느라고 ‘옮김’이라 했을 터인데, 남의 말을 빌려다 쓰기보다 우리 토박이말을 살려 쓰려는 마음이 아름답고 거룩하다. 그러나 남의 글을 우리글로 바꾸어 놓는 일을 ‘옮김’이라고 한 것은 우리의 말본으로 보아 올바르지 않다. ‘옮기다’는 무엇을 있는 자리에서 다른 자리로 자리바꿈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본디 뜻에서 비롯하여 ‘발걸음을 옮기다’, ‘직장을 옮기다’, ‘말을 옮기다’, ‘모종을 옮기다’, ‘눈길을 옮기다’ 같은 데로 뜻을 넓혀서 쓴다. 하지만 언제나 무엇을 ‘있는 그대로’ 자리바꿈한다는 본디 뜻을 바탕으로 삼은 채로 넓혀지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여섯 번째 만남 일주일이 조금 지나 미스 최 한테서 전화가 왔다. 내일이 금요일인데 《아리랑》 제5권과 선물로 준 책을 다 읽었으니 만나자고 한다. 원래는 한 달에 한 번이나 만날까 예상했었는데, 너무 속도가 빠르다. 이러다가 일 벌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젊은 아가씨가 만나자고 하는데 남자로서 고자가 아닌 바에야 어떻게 거절한다는 말인가? 지금까지 5번 만났지만 아직까지 금전적인 면에서 그리고 성적인 면에서 부담이 없이 그저 친구 만나듯 했으니 더욱 뿌리치기 어렵다. 김 교수는 5시에 잠실의 호텔로 가겠다고 약속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음 날 김 교수는 프라이드를 운전하고 잠실로 갔는데, 그날은 금요일이라서 그런지 차가 밀려 5시 10분에야 겨우 도착했다. 십 분 지각이다. 2층 커피숍에 올라가 둘러보니 아가씨가 보이지 않는다. 기다리다가 갔나? 김 교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이 나이에 바람맞는 것은 아닌가? 그럴 리가 없지. 아, 내가 아가씨에게 빠져드는가 보다. 김 교수는 ‘아가씨가 조금 늦겠지’라고 위안하면서 제일 안쪽 자리에서 입구를 바라보며 소파에 앉았다. 기다리는 시간은 언제나 지루한 법이다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사람이 과거의 자기에게서 벗어나 새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을 실록 속의 글을 통해 보면 몇 단계로 나누어 찾아볼 수 있다. 사람이 변화해 갈 수 있다는 전제로는 ‘사람의 본성은 같다’라는 것이다. 시작 단계는 자각에서 출발한다. 다음 단계는 자성과 각성 등이다. 그리고 다음 단계는 회개와 후회, 회오다. 그리고 다음 단계인 회생과 재생이다. 마지막 단계는 갱생의 단계다. 이때 ‘자신지리(自新之理)’의 원리에 따라 감오(感悟)에 이른다. 이런 전제에서 ‘자신지리’에 이르는 길을 찾아보자. 이 길의 전제에 ‘본성의 회복’이 있다. 병이지천(秉彝之天) : 사람은 진실로 각기 상도(常道)를 지키는 천성(天性)이 있다. (⟪세종실록⟫ 11/4/4) 천성 : (집현전에서 《삼강행실》을 펴내 서와 전문을 더불어 올리다) 삼대(三代)* 의 정치가 훌륭하였던 것은 다 인륜(人倫)을 밝혔기 때문이다. 후세에서는 교화가 점점 쇠퇴하여져, 백성들이 군신(君臣)ㆍ부자(父子)ㆍ부부(夫婦)의 큰 인륜에 친숙하지 아니하고, 거의 다 타고난 천성(天性)에 어두워서 항상 각박한 데에 빠졌다. 간혹 훌륭한 행실과 높은 절개가 있어도, 풍속ㆍ습관에 옮겨져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답사 날짜: 2024년 6월 10일(월) 답사 참가자: 김혜정 송향섭 윤석윤 윤희태 이상훈 전선숙 최동철 황병무 (8명) 답사기 쓴 날짜: 2024년 6월 16일 효석문학100리길의 제4구간은 방림농공단지~평창 용항리 경로당까지다. 평창군에서 만든 소책자에서는 이 길의 이름을 ‘옛길 따라 평창 가는 길’이라고 부르고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뱃재 옛길을 따라 산을 넘고 숲길을 지나 만나는 빼어난 평창강의 아름다운 경관과 기암절벽을 조망할 수 있는 구간으로 흙길을 걸으면서 청정한 자연을 즐기며 맑은 산소를 마실 수 있는 길이다. 주진리와 용항리 강변길은 그림같이 아름다운 곳으로 마치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강바람과 맑고 깨끗한 평창강의 물소리까지 그야말로 아름다운 추억이 될 것이다. 효석 이야기를 계속하자. 이효석은 경성에서 3년을 살다가 1934년 평양에 있는 숭실전문학교 영어 교수로 부임하였다. 오늘날로 치면 대학교수가 된 뒤 효석은 경제적으로 여유를 갖게 되었다. 평양에서 이효석은 대표작 <메밀꽃 필 무렵>(1936년)을 비롯한 장ㆍ단편 소설은 물론 <낙엽을 태우면서&g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우리 집에는 청동으로 된 약간 길쭉한 솥 같은 것이 하나 있다. 사진에서 보듯 이 솥의 양쪽에는 고리가 있다. 고리는 터져 있어 거기에 긴 막대를 끼면 지상 위로 올려 세울 수 있고, 그 밑에 불을 피워서, 물을 끓이거나 그 물로 고기, 푸성귀 등을 익혀 먹을 수가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동이 가능한 주방용 솥 혹은 냄비인데, 보통 청동으로 만들었다, 학자들은 이 솥을 청동솥 혹은 한자어로 동복(銅鍑)이라고 한다. 1995년 무렵 필자가 북경에서 기자생활을 할 때 골동품 시장에 갔다가 우연히 발견하고 사 놓은 것이다. 북경 골동품 시장은 별의별 것이 다 나온다. 눈이 아플 지경이고 그 가운데는 상당수가 가짜 위조품이다, 그런데 필자가 왜 이 솥에 눈길이 꽂혔을까? 그것은 이와 비슷한 청동솥(동복)이 김해의 대성동 유적에서 나왔기에 그것과 비교가 된다는 생각에 선뜻 소장하게 된 것이다. 김해 대성동 유적은 1990년대 초 김해읍(당시) 한쪽 언덕에 조성된 3~4세기 가야시대 무덤군을 발굴 조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것인데 여기 29호분과 47호분에서 각각 사진과 같은 동복(편의상 동복이라고 부르자)이 나온 바가 있다. 필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