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지난 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국어 시험지에, “다음 밑금 그은 문장에서 맞춤법이 틀린 낱말을 찾아 고치시오.”에서와 같이 ‘밑금’이라는 낱말이 자주 나왔다. 그런데 1960년대를 넘어서면서 ‘밑금’은 시나브로 꼬리를 감추고 ‘밑줄’이 슬금슬금 나타나더니 요즘은 모조리 ‘밑줄’뿐이다. “다음 밑줄 친 문장에서 맞춤법이 틀린 낱말을 찾아 고치시오.”와 같이 되어 버린 것이다. 도대체 시험지 종이 바닥에다 무슨 재주로 ‘줄’을 친단 말인가? ‘금’은 시험지나 나무판같이 바탕이 반반한 바닥 또는 바위나 그릇같이 울퉁불퉁하지만, 겉이 반반한 바닥에 만들어진 자국을 뜻한다. ‘자국’이라고 했지만, 점들로 이어져 가늘게 나타난 자국만을 ‘금’이라 한다. 사람이 일부러 만들면 ‘금을 긋다’ 하고, 사람 아닌 다른 힘이 만들면 ‘금이 가다’ 또는 ‘금이 나다’ 한다. 사람이 만들 적에 쓰는 움직씨(동사) ‘긋다’의 이름꼴(명사형)이 곧 ‘금’이고, ‘그리다’와 ‘그림’과 ‘글’도 본디 뿌리는 ‘긋다’에서 벋어난 낱말이다. ‘줄’은 반반한 바닥(평면)에 자국으로 나 있는 ‘금’과는 달리,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이른바 입체로 이루어진 기다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끔찍한 이야기로군!” 김 과장은 대수롭지 않은 듯 한마디 했지만, 속으로는 뜨끔했다. 그 장로 이야기는 주인공이 바뀌어 자기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이 밀려왔다. “여보, 빨리 잡시다. 그런 무시무시한 이야기는 그만두고.” 김 과장이 아내의 손을 살며시 쥐며 말했다. 그 이후로 아가씨에게서 연락은 없었고, 김 과장도 나목에는 더는 가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살인하고 자살했다는 장로 이야기가 잊히지 않아서 가지를 못한 것이다. 아내도 더 이상 여자 문제로 추궁하지는 않았다. 모든 것이 나목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듯했다. 그런데 6달쯤 지난 어느 날, 뜻밖에도 사무실에서 김 과장은 미스 나의 전화를 받았다. 깜짝 놀라 웬일이냐고 묻자, 아가씨는 자기가 점심을 사겠다며 한번 만나자고 한다. 내일 당장 삼수갑산에 갈지언정 아가씨가 만나자는데 차마 거절할 수는 없었다. 대한민국 평균의 남자라면 이런 제안을 거절할 수가 없을 것이다. 김 과장은 회사 근처의 다방에서 다음 날 열두 시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막상 약속 장소에 나가려니 약간 불안한 생각이 들기는 해도, 그 옛날 연애하던 시절 데이트하러 가는 것처럼 가슴
[우리문화신문=일취스님(철학박사)] 정(情)이란 무엇일까? 가수 조용필의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정이란 무엇일까 받는 걸까 주는 걸까 받을 땐 꿈속 같고 줄 때는 안타까운 것 정을 쏟고 정에 울며 살아온 살아온 내 가슴에 오늘도 남모르게 무지개 뜨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공기처럼 보이지 않은 정의 기운을 주고받고 살아간다. 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짐 속에서도 가슴과 가슴으로 보이지 않게 흐르는 것이 정일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정 때문에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정이란 우리 마음속에 따뜻한 감정의 원천이며 무형(無形)의 보시며 사랑이다. 정은 우리 혈관을 통해서 흐르는 피와 같다. 또 정을 생각하면 모정(母情)을 떠오르게 한다. 어머니 사랑이야말로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 어머니 사랑을 잘 받고 자란 아이는 밝고 건강하게 자란다는 것을 두말할 나위가 없다. 누구나 모성애 같은 정을 받기를 원한다. 정은 무엇보다 받는 쪽보다 베푸는 쪽에 값어치를 둔다. 이처럼 정에 근접한 용어를 찾는다면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 ‘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베풀되 베풀었다는 생각마저 같지 않은 마음)일 것이다.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그치다’나 ‘마치다’ 모두 이어져 오던 무엇이 더는 이어지기를 그만두고 멈추었다는 뜻이다. 이어져 오던 것이므로 시간의 흐름에 얽혀 있고, 사람의 일이나 자연의 움직임에 두루 걸쳐 쓰이는 낱말이다. 그러나 이들 두 낱말은 서로 넘나들 수 없는 저만의 남다른 뜻을 지니고 있다. ‘그치다’와 ‘마치다’의 뜻이 서로 넘나들 수 없게 하는 잣대는, 미리 어떤 과녁이나 가늠을 세워 두었는가 아닌가다. 미리 어떤 과녁이나 가늠을 세워 놓고 이어지던 무엇이 그 과녁을 맞혔거나 가늠에 차서 이어지지 않으면 ‘마치다’를 쓴다. 아무런 과녁이나 가늠도 없이 저절로 이어지던 무엇은 언제나 이어지기를 멈출 수 있고, 이럴 적에는 ‘그치다’를 쓴다. 자연의 움직임은 엄청난 일을 쉬지 않고 이루지만, 과녁이니 가늠이니 하는 따위는 세우지 않으므로, 자연의 모든 움직임과 흐름에는 ‘그치다’만 있을 뿐 ‘마치다’는 없다. 비도 그치고, 바람도 그치고, 태풍도 그치고, 지진도 그친다. 과녁이나 가늠을 세워 놓고 이어지는 무엇은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일이라고 모두 과녁을 세우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사람의 일이나 움직임에는 ‘그치다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는 그때까지 자지 않고 있다가 문을 열어 주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요? 요즘 세월이 좋은가 봐요.” 아내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어, 우리 회사 그 박 과장 있잖아. 카페에서 대중가요 스무 곡을 가사 하나 틀리지 않고 2절까지 내리 부르고 마담한테 술을 뺏어 먹었다는 그 사람 말이야. 그 친구가 오늘 부장으로 승진했다고 전화가 와서 한잔했어.” 김 과장은 슬쩍 둘러댔다. “지금이 대체 몇 시에요?” 아내는 화가 난 모양이다. “어디 시계 좀 보자고. 어, 벌써 두 시가 넘었군. 오늘은 너무 늦었는걸. 여보 미안해.” 김 과장이 아내를 포옹하면서 달래려 했다. “빨리 가서 세수나 해요. 그 분냄새 나는 와이셔츠도 빨리 벗어 치우고요!” 아내가 뿌리치며 언성을 높였다. 김 과장은 속으로 아차 했다. 술김에 용기를 내어 아가씨와 포옹하면서 좌충우돌 키스를 두 번인가? 했는데, 아가씨의 화장이 너무 진했거나 아니면 아내의 코가 너무 예민했나 보다. 부부싸움 덜 하려면 후각이 무딘 여자를 고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면서 김 과장은 와이셔츠를 벗어서 빨래통에 던지고 세수하고 이빨까지 닦은 뒤에 잠자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언젠가 박 과장이 이렇게 말하던 것이 생각났다. “김 과장은 여자에 너무 약한 것 같아. 술집 아가씨는 술집에서 술을 따르면 되는 것이요. 괜히 그 이상을 기대하는 것은 격에 안 맞는 일이라고나 할까? 달리 말하면 어리석은 짓이요. 술집에서 만난 아가씨에게 절대로 정(情)이나 명함을 주어서는 안 돼요. 나중에 괜히 귀찮아지지요.” 그러나 이 아가씨는 예외일지도 모른다. 박 과장의 경험에서 나온 조언은 존중하지만, 세상에 예외 없는 법칙은 또 없지 않은가? 어쩌면 이 아가씨는 비록 뿌리는 진흙 속에 내리고 있지만 심성은 더럽혀지지 않은 깨끗한 한 송이 연꽃일지도 모른다. 여러 가지 생각이 오갔다. 술을 한 잔 더 마신 뒤 김 과장이 말했다. “수련이, 술집 아가씨에게는 정을 주지 말라는 말을 알고 있지만 나는 수련이를 그저 술 따르며 웃음을 파는 보통 여자로는 보고 싶지 않아. 어리석은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저도 선생님을 보통 손님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대개 손님들은 저희들을 뭐라고 할까요. 노리갯감이나 감정이 없는 물건처럼 대하거든요. 그러나 선생님은 달랐죠.” 말없이 듣고 있던 김 과장이 말을 이었다. “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자유는 사람이 가장 간절히 바라는 바람이다. 그러나 사람은 몸과 마음에 얽힌 굴레와 멍에 때문에 자유를 누리기가 몹시 어렵다. 가끔 굴레를 벗고 멍에를 풀었을 적에 잠깐씩 맛이나 보며 살아갈 수가 있지만, 온전한 자유에 길이 머물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람의 몸과 마음에 얽힌다는 굴레나 멍에는 빗대어 말하는 것일 뿐이고, 참된 굴레나 멍에는 소나 말 같은 집짐승을 얽어매는 연모다. ‘굴레’는 소나 말의 머리에 씌워 목에다 매어 놓는 얼개다. 소가 자라면 코뚜레를 꿰어서 고삐를 코뚜레에 맨다. 그리고 고삐를 굴레 밑으로 넣어서 목뒤로 빼내어 뒤에서 사람이 잡고 부린다. 이때 굴레는 고삐를 단단히 붙들어 주어서, 소가 부리는 사람의 뜻에 따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말은 귀 아래로 내려와 콧등까지 이른 굴레의 양쪽 끝에 고삐를 매어서 굴레 밑으로 넣고 목뒤로 빼내어 뒤에서 사람이 잡고 부린다. 굴레가 고삐를 맬 수 있게 하고 움직이지 않게 하여, 말이 부리는 사람의 뜻을 거스를 수 없도록 한다. ‘멍에’는 소나 말에게 수레나 쟁기 같은 도구를 끌게 하려고 목덜미에 얹어 메우는 ‘ㅅ’ 꼴의 막대다. 멍에 양쪽 끝에 멍에 줄을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사랑하다’라는 말보다 더 좋은 말은 없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들으면 사람이나 짐승이나 벌레나 푸나무까지도 힘이 솟아나고 삶이 바로잡힌다는 사실을 여러 과학자가 밝혀냈다. 그리고 사랑하는 것이 그만큼 목숨의 바탕이기에, 참으로 사랑하면 죽어도 죽음을 뛰어넘어 길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여러 사람이 삶으로 보여 주었다. 세상 모든 사람의 말꽃(문학)이나 삶꽃(예술)이 예나 이제나 사랑에서 맴돌고, 뛰어난 스승들의 가르침이 하나같이 서로 사랑하라고 부채질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사랑하다’와 비슷한 토박이말에 ‘괴다’와 ‘귀여워하다’와 ‘좋아하다’가 있다. 이들 넷을 비슷한 토박이말이라 했지만, 저마다 저만의 빛깔을 지니고 있어서 아슬아슬하게 서로 다르다. 우선 이들 네 낱말은 ‘괴다’와 ‘귀여워하다’가 한 갈래로 묶이고, ‘사랑하다’와 ‘좋아하다’가 다른 한 갈래로 묶여서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앞쪽 갈래는 높낮이가 서로 다른 사람 사이에서 쓰는 것이고, 뒤쪽 갈래는 높낮이가 서로 비슷한 사람 사이에서 쓰는 것이다. ‘괴다’와 ‘귀여워하다’는 아이와 어른 사이, 제자와 스승 사이, 아들딸과 어버이 사이처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김 과장이 아가씨에게 물었다. “사람이 살아가며 크건 작건 희망이 있을 텐데 수련이의 희망은 뭔가?” “카페를 하나 차리고 싶어요. 그래서 지금 계를 들고 있죠. 현재 계획으로는 1년 정도 기다려야 될 것 같아요.” “카페를 차라기도 전에 몸이 망가지지 않을까?” “그럴지도 모르죠. 처음보다 몸이 많이 나빠진 것 같아요. 요즘은 날마다 간장약을 먹고 또 가끔 집에서 엄마가 보내 주는 보약을 먹기도 해요.” “어머니도 수련이가 여기 있는 줄 아나?” “아니요. 회사 다니는 줄로만 알고 있죠.” 태어날 때의 인간은 다 같이 평등하고 인간의 소망은 다 같이 소중할 텐데, 어쩌다가 자기 몸을 축내며 매일매일 억지로 술을 마셔야 하는 직업을 가지게 된 이 아가씨의 삶이 안타까웠다. 어떤 통계를 보니까 서울에서 직업을 가진 여성의 50%가 호텔, 여관, 사우나, 안마시술소, 이발소, 룸살롱, 다방, 텍사스촌 등 유흥업소 종업원이라던데 과연 이들의 삶에 누가 관심을 가져주는가? 유명한 정치인이나, 훌륭한 종교 지도자 가운데서 이들의 고달픈 삶에 진정으로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다 집어치우고 시집이나 가지 그래.” “사
[우리문화신문=일취스님(철학박사)] 길을 가는 사람을 붙들고 "당신은 왜 사나요?" 하고 묻는다면, 뜬금없는 질문에 누구나 질색하거나 어리둥절할 것이다. 그것도 각본에 짜인 문답이라면 몰라도 갑작스럽게 던진 말 한마디, 각자의 삶에 중요한 핵심이긴 하지만 실로 깊고도 난해해서 쉽게 답을 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온갖 답이 나올 법도 하다. 예를 들면, “태어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산다.” “잘 살고 잘 먹기 위해 산다.” “죽지 못해 산다. “소풍 가듯 산다.” “애(자식)들 때문에 산다.” “한 편의 연극처럼 즐기며 산다.” “그저 물 흐르듯 바람같이 산다.” “산다는 것이 대수냐, 되는대로 살면 되지” “숨 쉬고 있으니까 산다, 숨 끊어지면 죽는 것이고.” 등등 무성한 답이 예상된다. 생각해 보면 “왜 사느냐?”에 대한 이렇다 할 정답이 없을 것 같고, “숨 쉬고 있으니까 산다.”라는 말에 제일 마음이 간다. 호홀지간(毫忽之間)이라고 했다. 누구나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모호한 상태에서 숨이 끊어지면 그날로 삶을 마감하는 것이 당연지사일 것이다. 늙어 자연사(自然死)하는 죽음이나 병들어 죽는 상황을 빼고, 요즘 텔레비전에